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에서 만나 본 청년의사 '쇼피알' 정훈이 작가의 26년 만화 세계
“이제는 의사 사회 대변하기도…한결 같은 작가로 기억 되고파”

‘씨네21’에서 만화를 연재해온 정훈이 작가가 지난 9월 ‘정훈이 만화, 영화와 함께 뒹굴뒹굴 25년’이라는 전시회를 열고 있다. 지난 1995년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절부터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침체기까지 씨네21에 연재해온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이 전시회는 내년 3월 20일까지 이어진다.

'씨네21'과 '정훈이 만화'의 25년 세월 만큼 오래된 인연이 또 있다. 바로 정훈이 작가가 2002년부터 청년의사에 연재하고 있는 의료만화 ‘쇼피알’이다.

20돌을 앞두고 있는 쇼피알은 청년의사의 인기 콘텐츠 중 하나로 의사들의 세계를 가감 없이 드러내 많은 독자들의 호응을 얻고 있다.

의료계의 주요 이슈부터 마음이 따뜻해지는 환자와의 에피소드, 의과대학 족보 변천사 등 의사들이 공감할 수 있는 추억과 더불어 의료계와 영화‧드라마 속 에피소드를 버무린 즐거운 상상이 펼쳐진다.

이처럼 의사들의 세계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이 바로 정훈이 작가의 독특한 그림체와 유머코드다. 땅콩 모양의 동글동글한 머리를 가진 남기남이 의료계를 활보하고 다니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남기남 캐릭터를 탄생시킨 정훈이 작가는 지난 1995년 영챔프에 ‘리모코니스트’라는 단편으로 데뷔한 후 26년 동안 ‘트러블 삼국지’, ‘정훈이 만화’, ‘쇼피알’ 등 다양한 만화를 그려내며 많은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독특한 유머와 촌철살인의 풍자로 큰 사랑을 받으며 영화를 넘어 의료만화까지 장르를 개척하고 있는 정훈이 작가를 만나 26년 동안 독자들 마음 한편에 한결같은 작가로 기억될 수 있었던 비결을 들어봤다.

정훈이 작가는 쇼피알의 인기 비결을 묻자 “쇼피알이 의사가 참여한 만화기 때문에 의사들의 공감을 많이 얻는 것 같다”고 말했다.

본지에서 '쇼피알'을 연재하는 정훈이 작가에게 26년 만화 인생을 들어봤다.(사진제공: 정훈이 작가)
본지에서 '쇼피알'을 연재하는 정훈이 작가에게 26년 만화 인생을 들어봤다.(사진제공: 정훈이 작가)

- 1995년 만화잡지 ‘영챔프’로 데뷔해 올해로 26년째 만화가의 길을 걷고 있다. 최근에는 25년 연재 해 온 ‘씨네21’ 정훈이 만화의 마침표를 찍었는데, 늘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 내야 한다는 부담도 컸을 것 같다.

만화가 데뷔도 급작스러웠고, 씨네21 연재도 갑자기 시작된 거라 그 부담이 매우 컸다. 원래는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군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삼수에 실패해 그 꿈을 접게 됐고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을 고민하다가 만화가로 진로를 정했다. 공책에 낙서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걸 본 친구들이 만화가가 돼보라고 했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후 만화 학원을 다니며 만화가 데뷔를 준비하다 1995년에 처음으로 도전한 만화잡지 공모전에서 당선됐다. 그때 씨네21에서 데뷔작에 관해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기자가 영화 패러디 만화 작가를 구하고 있다며 한 번 테스트 작품을 올려보라고 했다. 그렇게 그려낸 첫 번째 작품이 ‘포레스트 검프’다. 그 만화가 잡지에 실리며 1995년 씨네21에서 연재를 시작했다. 하루아침에 인생이 뒤집힌 느낌이었다.

25년간 연재하며 매 주 쏟아지는 영화에서 만화 소재를 찾는 것은 마치 매 주 시험을 치는 심정이었다. 정훈이 만화는 영화 패러디물이지만 영화에서는 하나의 모티브만 들고 와서 영화 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그렸기 때문에 더 힘들었다. 하지만 15년 쯤 연재해보니 영화들도 비슷비슷하게 나오더라. 만약 영화에 맞춰서 만화를 그렸다면 독자들이 쉽게 내용을 예측할 수 있어 지루함을 느꼈을 것 같다.

이제 연재를 마치고 정신적으로 여유가 생겨 하고 싶은 일이나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겨서 매우 홀가분하다. 하지만 반평생 하던 일이 사라졌다는 불안감도 있다.

