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신의료기술에 등재됐지만 전문가 양성·부족한 재정이 걸림돌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 인지중재치료 활성화에 팔 걷어

국내 치매 교과서에 큰 변화가 생겼다. 치매 교과서인 ‘치매 임상적 접근’ 3판이 발간되면서 진단과 예방 부분에서 최신 치료경향이 반영됐다. 이 중 주목할 만한 게 치매 예방 방법에 추가된 인지중재치료다. 인지중재치료는 각종 도구를 통해 치매환자의 인지를 향상시키는 치료를 말한다. 돈 계산이나 양치질 연습 등 일상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연습부터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치료까지 다양하다.

교과서는 바뀌었지만 아직 인지중재치료를 임상에 적극적으로 도입하기에는 여건이 부족하다. 지난 2017년 인지중재치료가 신의료기술에 등재됐지만 전문가 양성, 부족한 재정 확보 등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을 만나 인지중재치료가 활성화되기 위해 필요한 점과 최근 치매 치료 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박건우 교수는 고대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로 치매, 파킨슨병 등 분야의 권위자다. 특히 인지중재치료학회 초대 이사장을 맡을 정도로 인지중재치료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
대한치매학회 박건우 이사장

- 치매 교과서가 개정되면서 인지중재치료의 중요성이 강조됐다. 이번 개정으로 임상현장에서 인지중재치료를 활발히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인지 궁금하다.

하고 싶은데 못하고 있다. 인지중재치료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직 그에 대한 수가는 없어 각 의료기관에서 도입할 동기가 부족하다. 인지중재치료에 있어 가족치료도 매우 중요하다. 가족이 교육을 받고 인지중재치료를 할 수도 있다. 집안 환경을 치매환자에게 편하도록 바꾸는 것도 인지중재치료 중 하나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치매환자에게 인지중재치료가 효과적이라는 것을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치료인력 양성,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등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다. 관심은 있지만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 최근 인지중재치료의 중요성을 절감한 사례가 있는지.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인지중재치료의 필요성이 더 뚜렷해졌다. 환자들이 밖에 나가지 못하고, 사람도 못 만났다. 당연히 운동도 못했다. 외부자극이 없기 때문에 이런 환자들의 증상이 악화됐다. 치매환자 데이케어센터도 코로나19로 운영을 하지 못했다. 이곳에서 하는 것도 다 인지중재치료의 하나다. 생각해보라. 뇌를 쓸 일이 없는데다 근력이 빠지니까 걷지 않게 되고, 밥맛이 없어진다. 집에만 있다 보니 밤낮이 따로 없어 수면의 질도 엉망이다. 끊기 어려운 악순환의 고리가 생겨버렸다. 그동안 치료를 받으며 버텨오던 환자들 중에 나빠진 환자들도 많다. 치매환자의 생활능력을 유지하는데 중요한 자극제가 사라진 것이다.

- 병원이 인지중재치료를 도입하는 속도가 더딘 것 같다.

다행히 2017년에 몇 가지 인지중재치료가 신의료기술에 등재돼 수가를 받을 수 있게 됐다. 문제는 병원이 인지중재치료를 도입하느냐다. 인지중재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사람과 장소가 필요한데 현재 수가를 기준으로 병원에서 도입할 것이냐는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인지중재치료를 하기 위해서는 치료를 시행할 장소, 치료를 시행할 인력이 있어야 한다. 프로그램 개발도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수가 체계에서는 병원들이 쉽게 도입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현 수가체계에서는 인지중재치료 활성화 어려워

- 인지중재치료는 환자에게 언제 적용하는 게 좋은가.

아주 초기(경도인지장애)이거나 치매에 대한 불안감을 갖는 분들도 인지중재치료 적용 대상이다. 다만 아직 일반적으로 (환자나 보호자는)약을 처방하지 않으면 치료라고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 부분은 임상현장이 바뀌고, 인지중재치료에 대한 인식 제고가 동반돼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이런 경우에는 인지중재치료를 하면서 은행잎 제제나 콜린알포세레이트 등의 약물을 병행하는 게 도움이 된다. 약물의 치료효과 외에도 초기 환자들이 지속적으로 치료받게 하는 효과도 있다.

