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빅데이터 연구에서 ‘빅5병원’ 만큼 주목받는 건양대병원
김종엽 교수, 이비인후과에서 ‘정보의학교실’ 초대 주임교수로
동료 교수 대상 ‘R’ 통계분석 강의 인기…〈R 통계의 정석〉 출간

최근 들어 건양대 의과대학의 약진이 눈에 띈다. 건양의대는 전국 의대 중에서도 늦게 설립 인가를 받은 후발 주자 중 한 곳이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연구수익이 5배 이상 급증하는 등 연구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2020년도 건양의대 연구수익은 65억4,000만원으로 증가했다. 연구수익이 12억8,000만원이었던 2018년에 비해 5배 이상 급증했으며 2019년(39억원)보다도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건양대의료원은 의약품임상시험센터, 의료기기융합센터,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 인체유래물은행, 명곡의과학연구소, 명곡안연구소 등 산하 연구기관들이 골고루 연구비 수주 실적을 올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특히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최근 들어 의료 빅데이터 분야 연구에서 건양대의료원은 ‘빅5병원’ 만큼 주목 받는 곳이다. 그 배경에는 센터를 이끌고 있는 김종엽 교수가 있다. 건양의대가 지난 2018년 정보의학교실을 개설할 수 있었던 것도 김 교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국 40개 의대 중 의료정보학을 다루는 학과를 별도로 개설한 곳은 많지 않다. 김 교수는 건양대 의료공과대학 의료인공지능학과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깜신’이라는 닉네임으로도 유명한 김 교수는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고 여러 저서를 내면서 이비인후과 전문의로서 명성을 쌓아 왔다. 하지만 지금은 임상보다는 빅데이터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또한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에 디지털헬스케어 특별위원회 위원이며 보건복지부와 함께 DNA(Data-Network-AI) 중장기 국가전략과 실행계획을 수립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통계분석 소프트웨어 ‘R’을 의학과 보건학 분야 연구자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실용 지침서’인 <R통계의 정석>을 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청년의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임상 현장에서 환자들만 진료하던 시절보다 더 바빠졌지만, ‘통계 덕후’의 꿈을 실현해 가고 있는 지금이 더 즐겁다고 했다. 가치 있게 쓰이지 못하는 의료빅데이터가 그 가치에 맞게 제대로 활용되도록 하고 싶다고도 했다.

건양대병원 정보의학교실 김종엽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아서 이비인후과 전문의이면서 의대뿐만 아니라 공대에서도 '의학 통계'를 가르치게 된 계기와 빅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건양대병원 정보의학교실 김종엽 교수는 청년의사와 인터뷰아서 이비인후과 전문의이면서 의대뿐만 아니라 공대에서도 '의학 통계'를 가르치게 된 계기와 빅데이터 활용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했다.

- 이비인후과 전문의인데 의대는 물론 공대에서도 ‘통계’를 가르치고 있다.

‘의학 통계’를 가르치고 있는데, 공대 수업은 2021년부터 했다. 어릴 때부터 수학을 좋아했고 의대생 시절 ‘과탑’을 해봤던 과목 중 하나가 통계이기도 하다. 과학고 시절부터 취미로 꾸준히 코딩을 하고 프로그램을 짰다. 하지만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과학을 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기에 의대에 진학했다. 그런데 의대를 졸업한 다음 다시 과학을 하고 있다. 지금은 ‘이게 무슨 복인가’ 싶다.

- 잘하고 좋아한다고 해서 대학이 학과를 개설하고 학생들을 가르치게 하지는 않는다. 계기가 있었나.

연구를 하려면 통계가 필수이다보니 의대생 시절부터 통계 분석 프로그램을 많이 사용했다. 당시에는 ‘SPSS’라는 통계 분석 소프트웨어를 이용했다. 이후 성능도 좋고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R’이라는 소프트웨어가 나왔고 현재는 R을 통계 분석에 이용하는 연구자가 더 많다. 어릴 때부터 코딩을 취미로 꾸준히 해 왔기 때문에 R을 사용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독학으로 익힌 R을 사용해보고 싶어서 논문을 쓰고 있는 교수들이 필요하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도왔다. 기존에 몇 개월씩 걸리던 통계 분석이 ‘김종엽의 도움을 받으면 금방 나오더라’라고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임상 교수들을 대상으로 통계 강의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내가 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교수 20여명을 대상으로 3시간 동안 통계 분석과 관련된 강의를 진행했고 반응이 좋았다. 결국 3주 간격으로 3시간짜리 워크숍을 10차례 가졌다. 나중에는 간호부에서도 요청이 와서 더 큰 강의실에서 진행해야 했다.

