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여건에 따라 흔들리지 않기 위해서는 ‘병원학교’ 법제화 필요
병원학교 공간 및 인건비 대부분 병원서 부담…실질적 지원 필요
서울대병원, ‘6인실 공간 2억원+인건비 1억원’ 등 연간 3억원 투입
교육부 “현실적 범위 내 건강장애아동 지원…대상확대 논의 필요”

서울대병원 어린이 병원학교 내부의 모습.
서울대병원 어린이 병원학교 내부의 모습.

2019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자 4명 중 서울의대에 진학한 김지명 군은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극복하고 수능에서 만점을 받아 화제가 됐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학교보다 병원 가는 날이 더 많았던 김 군이 병마와 싸우면서도 학교 수업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병원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병원학교는 김 군처럼 3개월 이상 장기입원 및 통원치료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이 있는 건강장애아동들을 위한 교육기관으로, 건강장애아동의 학습 결손을 막고 완치 후 원적학교로의 복귀를 지원하는 곳이다.

병원학교가 국내에 문을 연 지 22년이 됐다. 지난 1999년 서울대병원이 병원학교를 개교한 이래 지난 3월 기준 전국 33개 병원에서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며, 재학생만 425명에 달한다.

건강장애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하며 마음의 성장까지 지원해 온 병원학교지만 최근들어 재정부담 등을 이유로 문을 닫는 곳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19년 화성브론코병원(現 화성제일요양병원)은 새로 부임한 병원 이사진이 병원학교로 운영되는 병실 공간으로 인한 손해를 감당할 수 없다며 폐교를 결정해 학생들이 뿔뿔이 흩어지기도 했다.

이에 병원학교에 대한 정부지원 확대와 병원학교 설립 근거를 마련하기 위한 법제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 개교 때부터 지난해까지 교장을 역임한 신희영 명예교장(대한적십자사 총재)은 “20년 동안 병원학교 교장으로 활동하며 아이들의 성장을 지원했다는 자부심이 있지만 병원학교를 뒷받침해줄 법적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점은 여전히 아쉽다”고 토로했다. 신 명예교장은 “병원학교가 설 자리를 잃어 아이들의 교육터가 사라지지 않을까 걱정된다”고도 했다.

1999년 개교 이후 22년째 이어져온 서울대 어린이병원학교

국내 최초의 병원학교는 1996년 서울대병원 ​​​​​​​교육실에서 탄생했다.
국내 최초의 병원학교는 1996년 서울대병원 교육실에서 탄생했다.

국내 최초의 병원학교는 지난 1996년 서울대병원 배선실을 절반으로 나눠서 만든 교육실이다.

오랜 투병 끝에 백혈병에서 완치됐지만 취업에 실패하는 등 사회로 편입되지 못하고 방황하던 중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발생하자, 환아들의 교육 필요성을 느낀 의료진들이 자발적으로 책상이나 기자재를 들여 교육실을 만들고 선생을 자처하기 시작한 게 병원학교의 시작이 됐다.

신 명예교장은 “당시 공간과 재정이 부족해 보호자들이 밥을 먹던 배선실을 반으로 나누고 당시 전공의들이 기부한 책상과 의자로 교육실을 만들었다”며 “의료진의 뜻에 공감한 여러 기업과 한양대 학생 등 다양한 봉사자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헌신했다”고 말했다.

이후 서울대병원 교육실은 3년의 시범기간을 거쳐 1999년 ‘어린이병원학교’라는 이름으로 정식 개교하며 국내 최초의 병원학교가 됐다. 병원학교 덕분에 많은 환아들이 투병 중에도 학업의 끈을 놓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정식 교육기관이 아닌 탓에 병원학교에서 수업을 받더라도 출석일수를 인정받지 못해 완치 후 돌아간 학교에서 유급되는 일이 일어나기도 했다.

다행히 지난 2005년 특수교육진흥법(現 장애인 등에 대한 특수교육법, 특수교육법)이 개정되면서 건강장애아동이 특수교육대상자로 포함돼 출석일수를 인정받는 등 병원학교 수업을 통해 정규 교육과정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됐다.

