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의사들은 왜 그래?> 펴낸 서울아산병원 김선영 교수
저수가 3분 진료, 의사들 번 아웃 빠지게 해…진료시간 늘려야
전공의특별법 도입에도 여전히 강도 높은 노동에 시달리는 전공의들
의협, 시민사회단체와 연대 통해 국민 공감대 얻어야 의료개혁 가능

인간적이고 헌신적으로 환자를 대하는 ‘슬기로운 의사생활’ 속 의사들을 기대하지만 ‘3분 진료’ 현실은 환자와 의사 사이 불신만 쌓이게 한다. 환자와의 눈 맞춤은 고사하고 모니터만 바라보며 속사포처럼 의학용어를 쏟아내는 의사들을 보면 서운함은 불신으로 바뀌기 일쑤다.

의사와 환자간 불신의 골이 깊은 한국의 현실은 영국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 2018년 영국의 시장조사전문기업 입소스(Ipsos)가 세계 23개국 국민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 비교 연구에서 각 국가의 의사 신뢰도를 평가한 결과, 한국은 신뢰도 28%로 23개국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이는 23개국 평균인 56%와 비교해도 현저히 낮은 수치다.

그런데 환자와 의사 사이 불신을 만드는 실체가 불합리한 의료시스템에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환자들이 경험해 온 불친절한 의사들의 이면에 비현실적인 수가, 획일적인 병원 운영 방식, 무계획적인 의료인력 운용 등 병원을 둘러싼 모순된 정책과 의료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김선영 교수는 최근 <의사들은 왜 그래?>를 펴내며 불친절한 의사들의 이면에 있는 한국 의료의 불합리한 의료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을 이야기하는 게 한편으로 공허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스템을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 쉽지만 구체적으로 고치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할지 모를 정도로 엉켜있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김 교수는 의사야말로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힘을 키울 수 있는 존재라며,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의사가 먼저 환자에게 손 내밀며 ‘설명하는 사람’으로, ‘신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불신의 벽 깊게 만든 ‘3분 진료’, 해결책은?

- 일명 ‘3분 진료’로 의사에 대한 불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모두가 이미 알고 있지만 고쳐지지 않는 문제, 저수가 때문이다. 진료수가가 낮으니 빠른 시간 안에 많은 환자를 봐야 병원이 운영될 수 있는 구조다. 외래진료만 하루에 80~100명씩 보는 게 정상이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의사도 환자들도 이를 정상적인 상황으로 여기고 있다. 환자를 더 많이 보면 명의라고 알려지며 사람들이 더 몰려들기도 한다.

수가를 상향해야 한다는 것은 다들 인정하고 있지만 낮은 가격을 올리는 것에는 엄청난 저항이 있다. 의사들도 수가를 올리면 진료의 질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 최대한 많은 환자들을 봐야 수익을 낼 수 있는 상황에서 ‘친절해야 한다’라는 명제가 의사들에겐 부담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친절하라’라는 명제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사람을 대하는 일인데 당연히 친절해야 한다. 실제로 병원에서는 의사들에게 커뮤니케이션 교육도 시킨다. 진료실 모니터 앞에도 ‘친절히 인사하라,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하다고 말하라’는 메모를 붙여놓기도 한다.

최대한 환자의 입장에서 진료하려고 하지만 진료량이 많아지다 보면 모두의 요구를 맞춰줄 수 없다. 누구는 또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환자들이 오래 기다리게 되는 것도 전부 다 의사들의 탓이 아니기 때문에 매번 죄송하다고 하기에도 지친다. 그런 문구들이 의사들의 번아웃을 초래하는데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환자경험평가가 도입되며 신속하지만 동시에 친절한 진료를 요구하는 경향이 더 심해졌다.

- 3분 진료 현실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의사의 진료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 양을 줄이지 않으면 면담의 질이 좋아질 수 없다. 진료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요즘은 의대에서 실기시험을 준비하면서 모의환자와 면담을 하고 피드백도 받기 때문에 환자 경험 측면에서는 점차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진료시간이 촉박하면 이런 노력이 다 소용 없을 것이다. 환자경험평가 역시 기존의 많은 진료량을 소화하는 가운데 친절을 쥐어짜는 방향이 아니라 실제 적절한 진료시간을 지키는지 반영할 필요가 있다.

진료의 다양한 형태 또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다학제 진료, 심층진료 시간을 늘리고 진료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시도가 꾸준히 이어진다면 건강보험 가입자들을 설득할 수 있지 않을까.

비정상적인 의료시스템에 ‘번아웃’된 의사들…출구전략은?

- 현재 의사들이 ‘집단적인 번아웃’ 상태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현재 의사들의 심리상태를 들여다보면 이해받고 싶지 않고, 이해받으려고 노력하고 싶지도 않은 감정이 존재하는 것 같다. 반복되는 의료 정책 실패와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이면서 의사들은 본인의 노동에 대해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다고 느끼고 있다. 물론 다른 직업에 비해 경제적 보상이 적은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면서 의사로서의 사회적 책무나 전문직으로서의 자존감이 점점 떨어져가는 상황이다.