- 소프트웨어 ‘R’을 이용해 통계 분석을 하는 방법을 설명하는 영상을 유튜브 채널 ‘김종엽’에 올리기도 했다.

처음 강의는 준비 없이 진행됐다. 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강의록을 만들기 시작했다. 또 강의 내용을 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에 올렸다. 유튜브 영상을 보고 연락을 해오는 사람들도 많다. 유튜브 영상도 많이 좋다. 초보 연구자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준 것이다. 지금도 대학병원 등 외부에서 통계 관련 강의를 많이 한다. 강의 내용을 토대로 펴낸 책이 <R 통계의 정석>이다.

- 교수들을 대상으로 R을 이용한 통계 분석 방법을 강의한 게 정보의학교실 개설로 이어진 것인가.

그렇다고 볼 수 있다. 건양대 차원에서 연구 분야를 중점적으로 육성하기로 했고 그러려면 의료정보 등을 다루는 학과가 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주임 교수로 내가 추천됐다.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법적으로 문제될 게 없다면서 학교 운영위원회도 통과했다. 그렇게 건양의대에 정보의학교실이 개설됐다.

- 수업도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진행한다고 들었다. 온라인으로 먼저 학습한 후 오프라인 강의에서 교수와 토론하는 방식인 ‘플립 러닝(Flipped Learning)’을 접목했다고 하는데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

의대생들은 공부량이 너무 많기에 예습이 어렵다. 그래서 의대 교육에 플립 러닝을 접목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프라인 강의지만 각자 유튜브 채널에 올린 영상을 보고 각자 공부하도록 했다. 개인마다 학습 속도가 다르다. 개별적으로 영상으로 공부를 하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질문을 하도록 했다. 학생들의 반응도 좋았다. 1대1로 모든 학생을 다 봐주기 힘들어서 대학원생과 연구원들도 강의실에 들어와서 나눠서 질문을 받았다. 첫해 강의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건양의대는 지난 2018년 정보의학교실을 개설했고 당시 소속 교수는 김 교수 한명 뿐이었다. 하지만 빅데이터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건양의대 정보의학교실은 빛을 보기 시작했다. 건양대의료원은 이듬해인 2019년 1월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도 개설했다. 김 교수는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장도 맡고 있다. 센터를 중심으로 관련 분야 연구 실적이 급성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정보의학교실 소속 교수는 1명에서 3명으로, 센터 소속 연구원은 2명에서 30명으로 늘었다.

-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는 어떤 곳인가.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의료빅데이터를 효율적이고 안전하게 활용하기 위해 설립된다. 그래서 의료데이터와 관련된 모든 연구를 한다. 데이터의 중요성은 갈수록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인공지능(AI)도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방법 중 하나다. 인공지능의 성능을 높이려면 데이터를 촘촘하게 정형화해서 구축하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역할이 중요하다.

- 건양대병원이 헬스케어데이터사이언스센터를 개설한 후 달라진 점이 있는가.

다른 대학병원들과 똑같이 암 환자 진료 등에만 집중해서는 경쟁에서 앞서 나가기 힘들다. 하지만 빅데이터 분야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이후 이 분야만큼은 앞서 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성과도 나고 있다. 데이터 분야 연구에 있어서는 서울 대형병원에도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 의료 빅데이터의 경우 그 중요성에 비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온다. 기관별로 데이터 용어나 구조 등이 다 달라서 이용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준비된 병원이 별로 없다. 연구 목적으로 데이터를 모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국 40개 의대가 CDM(Common Data Model, 공통데이터모델)을 구축했다고 하지만 이를 연구 등에 활용하는 곳은 6곳 정도에 불과하다. 건양대병원은 CDM를 구축한 고도화하고 있다. 그리고 CDW(Clinical Data Warehouse, 임상데이터웨어하우스)도 구축하려고 한다. CDW 구축은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래도 해야 하는 게 후배들을 위해서다. 후배들이 CDW를 이용해 더 많은 연구를 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 후손들은 우리보다 조금 더 근거 기반의 치료를 받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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