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당서울대병원 이정렬 교수, GRAPE 연구의 임상적 의미 강조
"LH 제제와의 병용 급여 확대 등 국내 난임 치료 환경 개선돼야"

흔히 '시험관 아기'라 불리는 체외수정은 대표적인 난임 치료 시술 중 하나로, 시술 과정에서 행해지는 과배란 유도는 양질의 난자를 채취하기 위한 적정한 난소 반응 유도와 그와 동시에 난소과자극증후군(Ovarian HyperStimulation Syndrome, OHSS) 발생 위험을 최소화하는 게 핵심이다.

이같은 과배란 유도에 사용되는 '레코벨(성분명 폴리트로핀 델타)'은 인간세포주에서 유래된 재조합 난포자극호르몬(recombinant FSH)이다. 여성의 항뮬러관호르몬(AMH) 수치와 체중을 고려한 개별화된 고정 용량 요법으로 난소 자극을 줄여 난소과자극증후군과 같은 안전성을 개선한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레코벨 관련 기존 연구들이 대부분 서양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아왔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월 말 개최된 유럽생식의학회(European Society of Human Reproduction and Embryology, ESHRE) 연례학술대회에서 아시아 여성을 대상으로 한 '레코벨'의 3상 임상 GRAPE 연구 결과가 발표돼 주목 받았다.

연구 결과, '레코벨'은 아시아 여성에서 오히려 기존 '폴리트로핀 알파' 대비 뚜렷한 이점을 보였다. 인종 간 효과 차이를 시사한 것이다.

이에 해당 연구에 참여한 분당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이정렬 교수를 만나 국내 난임 치료 현황과 더불어 GRAPE 연구 결과가 갖는 임상적 의의 등에 대해 들었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이정렬 교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이정렬 교수

- 과배란 유도 왜 필요하며, 어떻게 진행되나.

과배란 유도는 '체외수정'을 위한 과정이다. 난자는 한 달에 하나만 배란되는데, 시술을 위해선 하나만 채취해서는 부족하다. 때문에 많이 배란시키기 위해, 즉 과배란을 위해 약제를 사용한다. 생리를 시작하고 나서 초반부터 매일 1회 과배란 유도제 주사를 통해 여러 개의 난자를 만들어 낸 다음, 그 난자들을 채취해서 체외수정을 시도한다. 과배란 약제로는 소변에서 추출한 호르몬 제제(urinary human FSH)나 재조합 호르몬 제제(recombinant human FSH)가 사용되고 있다.

- 체외수정을 위해 필요한 적정 난자 수가 있나. 아니면 많을수록 좋은가.

난자가 많이 배란된다고 해서 모두 좋은 난자가 나오는 것이 아니다. 너무 많이 나오면 질이 낮은 난자도 많이 섞여 있다. 때문에 채취되는 난자 수보다는 실제 사용가능한 양질의 난자 수가 중요하다. 또 너무 많은 난자를 배란하면 난소과자극증후군 위험이 증가한다. 연구에 따라 다르지만, 한 번 채취 시 난자 수가 8~14개 정도 일 때 최적의 난자 수 범위(optimal range)로 보고 있다.

- 난소과자극증후군은 무엇이며, 왜 위험한가.

대표적인 과배란 유도의 부작용 중 하나가 '난소과자극증후군'이다. 과배란 유도를 하지 않으면 절대 생기지 않는 부작용이다. 난소가 약제 투여에 과하게 반응해서 난자가 많이 나오는 것 뿐만 아니라 복수가 차면서 혈액이 농축되고, 혈전이 발생할 수도 있다. 드물지만 아주 심각한 상황에서는 생명에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시술하는 의사들이 신경을 많이 쓰는 부작용이다.

- 이번에 발표된 GRAPE 연구에 참여한 것으로 알고 있다.

GRAPE 연구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 새로운 신약인 '폴리트로핀 델타'와 기존 약제인 '폴리트로핀 알파'를 비교한 3상 임상시험이다. 이 연구의 목적은 '폴리트로핀 델타'의 허가를 위해 폴리트로핀 알파 대비 10~11주째 진행 임신율의 비열등성을 확인하고자 함이었다. 총 1,009명 이상의 여성이 참여한 큰 규모의 전향적, 무작위 연구다.

