김용범 제주도의사회장 “공공, 민간이 하기 힘든 분야 집중해야”
“의협, 대화도 좋지만 투쟁 통한 의권 쟁취도 준비해야”

국내 최초 영리병원으로 추진됐던 제주도 녹지국제병원을 감염병 전문 공공의료기관으로 전환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제주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신종 감염병에 상시 대응하는 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는 이유에서다.

녹지국제병원은 국내 최초 영리병원으로 주목 받았지만 지난 2019년 4월 제주도가 개설 허가를 취소하면서 이를 두고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1심 재판부는 제주도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히면서 마지막 대법원 판단만 남겨둔 상태다.

제주도의사회 김용범 회장은 최근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과 가진 인터뷰에서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이 앞으로도 계속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공공의료기관은 민간의료기관이 담당하기 힘든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제주도의 경우 녹지국제병원을 인수해 감염병 전문병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김 회장은 의협을 향해 지금보다는 조금 더 강경한 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 방법으로 대한개원의협의회도 주장했던 상시 투쟁체 구성을 제안했다.

제주도의사회 김용범 회장은 최근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과 인터뷰를 갖고 코로나19 대응과 의료 현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제주도의사회 김용범 회장은 최근 대한의사협회 출입기자단과 인터뷰를 갖고 코로나19 대응과 의료 현안에 대해 이야기했다.

- 제37대 제주도의사회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한 지 9개월이 지났다.

코로나19 여파로 의사회 행사들이 취소되거나 비대면 화상회의로 치러지다 보니 회원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의견을 듣는데 제약이 많았다. 이를 해소하고 회원 간 소통을 강화하는 취지로 ‘귤림제주’ 특별판 책자를 발간했다. 또 매월 정기이사회에 열성적으로 참여해 한 뜻으로 힘을 모아주는 제37대 임원들의 자세에서 희망을 느꼈다.

- 회장 선거 당시 공약으로 제주도 내 의료폐기물 소각장 건립을 요구하겠다고 했다. 제주도 내 의료폐기물은 어떻게 처리하고 있나.

현재 도내에서 발생하는 의료폐기물은 몇 개 업체가 수거한 다음, 화물차에 싣고 선박을 이용해 도외로 반출해 소각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감염원 노출 위험이 항시 존재하고 폐기물 처리에 따른 경비도 많이 소요된다. 새로 의료폐기물 소각장을 건립하기에는 제약이 많기 때문에 기존 소각장에서 한 개의 소각로를 불하받아서 사용하는 방안을 제주도에 요구하겠다.

- 의사 회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행정이나 조례안 발의에 엄중히 대응하겠다고도 했다. 어떤 의미인가.

전국 각지에서 한방난임치료에 대한 조례들이 우후죽순 격으로 제정되고 있다. 제주도에서도 발의됐고 우리 의사회는 해당 도의원을 항의 방문해 반대의견을 강력하게 전달했으나 결국 만장일치로 도의회를 통과하는 아픔을 겪었다. 지역 신문 광고를 통해 한방난임치료의 위험성과 관련 조례안의 부당성을 널리 알리기도 했다. 또 제주의료원장직은 대대로 의사가 맡아왔지만 지난 회기에 보건직 공무원 출신이 임명됐다. 행정편의를 위한 처사라고 여겨진다. 원하는 의사 회원을 적극 지원해서 제주의료원장을 의사직으로 복귀시키기 위해 힘쓰겠다.

- 방역 조치를 다시 강화한 후 코로나19 확산세가 주춤하고 있지만 위증증 환자는 1,000명 이하로 내려가지 않아 의료 현장의 부담은 여전히 크다. 제주 지역 상황은 어떤가.

‘위드 코로나’(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확진자 수가 제주에서도 급격히 증가했다. 중증 환자는 입원치료, 경증이나 무증상인 환자는 생활치료센터나 재택에서 치료 중이다. 재택치료는 제주의료원과 서귀포의료원 의료진이 담당하고 있는데, 확진자가 더 늘어난다면 민간의료기관의 참여도 고려하고 있다.

