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서울병원 박근칠 교수, "국내 폐암 환자의 7~8% KRAS 변이"
암젠 '소토라십'이 1상 결과 객관적반응률 "고무적" 평가

국내 사망 원인 부동의 1위는 암이다. 2019년 사망원인통계에 따르면, 암은 전체 사망 원인의 27.5%(10만명당 158.2명)를 차지하고 있으며, 그 중에서는 폐암은 10만명당 36.2명으로 가장 높았다.

2000년대 초부터 EGFR, ALK, ROS1 등 폐암 변이를 일으킬 수 있는 여러 종양유전자(oncogene)를 표적한 항암제가 개발돼 폐암 환자의 생존기간이 획기적으로 늘어났지만, 여전히 다양한 폐암 치료옵션의 개발에 대한 의료적 미충족 수요가 높은 이유다.

KRAS는 여러 암종에서 흔히 변이가 나타나는 종양유전자로, 특히 아시아 비소세포폐암 환자에서 KRAS 유전자 변이는 두 번째로 흔하게 발생한다. 지난 40여 년간 여러 제약사와 연구자들이 KRAS 표적치료제 개발을 위해 끊임없이 도전했지만 현재까지 미개척 분야로 남아있는 난제 중 난제이기도 하다.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근칠 교수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근칠 교수

이에 국내 폐암 치료 역사의 산증인이라 할 수 있는 삼성서울병원 혈액종양내과 박근칠 교수를 만나 KRAS 변이 비소세포폐암에 대한 미충족 수요와 치료제 개발 현황, 향후 기대되는 치료 환경의 변화에 대해 들어봤다.

박근칠 교수는 작년 11월 유럽종양학회 아시아 학술대회 2020(ESMO Asia 2020)에서 KRAS G12C 표적 억제제 '소토라십'에 대한 1상 임상시험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최근 폐암 치료 분야에 EGFR TKI, ALK TKI 등 표적 치료옵션이 속속 등장하며 치료성적이 크게 개선됐다. 폐암 치료에 '유전자 변이'를 적용하기 전과 후의 모습은.

30여 년간 종양내과 전문의로 진료 현장에서 폐암 치료 패러다임의 변화를 경험했는데. 실로 '상전벽해'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 변화가 일어났다. 80~90년대에는 치료제도 많지 않았을 뿐더러, 환자들은 구토, 탈모 등 항암치료 부작용으로 많이 힘들어했다. 그런데 2000년대 초 폐암에서 처음으로 표적치료제가 등장하면서 완전히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표적치료제를 투여하고 환자의 상태가 빠르게 좋아지는 모습을 보면서 '기적인가' 싶을 정도로 많이 놀랐던 기억이 난다.

이후 EGFR 표적 치료제에 이어 ALK, ROS1 등을 표적으로 하는 다양한 표적치료제가 개발, 등장했고 이를 통해 폐암 치료 환경이 매우 개선됐다. 최근 환자들의 평균 수명을 보면 80~90년대에 비해 3~4배 증가했다. 이는 20년이 채 안 되는 사이에 일어난 괄목할 만한 치료 성적의 향상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암 치료 현장을 직접 경험한 산증인으로서 그동안 치료제의 지속적인 발전과 개선을 통해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며 여전히 더 좋은 약이 개발되고 있기에, 이를 통해 폐암 환자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 것 같아 기대된다.

-종양유전자 중 KRAS는 이미 수십년 전에 발견됐음에도 불구하고, 개발된 치료제가 단 하나도 없는 상황이다. 이토록 치료제 개발이 어려운 이유가 있나.

1982년에 KRAS가 처음 발견된 이후 약 40년 동안 치료제 개발을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KRAS는 폐암을 비롯해 여러 암종에서 자주 확인되는 종양유전자인 만큼, 치료제 개발자들의 주된 관심사였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개발이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치료제 개발에 있어 기본이 되는 점은 쉽게 말해 발암 유전자를 제거하는 것이다. EGFR, ALK 등 대표적인 종양유전자들은 활성화될 때 'ATP'라는 효소가 에너지원으로 사용된다. 이때 ATP가 결합되는 위치에 ATP 유사 물질을 결합시키면 종양 성장에 필요한 에너지원이 차단되면서, 암세포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굶어 죽는다. 대부분의 표적치료제는 이러한 기전으로 개발됐다.

