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환자와 일반 환자 뒤섞이고 있는 응급실
이형민 응급의학의사회장 “시간 지날수록 더 악화”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을 잠시 멈춰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에도 정부는 방역 조치 강화에 미온적이지만 의료현장 곳곳에서는 붕괴 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료에 의료자원이 집중되고 있지만 재택치료 중인 환자들은 증상이 악화돼도 입원할 병상을 찾기 힘들다. 투석 치료를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생명에 위협을 느끼는 말기신부전 환자들도 많다.

반면, 코로나19가 의료자원을 점유하면서 심정지 환자가 제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하는 상황도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세를 꺾지 못하면 의료공백은 의료붕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그 조짐은 응급실에서 나타나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장인 이형민 경희대병원 교수는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현장에서는 한 달 전부터 ‘응급실 붕괴 위기’라고 느껴왔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황은 더 악화될 것이다. 현재 응급실 상황은 혼돈 그 자체”라고 했다.

이 회장은 “중환자병상이 없거나 수술할 의사가 없는 상황에서는 응급실에 여유 병상이 있다고 해도 큰 의미가 없다”며 “발열 환자를 음압실이 없는 병원에 데려오거나 심장혈관조영술이 불가능한 병원에 흉통 환자를 수용하라는 요구에 구급대와 의료진 간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고도 했다.

그는 이어 “응급실의 문제가 아닌 것을 응급실을 압박한다고 해결되진 않는다. 이송지연이나 수용거부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지 좀 더 생각해보고 장기적인 계획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우리가 힘들다고 얘기하는 게 ‘힘드니까 위로해주고 보상해달라’가 아니다. 의사들은 기본적으로 환자를 살리는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지금 상황이 환자들에게 모든 걸 다 해줄 수 있는 상황이 안 되기에 좌절감을 느껴서 하는 말”이라고 강조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지난 14일 서울드래곤시티에서 열린 제28차 대한개원의협의회 추계연수교육 학술세미나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위드 코로나 이후 응급실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이형민 회장은 최근 청년의사와 인터뷰에서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응급실 상황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까지 폐쇄하고 코로나19 환자만 전담하는 병원이 늘면서 응급환자들이 갈 곳이 줄었다고 했다. 또 코로나19 환자가 다른 질환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도 병원을 가기 힘들어졌다. 여기에 진료한 응급환자가 뒤늦게 코로나19 양성으로 확인되면서 담당 의료인들이 줄줄이 자가격리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회장은 “코로나19 전담병원들이 응급의료센터로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게 되면서 코로나19 양성이면서 응급인 환자들이 갈 곳이 없어졌다. 공공의료원에서 주로 담당했던 주취자, 노숙자, 무연고자들은 아파도 갈 곳이 없다”며 “얼마 전에는 코로나19 양성인 산모가 진통은 있지만 태동이 없어서 서울 시내 모든 응급실에 다 전화해봤지만 받아줄 수 있는 의료기관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코로나19 확진자인데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연락을 받아도 내줄 병상이 없다. 심폐소생술이 필요한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가까운 병원으로 가야 하지만 받을 수 있는 응급실이 없을 것”이라며 “코로나19 환자가 의료자원을 더 많이 점유할수록 다른 응급질환 대응이 어려워진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주취자나 교통사고 환자들이 코로나19 유행 이전만큼 늘고 있다. 단계적 일상회복 이후 2년 전과 비슷한 환자군이 형성되고 있다”며 “여기에 코로나19 환자들도 늘면서 이전에는 증상이나 문진으로 예상이라도 했지만 지금은 전혀 예측하지 못하고 추후 의료진이 격리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고도 했다.

이 회장은 “응급실 입장에서 코로나19 환자나 발열 환자는 소수다. 하지만 이 소수가 응급의료자원을 거의 대부분 차지해 버리고 있다. 1%의 코로나19 환자가 50% 이상의 응급의료자원을 소모하는 상황”이라며 “당연히 99%의 일반 환자에 대해서는 진료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치료 기회도 줄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응급실 격리병상을 늘린다고 해도 이를 운영할 수 있는 의사, 간호사 인력을 추가로 배치해야 하고 이에 따른 지자체나 국가 지원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응급의학의사회는 현재의 위기를 넘기기 위해 ▲응급의료협의체 구성 ▲코로나19 환자 병원배정 이송 전담 TFT 구성 ▲자택격리와 재택치료 응급상황 대응과 이송·의료대책에 전문가 의견 반영 ▲응급의료기관 음압실 확대, 인력·시설 지원 확대 ▲필수의료인력 처우와 환경 개선을 요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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