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 주최 포럼서 서준범 교수 수가 시스템 보완 등 촉구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제품 인허가 등 규제 혁신 외에도 수가를 포함한 의료 시스템 전반에 변화를 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나와 이목을 끈다.

28일 '제2회 규제과학 혁신포럼'에 패널로 참석한 서울아산병원 임상의학과 서준범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28일 '제2회 규제과학 혁신포럼'에 패널로 참석한 서울아산병원 임상의학과 서준범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지난 28일 서울시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제2회 규제과학 혁신포럼’이 열렸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개최한 이번 행사는 ‘디지털 헬스케어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제로 진행됐다.

식약처는 이번 행사 취지에 대해 디지털 헬스기기 규제 분야에서 신속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이 강조됨에 따라 산·학·관의 의견을 수렴, 과학적인 규제 접근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이날 포럼은 두 개의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으며 1부에서는 ▲디지털 헬스케어의 특징과 의의 ▲디지털 헬스케어의 미래와 기업의 도전 ▲디지털 헬스기기 제품화를 위한 규제지원 등 주제 발표가 이어졌다.

이어진 2부에서는 ‘디지털 헬스기기 규제, 투명성과 예측성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라는 제목으로 패널토론이 진행됐다. 산업계·의료계 전문가와 정부 부처·유관 기관 관계자 등이 디지털 헬스기기 제품화를 위한 규제 개선방안과 기관 간 협력체계 구축 방안 등에 대해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날 패널로 참석한 서울아산병원 영상의학과 서준범 교수는 “현재 인공지능이나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에서 우리나라의 우수한 연구자들이 수많은 좋은 솔루션들을 내놓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사용이 지체되고 있다. 관계 부처가 많은 노력을 하고 선제적인 법 제정 및 가이드라인 제시 등을 통해 산업계에 큰 도움을 주었지만 전체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2018년 출범한 대한의료인공지능학회 초대 학회장을 맡았다.

서 교수는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들이 현장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를 반영한 수가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의 수가 체계는 행위별 수가 체계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며 “어떤 질병이 발생할 걸 예방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현재 수가 체계에서는 수가를 받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병이 걸리고 치료를 해야지 그 행위에 대해서 수가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기술을 어떻게 현장에 도입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서 교수는 “우리나라 수가 체계는 의료인은 완벽하다는 신화를 가지고 있다. 모든 의료 행위가 다 표준화돼서 완전히 똑같고 면허를 따고 나서 의료 행위를 하는 사람들은 전부 바르게 진료한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렇지는 않다“며 ”수많은 지능형 기기들이 의료진의 실수를 줄여주고 의료진이 놓치는 걸 찾아줌으로써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여기에 대해서는 수가를 줄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서 교수는 “디지털 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할 수 있도록 전체 수가 시스템을 들여다보는 전향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며 “여기에는 수가를 주는 것뿐만 아니라 뺏는 것도 포함된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한번 수가를 주면 퇴출시키기 어렵다는 규제 당국의 공포도 포함돼 있다. 이런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서 교수는 “디지털 헬스케어는 단순히 현재의 헬스케어를 디지털 형태로 바꾸는 게 아니다. 오히려 의료 체계의 정의를 바꿔야 하는 문제다. 과거 전통적인 의료가 질병이 발생한 다음에 치료를 하고, 병원에 와야지 의료 행위가 발생했다면 디지털 헬스케어는 건강 유지와 질병의 진단 및 치료, 그리고 그 이후 과정이 연결돼 있다. 이제는 의료 시스템 자체를 고민해야 상황”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서울와이즈요양병원 김치원 원장은 “중요한 포인트다. 어떤 산업이든 규제를 넘어가는 순간 시장이 보인다고 하면 기업들은 기를 쓰고서라도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노력을 할 것”이라면서도 “기승전'수가'로 이야기가 흘러가는 것은 난감하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외국 사례들을 봐도 디지털 치료제라던가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디지털 헬스케어 제품에 대한 수가 적용이 잘 안 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미국의 사보험이라 하더라도 상황은 비슷하다. 외국에서 일부 적용이 되고 있다고 알려진 사례들은 정통 보험이 아니라 대게는 고용주들이 돈을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일각에서는 식약처나 심평원 같은 유관 기관이 보수적이라서 그렇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이게 단순히 심평원의 문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전 세계 모든 의료보험은 항상 보수적이다. 결국 전 세계 어떤 보험도 보수적이지 않은 보험은 없는 것 같다”며 “데이터 입증을 통해서 시장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면 좀 더 대안적인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야 않겠느냐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예를 들면, 국가 차원에서 국공립 병원의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 또는 솔루션 도입을 지원한다든지, 고용주가 직원들에게 건강관리 도구로서 디지털 헬스케어 도구를 제공할 때 세금 혜택을 주는 것들을 통해 시장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김강립 처장.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의료기술등재부 장준호 부장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 비즈니스 모델과 관련해 “병원의 업무 효율 증진 차원에서 병원이 자체적으로 구매하는 역할을 맡을 수 있을 수도 있을 것이고, 또는 건강보험공단에서 가치를 인정받아 정식으로 보상을 받는 경우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가원이 좀 더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혁신의료 기술평가 트랙”이라며 “일정 기간 승인된 의료기관에서 기기 또는 솔루션을 사용토록 임시 등재한 후 재평가를 통해 정식 등재 여부를 결정하는 중간적 제도다. 평가원은 잠재성이 있는 새로운 기술에 대해 보편적 적용보다는 제한적 적용을 허용하되 근거 창출 및 이를 토대로 기술을 다시 평가해 옥석을 가리는 방향으로 나아가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건보 임시 등재 시 예비급여나 한시적 비급여 적용 등의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산업통상자원부 김영만 바이오융합산업과장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 및 솔루션 제품화와 관련해 “아직까지는 소비자들이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인식이 자리 잡지 않았다. 때문에 고용주라든지 디지털 헬스케어 서비스 비용을 지불할 주체가 있는 서비스에 대해 일부 시범사업을 추진하려는 계획 중에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김강립 처장은 개회사를 통해 “이번 포럼이 국내 디지털헬스기기 산업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혁신성장을 위한 규제과학 지원방안을 논의하는 소통의 장이 되기를 기대한다”며 “앞으로도 양질의 규제서비스를 제공해 기업이 제품화에 대한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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