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요즘 의료계 내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거친 화두 중 하나는 ‘징용(徵用)’이다. 사전적 의미로 보아도 국가의 권력으로 국민을 강제로 일정한 업무에 종사시키는 일이다. 최근 정부가 전공의들에게 내린 행정명령과 의사를 대상으로 강제 징용하겠다는 법안을 입법하는 나라는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의사에게 근무를 강제하는 것은 그 나라 민주주의와 인권의 발육 상태와 거의 유사하게 맞물려 비례하는 것 같다. 의사를 포함하여 국민에게 특정 직무를 강제하는 것은 일종의 독재방식에 의한, 비민주적이고 강압적인 군사적 조치의 일환인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 근현대사에 폭넓게 스며들어있는 아주 뼈아프고 슬픈 제도로써, 아직도 소멸되지 않은 채 정권에 들러붙어 숙주하며 현재에도 진행형을 유지한다. 국민소득 3만 불에 도달한 엄연한 선진국의 문턱을 넘었음에도 국가의 정치이념과 통치 방식에는 아직도 ‘강제징용’이란 과거 악법이 살아 눈을 부라린다. 보다 성숙한 입장에서 국민을 생각하고 국가 운영 방식에 대한 진지한 철학적 논쟁이나 고민을 해본 적이 없어서인지 우리나라는 자칭 민주화 정권에서 반민주적인 조치를 서슴없이 단행한다. 이것은 전형적인 전체주의 독재정권의 역설적인 모습인 동시에 가릴 수 없는 민낯이고 본질일 것이다.

국가는 경우에 따라 의료에 대한 과도한 수요를 충족시켜야 하는 특별한 사태에 직면할 수 있는데, 이런 중대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일부 국가에서는 ‘의사의 강제동원’ 논리를 앞세우기도 하는데 실제 민주주의가 정착된 선진국에서 이런 악법을 제정하여 집행하는 나라는 없다.

최근 독일 의사 강제동원 법안 ‘나치 망령’으로 명명 폐기, 기본권 보장 최우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
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최근 독일의 2개 주에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해결을 위하여 필요한 분야에 의사근무를 강제화하는 법안이 제안되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아무리 엄중한 상황이라 할지라도 비민주적인 요소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아직 독일에서도 과거의 무시무시한 나치 파시스트와 유사한 싹을 틔우며 전제주의의 씨앗이 완벽히 사멸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독버섯처럼 올라오고 있지만, 전반적인 국정질서와 민주적인 시스템에 가로막혀 빛을 보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특히 이번에 발의된 법안은 과거 ‘나치의 파시스트 망령’으로 오명을 씌워져 속칭 법안 심의 과정에서의 단두대에서 잘렸다고 한다.

현 정권은 갑자기 불어 닥친 코로나 사태를 교묘히 활용하며 정부 고위관료들과 핵심 권력층들이 코로나 사태 해결의 가장 최 일선의 ‘능동적 해결사’로 부각시키고 있다. 한마디로 코로나 사태 관리를 정권의 돋보이는 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다. 정부가 여론에 밀려 마지못해 뒤늦게 ‘덕분에 챌린지’에 나섰으나, 정작 국가 방역의 최전선에 투입된 의사들의 집단과는 여전히 껄끄럽고 냉랭한 긴장상태에 있다.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를 빌미로 공공의 이익을 위해 어느 정도 국민 개개인의 기본권 침해도 가능하다는 분위기를 틈타 총선에서 압승한 여당으로서는 “때는 바로 이때”라는 생각으로 오로지 정치적 셈법에 의한 법안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나마 과거 정권에서 형식적으로 밟았던 공청회나 토론회조차 구경하기 어렵다. 이른바 민주화 세대들로 포진해 있을 현 정권에서는 이해 당사자와 특히 전문가 단체들과 진진한 검토 없이 곧장 법안 통과를 목적으로 폭압적인 국회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모습은 과거 군사정권 시대보다 더 짜임새 있고, ‘내실 있는’ 독재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얼마 전 유력 외신조차도 일방적이고 굳게 닫혀 있는 우리의 국정 운영 방식을 심하게 질타했다.

