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예방접종 중단’ 결정에 제약·유통 업계 의견 분분
독감 백신 특성 감안 목소리에 식약처 “규정 밖 주장”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에도 적정온도 유지 담겨

국가필수예방접종(NIP)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이 운송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돼 국가예방접종이 잠정 중단된 가운데, 제약업계 내에선 이번 사태의 책임 및 정부의 대처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의약품 유통업계 일각에서는 운송 과정에서 한시적인 상온 노출은 백신의 안전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도 접종 중단으로 정부가 국민들에게 과도한 불안감을 심어주고 있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현재 질병관리청과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신성약품이 공급하던 독감백신 1차 물량인 500만 도즈(1회 접종분량)에 대해 품질 검사에 들어갔다. 식약처는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2주가량이 소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질병관리청은 안전성 검증을 최우선으로 놓고 접종재개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제보를 통해 배송과정에서 문제가 있다고 전달받았으며 내부 검토결과 국가접종을 잠시 중단해야 할 정도라고 판단했다"며 "백신에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코로나19 국면에서 백신은 중요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조치를 한 것”이라고 예방접종 중단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공급 전면 중단 결정에 백신 제조사를 포함한 제약업계와 의약품 유통업계 내 의견이 갈리고 있다.

특히 의약품 유통업계를 중심으로 정부가 국가예방접종을 전면 중단한 것은 과도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독감 백신이 온도에 민감한 생백신이 아닌 사백신(불활화백신)이라는 점에서다. 독감 백신이 가속 시험을 거쳤다는 점도 한 가지 근거다. 가속 시험은 장기보존시험의 하나로 저장조건을 벗어난 환경 속에서 의약품 등의 안정성에 미치는 영향을 평가하기 위한 시험을 뜻한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운반과정에서 상온에 노출된 점과 종이박스를 사용했다는 점은 안전성 논점에서 벗어난 것”이라며 “상온에 노출되는 것은 이미 제조사에서도 감안을 하고 가속시험 등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사안의 논점은 백신이 얼마나 오래 노출되어 있었고 또 변질로 이어졌느냐에 맞춰져야 한다”면서 “잘못된 문제제기로 백신 유통과정 전반에 대해 혹여 잘못된 오해와 불신이 생기지 않을까 우려 된다"고 전했다.

운송 과정에서의 한시적인 상온 노출은 백신의 안전성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전면적인 백신접종 중단으로 인해 정부가 국민들에게 과도한 경계심을 심어줬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러나 공급중단이 옳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국내 업계 관계자는 “단언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국가예방접종에서 백신이 상온에 노출된 건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다. 정부의 공급 중단이 옳은 결정”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사백신이 생백신보다 온도에 덜 민감한 것은 맞다. 상온에서 상당 시간 버틴다는 테스트 결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도 “이는 검증이라기보다는 제조사가 출고 전에 하는 자체 테스트”라고 설명했다.

이어 “질병관리청과 식약처가 품질 조사에 들어간 대로 얼마나 상온에 오래 노출됐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식약처 관계자 또한 일부 업계의 주장에 대해 “규정에 어긋나는 얘기”라며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백신마다 보관 온도가 다른 것은 사실이지만 상온에서 견디는 능력이 있었다면 품질 허가 기준에 반영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설사 그런 특성이 있다하더라도 기준이 정해져 있다면 지키는 게 맞다”고도 했다.

한편, 이러한 논쟁에도 불구하고 신성약품이 이번 사태의 일차적인 책임을 회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불과 두 달 전인 지난 7월 질병관리청(당시 질병관리본부)과 식약처에서는 ‘백신 보관 및 수송 관리 가이드라인’을 공표한 바 있다.

특히 이 가이드라인에서는 백신 보관 및 운송 과정에서 적정 온도를 유지해야 함을 언급한 것은 물론, 적정 온도를 지키지 못할 때에는 아이스팩, 아이스박스, 비닐 완충제(버블 랩이나 스티로폼 알갱이) 등과 같이 온도 유지를 위한 조치들을 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성약품 또한 입찰 계약을 통해 백신 보관 적정 온도를 2~8℃로 책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성약품 관계자는 “처분만을 기다리고 있다. 관리 감독을 다 하지 못한 잘못이 있다”며 “이번 일을 거울삼아 2차 배송은 성공적으로 해내겠다”고 말했다.

다만, 공공 백신조달이 처음인 만큼 백신 대량유통에 있어 미숙했다는 세간의 지적에는 “그동안 업계에서 해왔던 백신 운송 과정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번에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백신 노출과 관련해 신성약품이 공급을 맡은 백신은 총 1,180만 도즈다. 예정대로라면 오는 10월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무료접종 680만 도즈를 제조사로부터 받아 공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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