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료기기산업협회 혁신산업위원회 김현준 위원장(뷰노 대표)

혁신의료기기는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대한민국 의료기기산업의 중심 성장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기술과 아이디어로 무장한 다양한 기업들이 혁신적인 의료기술을 선보이며 산업 성장의 모멘텀을 만들어 가고 있는 동시에, 시장의 관심도 역시 크게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뷰노 김현준 대표
뷰노 김현준 대표

이에 발맞춰 정부는 혁신의료기기 관련 다양한 지원책들을 속속 마련하고 있다. 지난 2020년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는 혁신형 의료기기 기업과 혁신의료기기 지정 및 지원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의료기기산업 육성 및 혁신의료기기 지원법(의료기기산업법)’을 선보였다. 이에 따라 혁신의료기기, 혁신의료기기 제조기업, 혁신의료기기소프트웨어 제조기업이라는 인증제도가 마련됨으로써 실질적인 지원이 시작되고 있는 시점이다.

그간 글로벌 의료기기 시장에서 한국의 존재감은 미미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2016년 알파고-이세돌 대국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이 폭증하며 의료분야에도 다양한 기술에 대한 도전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이 기술적 진전은 의료분야에 적용돼 진단을 보조하는 AI 의료기기가 등장하게 됐고, 다양한 제품들이 의료현장에 속속 도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코로나19 상황에서 이른바 K-방역과 함께 국산 진단키트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에는 선제적 규제개선 및 가이드라인 구축을 통해 기업들이 개발하는 혁신의료기기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혁신적 의료기술의 급여여부 평가 가이드라인도 발간하며 산업의 성장을 위한 장치 마련에 힘을 쏟고 있다. 위의 상황은 우리나라도 글로벌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의료기기 개발의 기술적 역량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시장선점의 기회를 충분히 갖고 있다는 인식 전환의 계기가 됐다.

이러한 기대감을 반영하듯 의료기기 분야에 대한 벤처캐피탈(VC) 투자도 집중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바이오/의료 부분 투자금액은 2018년 8,417억 원에 이어 2020년 1조1,970억 원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만큼 투자가 집중되며 혁신의료기기는 새로운 산업의 주류이자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성장 동력으로서 기대와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러나 뚜렷한 증가세를 보이는 기대감과 투자에 비해 실제 혁신의료기기들에 따른 기업 매출 등의 실적은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대부분의 의료기기는 오랜 검증의 기간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타 산업대비 장기적인 관점의 투자 및 추이를 살펴봐야 한다. 일례로 혁신의료기기로 지정된 12개 제품들의 시장 진출은 아직 초기 수준이다. 일부 제품은 시장에서 과거에 없었던 기술로 관심을 받고 있지만, 실제 매출로 이어지는 지점에 병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의료에서 서비스 제공에 따른 지불 구조를 완성시키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혁신의료기기에 대하여 제조사는 제품의 안전성과 임상적 유효성을 입증하는 노력을 지속해야 할 뿐 아니라, 정부는 이를 가속화 할 수 있는 제도적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기존에 없었던 의료기기는 해당 국가의 의료기기 허가/인증을 받았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안전성 및 유효성만을 입증 받은 것이기 때문에, 실제 보험재정을 투입할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는 신의료기술평가와 같은 다른 기준에 의한 평가가 필요한 상황이다.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신의료기술평가를 통한 보험급여 인정 및 시장 진입이 쉽지 않다는 점에 있다. 의료기기 선진국인 미국이나 독일의 경우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미국의 MCIT(Medicare Coverage of Innovative Technology), NTAP(New Technology Add-on Payment) 및 독일의 DVG(Digital Healthcare Act; Digitale-
Versorgung-Gesetz) 등은 기존에 없던 혁신의료기기가 시장에 어떻게 하면 빠르게 퍼지고 검증될 수 있는지를 고민한 결과로 만들어진 제도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와 유사한 혁신의료기술평가 트랙이 있으나, 좀 더 유연하고 빠르게 다양한 의료기기들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고 이를 충분히 지원하고 있는 제도인지에 대해서는 다 같이 고민해 볼 지점이 있다.

한편, 혁신의료기기가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해야할 일에 대해서는 정부와 기업 양자의 관점에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정부의 입장에서는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 갈 혁신의료기기 산업에 대한 생태계적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단발성 지원이나 내부적 기준에 부합하는 제품만을 취사선택하여 지원하는 것으로는 창의적이고 다양한 혁신 활동이 일어나기 어렵다.

또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정부의 정책이나 수가 등에만 의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철저한 시장분석을 통해 의료현장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될 수 있는 상품성을 갖추는 것은 기본 중 기본이다. 아울러, 이러한 제품이 어떤 주체에게 가치를 주는지, 그리고 그것을 지불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를 면밀히 파악하고 제품기획을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기술이 발전하고 산업이 태동하는 시점에는 소위 기술이 실제 동작하는지를 입증하는 문제가 더 시급할 수 있기 때문에 혁신의료기기 관점에서 제품화는 성공했을지라도 상용화에는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특히 급여화가 되지 않은 기술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현장에 명확한 혜택을 줄 수 있는 가치가 충분하다면 어떤 식이든 지불 구조를 만들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해 투자나 가치 지향적인 막연한 기대로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의료 영역 다양한 플레이어들 중 분명한 ‘쓰임새’가 있는 기술을 개발한다면 정부 정책이나 수가와 무관하게 탄탄한 사업 모델을 구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글로벌 시장을 늘 염두해 두어야 한다. 혁신의료기기는 말 그대로 세상에 없던 기술을 의미하며, 4차 산업혁명과 코로나19 대유행 등으로 인해 한국 의료기기산업에 대한 전세계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다. 따라서 지금이 대한민국 의료기기 산업에게는 글로벌 경쟁 시대 앞서 나갈 수 있는 최적의 시기인 것이기도 할 것이다. 기존에 남들의 제품을 모방하거나 경쟁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대한민국 기업이 전에 없던 혁신적 의료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는 시대에 도래했기 때문에 이 기술을 토대로 해외로 뻗어나갈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그동안 없었던 수준의 의료기기 산업 부흥을 마주하고 있다. 정부의 지원과 투자자의 관심, 여기에 훌륭한 기업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혁신의료기기로 쏘아 올린 대한민국의 의료산업이 머지않아 세계를 호령하는 빛나는 성과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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