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예산결산심사소위원회에서 ‘예방접종센터 약사 배치’ 관련 예산 109억3,100만원을 놓고 질병관리청 담당자와 소위 위원 간 오간 질의가 약사 사회의 심기를 건드린 것 같다.

예방접종센터에 약사를 배치하기 위한 예산으로 109억이 증원됐다는 본지 보도 이후 서울시약사회가 ‘신현영 의원은 코로나 백신 무자격자 조제를 원하는가?’라는 보도자료를 뿌리며 이날 소위에서 나온 신 의원의 발언을 맹비난하고 나섰다.

서울시약은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약사는 지역약국, 병원, 제약사, 유통사, 공직, 학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약품의 생산, 유통, 보관, 투약, 사후관리, 회수 등 전 주기에서 의약품의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최근 코로나19 백신과 관련해서는 접종센터에서 백신의 입고, 수량 및 불량 체크, 보관 온도 관리, 조제, 불출에 이르기까지 안전한 백신접종을 위해 본연의 업무를 수행 중’이라고 밝혔다.

또한 ‘병원약사들은 항암제와 같은 약물의 안전한 투약을 위해 무균실에서 정량 조제해 불출하는 등 동일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전문가다, 국민들이 안전하고 신속하게 백신을 접종할 수 있도록 접종센터의 약사 인력 추가 배치와 이에 따른 예산 편성은 필수적’이라고 했다.

하지만 서울시약은 ‘보건의료인 출신이라는 신현영 의원의 발언이 놀랍다’면서 ‘약사들은 약국 운영으로 주사제 소분 경험이 부족해 정확성과 안전성에 상당한 위험이 발생할 것처럼 약사 전체를 매도하고 사실을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이는 약사업무에 대한 이해 부족과 무지를 스스로 드러낸 것이며, 이것이 아니라면 정치적 의도를 갖고 약사직능을 폄훼하고 매도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복지위 예결소위 속기록을 다시한번 살펴봤다.

그런데 예결소위에서 ‘예방접종센터 백신 소분에서 왜 약사가 필요한가’라고 처음 질문을 던진 사람은 신 의원이 아니라 강병원 의원이다. 강 의원은 예결소위 위원장이기도 하다.

강 의원의 이같은 질문에 질병관리청은 “백신 바이알당 6~7 도즈기 때문에 소분할 때 약품 안전성 때문에 약사가 하는게 좋다”는 취지로 답을 했다. 그럼에도 강 의원은 재차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접종센터 자체에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한 인력이 다 배치돼 있고 충분히 훈련된 상태에서 할 것 같은데 추가로 약사를 투입해 소분을 해야 한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며 설득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듯 말했다.

신 의원은 오히려 “접종센터에서 약물안전관리차원에서 소분은 매우 중요하다. 오염되면 안되기 때문이다. 많이 해봤던 인력이 안전하고 정확하게 해야지 잔량도 최소화하고 오염도 안되는 부분이 있다"라면서 숙련된 인력을 통한 백신의 안전한 접종과 잔량 최소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서울시약 보도자료에는 신 의원을 비판하는 내용은 있지만 강 의원을 비판하는 내용은 없다. 강 의원은 의사 출신이 아니라 약사직능에 대한 이해도가 없어도 되기 때문에 비판하지 않은 것인지, 강 의원의 발언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서울시약은 약사 전체를 매도하고 있다며 신 의원만을 몰아붙이고 있다.

그렇다면 신 의원의 발언 중 어느 부분이 약사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일까. 보도자료를 보면 ‘많이 해봤던 인력’ 부분을 ‘약사들은 약국 운영으로 주사제 소분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주사제 소분을) 많이 해봤던 인력에게 맡겨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신 의원의 발언은 ‘예산을 만들어 약사를 예방접종센터에 투입해 백신 소분작업을 맡기는 것보다는 현재 예방접종센터에서 소분작업을 하고 있는 인력이 계속 하는 것이 맞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지 않은가.

