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후 항암신약 개발 패러다임 변화 두고 연구자들 간 설전
"독성 감소 보다 구체화해야" vs. "최대 허용 용량 원리 여전히 중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최초 KRAS G12C 억제제 '루마크라스(성분명 소토라십)'의 허가 조건으로 암젠에 저용량에 대한 추가 임상시험을 요구한 배경을 놓고 연구자들 간 의견이 분분하다.

최근 발행된 미국임상종양학회(ASCO) 학술지(Journal of Clinical Oncology, JCO) 최신호에는 FDA가 요구한 '루마크라스'의 허가 조건을 두고 항암전문가들 간 벌어진 설전이 실렸다.

FDA는 지난 5월 28일 '이전에 1회 이상 전신요법을 받은 국소진행성 혹은 전이성 KRAS G12C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 치료에 암젠의 경구용 KRAS G12C 억제제 '루마크라스' 사용을 허가 승인했다.

지난 40년간 KRAS 변이를 타깃한 항암제 개발이 번번히 실패하며 치료 옵션에 대한 미충족 수요가 컸던터라, FDA는 '루마크라스' 2상 임상시험인 CodeBreak 100 연구 결과를 근거로 허가를 승인했다. 대신 암젠 측에 확증적 3상 임상시험 결과 제출을 요구하고, 더불어 루마크라스의 저용량 용법에 대한 추가 임상시험 수행을 허가 조건으로 제시했다.

허가 받은 1일 1회 960mg 용법에 대한 확증적 3상 임상시험 외에도, 1일 1회 240mg 용법을 추가로 평가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규제기관이 제약사가 제시한 허가 용량이 아닌 새로운 용량을 추가적으로 평가하라고 요구한 사례는 이번이 최초였지만, FDA는 이같은 요구에 대한 연유를 공식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

FDA의 요구를 수용한 암젠도 이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지 않아 관련 업계에선 추측이 난무했다. 이후 항암 치료 전문가들은 FDA의 의중에 대해 여러 가설을 내놓았다.

미국 시카고 의과대학 마크 라테인(Mark J. Ratain) 교수 등은 '소토라십의 용량 최적화: 미국 식품의약국이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논평을 게재했다.

그는 "지금까지 항암제가 개발되고 허가 받은 방식은 '최대 허용 용량(maximum tolerated dose, MTD)이 곧 최적 용량'이라는 가정하에 이뤄졌다"라며 "하지만 세포독성항암제에서 표적항암제로 개발 원리가 바뀜에 따라 이같은 최적 용량에 대한 평가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세포독성항암제는 최대한 많은 약물을 투여해 최대한 많은 종양세포를 죽이는 방식으로, 대다수의 환자가 허용 가능한 최대 용량을 알아내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최근 개발되고 있는 약물들은 암세포의 증식을 자극하거나 사멸하는 분자 경로를 억제함으로써 항암 효과를 내는 표적 약물들로, 지금까지 이뤄진 MTD 기반의 투여 평가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루마크라스 역시 CodeBreak 100 연구를 통해 1일 1회 180mg, 360mg, 720mg, 960mg에 대한 용량 평가가 이뤄졌고 모든 시험 용량에서 항암 활성을 유도했지만, 허용 가능한 최대 용량인 960mg가 허가 용량으로 제시된 바 있다.

마크 라테인 교수는 "최근 개발되고 있는 대부분의 표적항암제들은 여전히 MTD를 결정하기 위해 초기 임상시험을 진행하고, 이렇게 결정된 최대 용량이 다음 단계 임상시험으로 이어지고 있다"라며 "향후 표적항암제의 개발시에는 확증적 3상 임상시험에 돌입하기 전 용량에 따른 무작위 2상 임상시험을 통해 최적 용량을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용량이 증가할수록 독성이 증가하는 경우, 더이상 용량 증가의 이점이 보이지 않으면 최적 용량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개발 방식의 변화가 이번 추가 연구를 요청한 FDA의 의중일 것이라고도 추측했다.

하지만 몬트리올 의과대학의 드니 술리에르(Denis Soulières) 교수 등은 반박 논평을 통해 "FDA가 요청한 소토라십에 대한 추가 연구 제안은 현재의 약물 개발 방식을 검토하기 위한 메시지가 아니라, 허가 용량에서 심각한 독성이 없는 경우 추가적으로 효과적인 용량의 적절한 결정을 논의하기 위해 한 제안"이라고 주장했다.

드니 술리에르 교수는 "라테인 교수 등은 MTD의 개념을 새로운 표적치료에 적용해서는 안되며, 최적 용량은 독성 감소를 보다 구체적으로 목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면서 "효과 감소를 희생하지 않는다면 부작용의 제한은 가치 있는 목표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항암제가 암세포의 관심 표적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유사한 구조를 가진 다른 표적에도 영향을 미쳐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밀의학 시대에는 개인의 MTD도 목표가 될 수 있고, 실제로 대부분의 환자에게 잠재적인 이점을 제공하는 동시에 독성을 관리할 수 있는 용량을 제안하는 개발이 이뤄져야 한다"라며 "이런 점에서 MTD의 본질적인 원리는 통계적 목적을 위해 여전히 매우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현재와 같이 (약동학 및 실제 용량 수준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체중 및 특이도와 관련없이 모든 환자에 대한 단일 고정 용량을 제안하는 임상 개발 추세에서는 MTD는 더욱 중요한 원리라는 것이다.

또한 드니 술리에르 교수는 "최고의 내약성으로 효능이 있는 가장 낮은 수준의 용량을 선택하는 접근법은 유용성을 완전히 탐색하기도 전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약물을 잠재적으로 폐기하도록 유도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라테인 교수 등은 또한 최소 용량을 찾는 것으로 향후 재정 독성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이와 동시에 여러 용량의 무작위 비교 임상시험을 제안했다"라며 "약물 용량만을 기준으로 효능 차이를 적절하게 구별하려면 치료받는 환자의 수를 상당히 증가시켜야 하는데, 이는 과도한 개발 비용을 초래할 것"이라며 오히려 약가를 높일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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