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醫원격의료연구회, 세미나 열고 의견 수렴
“변하는 시대에 발맞춰야…원격의료 피할 수 없다”
수가·의약품배송·개인정보보호 등 다양한 문제 지적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의료계 내부 시각이 바뀌고 있다. 파업까지 할 정도로 ‘무조건 반대’를 외쳤던 의료계지만 이제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를 넘어 먼저 대안을 마련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는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가 30일 진행한 제3차 세미나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 원격의료연구회는 이번 세미나에서 수가정책과 환자 본인 확인, 의약품 비대면 구매와 진료장면 녹화, 시설 기준 법제화와 개인정보보호, 법률 개정 분야로 나눠 원격의료 문제에 접근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연구원과 시도의사회장 등은 원격의료를 곧 다가올 미래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 도입이 의료체계 왜곡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원격의료연구회장인 서울시의사회 김성근 부회장은 “원격의료라는 말을 꺼내는 것조차 금기였는데 이 문제를 꺼내서 연구하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큰 진전”이라며 “시대가 변하면 그에 발맞춰서 움직여야 한다. 연구회는 원격의료에 대해 결정하기보다 공부하자는 취지에서 출발했다”고 말했다.

대한의사협회 우봉식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원격의료를 하는 다른 나라와 상황과 여건이 다르지만 우리나라도 원격의료와 유사한 형태의 비대면 진료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왔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조금 앞당겼을 뿐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연구소에서는 1차 의료기관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가 운영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했다.

강원도의사회 김택우 회장은 “정부가 원격의료의 상업적이고 경제적인 측면만 부각해서 환자와 의료기관에 대한 부분은 소외됐다. 그래서 의료계가 결사반대하기도 했다”며 “필요한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만 연구회에서 결론을 정해 놓고 의견을 모으지 않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는 지난 11월 30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3차 세미나를 열고 원격의료에 대해 논의했다.
서울시의사회 원격의료연구회는 지난 11월 30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3차 세미나를 열고 원격의료에 대해 논의했다.

수가, 의약품 배송, 시설 기준, 개인정보보호 등 문제로 지적

원격의료를 의료 현장에 도입하려면 수가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많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정신전문연구원인 서울시의사회 최상철 섭외이사는 수가 문제를 지적했다. 최 이사는 “저수가체제에서 원격진료 수가를 어떻게 책정할지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며 “진찰료는 하나의 포괄수가제 형식으로 구성돼 있는데 (원격진료 수가는) 다양한 단계로 만들어져야 한다. 원격진료가 결정된 이후에는 바꾸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만성질환관리 시범사업과 심층진찰 수가 시범사업을 예로 들며 “진찰료가 높이 책정됐던 몇 가지 사례가 있다. 원격진료도 이에 준해서 책정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코로나19 유행으로 재택치료 협의체도 구성됐다. 여기서 합리적인 수가가 결정되면 향후 원격진료에 대한 보험 기준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원격진료를 받는 환자의 본인 확인도 쟁점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최 이사는 “원격진료에서 본인 확인 절차가 그대로 대면진료에 연결된다면 향후 모든 환자가 인증 후 진료를 받는 과정이 생길 수도 있다”며 “환자와 의료인 모두 쉽고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임연구원인 서울시의사회 이세라 부회장은 “미국이나 중국에서 원격의료가 시행될 수 있는 이유 중 첫 번째가 수가”라며 “원격의료에 반대하는 의사들이 많지만 몇 가지 부분을 개선하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개선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의사 1인당 원격으로 진료할 수 있는 환자 수를 제한하면 한쪽으로 환자가 몰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도 했다.

외과전문연구원인 서울시의사회 김경희 정책이사는 원격진료와 의약품 배송이 함께 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 과정에서 약계가 성분명 처방 허용을 전제로 의약품 배송을 수용할 수 있다고 했다.

김경희 이사는 “법 개정을 통해 원격진료를 허용한다면 의약품 비대면 구매도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정부가 대한약사회와 의약품 비대면 구매와 성분명 처방 허용을 거래한다면 원격진료 틀이 잘못 만들어질 수 있다. 의약분업 근간을 흔드는 것으로, 의료계는 조제 장소를 환자가 선택하는 선택분업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이사는 의사-환자 간 원격진료가 허용되면 진료 장면 녹화를 막을 방법이 없다며 “법률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내과전문연구원인 서울시의사회 김철 보험이사는 “원격의료를 원하는 환자에게 어떤 의료기기나 시설이 갖춰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며 “도서 벽지 거주자나 거동이 어려운 노인·장애인이 의료기기를 작동할 때 도움을 주는 보조인에 대한 자격 규정도 예정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김철 이사는 “의료인으로서는 의료기기 규제 당국의 승인을 받은 기기를 사용하면 충분하고 별도 원격진료 시설 기준을 의료법이나 그 하위 규정으로 둘 필요는 없다”며 “시설과 장비를 갖추는 예산은 국가와 지자체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철 이사는 심장 삽입 전기장치(Cardiac Implantable Electronic Device, CIED)를 예로 들며 “기술 발전을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형국이어서 전향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도 했다. “부정맥, 심부전 등 이상 징후를 조기 발견해 5년 내 사망률과 병원 정기방문 횟수를 줄여 의료비를 절감하고 환자 만족도가 높은데도 의사나 주변 사람이 디바이스를 통해 기록된 수치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는 게 불법이라는 조항으로 인해 실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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