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치료제 연구개발 사업 수행하는 연세의대 신재용 교수
인허가 제도 다음 단계는 수가 개발…“심평원이 나설 차례”
선 출시, 후 평가 ‘독일 시스템’…‘환자의 삶의 질’ 수가에 녹여
디지털치료제 ‘사회적 합의’ 필요…의료진 책임 및 역할 등 논의해야

미래 먹거리로 부상한 디지털치료제(Digital Therapeutics, DTx) 개발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신약에 비해 개발기간이 짧고, 개발비용이 적게 들어갈 뿐만 아니라 신약 개발이 어려운 뇌신경계와 신경정신과 질환, 약물 중독 등 분야에서 효과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Grand View Research)’에 따르면 세계 디지털치료제 시장 규모는 올해부터 오는 2028년까지 연평균 23.1%씩 성장해 191억 달러(약 22조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은 지난 2017년 페어테라퓨틱스가 개발한 약물중독 치료용 모바일 앱 ‘리셋(reSET)’이 온라인 인지행동치료 효과를 입증해 식품의약청(FDA) 허가를 받으면서 세계 첫 디지털치료제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면 우리나라는 이제 디지털치료제 생태계가 조성되고 있는 단계다.

인지행동치료 제품들을 중심으로 디지털치료제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 검증을 거쳐 상용화 된 사례는 아직까지 없다. 정부 차원에서 디지털치료제 개발과 활용을 촉진하기 위한 투자와 지원을 확대하고 있지만 갈 길은 여전히 멀다.

이에 디지털치료제 생태계 조성을 위한 과제로 ‘수가 개발’이 꼽히고 있다. 디지털치료제를 먹거리로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술개발-적정수가’라는 선순환 구조로 이어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신재용 교수는 국내 디지털치료제 시장이 공고히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생태계 조성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교수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디지털치료기기 산업 원천 기술 개발·실증 및 상용화 지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번 디지털치료제 연구개발(R&D) 사업은 연세의대 이상규 교수가 총괄과제 책임자다. 신 교수를 포함해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은 교수, 연세의료원 Health-IT 산업화 지원센터 한태화 교수, 연세대 약대 한은아 교수가 참여한다.

이 사업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질환에 대한 예방·치료·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 상용화 및 글로벌 진출을 지원한다. 특히 상용화를 목표로 코로나블루 및 우울증, 공황장애, 소아청소년 또는 성인 대상 섭식장애, 니코틴 중독, 기립성 또는 식후 유발성 저혈압에 대한 디지털치료기기를 개발한다.

-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정부에서도 지난해 인허가 제도를 정비하는 등 디지털치료제 개발을 위해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듯 보인다. 그래도 상용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들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난해 8월 디지털 치료제 허가·심사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그런데 큰 틀을 정한 거지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여전히 ‘블랙박스’가 많다. 식약처가 잘 한 건 완벽하진 않지만 빠르게 정책을 만들어냈다는 거다. 그래서 시장 진입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제는 수가 정책이 움직여야 할 때다. 헬스케어 기업들이 영세한 경우가 많다. 이직률도 높고, 그렇다보니 매출이 안정적으로 나오는 구조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수가가 아니면 혈이 막히는 구조다. 실제로 치료 효과를 검증하기 위해 해당 질환을 가진 환자들이 실생활에서 써봤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 보고 싶은데 현재로서는 불가능하다. 신의료기술평가에서도 제한적 급여로 수가를 줘 본 적이 없다고 한다. 중간 유예기간 동안 보험급여를 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경험은 없다.

수가를 어떻게 줘야할지 그게 문제다. 기업들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가 디지털의료기기로 수가를 책정해본 적이 없다. 수가는 상대가치점수에 환산지수를 곱한 값이다. 상대가치점수는 업무량, 자원량, 위험도를 고려해 의료행위의 가치를 항목 간 상대적 점수로 나타내는데 디지털치료제는 ‘의사가 얼마나 열심히 환자를 봤나’를 측정하는 행위량이 없다. 또 위험하지도 않다. 때문에 현재로서는 수가를 준다고 하더라도 너무 낮을 거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무엇이든 보여줘야 한다.

- 수가 정책은 다르겠지만 우리보다 발 빠르게 디지털치료제를 도입한 해외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고민을 했을 법 하다. 롤 모델로 삼을 만한 곳이 있을까.