더욱이 서울시약은 ‘주사제 소분은 ‘병원약사’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라고 설명하고 있다. 서울시약 스스로도 주사제 소분은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들’ 보다는 ‘병원약사들’의 주요 업무라고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시약조차도 주사제 소분은 병원약사들의 업무라는 것을 인식하는 상황에서 ‘많이 해봤던 인력’이라는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 신 의원을 ‘약국 운영 약사를 매도하는 사람’으로 평하는 것이 옳은지 이해되지 않는다.

서울시약은 또한 ‘백신도 의약품이다. 의약품의 전문가인 약사에 의해 관리돼야 한다. 신 의원의 주장은 경험만 있다면 약사가 아닌 무자격자가 취급해도 괜찮다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서울시약은 신 의원을 향해 '본인 스스로 우려하고 있는 용량 정확도와 안전성 확보, 관리 소홀에 따른 폐기 방지 등은 비전문가가 아니라 전문가의 손에 다뤄져야 가능한 일’이라고 하면서도 ‘그럼에도 약사가 꼭 나눠야 하냐는 것은 약사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비전문가가 조제한 백신을 국민에게 맞히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속기록을 보면 신 의원은 백신을 무자격자가 취급해도 괜찮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

또한 현 예방접종센터 상황을 살펴보면 서울시약의 이같은 주장은 위험한 발언이 아닐 수 없다.

전국 278개 예방접종센터 중 약사가 배치된 곳은 8곳에 불과하다. 270곳에는 약사가 없다. 서울시약의 주장대로라면 예방접종센터 270곳에서 ‘약사의 전문성을 무시하고 비 전문가가 조제한 백신을 국민에게 접종’하고 있는 셈이 된다.

현재 예방접종센터에서는 간호사와 의사들이 백신을 소분해 국민에게 접종하고 있다. 그들은 약사가 아닐 뿐이지 비전문가는 아니다. 더욱이 그동안 각종 백신들이 1차 의료기관에서 접종돼 왔지만 약사들이 없어도 문제가 된 바 없다. 약사들이 의사와 간호사들을 약에 대해서는 비전문가라고 치부하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정부와 국민들 모두 의사와 간호사들 또한 백신을 다루기 충분한 전문가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서울시약은 ‘코로나 위기상황에서 약사들은 평생 먹을 욕까지 들어가면서 공적마스크를 공급하고 타이레놀 품귀사태에도 국민들에게 동일 성분인 아세트아미토펜을 설명해 왔다’며 ‘약사는 감염 위기 속에서 국민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코로나 감염 예방과 확산 방지를 위해 방역물품과 방역정보를 제공해 왔다’고 밝혔다.

사실이다. 또한 이같은 사실에 대해 국민들은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코로나19 극복을 위한 약사들의 역할과 희생에 감사하고 있다.

하지만 예방접종센터 약사 배치 당위성을 논하면서 약사들의 공적 마스크 판매, 타이레놀 설명 등을 거론하는 것은 자칫 ‘우리가 지금까지 이런 역할을 해왔으니 그에 대한 보상을 예방접종센터 약사 배치를 통해 해달라’는 요구로 비쳐질 수 있다.

현장의 약사들이 코로나19 대응이라는 한마음으로 희생하며 행한 일들이 보상을 바라고 한 일로 곡해되는 것은 누구도 원하지 않을 것이다.

국회의원의 역할은 사회에 필요한 법안을 만들고 국가 예산이 한푼이라도 허투로 쓰이지 않게 감시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신 의원의 예결소위 발언은 ‘의사’로서 발언이 아닌 ‘의원’으로서 예산 쓰임새에 대해 질의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리고 그 예산은 109억3,100만원이다.

더군다나 예방접종센터에서 약사 역할이 ‘주사제 소분’이 아니라 ‘박스에서 백신 바이알을 꺼내는 것’이며 ‘바이알에서 주사기로 뽑는 것은 간호사들이 하는 식’이라는 발언을 한 사람은 신 의원이 아니라 질병관리청 담당자였다는 점도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결국 약사 출신 민주당 서영석 의원이 제안해 질병관리청 추가경정예산에 포함돼 복지위를 통과했던 예방접종센터 약사 배치 예산 109억3,100만원은 지난 3월에 이어 또다시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노파심이지만, 신 의원을 향한 서울시약의 무리한 비판이 예방접종센터 약사 배치 예산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데 따른 화풀이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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