이에 현재는 초등학생은 1일 1시간, 중‧고등학생은 1일 2시간 이상의 병원학교 수업을 들으면 학생들의 원적학교 출석으로 인정된다.

병원학교 공간과 전담 인력 인건비는 고스란히 병원 부담

법 개정을 통해 병원학교를 다니는 건강장애아동의 학습권은 보장받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교육기관에 당연히 있어야 할 수업공간과 교육 인력 부족으로 병원의 눈치를 봐야 하는 실정이다.

현재 시‧도 교육청에서 일정 금액의 운영비를 병원학교에 지원하고 있지만 교육청에 따라 지원금이 매번 달라지는데다 모두 수업에 쓰이는 재료비, 교재비로만 지출하도록 돼 있어 공간 사용 비용과 인건비 등은 병원이 부담하거나 자원봉사‧후원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18년 불거졌던 한양대병원 병원학교 폐교논란도 공간과 재정의 문제가 얽혀있었다. 당시 한양대병원 측은 병원 내 공간 부족, 소아 환자 감소, 재정 부족을 이유로 병원학교를 폐교하겠다고 했다가 봉사자들과 여론의 반대로 결국 페교를 철회한 바 있다. 현재 한양대병원 병원학교는 13평에서 절반이 줄어든 6평의 교실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 2018년 한양대병원은 공간과 재정의 문제로 병원학교 폐교를 통보했다가 이를 철회한 바 있다.
지난 2018년 한양대병원은 공간과 재정의 문제로 병원학교 폐교를 통보했다가 이를 철회한 바 있다.

한양대병원 병원학교 이영호(소아청소년과) 교장은 “병원학교가 병원 운영 사정에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정부에 다방면으로 건의하고 있지만 좀처럼 반영되지 않고 있다”며 “공간 비용과 인건비의 경우 정부에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대병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서울대병원 병원학교의 경우 6인실 크기의 공간을 교실로 사용하는데, 공간 사용 비용만 2억원, 인건비까지 포함하면 연간 3억원이 손실로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서울대병원 병원학교 송윤경 교무부장은 “학생 수가 적더라도 그들이 교육을 필요로 한다면 당연히 병원학교가 있어야 한다”며 “병원 경영 입장에서는 경영적인 측면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만 영리적 이유로 학습권이 침해되서는 안된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병원들 입장에서는 공공성을 지키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기 위해 손해를 감수하며 병원학교를 운영하고 있는 것.

원자력병원 병원학교 교무부장도 “현재 병실 2개를 사용하고 있는데 비용적인 손실이 없다고 할 순 없다”며 “더욱이 그동안은 자원봉사자들이 운영에 도움을 주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병원 출입이 제한되며 그나마도 끊겨 병원에서 필요한 인력을 채용해 운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때문에 그는 "정부에서 인력을 지원하거나 인건비를 예산에 포함시켜 준다면 병원의 부담을 덜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학교 체계적 지원 위해 병원학교 법제화 필요

병원학교 관계자들은 병원학교에 대한 체계적인 정부지원과 운영의 안정성을 위해 병원학교의 설립 근거를 좀더 명확히 한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특수교육법 제3장 제25조에 따르면 교육부장관은 건강장애아동이 포함된 특수교육대상자의 순회교육을 위해 의료기관이나 복지시설에 학급을 설치‧운영 하는 등의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현재 병원학교는 이에 따라 의료기관에 설치된 순회교육을 위한 학급으로만 돼 있다.