- 코로나19 유행을 계기로 공공의료를 강화하고 공공병원을 추가로 설립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코로나19 같은 신종 감염병이 앞으로도 계속 기승을 부릴 것이다. 공공의료 부분은 민간의료기관에서 담당하기 힘든 업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의료취약지에 공공병원을 신설하는 정책보다는 기존 지방의료원을 지원해 민간의료기관과 차별성을 두고 감염병 치료 등 공공의료에 전념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 제주도의 경우 오랜 기간 방치되고 있는 중국 녹지그룹의 영리병원(녹지국제병원)을 인수해 지역 감염병 치료센터로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만하다.

- 대형병원들이 앞다퉈 수도권 분원 설립을 추진하면서 지방의 의료인력난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장의 상황은 어떤가.

수도권 대형병원들의 분원 설립으로 인해 의료의 수도권 집중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지방 의료체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기에 큰 염려가 된다. 제주에는 국립 제주대병원이 있지만 상급종합병원은 없다. 정부는 지방 대학병원에 물적, 인적 지원을 대폭 늘려서 지역 환자들이 수도권으로 몰리는 현상을 억제하도록 힘써야 한다. 이는 곧 지역 의료전달체계의 올바른 정립과도 맞물려 있다.

- 대한의사협회 이필수 회장은 투쟁과 협상의 균형을 강조하면서 최대집 집행부 시절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정치권, 국회와의 협상을 통한 의협 대외협력 강화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찬성한다. 하지만 의협 집행부의 협상 의지와 노력에도 최근 몇 개월간 연이어 발의되고 시행되는 ‘의료악법’들을 대하면서 느끼는 점은 회원들의 힘을 한데 모아 더 강한 의협을 만들어 나가야 되겠다는 것이다. 협상과 타협을 통한 회무는 위정자들의 술책이나 배신으로 무너질 위험성이 늘 존재한다. 회원들의 단합을 독려하고 투쟁을 통한 의권 쟁취를 염두에 두고 준비해야 하겠다.

- 의료계 일각에서 제기되는 상시투쟁체 구성 요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의협 투쟁위원회는 평소에도 조직돼 있어야 한다. 이는 회원 단합을 통한 의협의 힘을 키우는데 한 축이 되고, 대외 협상에서도 유리한 측면이 있다.

- 여야 대선 후보들이 제시한 보건의료 정책 공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번 대선공약에서 여당 후보는 ‘문재인 케어’로 대표되는 의료정책을 이어받고 공공의대 신설과 공공의료 확충을 선언했다. 이 두 가지 사항은 의사 회원들이 파업을 하면서까지 막아내고자 했던 바이고, 문재인 케어는 실패한 정책으로 이미 판단되고 있지 않은가. 야당 후보는 문재인 케어를 무차별적인 급여화로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는 주범으로 평가했고,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 해결 의지를 천명했다. 의료공약에서는 야당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대선에 대비해서 의협과 보조를 맞출 예정이며, 지역의사회에서는 내년 6월에 치러지는 도지사 선거에 출마하는 유력 후보들과의 간담회를 통해 지역 의료현안에 대해 토의하고 우리의 뜻을 전달하고자 한다.

- 꾸준히 논란이 되고 있는 원격의료에 대한 생각은?

비대면 진료는 진료에 필요한 기본적인 요소들이 누락돼 있어서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위험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로서는 비대면 진료를 반대한다. 코로나19의 특수상황에서 한시적으로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명확하지 않은 허용범위로 인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이 기승을 부리면서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지역 의료시스템 붕괴를 초래하고 있다. 비대면 진료 플랫폼 근절은 조속히 이뤄져야 한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의 논의를 바탕으로, 시대적 흐름에 맞춰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안전하고 효율적인 비대면 진료의 올바른 방향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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