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달리는 중환자실' 운영해온 서울대병원 홍기정 교수
"10억 더 받기보다 전국 체제 생기는 게 우선"
병원간 전원 '판도라 상자' 열려면…"정부가 표준 체계 제시해야"
중환자의 병원간 전원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열악한 수가 구조와 고질적인 인력 부족, 질관리 체계의 미비는 물론 민간이송업체와의 관계까지 얽혀 있다.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홍기정 교수는 이 문제를 '판도라 상자'에 빗댔다.
"감히 못 여는 '판도라 상자'다. 해결하자고 슬쩍 열어봤다가도 그 안이 너무 꼬여있으니까 '그냥 못 본 걸로 하고 넘어가자' 이러면서 다시 닫아버린다."
그동안 지자체와 병원의 자구 노력도 이어졌다. 서울대병원이 서울시 지원으로 지난 2015년 시작한 '달리는 중환자실' SMICU(Seoul mobile intensive care unit)가 그 산실이다. 응급의학과 전문의를 비롯한 전담팀이 서울시 내 중환자 전원이 필요한 곳이면 24시간 언제든 달려간다.
홍 교수는 병원간 전원 문제 해결을 위해선 SMICU와 같은 공공이송 서비스가 전국적으로 확대돼야 한다고 봤다. 정부가 정책적 방향과 표준 체계를 제시하고 예산과 수가 구조도 제대로 정비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공공이송 서비스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전국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봤다. 그리고 그 첫 단계로 질관리 체계 마련과 수가 현실화를 꼽았다.
홍 교수는 "제가 인턴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약 20년간 중환자 전원 문제 양상은 똑같았다. 언제까지 인턴 손에 주사기 하나 쥐어주고 따라갔다 오라 할 것"이냐며 이제라도 엉킨 타래를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SMICU 초창기부터 함께한 홍 교수에게 병원간 중환자 이송 문제의 현 주소와 나아갈 방향을 물었다.
- SMICU 초창기부터 함께 해왔다. 서울대병원은 SMICU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서울시 응급의료 문제 중 하나가 병원간 전원이다. 분명 다른 지자체에 비해 병원도 많고 의사도 많은데 매번 자리가 없고 환자가 죽어간다. 병원들은 여력이 안 되고 민간이송업체는 관리 체계도 없다. 외국은 예전부터 웬만한 도시마다 CCT(Critical Care Transport) 체계를 마련했다. 그걸 보고 우리가 중환자 응급 이송을 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쭉 적어서 사업계획서를 작성했다. 사업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서울시에 말했더니 필요성을 인정해서 지난 2015~16년에 걸쳐 시작하게 됐다.
- 올해 전담팀도 한 팀 더 생겼고 1년 예산도 10억에서 20억으로 늘었다. 여기에 10억을 더 준다고 하면 어디에 쓸 건가. 홍보에 쓰거나 차를 1대 더 살 수도 있겠다.
'너희한테 10억 더 주면 어떡할래?'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서울시에서 우리한테 당장 10억 더 주는 것보다 중앙 정부 차원에서 전국적으로 예산을 투입해 지역마다 공공 이송 체계가 생기는 게 훨씬 좋다. 우리가 10억 더 받았다고 차 한 대 더 사면 이제 '서울시에 SMICU 구급차가 3대나 되니까 다른 지역 이송도 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문제로 흘러갈 것이다. 근데 만약 우리가 경기도 간 사이에 서울에 있는 환자가 우리 서비스를 이용 못하고 사망하면 어떡하나.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지금으로선 서울시 예산이니 서울에서만 쓰는 게 맞다. 앞으로 전국적인 체제가 자리잡히고 여유가 생긴다면 서로 경계를 넘나드는 이송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공공이송을 확대하자는 의견뿐만 아니라 민간이송업체 질을 향상시키자는 의견도 있다.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보나.
지금 우리 환경에선 결국 공공이 맡는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사실 처음 SMICU를 시작할 땐 민간이송업체들이 '서울대병원이 시에서 돈 받아다 업체 차린다더라, 이거 완전 불공정 경쟁 아니냐'고 항의할 줄 알았다. 근데 안 그랬다. 시장이 분리돼 있는 거다. 어느 분야건 민간이 지탱하려면 최소한 수지타산이 맞아야 한다. 여기서 돈 나올 구석은 이송처치료뿐이다. 민간업체한테 중환자 안전하게 이송하라고 하기엔 그 사람들 버는 돈이 전혀 없다. 자연스레 다들 비응급환자 이송에 더 집중하게 된다. 만약 서울시에서 민간이송업체랑 같은 조건의 환자 이송하라고 서울대병원에 좋은 차 10대 주고 무료 서비스하겠다고 했으면 난리가 났을 거다. 그러니 병원간 전원 분야를 아예 경증과 중증 이송으로 나눠 제도화하고 중증 이송은 권역응급의료센터, 권역외상센터 지원하듯이 공공 모델로 가는 게 맞다고 본다.
- 하지만 SMICU 같은 모델은 '서울형'이라 전국적으로 하기 어렵단 의견이 많다.