하지만 병원학교가 단순한 학급이 아니라 수업 공간과 교육 인력, 행정 실무를 이행하는 등 학교로서의 조건을 갖춘 만큼 병원학교를 특수교육법 내 '교육시설'에 포함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특수교육법 제3장 제17조 특수교육대상자의 배치 및 교육 항목에는 특수교육대상자를 배치하고 교육해야 하는 시설의 목록이 명시돼 있는데 특수교육대상자인 건강장애아동이 교육받고 있는 병원학교는 이 시설에서 제외돼 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 송윤경 교무부장은 “지난 2003년 서울대병원 정관으로 병원 내 평생교육시설로서 병원학교가 직제됐다. 하지만 2018년 직제가 상실된 이후 법적 근거 부족으로 재직제가 일괄 보류된 상황”이라며 “특수교육대상자 배치 및 교육 시설에 병원학교를 추가해 법적인 지위를 확립하는 등 병원학교 설립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무부장은 “현재 건강장애아동의 기준 및 출석인정의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지만 실제 교육활동을 지원하는 병원학교는 관례적으로 운영돼 온 게 현실”이라며 “그러다보니 병원장이 학교 운영에 제재를 가하더라도 반박할 수가 없다. 하지만 병원학교 법제화가 된다면 병원학교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학교 법제화는 건강장애아동 원적학교와의 행정업무를 보다 수월하게 해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원자력병원 병원학교 교무부장은 “건강장애아동의 병원학교 입학 처리 등을 위해 원적학교에 해당 아동의 개인정보 등을 요청하면 학교 담당자가 법적 근거를 요구하며 이를 거절하는 경우가 있다”며 “병원학교의 설립 근거가 법령이 아닌 운영지침 정도로만 제시돼 있기 때문인데 (법제화가 된다면)원적학교와 행정업무를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또한 “병원학교를 이용하는 학생 수가 적다 보니 대부분의 담임 교사가 병원학교의 존재나 이용 방법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면서 "법적으로 제도가 마련된다면 병원학교를 효과적으로 홍보해 더 많은 건강장애아동에게 학습권을 보장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수교육법 내 건강장애아동 지원 확대 필요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 학생들의 활동 사진이 걸려있다.
서울대병원 어린이병원학교 학생들의 활동 사진이 걸려있다.

병원학교가 건강장애아동들의 학습기회를 제공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만큼 병원학교에 입학 가능한 건강장애아동의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현재 특수교육법상 우울증, 조현병,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등의 정신질환은 정서행동장애에 포함돼 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정신질환 아동은 병원학교 입학 이 제한된다.

예외적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병원에서 정신질환 아동을 대상으로 병원학교가 운영되고 있지만 서울, 전남, 충남, 경남에만 설립돼 있어 타 지역 아동에게 접근성이 떨어진다. 그 중 서울 국립건강정신센터의 참다울 병원학교는 작년부터 병원이 코로나19 전담병원으로 전환되며 학교 운영을 중단한 상태다.

인하대병원 병원학교의 한 교사는 “우울증을 앓고 있는 저연령층 아동이 점점 늘어나며 정신질환을 갖고 있는 아동의 입학문의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라며 “정신질환 아동은 건강상으로 문제가 있지만 학업을 수행할 수 있다는 판단으로 병원학교 입학 대상자에서 제외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정실질환 아동이 등교 거부, 심지어 자해와 자살기도까지 하는 만큼 병원학교 입교 대상을 확대해 이들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병원학교 및 건강장애아동에 대한 지원 충분”

하지만 병원학교를 바라보는 정부 시각은 의료 현장과는 사뭇 달랐다. 교육부는 병원학교 운영과 건강장애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하기 위한 지원이 충분히 제공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병원학교라는 법적 명칭은 없지만 순회학급을 마련해 건강장애아동의 학습권을 보장하고 있는 만큼 문제될 게 없다는 것.

교육부 특수교육정책과 한 관계자는 “특수교육법에 치료를 위해 학교에서 교육을 받기 곤란한 학생들을 위해 순회교육을 실시하거나 의료기관이나 복지시설에 학급을 설치하도록 교육장에게 책무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설령 불가피한 사정으로 병원학교가 폐교하더라도 의료기관의 학급이라는 형태가 사라지는 것 뿐”이라며 “건강장애아동의 교육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다. 순회교육이나 원격교육으로 보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학생들이 치료받을 동안에만 병원학교에서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교사가 과목별로 배치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학생들의 일반교육을 지원하기 위해 원격수업과 자원봉사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희귀질환 학생 등 지원 대상을 넓혀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향후 논의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그는 “현재도 병원학교를 다니지만 더 지원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시‧도 교육청 및 병원학교 현장의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차후 협의를 통해 결정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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