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협 “현장 상황 파악하지 못하고 진행되는 성급한 입법”
“최근 형사고발 전제한 악성 민원 유독 많아져”

형사기소 된 공중보건의사의 신분을 박탈하는 방안이 추진되자 공보의들이 강하게 반발하며 우려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는 12일 성명을 통해 “이번에 발의된 개정안은 현장에서 일어나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진행되는 성급한 입법”이라며 “전례 없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관련해 현장에서 최선을 다한 공보의에게 지원이 필요한 영역에선 입법 논의조차 없더니 사태 이후 첫 법안으로 신분 박탈 법안을 입법한 것에 대해 유감”이라고 말했다.

대공협에 따르면 지역에서 근무하는 공보의들을 대상으로 한 고소·고발 및 형사고발을 전제로 한 일부 악성 민원이 이전에도 만연했지만 최근 유독 많아졌다.

더욱이 교도소·구치소와 같은 특수기관에서 근무하는 경우 일 년에도 여러 차례 참고인 및 피의자 조사를 받는 실정이다.

기소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같은 법안이 입법되면 공보의들은 더욱 마음을 졸일 수밖에 없다는 게 대공협의 설명이다.

대공협은 또 일부 환자들이 불필요한 원하는 약을 받기 위해 수년 동안 같은 민원을 제기하거나 진료실에 매일 찾아와 난동을 피우는 경우도 꽤 있는데,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를 더 악용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교정시설에 근무 중인 A공보의는 “작년에도 성실히 진료에 임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 고소와 검찰 진정을 받았으며 인권위 진정은 수도 없이 받았다”면서 “진술서를 썼을 때, ‘피의자로 검찰에 사건이 송치됐다’고 문자를 받았을 때의 기분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 “지금도 역시 힘들지만 많은 고소·고발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교정시설에서 근무하며 한국 전체의 인권을 향상시킨다는 생각에 근무를 이어왔다”면서 “하지만 이런 법률이 입법된다면 나부터 교정시설에서 나가고 싶은데, 누가 근무하고 싶을지 솔직히 의문이다. 현장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도서지역에 근무하는 B공보의는 “65세 이상의 노약자에게 무료 지원되는 약 때문에 보건지소에서 원하는 약을 받기 위해 난동을 피우는 경우가 많은데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설득해서 장비가 갖춰진 의원에서 진료 받을 수 있게 하거나, 다소 위험성을 감수하며 무리를 해서라도 적절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해 왔다”면서 “하지만 이런 민원의 경우 민원제기를 할 만한 상황을 교묘히 유도해 녹취 후 국민신문고 등에 고발민원을 내기도 하는데, 이제는 고소·고발을 통해 신분을 협박하겠다고 생각하니 솔직히 눈앞이 아득해진다”고 말했다.

이에 대공협은 해당 개정안이 악용될 소지를 방지하기 위해 현장 상황을 정확히 파악한 후 관련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공협 김형갑 회장은 “형사사건으로 기소된 경우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이해하기가 힘들다”면서 “오히려 부족한 진단장비,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일부 악의 있는 민원에게도 최선의 보건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선의를 품는 공보의가 대다수”라고 설명했다.

김 회장은 이어 “이런 선한 의도 때문에 사건이 비화돼 분쟁이 발생하는 걸 볼 때면 마음이 아픈데, 이제는 본인의 보호를 위해서라도 방어진료, 방어적 민원대응 등을 권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면서 “만약 법률이 통과되면 관련 내용을 철저히 정리해 지침을 제공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김 회장은 “이 때문에 발생할 수 있을 의료서비스제공의 질 저하에 마음이 편하지 않다”면서 “이는 입법과정에서 충분한 논의를 통해 사전에 발생할 상황에 대해 면밀히 검토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김 회장은 또 앞으로 민원인과의 원만한 문제 해결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회장은 “대개 폭언·폭행 사건은 격화된 분위기 때문에 쌍방이 모두 고소당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순간 격화된 감정은 보통 시간이 지나면 서로를 이해하고 원만하게 해결되는 게 수순인데 앞으로는 이런 해결 과정을 기대하긴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김 회장은 지난해 시행된 보건의료인력지원법에 따라 공보의도 인권침해 사항으로부터 근무기관의 적절한 보호를 받을 수 있게 됐지만 현장에선 전혀 작동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코로나19 파견 근무 복귀 후 원래 근무지에서 발생한 폭언‧폭행 등 인권침해 사항은 심각한 수준이었으며 그 횟수도 잦았다”면서 “이런 상황에 대한 보호조치는 언제 이뤄질 것이며 법률상 파견 조항은 있음에도 파견자들에 대한 지원 조항이 없어 발생했던 숙박, 취식 문제 등은 언제 법제화해 통해 해결해줄 것이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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