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탄연세소아청소년과 우샛별

전공의 1년차 때의 일이다. 회진을 마치고 의국에 돌아오니 내 앞으로 택배가 와 있었다. 모르는 발신인의 이름이 상자 위에 또박또박 적혀 있었다. 내용물은 손수건 세트였다. 이걸 누가 나에게 보냈을까. 고개를 갸웃대던 차 바닥에 놓인 카드를 발견했다.

[그간 애써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민현우 엄마 올림.]

나도 모르게 몸이 굳었다. 그간 수없이 보고 듣고 불렀던 이름이었다. 나의 마음을 몹시도 괴롭게 했던 현우. 그 현우의 엄마가 손수건을 보낸 것이었다.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카드와 함께.

약 한 달 전, 사 개월 남자 아이가 심정지로 응급실에 왔다. 오랫동안의 심폐소생술로 겨우 심장박동이 돌아왔다. 담당 교수님과 내 앞으로 입원장을 막 냈을 때였다. 누군가가 허겁지겁 응급실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 울음과 가쁜 숨이 뒤섞이어 뭉개진 발음으로 여자가 누군가의 이름을 발음했다. 우리 애기, 현우 어딨나요…. 바로 그 사 개월 아이의 보호자였다. 황망한 모습의 여자가 간호사를 따라 아이에게 가던 바로 그 때였다. 아이의 옆을 지키고 있던 2년차 전공의가 소리를 질렀다. 여기 어레스트! 나는 반사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멀찍이서도 다시 직선이 되어버린 모니터가 보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정신없이 아이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그만해봐. 돌아온 것 같아. 누군가가 나의 어깨를 붙잡아 떼어냈다. 과연, 모니터에 다시금 규칙적인 초록색 선이 튀어 오르고 있었다. 빨리 중환자실로 올리자. 또 다른 누군가의 말에 나는 멍한 상태로 고개를 주억이며 두어 걸음 뒤로 물러섰다. 뒤통수에서 목덜미로, 뜨거운 땀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는 것이 아직 긴장이 가시지 않은 몸에 생생히 느껴졌다.

중환자실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다 말고 다리에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송골송골 목덜미에 맺혔던 땀이 서늘한 공기에 천천히 식어갔다.

나는 그때까지 중환자를 돌본 경험이 거의 없었다. 운이 좋게도 전공의가 된 후 경한 환자들만을 담당해왔다. 이렇게 상태가 좋지 않은 환자를, 아무리 교수님이 있다지만 고작 1년차인 내가 잘 보살필 수 있을까. 걱정과 불안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나는 간신히 힘을 짜내어 몸을 일으켰다.

아이는 이미 중환자실에 올라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다행히 모니터는 안정적인 그래프와 숫자들을 보여주고 있었다.

“보호자는 밖에 계세요. 엄마하고 할머니이신 것 같아요.”

내가 멍하니 보고만 있자 담당 간호사가 답답하다는 양 말을 이었다. 보호자 설명 하셔야죠. 나는 문 쪽을 쳐다보았다. 응급실에서 보았던 여자가 그 새 더 흐트러진 모양새로 중환자실의 유리문에 딱 붙어 아이와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붉게 충혈된 불안한 눈빛.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떼었다. 명확한 비보를 전하러 가는 길은 짧았지만 까마득한 지옥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

간절히 붙잡은 두 손을 하고 있는 그들에게 나는 건조하게 물어보려 애썼다. 대강의 상황은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여쭤볼게요. 어떻게 된 건가요? 답은 할머니에게서 나왔다. 제가 아이에게 우유를 먹이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숨을 쉬지 않는 것을 발견했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의 주먹이 꽉 쥐어져 부들부들 떨렸다. 할머니의 말이 더듬더듬 이어졌다. 등을 두드리니 코와 입에서 우유가 나왔어요. 그래도 숨을 안 쉬기에 119에 바로 전화를…. 엄마가 말을 다 듣지 못하고 허물어지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다 제가 애를 잘못 봐서 그럽니다. 제 잘못이에요…. 할머니가 가슴을 쥐어뜯으며 자책했다. 우두커니 선 나는 그들을 잔인하게 고문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작 몇 마디 말로,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들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 어쩌면 그들을 따라 울컥대는 나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린 것일 수도 있겠다. 우유가 기도로 들어가 숨을 쉬지 못한 것이 원인인 것 같습니다. 신고 시각부터 병원 도착 시각까지가 길어서 아무래도 뇌손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세한 것은 검사를 통해…. 나의 말이 끝나기 전에 주저앉아 있던 엄마가 무릎걸음으로 비틀비틀 나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살려주세요. 어떻게든 살려만 주세요.”

그 진부하지만 간곡한 말. 그것을 드라마나 영화에서가 아니라 실제로 들어본 것은 처음이었다. 고작 아무것도 아닌 나에게 간청하는 엄마의 모습에 나는 순간 할 말을 잊었다. 머리가 복잡했다. 나는 지금 무어라 말을 해야 하는 걸까. 꼭 살리겠다고 위로해 주며 엄마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하나? 그렇지 않으면 희망적이지 않은 지금의 상태를 한 번 더 명확하게 전해야 하는 건가?

