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법의 미래를 묻다②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고윤석 교수
"연명의료법의 미래, ‘교육’에 있다"…코로나로 연명의료 정착 차질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자기 결정이나 가족 동의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수 있도록 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이 시행된 지 3년이 지났다.

연명의료법 시행으로 ‘존엄한 죽음’에 대한 화두가 사회에 던져진 후 지난 3년 동안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만 80만명에 이를 정도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금기시됐던 사회가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

하지만 연명의료법 시행 3년을 돌아보면 의료현장 적용에 어려움이 있거나 법 자체에 대한 홍보와 교육이 잘되지 않는 등 넘어야 할 산이 아직도 많다. 청년의사는 연명의료법 논의 초기부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온 3인을 만나 연명의료법이 나아갈 방향을 들었다.

연명의료법 시행 논의 때부터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왔던 서울아산병원 호흡기내과 고윤석 교수는 연명의료법 시행 3년을 맞아 아직도 의료현장 교육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의료현장에서 연명의료 중단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의사들이 먼저 다가가 연명의료법에 대해 설명하고 호응을 이끌 필요가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의사들이 연명의료법에 대해 정확히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이 필요하다는 것.

고 교수는 “연명의료결정법이 결코 간단한 법이 아니다. 중간 중간 개정도 됐다. 의료인이 임종기를 판단하고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한다지만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라며 “임종기 판단도 어렵고 자기결정권 수용과 반영도 많은 시간을 들여 현장에서 대화를 통해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단순히 ‘연명의료 중단 하시겠습니까’가 아니라 (환자들에게) 의사 설명이 필요하기 때문에 의사들의 호응이 있어야 한다”며 “결국 현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조사하고 이를 교육에 반영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모든 의사들에게 같은 교육을 할 것이 아니라 과에 따라 차별화된 교육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고 교수는 “아산병원에서 교육한 결과를 분석해보면 죽음을 자주 접하는 내과 등의 과는 연명의료법에 대한 관심이 높고 그렇지 않은 과는 관심이 낮았다”며 “때문에 전공에 따른 교육 특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관심이 없는 과는 간략하게 교육시키는 수준으로 가고 실제로 죽음과 밀접한 과는 자세하게 교육해 이해할 수 있도록 반복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 교수는 “이를 위해 각 병원마다 연명의료법 교육과 관련한 키플레이어가 있어야 한다”며 “모든 의사가 연명의료법에 대해 자세히 알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현실 적용에 대해 자문할 수 있는 전문가를 한사람 두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고 교수는 “지금은 각 병원 법무팀에서 법에 합당한지 여부만 판단한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법에 명시되지 않은 다양한 사례가 발생한다”며 “이 때 맥락을 이해하고 자문해줄 수 있는 전문의사가 필요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연명의료법 교육을 막다

이런 상황에서 고 교수는 2020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기존 교육마저 온라인으로 대체돼 상황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연명의료법은 결국 현장에서 의사들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수행하느냐에 달렸다. 의사가 먼저 제도를 알고 환자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때문에 국가생명윤리정책연구원에서 지난 2년간 전국을 순회하면서 의사 대상 교육을 진행했는데,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온라인 교육을 진행됐다. 그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 수가 80만명에 이른다는 것은 사회적 관심을 보여주는 것이어서 반갑기는 한데, 현장에서 (연명의료 중단이) 작동하려면 의사들의 임종기 판단이 있어야 한다”며 “이런 점에서도 의료진 관심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특히 고 교수는 “연명의료법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수 있는 교육이 필요한데 그런 의미에서 지난 1년이 아쉽다”며 “연명의료법은 그 특성상 (의료계와 사회가) 지속적으로 관심을 주지 않으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잊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코로나19 상황에서 정책연이 고생을 많이 했지만 앞으로도 의료인들 대상으로 연명의료법에 대한 관심을 지속시킬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연명의료 중단 과정 고민 계기돼야

고 교수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연명의료 중단 과정에 대해 다시 고민해야 한다고도 했다.

