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병협 “직역 간 갈등…의료체계 붕괴 우려” 지적
간무협 “당사자인 간호조무사 입장 반영되지 않아”
복지부 “간호법 ‘분법’ 득실 분명해…직역 간 합의 의뤄나가야”

간호인력 전문성과 간호서비스 역량을 강화하고 근무환경 개선 등을 위해 독자적 간호법 제정이 추진되고 있지만, 법적 실효성을 얻기보다 보건의료체계 붕괴 등 부작용이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지난 20일 전경련회관 컨퍼런스센터 3층 다이아몬드홀에서 정의당 배진교 의원과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가 공동 주최한 ‘해외 간호제도를 통해 본 간호법안 전문가 좌담회’에서는 간호법을 반대하는 유관단체 의견들이 쏟아졌다.

대한간호협회와 대한조산협회, 한국간호교육평가원 등 간호계를 제외한 의료계 등 유관단체들의 경우 독자적 간호법 제정을 반대하거나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냈다.

의료서비스는 협업 및 연계성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데 간호법 제정으로 업무범위 충돌로 인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혼란을 감수하면서까지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는 지적이다.

먼저 대한의사협회를 대신해 토론자로 나선 인제의대 서울백병원 염호기 교수는 간호법에 명시된 간호사의 배타적 권리로 인해 오히려 의료전달체계가 붕괴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염 교수는 “간호사 이외에 간호행위를 하면 안 안된다고 명시하고 있어 의사나 전문 간병인 등에 의한 간호업무를 무면허 간호업무로 처벌하게 되면 모두 범법자가 될 수 있어 곤란하다. 의료기관은 불법 천지가 되지 않겠냐”고 우려했다.

염 교수는 “행위별 수가제를 채택해 운영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행위를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라며 “의사의 진료보조가 아닌 진료에 필요한 간호활동이라고 조항을 달 경우 행위별 수가가 남발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한병원협회 송재찬 상근부회장도 “직역 간 갈등을 야기시킬 뿐”이라며 “간호인력 처우개선 문제는 기존 제도로 충분히 개선할 수 있다. 오히려 간호법이 갈등을 유발하고 실질적 효과가 없다면 법 개정은 의미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송 부회장은 “업무영역 관련해 ‘처방’이라는 말이 (간호법에) 들어가는데 의사로부터 독립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문을 열고 간호조무사에 대한 지도·감독 요소를 담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송 부회장은 “의료서비스는 팀 플레이가 핵심이다. 의사가 팀장이 돼서 다양한 직종의 독자적 영역을 존중하고 이를 위한 환경 조성을 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면서 “이 법이 과연 이를 촉진할지, 저해할지 밀도 있게 검토해야 한다”고도 했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는 간호법의 또 다른 당사자이나 간호조무사 입장은 반영되지 않았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

간무협 최종현 기획이사는 “현행법 안에서는 간호조무사 역할이 의사와 간호사의 보조인력으로 돼 있지만 간호법이 제정되면 간호사 보조인력으로 고착화될 수 있다”며 “간호조무사는 60%가 의원급에서 근무하고 있고 의사들과 관계도 있어 의료법에 존치돼 있는 게 맞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간호법이 발의되기까지 간협이 이를 주도했다. 이해당사자인 간호조무사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며 “간무협도 논의할 수 있는 툴을 마련해 간호조무사 의견을 간호법 안에 담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날 불평등과시민성연구소 윤태영 이사장은 ‘간호법안 법률체계·내용상 쟁점 분석과 간호인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주제로 한 발제를 통해 “간호법은 현행 의료법과 비교해 법체계뿐만 아니라 내용상으로도 발전된 형태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특히 윤 이사장은 간호보조인력인 간호조무사와 간호사 비율이 1대 1에 육박할 정도로 상당수가 활동하고 있는 특이한 한국 간호제도 현실도 간호법 제정 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이사장은 “한국은 특이한 간호 인력 구조를 갖고 있다”며 “대부분 국가를 보면 간호보조인력 비율이 낮지만 한국은 간호조무사가 제도권에서 양성되지 않고 학원에서 교육되기 때문에 간호사와의 비율이 1대 1에 육박한다”고 말했다.

윤 이사장은 “법 체계를 따라가기 보다 간호인력 현황에 맞는 실질적 체계 변화가 필요한 것 같다”면서 “특히 양성체계 가운데 직급 상승체계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 현행 간호조무사 인력을 양성하는 방향으로 간호인력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윤 이사장은 “이미 배출된 간호조무사에게 경력 상승 기회를 제공하고 간호인력 체계 기능과 역할에 맞게 세분화하면서도 간호인력 전체가 하나의 정체성을 가질 수 있으려면 상위 직급으로 상승할 수 있는 ‘경력의 사다리’가 보장돼야 한다”고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지난 11일 신설된 보건복지부 간호정책과 양정석 과정이 참석해 간호법 제정에 대한 신중한 입장을 피력했다.

양 과장은 “원칙적으로 의료법에서 간호법으로 ‘분법(分法)’하는데 득과 실이 분명히 있다”며 “개별법의 경우 구체적 사안에 대해 집중할 수 있고 여러 자원을 집중하고 환기시킬 수 있다. 하지만 의료법을 중심으로 통합적 규율도 장점이 있다. 의료서비스가 고도화 되고 전문화 되면서 협업 과정이 중요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양 과장은 “간호법 제정안이 분법이라고 봤을 때 득과 실을 잘 따져야 한다”며 “정부가 일률적으로 기준을 제시한다기보다 의료서비스 제공 과정에 있는 분들이 사회적 합의를 이뤄가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양 과장은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 위원회나 종합계획 관련 부분은 상임위원회 검토보고서에서도 통합적 필요성을 인정했다”며 “간호법 제정의 중요성도 생각해 봐야겠지만 간호법에서 집중할 부분과 의료체계에서 공통적으로 다뤄야 할 부분에 대해 구별해 다뤄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