어느 쪽도 아니었다. 나는 결국 최대한 애매한 말을 골랐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어느 부분을 보나 모자란 내 자신이 과연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가에 대해. 혹은 내가 최선을 다한다 해서 상황을 좋은 쪽으로 바꿀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어서. 나는 다시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절박한 시선들에 뒤통수가 따가웠다.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나날들이 한동안 지속되었다. 아이의 상태는 시시각각으로 변했다. 잠시 괜찮은가 해서 다른 환자를 보러 갔다가 황급히 중환자실로 되돌아가기 일쑤였다.

그러기를 약 이 주 정도 했을까, 아이는 비교적 안정을 찾게 되었다. 생체 징후는 이전만큼 급격히 변하지 않았고 아이는 평온한 표정으로 눈을 감은 채 매번의 면회에서 가족들을 맞이했다.

하지만 그 후로 아이는 살아나지도, 죽지도 않았다. 모든 검사가 끝난 후, 나는 가족들에게 아이의 뇌가 저산소증으로 영구히 손상되어 다시는 예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잔혹한 사실을 전해야 했다. 아이의 가족들이 저마다 복도에 널브러져 통곡을 쏟아냈다. 그 광경을 보고 있자니 어쩐지 자꾸만 숨이 막혔다. 나는 황급히 뒤돌아섰다. 빠르게 당직실로 들어와 쓰러지듯 침대에 엎드려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더 이상 티끌만한 희망조차 가질 수 없게 명확히 불행을 선고받은 그 슬픔을 아이도 없는 나 따위가 어찌 짐작할 수 있을까 만은, 그래도 나는 고통스러웠다.

“더는 애쓰지 말아주세요, 선생님.”

그 후로 며칠간 찾아오지 않던 아이 엄마의 입에서 결국 그 말이 나왔다. 가망 없는 환자들의 보호자에게서 간혹 듣게 된다던 참혹한 말. 처음에는 무조건 살려달라던 자신의 아이를 결국 포기해 달라는 말을 꺼내는 엄마의 마음은 과연 어떠할까. 무지한 나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충격으로 멍해진 채 뻔한 말만 되뇔 뿐.

“아니에요, 어머니. 그래도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그러셨잖아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그렇지만….”
“저는 도저히… 평생 그걸 견딜 자신이 없어요. 지금도 너무 힘들어요.”

아이 엄마는 그 말을 하고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녀의 굵은 눈물이 툭, 툭 소리를 내며 회색의 복도 위로 한 방울씩 오래오래 떨어졌다.

의사로서 아이를 살리지 않는 방향으로 처치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엄마의 그 말은 나를 끝없는 고민에 빠뜨렸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상태의 환자를 억지로 살려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에 대해. 그러나 그런 생명이 살 의미가 없다고 선고할 수 있는 자격이 과연 나에게 있는 것일까? 고작 일개 의사인 내가 감히 한 생명의 생사에 대한 판단을 해도 되는 것인지에 대해 나는 밤낮으로 고민했다. 물론 아이에 대한 치료는 이전처럼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마치 엄마와 나의 그 대화를 들은 것처럼 며칠 후 아이의 심장은 한밤 중 조용히, 갑작스레 멈추었다. 한동안의 심폐소생술에도 심장박동은 돌아오지 않았고, 나는 낮은 목소리로 죽음을 선고했다. 가족은 그 죽음에 어떠한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잠시 눈물을 흘리다가 곧 자리를 떠났다. 한 달은 짧다면 짧지만 누군가에게는 충분히 긴 시간이었다. 어떤 관계라도 지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나는 아이의 가족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결국 살리지 못한 환자의 보호자에게 감사를 표하는 선물을 받은 마음은 참담했다. 아이를 포기해 달라 말했던 엄마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어서 더더욱 그랬다. 나는 십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손수건을 쓰지 못한다. 포장된 그 상태 그대로 서랍장 한 구석에 고이고이 모셔두었다. 그저 일 년에 두어 번 꺼내어 만져볼 뿐이다.

<수상소감-동탄연세소아청소년과 우샛별>

먼저, 오랫동안 응어리처럼 남아 있던 기억들을 이렇게 풀어낼 수 있게 기회를 주신 청년의사와 한미약품에게 감사드립니다.

환자의 아픔을 백 퍼센트 진심으로 이해하고 그에 공감한다는 말은 어쩌면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첨예한 생사의 순간에, 그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경험은 저의 인생에도 수많은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그 시간들이 쌓이고 쌓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저는 많은 환자들을 만나며 또 조금씩 변화할 것입니다. 부디 그 변화의 방향이 그들을 더욱 더 잘 이해하고 도울 수 있는 쪽이기를 바랍니다.

모든 환자를 다 기억하는 의사가 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의사가 되겠습니다. 그 경험을 앞으로도 좋은 글로 풀어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랜 시간동안 저를 믿고 지지해준 가족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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