교만과 아집 사리분별 못하는 확증편향 국정 방식 공공 명분 내세워 민주요소 제거

코로나 바이러스는 사람에게 기생하며 여러 가지 증상을 일으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정치 사회 문화의 느슨한 틈새를 파고들어 견고하지 못한 이성적 판단에 더부살이하며 열악한 정권의 도덕적 사고를 마비시키는 듯하다. 코로나 바이러스의 사회적 증상 중 특히 공공집착 증세는 우리사회에 공공의 이익이 개인의 이익을 크게 우선하여, 결국 개인에 대한 권리침해는 얼마든지 정당화할 수 있다는 전체주의적 사고를 증강시킨다. 전반적인 큰 틀에서 우리사회는 아직 미치지 않은 듯 보이나, 서서히 심각한 광기를 갖기 시작한 것을 감지할 수 있다. 이미 정권은 오만과 교만증후군이 코로나사태로 심하게 감염된 듯 하고, 이제 선량한 착한 국민들까지 확증편향의 감염 후유증이 점차 확산될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공공집착증에 감염된 집단은 한편으로는 과거의 일제 강제징용에 대한 극한 혐오와 투쟁을 부추기면서도, 한편으로는 의사의 강제징용을 집행하는 행정명령과 형사고발을 정당화하여 사회경험을 이제 막 시작한 피교육생의 새내기 의사들인 전공의들을 겁박하고 있다. 마치 교과서적인 이율배반적 정치 모델로 보인다. 자신들이 가장 혐오한다는 정치적 기저이념인 ‘강제동원’ 수단을 자국민들에게 한 치의 거리낌 없이 행하고 있는 모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조그마한 실수도 있을 수 없다는 정권은 의사집단의 비도덕적 행동에 대하여 절대로 물러설 일이 아니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여기에 최고지도자는 법이 허용하는 ‘최고형’을 집행하겠다고 재판도 구성하기 전에 이미 결론을 내놓았다.

공공의대와 의대 정원확대의 문제는 의사집단과는 한 번의 공식적인 논의도 없었으나 이미 오랫동안 사회적 합의를 통해 추진해야 될 국가적 사안이라고 우기고 있다. 정부가 주장하는 사회적 합의는 편 가르기에 의한 홍위병 부대와의 약속으로 정작, 중요한 핵심 당사자는 패싱을 했거나, 의도적으로 제외시켰다는 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구소련 체르노빌사태 포장된 영웅적 강제징용 대표적 전체주의 정치 도구

전체주의에서 보여주는 불행한 모습 중 하나가 영웅적인 강제징용 방식이다. 구 소련시절의 체르노빌 사태로 일촉즉발 상태의 발전소 화재진압을 위해 군인과 광부, 그리고 인민들을 강제 동원하였다. 부실한 방호복과 철저한 사전 대비 없는 강제징용에 대해 공산당은 인민의 영웅적 행동으로 치켜세웠고, 여기에 강제로 투입된 사람들은 거의 모두가 사망하였다.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마치 자발적으로 참여한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하는 강제징용의 영웅들 모두 본의 아니게 비참한 최후를 피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런 원자력 발전의 부작용을 사전에 막아보기 위함인지 현 정권은 공공의 안전과 이익을 위하여 전문가 검증 절차도 생략하고 원자력 발전도 일순간에 멈춰 세우고 있다. 그 대신에 공공이 아닌 산림으로 방패막이하려는 국외산 태양광으로 대체하기도 하였다. 대놓고 전문가를 배제한 채 졸속으로 만든 ‘착한 협의체’에 의하여 내린 비전문가적 공공적 결정도 모두가 국가와 민족의 공공 이익을 위해서라는 주장이다.

인터넷 공간에서 널리 알려진 영향력 있는 미국의 Dr. Postel은 뉴욕의 끔찍한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에서 잠시 거론된 ‘의사의 강제징용(draft)’ 문제에 대하여 즉각적으로 경계하고 나섰다. 그는 “이런 움직임의 배후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입에 남의 돈을 처넣을 것만을 희망 한다”며 노골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다분히 미국적인 표현이지만 조금 달리 말하자면, 이런 악법을 추진하는 사람은 실제 코로나 사태를 해결하는 방역의 최 일선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입으로만 떠들고 입으로만 해결하려는 속칭 ‘삿된’ 정치인들과 일부 고위관료들이라는 지적이다. 만일 이들의 말처럼 부담 없이 실행에 옮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부터 험난한 방역의 사선에 투입시켜 해야 될 직무를 오차 없이 수행하도록 선제적으로 배치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美 전문가 극한 상황 강제동원 강한 경계감 우리나라 대응방식과는 완전 딴판