KRAS는 GTP/GDP 효소의 활성화 상태와 비활성화 상태를 조절하는 스위치 역할을 하는 단백질로, 세포의 분화, 증식 및 생존에 필요한 활동을 한다. 따라서 KRAS의 기질인 GTP와의 결합을 차단해 활성화를 막고 나아가 암세포의 증식을 막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가 진행돼 왔다. 그런데 일반적인 효소의 농도가 나노몰라(nanomolar, nM: 용액 안에 포함되는 물질량의 단위로, 10억분의 1몰 농도를 의미함)인 반면, KRAS-GTP의 경우는 나노몰라의 1/1000인 피코몰라(picomolar, pM)로 친화도가 훨씬 높다. 즉, GTP보다 1000배 강력한 친화력을 가진 약물을 개발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또한 KRAS의 구조상 직접 결합하여 그 작용을 차단하는 물질의 개발이 어려워 지난 40여년 동안 KRAS 치료제 개발이 난항을 겪어 왔다.

-현재 KRAS 변이 암종의 유병률과 환자 추이, 치료제 개발 현황 등은 어떠한가.

KRAS는 아시아보다 서양 환자에서 유전자 변이가 더 많이 나타나는 종양유전자다. 폐암의 경우 아시아 환자에서는 EGFR 유전자 변이가 제일 높게 나타나고 서양 환자에서는 EGFR 변이가 상대적으로 적게 나타난다. 반면 KRAS 유전자 변이는 서양 환자에서 아시아 환자보다 약 2~3배 더 많이 나타난다. 삼성서울병원을 포함해 국내 데이터를 살펴보면 약 7~8%의 환자에서 KRAS 유전자 변이가 나타나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서양의 경우 15%에서 최대 30%의 환자에서 KRAS 유전자 변이가 나타난다.

KRAS 유전자 변이형 중 가장 흔한 'KRAS G12C 변이'는 약 13%의 폐선암에서 보고되고 있다. KRAS G12C는 KRAS 유전자의 12번 코돈(Codon) 위치에서 글리신(Glycine)이 시스테인(Cysteine)으로 변이가 발생해 활성화되면서 암을 유발한다. 현재 개발 중인 치료제로는 대표적으로 암젠 '소토라십(AMG510)'이 있는데, 이는 직접 GTP/GDP와 경쟁하지 않고 변이된 KRAS G12C의 시스테인에 결합해 비활성화 형태로 만들어 이후 신호 전달을 차단함으로써 항암 효과를 발휘하는 기전을 가진다.

-교수께서 지난해 11월 ESMO ASIA에서 KRAS G12C 변이 표적치료제에 대해 발표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발표 내용에 대해 간략히 소개 부탁드린다.

앞서 언급한 대로 KRAS 표적치료제는 지난 40년간 개발이 쉽지 않았던 분야인데, 암젠이 소토라십을 개발해 전임상 연구에서 굉장히 고무적인 결과를 확인했고, 이를 기반으로 1상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지난해 발표한 1상 임상연구는 비소세포폐암을 비롯해 대장암 등 여러 고형암 환자 중 표준 항암화학요법에 실패한 이력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 중 비소세포폐암 환자 59명에 대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이는 초기 임상에서 적지 않은 환자수다.

ESMO Asia 2020 발표 당시 캡쳐 화면
ESMO Asia 2020 발표 당시 캡쳐 화면

결과를 살펴보면 객관적반응률(ORR)이 32.2%로 나타났다. 기존 시스플라틴에 실패한 환자들에서 표준 요법인 도세탁셀 등으로 치료를 했을 경우 반응률이 약 7~10% 정도 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매우 고무적인 결과다. 임상 1상은 치료제의 적절한 용량을 확인하는 단계이다. 1상 임상을 통해 현재까지는 소토라십 960mg 용량을 적절한 용량이라고 파악했고, 이를 기반으로 2상 임상을 고려 중이다.

-발표 내용을 살펴보면 ORR, DoR, PFS뿐만 아니라 PD-L1 발현율이나 TMB 등 주요 바이오마커에 따른 소토라십의 활성도를 분석했다. 어떠한 이유에서인가.

