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트펀드 김보라 프로그램 어소시에이트

우리나라의 국제협력 의제 우선순위에서 국제보건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서 한국의 우수한 대응 능력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면서 국제보건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리더십을 발휘할 기회가 마련된 까닭이다.

우리나라는 건강을 인권의 한 요소이자 사회경제 발전의 필수 요소로 다각적 측면에서 강조해왔고, 특히 건강권 수호를 위해 글로벌 공공재에 전 인류가 공평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에 있어서 국제보건에 기여도가 높은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이에 부합하는 제품을 개발하는데도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보건 향상과 글로벌 공공재에 인류가 공평하게 접근하는데 기여할 한국산 제품들에 대한 공공조달 수요도 늘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보건을 위해 한국 산학연이 참여한 감염병 대응 기술 R&D를 지원하는 민관협력 국제보건연구기금 라이트펀드의 프로그램 어소시에이트로서 최근 카이스트 경영대학의 국제 입찰 및 해외공공조달 관리과정(IGMP)에 참여하며 이러한 예측은 내 머릿속에서 더욱 명확해졌다. 국제 입찰 및 해외공공조달 관리과정은 국제공공조달시장 입찰을 위한 민관 지도자 교육 프로그램이다. 라이트펀드 지원 연구 과제 관리를 맡고 있는 프로그램 어소시에이트로서 이 과정에 참여한 이유는 유니세프 같은 UN 국제보건조달기관의 맥락에서 공공조달 프로세스를 파악하기 위함이었다. 라이트펀드의 목적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신제품(백신, 치료제, 진단기기)을 개도국의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닿을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제 입찰 및 해외공공조달 관리과정을 통해 확연히 인지한 사실 하나는 강력한 수출 주도 경제로 ‘GDP 세계 톱 10국가’ 반열에 오른 우리나라의 UN 국제보건조달시장 참여 비율이 현저히 낮다는 것이었다. 2019년 기준 UN 조달시장 규모는 199억 달러를 넘어섰으며, UN 조달시장에서 가장 큰 부문인 의약품, 피임약, 백신 시장 규모만 32억 달러에 달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UN 조달 규모는 같은 기간 총 2억2500만 달러로, UN 조달시장의 1.13%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는 결코 국내 기술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 아니다. 국내 산학연이 한 곳 이상 참여한 라이트펀드의 감염병 대응 기술 개발 연구제안서를 볼 때마다, 국내 보건의료 산업에서의 역량과 혁신에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국제 입찰 및 해외공공조달 관리과정에서도 이 낮은 수치의 원인을 추적했는데, 국제경쟁입찰과 국제공공조달 분야의 잠재 시장 규모, 이 시장 진입에 필요한 구체적 전략에 대한 정보 부족이 근본 원인으로 지목됐다.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국제입찰경쟁에 적합한 제품을 개발하게 지원하고, UN 조달지침에 따른 서류 작성 같은 기술적 지원과 더불어 사전 입찰 단계부터 시장 분석 및 기관 별 브리핑을 통해 정보를 제공하는 등 국내 기업이 활발히 국제입찰시장에 참여하게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한, UN 조달 경험이 있는 국제기관들과의 파트너십을 돕는 것도 한 방편이 될 것이다.

국제 입찰 및 해외공공조달 관리과정을 통해 라이트펀드가 이 패러다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게 더욱 선명해졌다. 라이트펀드는 수익성이 낮은 감염병 대응에 필요한 기술 R&D를 지원함으로써 산업계가 체감하는 시장의 인센티브 부족을 메우고, 한국 기업들이 글로벌 제품개발파트너십(PDP)들과 협력할 기회를 넓히는데 역할을 한다. 라이트펀드가 지원하는 R&D는 WHO PQ 승인 적격 제품에 대한 것이다. 국제공공보건시장 입찰 경쟁에서 WHO PQ 승인은 참여 자격을 부여하고 수많은 국가와 비정부조직도 WHO PQ 승인 리스트를 참고해 조달을 시행한다.

또한, PDP는 제품 개발 초기 단계부터 시장 진입 단계까지 전 과정을 지원하고 지침을 제공하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과의 파트너십 확장이 중요하다. 이 같은 기전으로 라이트펀드는 국제공공보건시장의 새로운 수요를 한국의 기술 및 혁신 역량으로 해소할 수 있게 역할을 하고 있다.

이 과정을 끝마치면서 우리나라가 국제공공보건시장에 앞으로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국제공공보건시장에 대한 관심 증대는 국내 감염병 R&D 프로젝트에 대한 지원을 지속 가능하게 할 것이다. 또한, 국내 기업들이 감염병 대응을 위해 보건의료 기술을 발전시키고 이를 통해 인류의 질병 부담을 경감하는데 있어서 증가된 공공조달 수요를 비즈니스 기회로 인지하길 바란다.

라이트펀드의 프로그램 어소시에이트로서, 궁극적으로 라이트펀드의 지원이 실제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닿아 글로벌 공공재에 대한 공평한 접근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국제공공보건시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두 눈으로 볼 수 있길 기대하며, 이 비전이 실현되는데 앞으로 최선을 다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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