- 본지에 의료만화 ‘쇼피알’을 연재하고 있다. 청년의사와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지난 1997년 KBS에서 방영했던 아침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거기서 알게 된 PD에게 1999년 어느 날 연락이 왔다. 음식 프로그램이었는데 긴급하게 출연자와 장소를 섭외하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공중보건의사였던 청년의사 박재영 주간이 요리책 저자로 함께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되며 인연이 됐다. 이후 박 주간으로부터 청년의사의 만화 연재를 제의받아 지난 2002년부터 연재를 시작했다. 사실 씨네21 만큼 청년의사와도 인연이 깊다.

- 쇼피알은 의사가 글을 담당하고, 정훈이 작가는 그림을 맡고 있다.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일단 글 작가가 원고나 자료를 보내주면 이후 작업은 알아서 한다. 원고에 만화적으로 재밌는 아이디어를 더해 분칠을 한다고 보면 된다. 원고가 길게 오는 경우 줄이기도 하지만 글 작가가 열심히 써준 원고라 미안해지기도 한다. 원고가 정말 재밌는 경우는 칸을 더 늘려 넣을 때도 있다. 또 드라마나 영화를 패러디한 원고를 받기도 하는데 영화 만화만 25년 연재한 나도 모르는 작품들도 많아서 놀라곤 한다. 특히 서민 교수(단국의대 기생충학교실)의 경우 영화나 드라마에 대한 지식이 방대해 몇 년 전에 나온 프랑스 영화를 소재로 원고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경우 칸을 더 할애해서 작품에 대한 설명을 넣는다.

보통은 충실한 원고를 보내주지만 가끔 당혹스러울 때도 있다. 글 작가였던 ‘주 프로’ 주웅 교수(이대서울병원 산부인과)는 수술 직전에 문자로 급하게 네 줄짜리 원고를 보내준 적도 있다. 그래도 오래 연재하다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할지 알아서 만화를 그려 낼 수 있었다. 의견이 충돌할 때도 있다. 공동작업이다 보니 원고가 내 의견과 너무 다르면 작업하기가 어렵다. 그런 경우 의견 조율을 거쳐 작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 쇼피알의 재미를 담당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개성 있는 등장인물이다. 주인공으로 나오는 남기남은 어떻게 탄생했나.

남기남이라는 캐릭터는 학교 친구의 뒷모습에서 따왔다. 그 친구가 공부를 열심히 해보겠다며 머리를 짧게 자르고 학교에 왔었다. 그 친구의 뒷자리에 앉았는데 햇살에 비치는 뒷모습이 너무 예뻐 보였다. 그렇게 탄생한 게 땅콩 모양 머리통의 남기남이다.

남기남의 이름은 당시 유행했던 유머 ‘~를 남기남’에서 따왔다. 남기남 캐릭터는 씨네21에서 연재할 당시 ‘씨네 박’이라는 영화감독의 조수로 등장했다. 씨네21에서 연재한 지 1년쯤 됐을 때 남기남 감독의 지인이라는 사람들이 남기남 캐릭터가 남 감독을 희화화한 것이냐며 항의 전화를 했다. 알고 보니 실제로 남기남이라는 감독이 있던 거다. ‘영구와 땡칠이’를 포함해 주로 아동용 영화를 감독한 분이었는데 알고 보니 남기남 유머도 남 감독에서 나온 유머더라. 나는 잘 몰랐는데 영화판에서는 매우 유명한 분이어서 남기남 캐릭터의 이름을 바꿀까 고민도 했다. 남 감독은 지난 2019년에 돌아가셨는데 언제 기회가 되면 인사도 드리려고 생각했지만, 미처 찾아뵙지 못했다.

- 캐릭터 뿐 아니라 독특한 유머, 그리고 촌철살인의 풍자가 정훈이 만화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본인이 추구하는 유머는 무엇인가. 또 정훈이 만화, 쇼피알 등 여러 만화에서 사회 풍자를 담아내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 만화의 유머코드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바로 ‘유치하자’다. 만화에서 만큼은 유치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어렸을 때 명랑만화를 재밌게 봤는데 그 가벼움을 좋아했다. 내가 그리는 만화도 명랑만화 감성과 비슷한데 지금의 독자들이 그때의 추억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하지만 유머코드라는 게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연재를 시작했을 때 씨네21 독자 중 10%만이라도 제대로 잡자고 생각했다. 다행이 내가 연재했던 곳의 독자들과 유머코드가 맞아 오래 만화를 그릴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오래 연재하면서 나이는 점점 들어가는데 만화의 주 독자층은 20~30대라는 것을 알고는 괜히 아버지뻘인 사람이 아저씨 유머를 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고민한 적도 있다.