표적치료제뿐 아니라 모든 치료 약제에서 마찬가지로 개발 시 '해당 약제에 가장 잘 반응하고 치료 효과를 누릴 수 있는 환자군을 미리 선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란 질문에 답하기 위함이었다. 소토라십의 유용한 예측 표지자, 소위 바이오마커를 찾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KRAS G12C 변이 빈도(Mutation Allele Frequency; MAF) 혹은 최근 많이 사용하고 있는 면역치료의 바이오마커인 PD-L1 발현율이나 종양변이부담(Tumor Mutation Burden; TMB) 수치와의 연관성에 대해서도 함께 연구했다.

흥미롭게도 본 연구에서는 소토라십에 반응을 보인 환자나 그렇지 않은 환자에서 바이오마커 MAF, TMB와 치료 효과의 상관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 물론 이 부분은 향후 전향적으로 보다 많은 환자를 대상으로 더욱 연구가 되어야 하며, 유용한 바이오마커를 찾게 된다면 보다 좋은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현재 KRAS G12C 변이 비소세포폐암 환자들은 면역항암치료 대상에 포함된다. 진행성 환자의 경우 1차 치료부터 사용 가능한 면역항암제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소토라십' 등과 같은 후보물질들이 EGFR TKI, ALK TKI와 같은 표적 치료옵션이 되려면 면역항암제보다 더 개선된 치료 효과를 보여야 할텐데, 어떻게 전망하는가.

1상 임상에서 비소세포폐암 환자를 대상으로 확인한 소토라십의 객관적반응률(ORR)은 32.2%다. 현재 표준치료법인 항암화학요법 치료와 면역항암제 단독요법의 반응률은 모두 이 수치를 뛰어넘지 못한다. 특히 특이 바이오마커가 개발된다면, 그 치료 효과는 더욱 향상돼 표준치료나 면역항암제 치료요법을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암젠의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니, 면역항암제와의 병용요법 파트너로서 소토라십의 개발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암세포도 생명체이기 때문에 자기 보존 본능이 있다. 그래서 KRAS 표적치료제를 사용해서 활성화를 막는다면, 암세포도 추가적인 변이 등 제2, 제3의 방법으로 생존하는 법을 터득함으로써 여타의 항암 치료법과 마찬가지로 내성이 출현할 수 있다. 이를 차단 혹은 지연시키기 위해 소토라십과 다른 약제를 병용해 사용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다.

전임상 연구에서 소토라십과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을 진행한 결과, 치료 효과 상승 등 상당한 시너지를 보였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소토라십과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으로 치료를 한 동물에 종양유전자를 다시 넣어도, 암이 재발하지 않았다는 부분이다. 즉 소토라십과 면역항암제 병용요법을 통해 자연적인 면역 치유력이 생성됐다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전임상 연구 결과이기에 임상연구를 통해 추가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다. 그러나 단독요법에서 확인한 반응률을 더욱 향상시키고 환자의 생존기간 연장뿐만 아니라 내성 출현을 지연 혹은 방지함으로써 장기 생존율을 높이고 나아가 완치라는 궁극적인 치료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 면역항암제가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해본다

-마지막으로 현재 개발 중인 KRAS 표적치료제들이 개발에 성공한다면, 향후 폐암 치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하시는지.

지난 20년은 폐암 치료에서 엄청난 변화가 나타난 시기였다. 이미 다양한 치료제가 등장했지만, 폐암을 이겨낼 또 하나의 새로운 무기가 개발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폐암 초기 환자의 경우 수술이나 방사선 치료와 같은 국소치료만으로 완치가 될 수 있지만, 많은 환자들이 암이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병원을 방문한다. 심지어 국소치료 후 완치된 줄 알았던 환자들도 암이 재발돼 시한부로 병원을 다시 찾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 많은 환자들을 세분화해 환자별 유전적 변화, 면역학적 특성 등을 고려한 개별 맞춤치료 전략을 세울 수 있다면, 치료 확률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 이러한 치료를 통해 폐암 환자들이 더 오랫동안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과거와 비교하면 환자들의 생존기간이 많이 개선됐으나, 장기간의 치료 여정을 함께하는 종양내과 전문의 입장에서는 환자의 수명이 10년, 20년 이상 나아가 완치가 됐으면 하는 오랜 바람이 있다. 소토라십도 높은 치료 효과가 기대되는 환자를 선별할 수 있는 바이오마커 발굴 및 면역항암제 등과의 병용요법을 통해 더 좋은 치료 결과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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