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킴스 김용범 변호사, 절차상 하자 및 기본권 침해 가능성 지적
“‘사표 제출해도 업무개시명령 대상’이란 정부에 법조계 경악”
의정연 김형선 팀장 “정부, 의사 파업 범죄시하는 조치 취해”
대전협 김재환 이사 “잘못된 의료정책 맞서 파업도 못하면 노예랑 다름없어”
의사 권리 보장 위해 의협 거버넌스 개편 주장 나와

지난 8월 의료계의 집단행동 당시 정부가 전공의들을 대상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려 논란이 일었던 가운데 법조계와 의료계가 한 목소리로 의료관계법상 업무개시명령의 헌법 위반 가능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법무법인 오킴스 김용범 변호사는 지난 8일 대한의사협회 용산임시회관에서 의료정책연구소가 ‘의료관계법상 업무개시명령의 현황과 문제점’를 주제로 개최한 의료정책포럼 발제를 통해 지난 8월 정부가 내렸던 업무개시명령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현 의료법 제59조제1항은 ‘보건복지부장관 또는 시‧도지사는 보건의료정책을 위하여 필요하거나 국민보건에 중대한 위해가 발생하거나 발생할 우려가 있으면 의료기관이나 의료인에게 필요한 지도와 명령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제2항에서 ‘보건복지부장관, 시‧도지사 또는 시장‧군수‧구청장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하거나 의료기관 개설자가 집단으로 휴업하거나 폐업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그 의료인이나 의료기관 개설자에게 업무개시 명령을 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으며 제3항에서 ‘의료인과 의료기관 개설자는 정당한 사유 없이 제2항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 변호사는 먼저 당시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복지부가 전공의 및 전임의들이 2차 집단휴진에 돌입한 8월 26일 오전, 어떠한 사전통지도 없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할 것이라 발표하고, 그 직후 전공의·전임의 358명에게 개별 업무개시 처분서를 발부했다는 것.

또 업무개시명령 처분서 말미에 ‘동 명령에 불복하는 경우 행정심판 및 행정소송 제기가능’이라고 기재돼 있을 뿐, 의견제출 방법이나 기한에 대해 설시하고 있지 않다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특히 김 변호사는 “복지부가 이 사건 처분서에서 이유 제시의 취지로 기재한 내용이라고 볼 수 있는 문구로는 ‘현재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급격한 확산 상황에서 의료인의 집단 진료 중단 행위는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는 한 문장에 불과하다”며 처분의 이유 제시 및 고지의 부존재가 있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김 변호사는 ‘정당한 사유’,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 등의 문구가 모호해, 명확성의 원칙을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김 변호사는 “의료법 제59조 제2항은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진료를 중단할 것을 업무개시명령의 요건으로 하고 있다”면서 “의료인이 정당한 사유로 진료를 중단하는 경우에는 업무개시명령 처분의 대상이 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복지부가 이 사건 처분의 주된 이유로 코로나19의 급격한 확산을 들고 있으나, 그러한 사유가 어떠한 점에서 의료법 제59조 제2항에서 정한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우려에 포함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면서 “복지부는 사전조사를 통해 환자 진료에 막대한 지장이 초래될 우려가 없다는 사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또 당시의 업무개시명령이 의사들의 기본권을 침해했다고 봤다. 이에 의료법 제59조에 대한 헌법소원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수련병원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 등은 근로자성을 가지므로, 헌법 제10조에 의한 일반적 행동자유권 뿐만 아니라 헌법 제33조에서 보장하는 단결권 단체행동권을 누릴 자유를 가진다”면서 “나아가 헌법 제15조의 직업의 자유는 적극적 자유로서의 직업행사의 자유뿐만 아니라 소극적 자유로서의 ‘직업을 수행하지 않은 자유’ 또한 보호하는 것이므로, 집단휴진 행위는 헌법 제15조에 의해 보호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복지부는 사직서를 제출한 전공의에 대해 ‘사표가 수리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하는 경우 형사고발을 하겠다’고 발표했다”면서 “이 점에 대해 법조계가 경악을 했다. 단지 의사 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사직의 자유까지 박탈하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처분의 적합성이 인정되기 위해선 특정한 행정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 행정 목적을 달성하기에 적합해야 한다”면서 “하지만 2차 집단휴진의 주요 참여인원은 코로나19 상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수련병원의 전공의였으며 코로나19 선별진료소 현황을 봤을 때, 대학병원 전공의가 주로 수행하는 업무와 선별진료소의 업무는 분리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복지부는 처분서를 발부함과 동시에 응급실의 경우 조사 당일 1시간 이내, 중환자실의 경우 다음날 오전 9시까지 진료 현장으로 복귀할 것을 명령했다”면서 “집단휴진 목적을 고려해 충분한 의견개진의 시간을 주고 업무개시명령을 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사 당일 1시간 이내 업무 복귀라는 부당하게 과중한 의무를 부과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복지부가 업무개시명령 처분을 통해 국민 건강의 보호와 증진이라는 공익을 추구하려는 점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처분을 통해 실질적으로 증진시킬 수 있는 공익보다, 의사들이 입게 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 및 단결권 단체행동권과 직업 수행의 자유에 대한 전면적인 제한이 더욱 크다고 볼 수 있다”면서 “노예제도와 크게 다름없는 기본권 제한이 발생했다”고 꼬집었다.