풍자 요소의 경우 시사 쪽에 관심이 많다보니 사회 풍자를 많이 하고 있다. 다행이 정치적 코드가 맞는 독자들이 많았고 팬의 상당수가 시사 주제를 좋아하기도 해서 팬들을 위해 더 신나게 그렸던 것 같다. 만화를 주 단위로 연재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다. 그 주의 사회적 이슈를 주간 만화에 담으면 공감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의성 때문에 월간지는 시도할 수도 없다. 몇 주가 지난 사회 이슈를 담은 이야기에 누가 공감해 주겠나.

- 쇼피알을 작업하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최근 글 작가인 김응수 원장(전 좋은가정의학과의원)이 실수로 예전에 작업했던 원고 파일을 또 보낸 적이 있다. 원고 작업을 하면서 ‘이 대사 본 적 있는데’ 하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20년을 연재하니 같은 소재가 반복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주제가 ‘해외여행을 준비하는 기술’이었는데 해외여행이 어려운 코로나19 시국에도 적절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나중에 원고를 올리고 나서야 김 원장도 옛날 원고를 다시 보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설마 했는데 그 원고가 옛날 것이라고 아무도 생각도 못했다는 점이 황당하지만 동시에 재밌었다.

- 쇼피알만 20년이다. 오래 연재해온 만큼 의료계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쇼피알 작가의 눈으로 바라 본 ‘의사의 세계’는 어떤지 알고 싶다.

의료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로서 제 3자이자 동시에 의료계에 한 발짝 발을 걸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지인들과 얘기할 때 언제부턴가 의사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쇼피알을 오래 연재하다보니 의사들의 입장에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됐는데 특히 형편없는 진료 수가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값을 치러주지도 않으면서 ‘어차피 의사들은 돈 잘 버니까’라고 희생을 강요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이런 부분에서 의사들과 일반 국민 사이의 벽이 생각보다 높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본인의 진료비가 싼 것은 알지만 진료 수가에 대해선 잘 모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국민들의 공감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의사들이 스스로 방어막을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누적된 정부에 대한 불신과 의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편견 때문일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점이 안타깝게 느껴진다.

- 쇼피알을 포함해 역사만화, 시사만화 등 여러 분야의 만화를 그려왔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있는지.

좀비 ‘아포칼립스’ 작품에 도전해보고 싶다. 세상이 망해서 기존의 사회 질서가 무너지는 가운데서 웃음을 자아내는 블랙 코미디에 도전해보고 싶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의 경우 대부분의 작품이 매우 우울하고 지저분하고 끔찍한데, 그 와중에도 인간들의 관계나 타락을 그려내는 작품이 있다. 그런 소재로 한국사회를 다루면 별의별 재밌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기대된다. 이제까지 한두 페이지로 끝나는 만화를 그려왔는데 책으로 두 권 정도 나올 분량의 호흡이 긴 장편도 그려보고 싶다.

- 데뷔 26주년이다. 앞으로 독자들에게 어떤 만화가로 기억되고 싶나.

씨네21에서 연재하며 독자들에게 했던 말인데, 그냥 영화관 한 편에서 팝콘 파는 매점 아저씨로 기억해달라고 부탁한 적이 있다. 거창한 것은 없고 그냥 늘 독자들 마음속에서 묵묵히, 그 자리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예전에 홈페이지 댓글에서 ‘정훈이 작가는 늘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서 좋다’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그 사람은 사회 초년생 때 잠깐 내 만화를 봤었는데, 한동안 잊고 지내다가 우연히 10여년 만에 내 만화를 다시 보면서 예전의 추억이 떠올랐다고 했다. 또 어떤 사람은 예전에 여자 친구와 함께 만화를 봤었는데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났다며 정훈이 작가는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줘서 고맙다고 말하더라. 마음이 먹먹해지는 순간이었다.

예전에 자주 갔다가 발걸음이 끊겨도 오랜만에 가면 변하지 않고 예전처럼 대해주는 오래된 식당의 주인처럼, 독자들이 힘들 때 다시 내 만화를 읽으면서 ‘정훈이 작가는 여전히 한 결 같구나’라는 위안을 드리고 싶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