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병원 산부인과 홍유미

“네가 그랬지?” 오늘부터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질 것이라는 일기예보와 함께 늘 그렇듯 정신 없이 시작된 출근 준비시간. 아끼는 머플러가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양은서! 또 너지?” 요즘 서랍이며 옷장이며 정리된 내용물을 밖에 다 끄집어내는 것을 소꿉놀이로 삼는 두 돌짜리 큰딸이 틀림없이 범인일 것이라 의심했고, 확신했다. 시간에 쫓겨 딸을 혼내지도 머플러를 찾지도 못한 채 매서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병원으로 향했다.

지난 봄이었다. 발열을 주소로 한 산모가 응급실로 내원했다. 확진자가 하루에도 몇 백 명씩 쏟아져 나오는 요즘이라면 당연히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부터 의심했겠지만 코로나 발생 초창기인 당시만해도 산모에게 흔한 신우신염이나 방광염쯤 되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진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안일한 예상과 달리 나는 며칠이 지나도 그녀의 병명을 찾지 못했다. 수없이 많은 검사를 하고 수없이 많은 항생제들을 쏟아 부었지만, 나는 그녀 병세의 뾰족한 원인을 찾지 못했다. 이런 환자들에게 내려지는 의학적 진단명은 ‘불명열.’ 원인을 알 수 없는 열이라는 의미로, 입원 9일째, 결국 그녀에게도 나의 무능함이 들통나 버린 것만 같은 이 진단명이 붙여졌다.

그녀는 하루에도 몇 차례씩 40도에 가까운 고열을 반복하였고 그녀의 체온이 요동칠 때마다 그의 남편 김연수씨와 주치의인 나의 가슴도 함께 타 들어가고 있었다. 입원 13일째, 감염내과 교수님께서 가능성은 떨어지지만 마지막으로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검사’를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답변을 주셨다. 그 때만해도 내가 근무하는 전주지역 확진자는 다섯 손가락 이내로 검사 자체가 모두에게 생소해 의아했으나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도 없었기에 마지막 칼을 뽑기로 했다.

병동 내 집중치료실 끝에 위치한 그녀의 자리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그 시각에도 어김없이 그녀는 고열로 이불을 얼굴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남편 연수씨를 커튼 뒤로 불러내 상황을 설명하였다.

“연수씨, 정말 죄송하지만, 당연히 부인되시는 분께서 그럴 일은 없겠지만…제가 두 분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지만….” 횡설수설 중언부언 서두를 마치고 왜 이검사를 받아야 하는지 나는 긴 시간 동안 그를 설득하였다.

그렇게 어려운 임무를 끝내고 결과를 기다리던 중 간호사들이 나를 찾았다. “선생님, 좀 나와보세요. 집중치료실에서 큰 소리가 나고 있어서요.” 아니나 다를까. 연수씨와 또 다른 장기입원 산모 보호자간의 욕설로 범벅이 된 고함소리가 온 병동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고 있었다.

“당신 때문에 우리 마누라 코로나 걸리면 책임질꺼야? 어디서 이상한 병 가지고 와서 남의 집 인생 망치려고 해?” “그럼 우리 마누라 코로나 아니면 당신이 책임질꺼야? 당신 마누라랑 당신 새끼만 귀한 줄 알아?” “당신 마누라도 한번씩 기침하던데 당신 마누라야말로 코로나 아니냐고!” 상황을 들여다 보니, 어제 밤 나와 연수씨 사이의 면담 내용을 같은 병실의 다른 보호자가 엿듣게 되었고, 이에 같은 병실을 쓰는 나머지 네 명의 산모들과 그들의 보호자들이 ‘신종코로나바이러스’라는 미지의 병마가 자신들에게까지 뻗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결국 연수씨의 멱살을 잡은 것이었다.

“주치의 선생님, 무슨 조치를 취해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저 여자가 코로나로 확진 되면, 우리 마누라는, 뱃속의 우리 아가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우리 아기한테 나중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선생님이 책임질 겁니까? 우리가 이 아이 가지려고 시험관 하느라 돈을 얼마나 쓴지 알기나 하세요?” “저 여자 코로나였어요? 어쩐지 처음부터 뭔가 이상했어. 당장 저 여자 병원에서 쫒아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여기저기서 그녀를 향한 모진 말들이 쏟아져 내렸다.