고 교수는 “전세계적인 코로나19 유행 상황에서 해외사례를 들어보면 환자 자기결정권을 우선시해 (코로나19 치료 시) 인공호흡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며 “코로나19가 여전히 유행 중인 상황에서 우리나라도 연명의료와 관련된 상황이 많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지금 법으로는 임종기가 아니면 연명의료 중단이 안되고 가족들이 모든 치료를 다 해달라고 하면 방법이 없다”며 “감염병 유행 상황에서는 국가 의료정책이 살릴 수 있는 환자를 더 살려야 하는데, 이때 연명의료법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개인적으로 이런 경험을 하진 못했지만 정책 입안자들이 감염병 대유행 상황에서는 연명의료법 적용이 일반 상황과 다를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법적 대리인제도 도입 고민해야

고 교수는 법적 대리인를 통한 연명의료 중단 여부 결정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고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에 대해 논의하는 것을) 의사들이 싫어하는데 이유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라며 “환자 가족들과 죽고 사는 문제에 대해 논의하는 게 한번에 안된다. 경험상으로 3~4차례는 만나야 하고 한번에 30~4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만약 가족이 변호사 등에 (결정을) 위임하고 대리인이 의료진을 만나면 더 쉽겠지만 지금은 의료진이 보호자를 일일이 찾아 개별적으로 만나야 한다”며 “코로나19 상황에서 면회가 제안돼 현실적으로 어려움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코로나19 등 감염병 대유행 시기에 이런 문제가 더 드러날 수 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법적 대리인제도 등 연명의료 중단 결정 과정의 절차적 정당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급성기와 돌봄치료 기관 간 연결 체계 필요

또한 고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이 모든 치료 중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며 연명의료 중단 결정 후에도 환자를 위한 돌봄치료를 계속돼야 한다며 급성기 치료기관과 돌봄치료 기관 간 유기적 연결체계 마련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고 교수는 “연명의료 중단 결정 후에도 돌봄치료는 계속돼야 한다. 가족 중에는 연명이료 중단을 결정하면 단시일 내 환자가 사망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아니다”라며 “때문에 연명의료 중단 후 급성기 병원에서 돌봄기관으로 이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고 교수는 “급성기 치료를 주로 하는 대형병원에서 연명의료 중단이 결정될 경우 돌봄치료 전문인 요양병원 등으로 잘 이송돼 (임종까지) 최선의 돌봄을 받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며 “이를 위한 제도보완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초고령사회, 신기술 각광 의료시스템 개선 필요

고 교수는 초고령화사회에 대비하기 위해 지금처럼 신의료기술, 신약 등에 집중된 의료시스템이 개선돼야 한다고 밝혔다.

고 교수는 “초고령사회가 되면 환자들은 평생 진료비의 1/3을 임종 단계에서 사용하게 되고 의료비 역시 계속 올라간다”며 “현 의료시스템이 새로운 장비와 기술에 집중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고 교수는 “일례로 (돌봄이 중요한 환자들에게 욕창 관리가 중요하지만) 욕창 관리에 대한 비용은 잘 반영되지 않고 새로운 기술을 적용해야 돈을 버는 시스템”이라며 “모든 의료가 젊은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기술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노연환자를 위한 접근이 잘 안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고 교수는 “임종기 환자가 사용하는 비용이 많아지면 의료비 지출이 많아지고 결국 보험재정도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이를 합리적으로 개선하기 위해 연명의료법 활용이 중요하다. 초고령사회 대비를 위해 연명의료법을 개선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고 교수는 “연명의료법 시행을 들여다봐야 하는 정책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도 중요하다. 현재 정책원이 전문인력을 채용할 수 있는 예산이 없다”며 “정책원이 제 역할을 해 죽음에 대한 만족도 조사 등을 통해 잘못된 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