Dr. Postel은 의사집단은 이미 의사가 되기 위하여 장기간의 교육과 수련, 그리고 자신의 삶을 희생해서 의사가 된 전문가집단으로 많은 어려움을 감내하고 있는 집단인 것을 강조하며 의료수요가 폭발하는 비상사태마다 ‘의사직’에 대한 선택적 강제징용이 거론되는 논의의 부당함을 지적했다. 이어 그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 강제징용으로 의사집단에게 해를 가하려는 것을 진지하게 논의한다면, 최 일선에서 수고하는 의사집단을 영웅이라고 칭하고, 이에 합당한 감사의 뜻을 담은 언어와 행동이 함께 수반되어야 한다고 피력했다. 그는 또 이런 적절한 사회적 예우를 위해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내용으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러면서 닥터 포스텔은 “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그리고 의료와 방역의 최전선에서 봉사한 모든 사람들에게 소위 ‘G.I.법안’과 같이 일종의 영구적이고도 사회적으로 폼 나게 인정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어떻겠는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동일 사안 비슷한 여건에서 우리나라 대통령은 전공의를 전쟁터를 떠난 군인(G.I. Goverment Issue : 관재, 관용재, 정부임용 등)인 탈영병으로 총살처형 대상으로 보았다. 반면에 미국의 닥터 포스텔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 희생하는 의사를 영웅시하여 사회적으로 인정해주어야 한다는 ‘G.I. 법안’ 대상으로 인식하였다. 아무리 동서양이 서로 다르다고 하여도 엄중한 국제 방역 사안에 대해 우리는 매우 흥미로운 가치관의 차이를 확연히 다른 결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해결을 위해 최 일선에서 일하는 의사집단을 무시하고, 속칭 노란 점퍼부대와 청와대가 마치 자신들이 최 일선의 해결사를 자처하며, 한술 더 떠 의사들을 노예처럼 부리려는 강제징용을 명령하는 것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일깨워주는 주장으로 귀담아 들을 수 있다. 결국 지난 수십 년 동안에 간헐적으로 논의되었던 의사징용은 코로나바이러스 사태로 10만 명 이상의 사망자가 속출하고 있는 미국에서도 의사의 강제징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자본주의 모델인 미국에서 자유 전문직인 의사들에게 강제징용은 절대로 불가한 것이다.

의료악법 부당 강제집행 철폐 기본권 보장이 의료민주화 향한 사필귀정 행보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의 와중에 정치적 선택인 공공의대와 정원증가 정책이 교묘히 섞여 맞물리면서 소위 공공집착증 논리에 맞춘 의사수 부족에 대한 과도한 정치적 선전은 지난 2017년 6월 23일에 있었던 국토부 장관의 취임사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보게 한다. 현재 부동산 정책으로 고전하는 장관은 당시에 “숫자로 현실을 왜곡하지 맙시다. 숫자는 현실을 파악하기 위한 수단일 뿐입니다. 현장과 괴리된 통계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웁니다. 또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위험천만한 일이기도 합니다. 숫자를 가지고 얘기하자고 하면 숫자는 얼마든지 만들어집니다. 현장에서, 국민의 체감도를 갖고 얘기합시다”라고 했다. OECD 의사 수 통계자료가 보여주는 논리적 한계와 오류는 이미 국토부장관이 명확히 설명하였으나, 현재 봉착해있는 민생 현안에 정작 장관도 스스로 숫자를 창출하여 부동산 정책의 성공을 부풀리고 있는 언행 불일치의 일관된 모습을 제대로 보여 주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의사의 정당한 집단행동이 왜 일어났는가에 대한 자세한 분석 없이 정권의 말장난과 관제에 장악된 언론에 의해 의사들은 공공의 영역에서 ‘공공의 적’으로 매우 비도덕적인 집단으로 매도당하며 파시스트 집단주의자들이 행하였던 강제징용의 대상이 되고 있다. 정권의 창출이 민주주의를 언제나 우선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나라만의 배타적 모습처럼 비춰진다. ‘행정명령’으로 순화된 용어로 둔갑한 의사강제징용은 반드시 철폐되어야 할 전체주의의 망령이다.

이제 의사집단이 어떤 리더십을 갖든 현시대에 살고 있는 의사들은 민주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에만 있는 의사노예화를 이끌어내는 각종 악법인 업무개시 행정명령, 의료형사범죄화, 불공정 공정거래법, 불평등한 건정심 결정구조 등은 반드시 사라지도록 끈질긴 저항이 요구되는 어둡고 긴 터널의 시대에 살고 있다. 지속가능하게 국민건강의 등불을 밝혀 나가기 위해서는 의료노동의 가치를 좀 더 확보할 수 있도록 최소한 의사의 기본권이 보장되어야 한다.

[참고자료]
· Some Thoughts on a “Doctor Draft” During COVID-19. Eric Postal, April 13,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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