고열로 하루하루 생사를 왔다 갔다 하는 산모를 범죄자 취급하는 그들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들의 주치의기도 한 나는 그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조바심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담당교수님과 나는 연수씨에게 1인실로 이동해달라는, 격리라는 또 한번의 미안한 부탁을 하게 되었다. 그날 밤 연수씨 부부의 병실 근처에는 파리새끼 한 마리 날아다니지 않았고 애꿎은 신규 간호사만이 중무장을 한 채 최소한의 진료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발(發) 의심병이 온 병동을 집어삼킨 어두운 밤이 지났다.

다음날 그녀의 검사결과를 클릭하는데 나도 모르게 어제 아침 옷장서랍을 뒤지던 딸아이 얼굴이 떠올랐다. ‘만에 하나라도 연수씨네가 진짜 코로나로 확진 되면 주치의인 내가 제일 먼저 감염되었겠지? 그렇다면 우리 딸 은서는 어쩌지?’ 망상에 가까운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행히 아니 당연히, 연수씨 부인의 바이러스 검사결과는 ‘음성’이었고, 연수씨네는 며칠 뒤 중환자 전문의학을 전공하신 교수님께 전과되어 비특이성 폐렴 등의 치료를 받고 병세가 점차 호전되었다. 나는 의사로서 그녀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것 같은데, 퇴원하는 날 그녀와 그녀의 남편 연수씨는 고맙게도 웃는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죄지은 듯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내게 두 부부는 반가운 인사와 함께 한 장의 명함을 건냈다. ‘연수수산’. 남편 김연수씨의 이름을 딴 횟집 명함이었다.

지금 이 순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빠른 전파율, 높은 치사율보다 무서운 것은 이 작은 바이러스로 환자와 환자간, 의사와 환자간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점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출현 이전의 삶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이 바이러스는 우리 삶의 많은 것들을 바꿔놓았다. 가족을, 친구를, 동료를, 만나는 모든 사람을 의심한다. ‘전장’이나 다름없는 병원은 당연히, ‘최전선’이나 다름없는 분만실과 신생아실에서 근무하는 나는 더 당연히 혹독한 의심병을 앓아야 한다. 그러나 무능한 나를 다시 찾아와준 연수씨네처럼 서로를 조금씩 이해하고 믿어준다면 반드시 이 병마로부터 자유로워질 날이 다시 올 것이라 믿는다. “홍선생님, 부안에 회 한 접시 잡수러 오시게요.” ‘연수수산.’ 그렇게 나는 오늘 책상 한 켠 횟집 명함을 용기 삼는다.

“여보. 오늘아침 당신이 찾던 그 머플러 내 차에 있던데?” 퇴근길 남편의 손에 하루 종일 찾던 그 머플러가 들려있었다. 오늘 저녁에도 어김없이 숨바꼭질 놀이 하자며 가슴팍에 달려드는 딸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머플러를 두르며 입맞춤을 하였다. 연수씨도, 연수씨 부인도 부안 어딘가에서 나처럼 딸 아이에게 입맞춤 하고 있겠지.

<수상소감- 전북대병원 산부인과 홍유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수개월간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다 가까스로 치러진 지난 19회 한미수필문학상을 받고 전주로 내려오는 KTX 기차 안. 지역간 이동이 제한되는 요즘 최소한의 인원으로 칸막이로 중무장을 한 시상식장을 나오는데, 기쁜 날인데 왠지 모를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그날 기차안에서 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주제로 글을 한편 써야 하겠다고 다짐했고, 그날 밤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연수수산’을 완성했다.

연 이은 지원에 설마 올해 또 될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를 주제로 한 ‘연수수산’은 시의성 측면에서 올해 아니면 세상의 빛을 보기 어려울 것 같은 마음에, 재도전의 글을 보냈다. 퇴고를 하는데 아직까지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하루의 고된 일과가 떠오르며 지난 밤 기차에서 느꼈던 그 씁쓸한 기분이 다시 한번 마음을 훑었다.

미제이자 숙제로 남아있는 이 병마와의 싸움에서 늘 지고 오면서, 이를 주제로 글을 써 상을 받는다는게 역설적인 것 같아 부끄럽지만, 이를 거름으로 더 열심히 싸워 결국 이 병마를 이기라는 깊은 뜻이 있으라 생각한다.

아이 둘에 밤낮 없는 전공의 생활, 거기에 학위논문까지. 주제넘게 벌여 놓은 일들로 매일을 허덕이는 내게 응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 양영훈, 항상 엄마손길이 그리운 양은서, 양연서, 내게 글 쓰는 재주를 주신 친정 엄마, 고맙고, 미안하고, 사랑한다.

마지막으로 부족함을 가능성이라 인정하고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으시는 시부모님과 교수님들께도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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