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받는 코로나19 K-방역, 오히려 공공의료 확대 막을 수 있어
새로운 공공의료 확대 방안 말고 제시된 정책부터 제대로 해야
공공병원 규모 최소 300병상, 도심지는 500병상 돼야 제 역할 수행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계속되면서 공공의료 확대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 또한 코로나19 환자를 돌봐왔던 보건의료노동자들이 총파업이라는 카드를 내걸며 공공의료 확대를 요구하고 나선 데 대해 권역 감염병 전문병원 설립, 중진료권 책임의료기관 확충 등을 약속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공공의료 강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공공의료 확대가 이미 현실화된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를 경계하는 시각도 있다. 지난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이후 국립감염병전담병원 설립 등의 추진계획이 발표됐지만 계획에 그쳤던 것처럼 말의 성찬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다.

그렇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 현실적인 공공의료 확대 방안은 무엇일까.

코로나19, 공공의료 확충 기회될 수 있을까

코로나19라는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의료 확대와 관련한 국민적 관심과 지지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때문에 현재 분위기는 공공의료 대폭 확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어떤 방법으로 확대할 것인지에 포커스가 맞춰진 모양새다.

하지만 포스트 코로나시대‧국민적인 지지 등 공공의료에 대한 유래없는 관심 속에서 ‘공공의료 확충은 당연하다’는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전국지방의료원연합회 조승연 회장(인천의료원장)은 “(포스트 코로나시대가 공공의료 확충 기회라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공공의료 확충을 안하고도 K-방역이 성공했는데 왜 공공의료에 투자해야 하냐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민간병원이 충분히 역할을 하고 있다는 기획재정부 생각도 여전하다”며 “방심하면 안된다. 다가올 대선에서 국민공감대이 형성되지 않으면 도루묵이 될 수 있다. 메르스 때를 봐라. 지금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고 덧붙였다.

경기도의료원 정일용 원장(수원병원장)은 “우리나라 정권은 장기집권이 없다.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라며 “(공공의료 정책을) 만드는 구조 자체를 상설화 시키기 않으면 (공공의료 확충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원장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움직이지 않는 거버넌스가 중요하다”며 “국립중앙의료원 공공의료본부가 그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포스트 코로나시대 현실적인 공공의료 확대 방안에 대해 지난 14일 열린 공공의료포럼에 참석한 복지부 박향 공공보건정책관의 발언도 눈여겨볼만 하다.

이날 포럼에서 박 정책관은 공공병원 확대‧개선을 위한 재정 투입과 관련해 “재정당국은 아직도 의료를 (공공과 민간이 아닌) 하나의 큰 통으로 보고 있다”며 “민간병원이 많은데 왜 국가에서 수익구조가 나지 않는 (공공병원에) 투자를 해야 하냐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박 정책관은 “공공의료를 위한 별도 기금을 만드는 방안 등은 재정당국과 협의가 중요하기 때문에 공공의료를 바라보는 재정당국의 시각을 개선하지 않으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공공의료에 많은 투자를 하면 민간에서는 공공에만 투자를 해 불공정게임이 된다는 불만이 나온다”며 “공공병원도 필수의료만으로 운영할 순 없기 때문에 민간과 함께 가는 것이 중요하다. 서로 역할을 어떻게 정의할지도 중요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포스트 코로나와 국민 관심으로 뭔가 큰 변화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재정을 좌지우지하는 기재부 등의 시각은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공공의료 확대, 공개된 정책부터 제대로

공공의료 확대 필요성에 대한 기재부 등 재정당국의 시큰둥한 반응 등을 모두 뚫고 공공의료 확대가 본격화 된다면 어떤 방안으로 진행돼야 할까. 현장에서는 새로운 것을 찾을 것이 아니라 이미 발표된 내용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복지부가 가장 최근에 발표한 공공보건의료 확충 방향은 지난 6월 ‘2차 공공보건의료 기본계획’이다.

핵심은 지역 공공병원을 20개소 이상 확충하고 응급‧심뇌혈관질환 등 필수의료센터를 70개 지역에서 운영하는 것이며 5년간 약 4조7,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복안이다.

분야별로는 ▲지역 공공병원 신·증축과 응급·심뇌혈관질환 등 필수의료 제공 체계 확충에 2조3,191억 ▲국립중앙의료원 이전·신축과 지역 공공병원 시설·장비 보강 등 공공보건의료 역량 강화 2조1,995억 ▲책임의료기관 확대·운영 등 공공보건의료 제도 기반 강화에 1,366억원을 배정했다.

이 중에서도 공공병원 신‧증축과 관련해서는 전국 17개 시도권역 및 70개 진료권 지역별로 공공 역할을 책임의료기관을 확충하고 적정 병원이 없는 경우 지역 공공병원을 20개소 이상 신‧층죽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현장 전문가들은 공공의료 확대를 약속한 정부가 최소한 이 계획만이라도 제대로 시행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조승연 회장은 “(공공의료 확충을 위해 우선) 하기로 한 정책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 (계획해 놓고) 안하니까 문제”라며 “보건노조와의 복지부 합의안만 봐도 사실 새로운 내용은 없다”고 말했다.

