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1형당뇨병환우회-사업단, 연구 주제 선정 놓고 갈등
선정과정서 ‘이해상충’ 등 민감한 내용들 나오며 갈등 골 깊어져
“환자중심이라더니 비전문가라 무시”vs“절차 거친 선정, 오해”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위탁받아 수행 중인 ‘환자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이 환자중심을 표방하면서 환자들이 제안한 연구주제를 무시하고 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한국1형당뇨병환우회가 제안한 연구주제를 선별, 검토하는 과정에서 환우회와 사업단 사이에 마찰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이해상충’ 등 민감한 주장들이 나오면서 갈등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특히 1형당뇨병환우회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개 연구주제를 제안했다가 사업단 측의 ‘환우회를 무시하는’ 태도에 주제를 자진 철회하는 등 양 측의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환자와 국민의 보건의료분야 미충족 요구 및 보건의료현장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지원하는 근거 생산’을 위해 환자중심으로 진행하겠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사업은 왜 환자들에게 비판받게 됐을까.

환자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이란?

환자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은 인허가 또는 신의료기술평가 후 보건의료현장에서 통용되는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행위 및 의료서비스, 전달체계 등 다양한 의료기술의 효과성, 안전성, 비용효과성 등에 대한 근거를 생산하는 국가 지원 연구자 주도 임상연구다.

사업은 환자와 국민의 보건의료분야 미충족 요구 및 보건의료현장의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 의료서비스 질 향상을 지원하는 근거 생산을 목적으로 한다.

특히 이같은 목적 달성을 위해 환자, 국민, 보건의료현장 전문가, 보건정책결정자 등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사회적으로 필요한 유용한 연구가 수행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했다.

사업은 2019년부터 2026년까지 8년간 진행되며 총 1,840억원의 재정을 투입해 380여개 과제를 지원한다.

구체적으로 5년 내 연도별로 5억원 이내를 지원하는 전향연구 53개, 2년 내 연도별 1억 이내를 지원하는 후향연구 58개, 1년 내 연도별 1억 이내를 지원하는 DB 활용 후속연구 216개, 역시 1년 내 연도별 1억 이내를 지원하는 가이드라인 사업 53개를 지원할 방침이다.

연구개발 절차는 연구주제가 제안되면 연구결과의 잠재적 영향력, 근거 불확실성, 연구수행 가능성 등을 검토해 주제별 신규과제 공모안(RFP)을 개발해 신규과제로 공모하는 방식이다.

1형당뇨병환우회 제안 주제는 왜 논란이 됐나

환우회와 사업단 간 갈등은 환우회가 제안한 ‘1형 당뇨인들이 수집하고 있는 혈당 관련 데이터에 대한 연구’ 선정 심사 과정에서 불거졌다.

이 과제는 수년 전 이슈가 된 후 국내 사용이 허가된 연속혈당측정기를 사용하는 1형당뇨병환자 데이터를 수집해 활용 방안을 찾는 것이 목적이다.

하지만 주제 심사 과정에서 사업단이 ‘주제를 제안한 환자단체와 공동연구를 수행해 온 특정 연구자 그룹이 있음’이라는 이해상충을 의심케 하는 문구를 회의자료에 넣으면서 환우회의 반발을 샀다.

이와 관련 환우회 김미영 대표는 본지와 통화에서 “우리가 제안한 주제가 선정되면 특정 연구자가 맡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인데 우리가 (사업단이 이해상충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지적한) 해당 교수와 연구를 진행한 것은 맞지만 그 교수하고만 연구를 진행한 것이 아니라 다른 교수들과도 비슷한 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사업단은 이해상충 가능성 문제를 제기하기 전에 환우회에 사실 확인 조차 하지 않았다”며 “실제 (제안한 주제가 후향연구과제로 선정된 후) 이해상충 가능성이 있다는 교수는 지원하지도 않았고 다른 팀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김 대표는 “이런 과정들을 보면 사업단에서 환자와 국민이 제안한 주제를 의도적으로 떨어트리려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사업단 측은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입장이다.