결국 돈과 인력 문제다. SMICU 모델을 하려면 전담팀, 차량, 지속적인 질관리가 필요하다. 차 1대 당 기본 2억~3억에 전담 응급의학과 전문의 5명을 뽑아야 한다. 2대면 10명이다. 웬만한 대학병원 한 교실을 차 안에 싣고 다니는 셈이다. 거기에 간호사, 응급구조사 인건비까지 다 포함해서 1년 예산 10억이 나온다. SMICU가 분명 수요 있는 모델은 맞다. 충청남도에서 서산의료원을 거점으로 해보자고 했고 광주에서도 전남대병원이 민간업체와 함께 심포지엄을 열었다. 전국에서 SMICU 모델을 해보고 싶다고 우리 병원을 찾아온다. 근데 다들 이 '10억' 소리에 포기한다.
- 지자체나 병원의 의지만으론 전국적인 공공이송 서비스는 어려워보인다.
그래서 정부가 나서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병원간 중환자 응급이송에 대한 정책적 방향과 표준 체계를 제시하는 거다. 전국에 응급이송팀이 몇 팀이 필요하고 인원은 얼마나 뽑아야 하는지, 전체 예산은 얼마나 책정하고 지자체는 얼마나 부담하면 되는지 정부에서 먼저 보여주고, 그 안에서 지자체와 병원이 각자 사정에 맞게 꾸려나가면 된다.
지자체 거버넌스에 따라 소방 쪽 지원도 받을 수 있겠다. 지금 소방 쪽에서는 시설이나 구급차 마련은 수월한데 응급이송에 참여할 의사 찾기가 어렵다. 병원에선 구급차에 태울 의사는 뽑으면 된다지만 시설 만들고 차량 관리하기가 까다롭다. 이런 부분에서 서로 협의하면 얼마든지 다양한 모델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소방에서 구급차 비용 2억을 대고 수가에서 3억~4억 정도를 받을 수 있다면 지자체와 병원이 각각 1억~2억 예산으로 시도해볼 만한 사업이 된다. 지금처럼 알아서 하라고 내버려두면 서울밖에 못 하는 거다.
- 소방과 병원 협력 모델로는 ‘닥터카’가 이미 제시됐다.
개인적으로 닥터카 모델엔 동의하지 않는다. 어느 소방서랑 어느 병원이 몇 천만원에 MOU 체결하고 닥터카 개설하면 ‘의느님’이 나타나서 다 해결해줄 거 같지만 의사 입장에선 수많은 업무 중 하나 추가되는 거다. 어쩌다 연락 오면 '외래라서 못 간다, 당직이라 못 간다'하다가 출동 건수도 줄고 결국 흐지부지 된다. 공공이송 서비스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전담팀 운영이 중요하다. 그래서 돈이 많이 드는 거고. 기관끼리 하는 단편적인 ‘세리머니’가 되지 않으려면 정부가 예산을 대주고 수가 구조도 마련해야 한다.
- 그럼 제일 시급한 건 역시 수가 현실화라고 보나.
질관리 체계와 수가 현실화, 이 둘이 함께 가야 한다. 만들기는 질관리 체계를 먼저 만들겠지만 안착하는데 시간은 더 걸릴 거라고 본다. 그럼 그동안 수가든 인센티브든 지원이 계속 들어와야 한다. 그런 것도 없으면 왜 질관리 제대로 안 하냐고 야단만 치는 격이다.
질관리를 위해선 우선 탑승자 교육은 무엇을 할지, 이송 중 발생하는 이송처치기록이나 환자 기록 등은 어떻게 관리할지, 그리고 이송 결과에 대한 피드백은 어떤 식으로 줄지에 대한 기본적인 틀을 갖춰야 한다. 수가는 어떤 항목을 새로 개설할지 정할 것도 없이 그냥 다 필요하다. 현재 있는 수가로는 기름값 정도 밖에 안 된다. 여기에 의료 행위까지 다 하라기엔 너무한 수준이다.
- 현재 병원간 전원 대부분을 민간이송업체가 맡는 만큼 민간 분야도 대책 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민간업체에선 수가 개설보단 이송처치료 현실화 요구가 크다. 지금 받는 이송료 수준으론 아주 기본적인 서비스도 어렵다. 하지만 새로 수가를 신설해서 받자니 업체마다 의사가 필요하니까 수지타산이 안 맞을 거다.
하지만 질관리 체계는 민간 분야에도 필요하다. 지금은 응급구조사들의 업무 범위도 제대로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병원 입장에서도 환자가 도착하기 전까진 차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방법이 없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민간업체가 싣고 오는 중환자가 119구급대 환자보다 위중한 경우는 더 많은데 제대로 된 처치를 못 받는 경우가 허다하다.
- 현장에서 봤을 때 이 외에도 더 필요한 게 있다면.
환자 전원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 만약 요청 받고 간 요양병원 환자의 상태가 안 좋아서 기관 삽관을 하던 도중에 사고가 난다면? 사고가 우리 병원 안에서 벌어지는 것과 다른 병원에 갔다가 터지는 건 전혀 다른 케이스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아직 법적으로도 판례 축적이 덜 됐다. 꼭 이 문제 뿐 아니라도 병원간 전원에 대해 전체적으로 제도적 정립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