독일은 도메인, 안전성, 데이터 보안, 효과성, 의학적 완성도 등 5가지 영역을 평가해 기준을 충족시키면 먼저 제품을 출시하도록 했다. 12개월 후 환자에게 직접 사용한 유효성 결과를 제출해야 하며, 우리나라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와 같은 곳에서 연간 최대 200유로까지 재정적으로 지원해 주기로 합의했다. 선(先) 출시, 후(後) 평가, 혹은 선 급여, 후 탈락 시스템이 정착됐다.

독일의 시스템이 한 가지 더 좋았던 점은 환자의 삶의 질을 우선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보험급여 특성 상, 기존 의료기술에 대한 효과성 여부를 토대로 급여를 결정한다. 예를 들어 불면증의 경우 인지행동상담 치료 수가가 이미 4만5,000원으로 책정돼 있고, 사람이 직접 하는 100점짜리다. 그런데 디지털치료제로 하면 아무리 해도 75~80점으로 효과가 떨어지는 거다. 그런데 굳이 효과가 떨어지는 치료에 급여로 줘야 하느냐는 딜레마가 있다. 우리나라 의료급여 체계의 현실이기도 하다. 그런데 독일은 여기서 환자의 삶의 질을 생각했다. 환자가 의료기관까지 오려면 왕복 이동시간이 소요되고 비용도 내야하니 지표 중 환자의 삶의 질 지표를 넣어 이를 개선시킬 수 있다면 합리적 의료 이익으로 인정한 거다. 두 번째는 프로세스와 구조 개선을 지표로 넣고 이를 통해 환자가 질환 관리에 대한 인식이 향상돼 홈 케어가 늘어나는 등 의료전달체계가 얼마나 단단해졌는지 입증하면 인정해줬다. 우리나라도 비용 효과성 혹은 효율성은 조금 낮더라도 이 같은 부분을 함께 고민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독일의 선례를 우리나라에 도입한다면 우리나라 기업들도 돈 걱정 없이 제품 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정부가 R&D 비용을 제공하면 과업을 설정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한다면 제품 자체가 탄탄하니 인허가를 무사통과할 것이고, 해외 진출했을 때 글로벌 경쟁력이 생길 수 있다. 무엇보다 기업의 철학인데, 제품에 대한 철저한 테스트와 그런 테스트를 거친 제품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인식을 줬다면, 뒤에는 그렇게 할 역량과 마음이 있는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좋은 기업들은 허들을 가뿐히 넘어가고, 그렇지 않은 기업들은 허들에 걸려 처음부터 열심히 할 걸 하는 생각이 들도록 말이다. 또 해외제품들이 국내로 들어와 우리나라 제품과 경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좋은 기업들은 3년에 한 번씩, 신생기업은 1년마다 한 번씩 핵심성과지표(KPI) 평가를 받는 기준이 마련되면 좋겠다.

지금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 연차평가와 정산이 연구단계별, 연구 종료 시에만 이뤄지도록 간소화했다. 5년 R&D를 주고 1년차에 연차평가 후 점수 미달일 경우 연구비 20%를 깎는다면 연구자나 기업 입장에서는 긴장될 텐데 그게 없어졌다. 5년차에 최종평가 방식으로 바뀌었는데 얼마나 핵심적인 특허를 받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획득한 게 중요하게 됐다. 디지털치료제 관련 R&D 시장은 1,000억원 정도 되는데, 이를 감당할만한 외형적인 틀이나 내실은 못 갖고 있는 상태에서 ‘흥미’와 ‘우리(부처)도 한다’는 아젠다로 가고 있다. 사실 누가 좋은 기업이고, 나쁜 기업인지 모르겠다. 이제 막 키워야 할 산업을 장난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우리나라 디지털치료제 생태계 조성 단계에서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디지털치료제는 환자들이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기업이 가공한 압축 데이터를 의료진에게 전달해 진료를 볼 때 환자들의 생활을 개선시킬 수 있도록 조언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솔루션이다. 디지털치료제에 대한 공론화 장이 활발해졌으면 좋겠다. 또 정부 R&D 사업에서 환자들과 의사들의 목소리가 빠졌다. 특히 의사가 디지털치료제를 활용해야 하는 구조가 된다면 의사들도 의료진 역할과 책임, 관리 감독해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환자들에게 제공해 줘야 할 내용은 무엇인지 등 논의에 참여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 디지털치료제 소프트웨어가 EMR에 통합될 때 팝업 형태가 아닌 EMR에 녹아들 수 있도록 ‘알맹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 부분도 논의가 시작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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