사업단 김민정 사무총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우리는 이해상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적이 없다. 의사결정체계상 (이 문제는) 사업단 운영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이라며 “환우회가 오해하는 부분이 있는데 이런 부분에 대해 공개적으로 대응하기 조심스럽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운영위 김윤 위원장은 “(사업단에서) 환우회와 연구자 간 유착관계가 있고 연구과제를 만들어 받아가려 한다고 표현했다”며 “하지만 그렇게 주장한 근거에 대해 설명하지는 않았다. 사업단이 그런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근거는 사업단에서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이런 과정을 거쳐 해당 주제는 5년 이내 연도별 5억 이내를 지원받는 전향연구에 제안됐지만 2년 이내 연도별 1억 이내를 지원받는 후향연구에 선정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지원 규모가 줄었고 주제는 선정됐다고 볼 수 있지만 과정이 매끄럽지 못했고, 특히 사업단이 주장한 ‘이해상충’ 의심에 대해 환우회와 환자단체 측에서 민감하게 반응하며 양 측의 갈등은 아직 해소되지 못하고 있다.

사업단에서 문제해결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한 사업단 운영위원회는 5월로 예정돼 있다.

문제는 환우회와 사업단 간 갈등이 올해까지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환우회가 올해 제안했던 3가지 주제 역시 지난 3월 환우회와 사업단 간 논의 과정에서 환우회가 자진 철회했다.

환자중심이라더니 비전문가라고 무시?

지난해와 올해 연구주제를 제시했지만 모두 뜻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던 환우회는 ‘환자중심’이라는 사업이 정작 환자와 국민을 무시하고 있다고 반발하고 있다.

환우회 김미영 대표는 “제안한 연구와 관련해 사업단과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느낀 부분은 사업단이 ‘국민이나 환자들은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그들이 제안한 주제가 연구로 이어지기 어렵다’는 마인드가 강하다는 것”이라며 “환자중심사업이라면서 그같은 마인드로 추진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우리가 제안했던 주제를 환우회가 아닌 연구자가 제안했어도 이런 과정을 거쳤을까 싶다”며 “지난해 2개, 올해 3개 과제를 제안했는데, 이런 식이면 앞으로 달라질 것 같지도 않다”고 했다.

한국환연에 따르면 환자중심연구사업에서 일반 국민, 시민단체, 소비자단체, 환자단체 등 국민과 환자를 대상으로 연구주제를 제안받은 실적은 2019년 9건, 2020년 104건이었지만 이 중 최종 선정된 연구주제는 2019년 0건, 2020년에는 1건, 연구자와 국민‧환자 공통 제안을 포함해도 5건뿐이다.

오해 소지 줄이는 소통 중요

한편 환자중심연구사업을 놓고 환우회와 사업단 간 갈등을 줄이기 위해 서로 오해를 줄이고 소통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보의연 원장 재직 시절 환자중심연구사업을 만든 이영성 전 원장(現 충북대 산학협력단장)은 본지와 통화에서 “환자중심연구사업 취지는 환자, 보호자, 일반 시민에게 연구 주제를 받는 것은 맞지만 일반인들이 연구 방법론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연구 방법론 등은 일반인뿐 아니라 관련 전문가가 아니면 (의료계 다른 분야 전문가들도) 잘 모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때문에 환자, 보호자, 일반 시민들에게 연구 주제를 받아도 보의연 연구원들이 자체 연구를 한달 정도 해서 합리적으로 연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디자인하게 된다”며 “일반인들은 연구주제에 대한 절박성만 있고 합리적인 연구 디자인을 하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 전 원장은 “때문에 주제 선정 과정에서 양 측이 소통이 잘 안되면 오해가 생길 수 있다”며 “환자와 보호자들이 자칫 오해할 수 있는 부분이 주제를 제안하면 꼭 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영국 등 해외 사례를 봐도 연구내용과 방법은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이 전 원장은 “(이번 사태는) 아마 (보의연에서 사업을 추진하면서) 인력, 예산 등 한계가 있어 오해가 발생하지 않았나 생각한다”며 “양 측이 오해를 줄이는 소통 과정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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