폴리트로핀 델타는 (기존의 폴리트로핀 알파와 비교해) 객관화된 지표에 따라 시작 용량을 결정하고, 그 용량을 변경 없이 지속 투여해 결과적으로 최적의 난자 수 범위에(8-14개) 들어갈 가능성을 높이고자 했다. 그리고 실제 3상에서도 예상했던 결과가 나왔다. 여기에 더해 2차 평가변수인 출산율이 폴리트로핀 알파보다 유의하게 높게 나오면서. 예상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 효능과 안전성 결과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연구의 1차 평가변수는 배아 이식 후 10~11주째 진행 임신율로, '폴리트로핀 델타' 투여군에서는 31.3%로 나타나 '폴리트로핀 알파' 투여군의 25.7% 대비 비열등성을 확인했다. 2차 평가변수인 출산율은 '폴리트로핀 델타' 투여군이 '폴리트로핀 알파' 투여군 대비 유의하게 높았다. 결국 출산이 목적이므로 2차 평가변수에서 폴리트로핀 델타가 더 좋은 결과가 나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부분이다.

특히 안전성 측면에서 폴리트로핀 알파 대비 폴리트로핀 델타의 난소과자극증후군 발생률이 더 낮았다. 폴리트로핀 델타의 경우, (환자 맞춤 용량을 투여해) 최적의 난자 수에 속하는 비율이 높으니 난소를 과하게 자극하는 비율도 감소한다. 난소과자극증후군 발생 비율도 적기 때문에 안전한 약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안전성 측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이슈다.

- '레코벨'의 임상연구는 다양한 지역에서 진행됐는데, 인종간 결과값의 차이가 있다고 들었다.

처음 유럽 연구에서는 폴리트로핀 델타가 폴리트로핀 알파와 결과가 비슷하게 나왔다. 하지만 일본 연구에서부터 폴리트로핀 델타가 유의하게 더 좋은 결과가 나왔고, 이번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을 대상으로 한 GRAPE 연구에서 그 차이가 더 컸다.

이는 특정 그룹에서 나타난 결과가 아니다. GRAPE 연구의 하위 분석 결과를 보면 모든 하위그룹에서 폴리트로핀 델타가 알파보다 일관되게 좋은 결과를 나타냈다. 결론적으로 폴리트로핀 델타는 아시아 지역(중국, 일본, 한국)에서 더 좋은 결과값이 나왔고 인종간의 결과 차이가 있다고 보고 있다. 그 원인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이정렬 교수
분당서울대학교병원 산부인과 이정렬 교수

- GRAPE 연구 결과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임상연구는 통제된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향후 실제 치료에서의 사용 결과를 확인해야겠지만, 현재까지의 연구 결과로 판단할 때 폴리트로핀 델타는 적정한 수준의 난소 반응을 통해 보다 안전하게 높은 출산율을 기대할 수 있는 치료제라고 할 수 있다.

- 국내 난임 치료 현장에서 '레코벨' 사용에 제한점은 없나.

폴리트로핀 델타 처방시 필요한 항뮬러관호르몬(AMH) 검사는 연 1회 급여가 가능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다. 그런데 실제 진료 현장에서는 폴리트로핀 델타 단독 사용 외에도 다른 약제와 병용해서 사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보험 적용이 안된다. 폴리트로핀 델타는 '난소자극호르몬(FSH)'이라는 호르몬 제제다. 보통은 FSH만 사용해도 과배란이 잘 되지만, 간혹 의료진이 황체형성호르몬(LH) 성분을 추가해서 사용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소변 유래 제제라든지 재조합 LH 호르몬 제제를 추가 약제로 쓰게 되는데 보험이 안된다. 이런 부분에 개선이 필요하다.

- 마지막으로 국내 난임 치료 환경에서 개선이 요구되는 부분은.

난임 치료 급여가 확대됐지만, 급여 횟수 등 아직까지 실제 난임 여성들 입장에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많다. 앞서 언급한 폴리트로핀 델타와 LH 제제 병용요법의 급여 확대 문제도 그렇고, 체외수정 관련한 부분에서 좀 더 급여 문제가 개선됐으면 좋겠다. 또 요즘 미혼 여성들 중에 난자동결을 선택하는 분들이 많은데, 자신이 원해서 한다는 이유로 급여가 전혀 안 되고 있다. 저출산을 국가적 위기로 바라본다면 이러한 경우에도 대승적 차원에서 급여 적용이 되기를 바란다.

암 환자의 가임력 보존 치료에도 급여 적용이 필요하다. 암 환자들의 난자동결, 난소조직동결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암 치료 때문에 발생하는 과정이기에 급여 적용이 꼭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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