정일용 원장은 “2018년도에서 필수의료 개념 도입한 공공의료발전종합계획이 나왔지만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대로 안되고 있다”며 새로운 정책이 아닌 추진 의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회적으로 공공의료 확대 요구가 큰 상황에서 산하 6개 병원 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려 경영 상황을 호전시키고 있는 경기도의료원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으로 공공의료 확대 요구가 큰 상황에서 산하 6개 병원 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려 경영 상황을 호전시키고 있는 경기도의료원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300병상 미만 공공병원, 제 역할 못해

공공병원 신‧증축 시 고만고만한 병원을 만들어 수만 늘릴 것이 아니라 적어도 300병상 이상 병원을 지어 제대로 역할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산하에 수원병원, 의정부병원, 파주병원, 이천병원, 안성병원, 포천병원 등 6개 병원을 두고 있는 경기도의료원이 규모의 경제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경기도의료원은 산하 6개 병원들에 대한 신‧증축을 꾸준히 진행 중인데, 비교적 최근인 2018~2019년 신축한 이천병원과 안성병원만 300병상 급이고 나머지는 200병상 전후를 갖추고 있다.

이 중 눈여겨 볼 병원은 300병상 급은 아니지만 1954년 최초 설립돼 2010년까지도 100병상으로 운영됐고 꾸준한 증축을 통해 현재 212병상을 운영 중인 파주병원이다. 당초 250병상에서 300병상 급으로 증축하려 했지만 재정 부족으로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하지만 2010년 100병상에서 지속적으로 병상을 확충해 200병상 이상으로 키운 파주병원은 경영 현황이 계속 좋아지고 있다.

2007년 3만명 선이던 입원환자 수는 2019년 6만명 수준으로, 같은 기간 외래환자 수는 5만5,000명 선에서 20만명 수준으로 높아졌다. 의료수익도 당연히 높아져 2007년 약 50억원에서 2019년 300억원을 상회했다.

경기도의료원 정일용 원장은 규모를 키운 병원이 그나마 다른 병원들에 비해 경영 개선을 이룰 수 있었던 요인으로 다양한 의료서비스 제공을 꼽았다. 파주병원은 심혈관센터를 만들어 응급수술이 가능했던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정 원장은 “병원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의료서비스가 가능해지면 지역사회에서 신뢰를 받을 수 있고 신뢰를 바탕으로 경영에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원장은 “경기도의료원이 다른 시도 의료원에 비해 잘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진짜 잘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잘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정도라도 노력을 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조승연 회장 역시 규모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300병상 정도가 아니라 최소 500병상은 돼야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조 회장은 “300병상 규모 공공병원으로는 안된다. 도시에 있는 지방의료원이라면 최소 500병상은 돼야 한다”며 “규모가 작으면 오히려 필수의료가 아니라 돈 되는 과만 진료하게 된다”고 말했다.

조 회장은 “(300병상 정도 공공병원 확충은) 정부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며 “규모를 제대로 키우고 좋은 위치에 공공병원을 신축하면 절대로 적자를 보지 않는다”며 “일산병원, 보라매병원 등을 보면 알 수 있다. 기본적인 규모를 갖춘 후 경영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공공병원 의료진 문제 반드시 해결돼야

공공병원 성공을 위해 규모 외 강조되는 것은 인력문제 해결이다. 공공병원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일할 사람이 없으면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국립대병원과 지방의료원 등 공공병원의 협력을 강조한다. 분당서울대병원과 심혈관 네트워킹을 만든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이 좋은 사례다.

정일용 원장은 “이천병원은 분당서울대병원으로부터 순환기내과 의료진을 파견 받았다. (300병상급으로) 확장하면서 간호사와 중환자실 인력들이 분당서울대병원의 교육을 받기도 했다”며 “이런 협력들이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 원장은 “아주 급성이 아닌 환자는 이천병원에서 진료하고 급성일 경우 분당서울대병원으로 후송하는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며 “이런 부분들이 모두 지역에서 신뢰를 얻는 길이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 지방의료원연합회 차원에서 국립대병원과 협력안을 마련 중인 조승연 회장은 관련 연구용역이 마무리 단계라고 밝혔다.

조 회장은 “국립대학병원협회, 대한민국시도지사협의회, 지방의료원연합회가 함께 (지방의료원과 국립대병원 인력 연계 방안에 대한) 연구용역을 하고 있다. 공공의료 관련 국립대교수 자리를 만들어서 공공병원에 파견근무하는 방안으로 1,000명 정도 규모”라고 말했다.

조 회장은 “사람을 키워야 하는 대학병원의 명분, 일할 사람이 필요한 공공병원 사정, 공공의료 확충을 원하는 지방자치단체 등의 문제가 해결된다”며 “국회에서도 입법을 도와주겠다는 의지가 있고 보건복지부도 찬성 입장이다. 교육부와 기획재정부 의지가 문제”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이 사업이 실현될 경우 국립대병원 교수가 공공병원에 있기 때문에 공공병원을 수련병원화 할 수 있고 최종적으로 국립대병원 소속을 복지부로 이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포스트 코로나시대 공공의료 확대는 지금까지 현장이 제기해 온 문제들과 해결방안을 얼마나 실현시키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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