"의사들의 집단행동 범죄화 하거나 처벌하는 나라 없어"

의정연 김형선 법제도 팀장은 이번 의사 집단행동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성토했다.

김 팀장은 “정부는 이번 파업에 대응 의료법을 근거로 진료명령과 형벌 가능성을 언급하며 의사들을 겁박하고, 파업에 참여한 전공의 고발, 의협 압수 수색 등을 통하여 의사 파업을 범죄시하는 조치를 취했다”면서 “이에 발맞춰 정부, 정치권 및 일부 학자들에 의해 ‘의사는 공공재’라는 발언과 재난관리자원으로 편입하려는 입법안 등 의사의 자유의지와 사적 자치 및 단체 자치를 몰락시키는 무지한 시도가 자행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팀장은 이어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범죄화 하거나 처벌하는 다른 나라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김 팀장은 “사회적 이익 또는 전체이익, 국민과 국가를 위하여 라는 미명 아래 여론을 형성하고 국가적 책무를 기본권 주체인 의사에게 명령한 예는 전시상황 또는 사회국가주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찾아 볼 수 없다”면서 “이미 1908년 스위스는 공공의 안전을 이유로 국가의 의무인 공공 업무 참여를 강제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위반 시 형사처벌을 할 수 없으며, 태업, 파업만으로는 형사처벌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걸 형법 입법안에서 밝히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문재인 정부가 극단적 사회민주주의 국가 또는 사회국가주의 이념을 추구하는 게 아니라면 의사의 단체 행동을 범죄화하는 의료법 제59조 개정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면서 “이를 역행하는 의료인 통제 목적의 의료법 제59조의 남용과 의료인을 물적 대상으로서 관리하려는 시도는 결국 의료 민주화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일 뿐”이라고 평했다.

이번 투쟁을 이끈 젊은 의사들도 업무개시명령 규정을 조속히 폐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전공의협의회 김재환 수련이사는 “전공의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주 80시간을 근무하고 있다. 잘못된 의료정책에 맞서 파업도 못하면 노예랑 다름없다”면서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 및 공공의대 설립으로 내외산소 등 필수의료를 살리겠다고 했는데 웃기게도 이번에 고발된 전공의들은 대부분이 내외산소다. 이런 상황에서 누가 바이탈과를 가겠나. 이런 악법은 빨리 없어져야 한다”고 피력했다.

기본권 침해하는 업무개시명령, 타 직종 비해 쉽게 이뤄져

의사들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이 타 직종에 비해 쉽게 이뤄진다는 지적도 나왔다.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김재현 교수는 “타 직종 중 업무개시명령이 있는 화물운송업의 경우 기본권을 침해하는 업무개시명령을 결정하는데 상당히 신중하며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다”면서 “국토교통부 장관은 업무개시명령을 결정하기 전 국무회의 심의를 거치고 구체적 이유 및 향후 대책을 국회에 보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국가 보건의 중대한 위해를 복지부 장관 단독으로 판단하고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건 의사들의 자유와 권리에 대한 과도한 억압”이라며 “노조법의 긴급조정보다 더 강력한 형사적 책임을 묻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데 충분히 타당한 이유와 대책을 논의하지 않는 건 공공의료체계를 준비하지 않은 책임을 민간의료에 강제하기 위함”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의사들이 정당한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선 의협 거버넌스를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의협은 개원의와 봉직의 단체의 대표성과 이들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기에 더 이상 지금의 그릇으로는 불가능해 보인다”면서 “현행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지위를 차지하기 어려운 개원의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직장 협의회의 성격을 가질 순 있지만 근기법과 노조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대학교수, 전공의를 포함한 봉직의 단체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선 노동조합의 형태를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의협은 개원의사 협의회와 봉직의사 노동조합으로 양분하던가 아니면 그냥 개원의 단체도 정부를 상대로 수가계약상의 갑을 관계를 주장해 노동자 인정을 받아 전국의사노동조합으로 태세전환을 하는 게 향후 대정부 협상에 유리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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