- 그렇다면 치매치료의 단계는 인지중재치료, 그 다음에 인지중재치료와 약물병행이고 약물을 쓸 때도 순서가 필요하다는 의미인가.

원래 그게 맞다. 치매도 아닌데 처음부터 치매치료제를 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의사들이 걱정하는 것은 이런 약들이 치매 예방약으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약을 복용하고 식욕감퇴, 구토 등의 부작용(Side effect) 때문에 CT, MRI까지 촬영하고 오는 환자들도 꽤 많다. 약화사고도 걱정이다. 100명 중 2~3명이 아니라 10명 중 2~3명에게는 반드시 나타나는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치매 치료제 처방 시 의사들이 조심스럽게 경고하게 된다.

- 어떤 경고를 하는가.

부작용이 나타난 경우 일단 약을 끊으라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신환이라면 2주 이상 처방하지 않는다. 환자에게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 들면 천천히 증량한다. 그것이 환자들이 의료기관을 불필요하게 이용하지 않게 하는 방법이다. 물론 보는 각도에 따라 입장이 다를 것이다. 정부 입장에서는 많은 돈이 쓰이는 게 부담스러울 것이다. 의사 입장에서는 치료를 지속하는 수단 중 하나다. 재평가를 할 때도 단순히 인지기능 점수만을 볼 것이 아니라 환자들이 치료를 지속하게끔 하느냐도 봐야한다고 생각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치료옵션이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힘이 빠지는 느낌을 받는다. 전문가에게 맡겨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 치매 치료에 쓸 수 있는 옵션이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콜린알포세레이트 재평가에 이어 Ginkgo Bilba에 대한 재평가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데 치매를 치료하는 전문가 입장에서 어떻게 보는가.

콜린알포세레이트나 Ginkgo Bilba 둘 다 전혀 근거가 없이 급여를 적용한 것은 아니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뇌혈관 질환이 동반됐을 때 쓴다는 근거가 있고, Ginkgo Bilba는 뇌혈류 개선, 어지럼증과 이명 등을 치료하는 데 효과가 있다. 의사가 환자의 증상과 문제를 보고 약물을 선택하는 거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환자에게 안전한 약을 쓰는 게 필요할 때가 있다는 점이다.

- 안전한 약이 필요하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달라.

알츠하이머 외에 혈관성 치매, 파킨슨 병 등도 경도인지장애에서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의사도 질환을 명확히 판단하기 어려울 수 있다. 그런데 현재 치매치료제로 쓰이고 있는 아세틸콜린에스터라제 인히비터(Acetylcholinesterase inhibitor)는 10명 중 3명에게서 식욕감퇴, 구토 등의 부작용이 나타난다. 치매가 의심되는 환자에게 처음부터 이 약을 처방할 수는 없다. 정확한 감별진단이 될 때까지 비교적 안전한 약을 처방하면서 치료를 지속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 인지중재치료가 확대되려면 정책적으로 어떤 게 필요하다고 보는가.

치매는 내가 점점 없어지는 병이다. 의사를 10분, 20분 만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가능한 오랫동안 ‘나’를 지킬 수 있게 하는 게 치매치료다. 그렇기 때문에 인지중재치료는 단순히 돌봄이 아닌 치료다. 치매 치료제가 개발되고 있지만 그때까지 뇌조직이 망가지지 않아야 치료제를 쓸 수 있지 않겠나. 그러기 위해서 약물치료, 인지중재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을 공감했으면 한다.

※박건우 이사장의 영상 인터뷰는 오는 5월 25일 오후 1시에 공개되는 의학토크쇼 '뇌를 지켜라'편에서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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