지난해 ‘수능 수석 의사와 공공의대 졸업 의사 둘 중에 누구에게 진료를 받을 것인가’라는 홍보물이 문제가 된 적 있다. 이렇게 대중에게 공감을 얻지 못하는 엘리트주의적인 모습이 나온 것도 번아웃으로 인한 ‘포기한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 지난해 의료계 집단휴진 사태가 있었다. 의대생들도 ‘동맹휴학’을 맺고 거리로 나왔다. 의약분업 파업 당시 의대생들도 동맹휴학을 했다. 당시 의대생이었는데, 그 입장에서 지난해 파업 사태를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나는 두 번의 파업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람이 아니다. 두 번 모두 비슷한데, 정부의 정책 방향은 공공의 선을 위한 것이었고 일반 시민에게도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의사 입장에서 보면 디테일에 악마가 숨어있었고, 이에 내부에서는 분노가 들끓어 오르지만 대중을 설득하기는 역부족인 상황이었다. 대중의 반응은 차가운데 의사들은 내부에서만 끓어오르다가 터지고 만다. 이게 20년이 지나도 반복되는 것이 안타까웠지만 내부의 끓어오름에도 쉽사리 동화되기도 어려웠다. 의사들이 시민을 설득하지 못하는 한 정치에 의해 이용당하는 것은 반복되지 않을까 싶다.

비정상적인 노동구조로 돌아가는 병원공장

- 의사들이 입원 환자에게 소홀하게 되는 이유로 비정상적인 노동구조를 꼽았다. 특히 전공의들의 너무 많은 일을 떠맡고 있는 현실에 대해 비판했다. 전공의특별법 도입 이후 달라진 점은 없나?

전공의특별법 도입으로 전공의들의 노동시간은 줄었지만 상대적으로 노동 강도가 올라갔다. 근무시간만 줄이고 환자 수를 줄이지 않으니 전공의 1명이 봐야할 환자가 30~40명은 기본이다. 당직을 설 때는 100명, 200명은 봐야 한다. 우리 세대와는 다르게 요즘 전공의들은 연장근무에 대해 굉장히 부당하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불평하면서도 환자에 대한 책임감으로 주말에도 추가 근무를 자처하는 게 현실이다. 이런 환경에서는 응급상황 시 환자들이 위험해질 수 있기 때문에 전공의 1인당 진료 환자수에 대한 기준이 반드시 필요하다. 하지만 일을 줄이면 의료기관 수익이 줄어들어 운영이 어려워지니 해결이 어렵다. 모든 문제들이 맞물려 있는 것이다.

- 병원에서는 PA(Physician Assistant)를 늘려 부족한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경우 현실적으로 PA없이는 일을 할 수 없다. PA들이 하는 일은 대부분의 전공의가 기피하는 반복적인 프로토콜에 의한 항암제 오더 등이나 약 처방이다. PA가 이런 반복 노동을 대신해줌으로써 전공의들이 수련하는데 시간을 쓸 수 있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PA가 실제 의사와 다름없는 의료적 결정을 하고 시술이나 수술까지 참여해 전공의의 수련기회를 빼앗아가는 상황은 개선돼야 한다. 병원 측에서는 PA를 더 고용하면 전공의를 덜 뽑아도 병원 업무에는 지장이 없으니 PA를 더 많이 선발해 인건비를 감축하려는 경향도 있는 것 같다.

의사와 환자, 깊어진 불신의 골 해결책은 있나

- 최근 환자가 진료 내용을 녹음하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에는 굉장히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의사를 얼마나 신뢰하지 않으면 녹음까지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지나친 의심인 것은 알지만 환자가 내가 실수한 부분을 기록하고 자신에게 유리하게 편집해 악용하지 않을까라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의사가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듣겠고, 어떤 것이 궁금한지 잘 이야기할 수 없으니 녹음을 해서 나중에 다시 들어보는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충분히 설명을 해줘도 한계가 있는 것이고, 환자들 또한 주체적으로 정보를 얻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다.

과거 의사와 환자의 관계를 표현할 때 ‘가부장적 온정주의’라는 말을 사용했다. 의사는 환자를 철저한 약자로 대우하고 환자가 필요한 것을 알아서 해줘야 한다는 일종의 권위주의다. 하지만 이제는 환자가 정보를 주체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게 의료인의 새로운 역할이지 않을까 생각 한다. 차트나 자료 등을 환자에게 오픈하고 충분한 설명을 제공해 정보의 장벽을 최대한 제거하는 게 새로운 의사-환자의 패러다임으로 가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 최근 통과된 수술실 CCTV 설치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수술실 CCTV 설치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환자의 프라이버시가 담긴 민감한 필름을 보관하는 것 자체가 의사에게 엄청난 부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현실을 만든 것 또한 의사이다. 의사의 신뢰성에 타격을 주는 문제들이 터져왔기 때문에 이제는 CCTV가 아니면 국민들이 만족하지 못할 정도까지 왔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는 수술을 하는 직접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반대도 찬성도 아닌 입장이었다. 반대를 하기엔 의사들이 그동안 환자들에게 신뢰를 너무 못 줬다고 생각했고, 찬성하기엔 이렇게까지 해서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앞으로 환자와 의사가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어떤 방향으로 다가가야 할까.

환자의 입장에서는 그 동안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경험이 쌓였기 때문에 의사를 미워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의사가 좀 더 환자들에게 좋은 기억을 만들어주는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대한의사협회가 다른 사회단체와 연대해 나가는 것도 시민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 번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주장했던 내용들도 의사가 주장하던 내용과 비슷했다. 공공의료에 대한 정부 지출 확대와 의료종사자들의 노동 강도에 대한 대책 마련, 노동에 대한 정당한 보상 지급 등은 의사들이 요구해왔던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의협이 이에 대해 지지성명 등 호의적인 제스처를 보이지 않았다. 그 점이 아쉽다. 의협에 대한 지지가 한 톨도 없는 상황에서 의료 소비자 혹은 의료 노동자들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스스로 고립돼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와 일대일로 타협해 나가는 방향도 좋지만 진정으로 의사가 원하는 방향의 의료개혁을 이뤄내기 위해선 국민의 지지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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