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개별 의과대학의 정원 문제. 과연 어느 정도가 적절한지에 대한 새삼스럽다 할 사회적 담론이 정부의 의대 입학정원 확대 정책으로 부각되고 있다.

의대정원을 늘리겠다는 이유 중 하나로 정원 40명 이하인 소규모 의대 입장에서 입학생 규모가 너무 작아 학교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학생 수를 80명 정도로 늘리는 것이 적절하다는 주장이 한 축을 이룬다.

이런 주장은 최근 정부의 정원 증가 주장에도 담겨져 있다. 의과대학이라면 최소 정원이 80명은 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의과대학 평가를 경험하면서 생겨난 것으로 정원 40명 규모의 대학이 다른 대학과 마찬가지로 정상적인 대학의 학사 운영을 위해서는 기초의학교수 25인과 임상교수 87인을 확보해야 한다는 어려움과 불평 속에서 제기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규정은 입학 정원이 100명이 넘는 대학도 마찬가지로 동일하게 적용되는 최소 적용기준이다.

40명 군소대학 증원 논리 가세한 정원 확대론, 교수·인프라 확충 없는 본질 왜곡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 안덕선 소장

최소 필요 교수수의 확보 이외에 의과대학 평가인증 요건에서는 의과대학이 단순 강의방식에 의한 교육에 의존하지 않도록 토론식 수업도 장려하고 있다. 일방적인 주입식 강의 방식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토론식 수업이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효과적인 토론식 수업은 대략 8명 정도의 소규모 그룹토론이 흔한 형태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8명이 초과하는 그룹은 대개 소규모 토론수업이 갖는 역동성이 감소되기에 적정선의 상한선이 설정되어 권장되기도 한다. 40명 정원인 경우 5개 그룹만 만들어도 학년 별로 소규모 토론식 수업이 가능하다. 간편한 점이 있기도 하나 의과대학의 소수 교수 인원만 참가해도 가능하기에 의과대학 내 교육을 위한 집단형성에 불리한 약점도 동시에 지닐 수밖에 없다.

, 교육에 참가하고, 교육의 가치를 존중하고, 의과대학의 교육을 위해 보다 헌신적인 교수 집단의 형성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의학교육자들 사이에서도 40명 이하의 소규모 정원을 유지하는 의과대학의 경우 적정규모로 증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게 된 것이다.

40명 정원의 이점도 무시할 수 없다. 비록 강의식 수업을 한다고 해도 40명 정원을 상대로 하는 강의는 100명 이상의 정원을 상대로 하는 강의와 비교하여 교육적 효과는 훨씬 더 짜임새 있고 커질 수 있다. 이 뿐만 아니라 교수와 학생 간 상호작용도 훨씬 더 수월한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의과대학의 운영을 위하여 80명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어떤 이론적 합리성과 근거가 없다.

그럼에도 현재 의대증원을 주장하는 논리의 하나로 의대 입학정원에 대한 문제를 꺼내드는 것은 본래 적정규모를 갖지 못하는 의대의 해결방안에서 크게 왜곡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세계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미국의 최우수 의과대학인 하버드대학의 경우 16개 협력병원과 1개의 연구소를 거느리고 있다. 단일 의과대학으로 12000명이 넘는 의과대학 교수를 확보하고 있고, 이 중 의사결정에 필요한 표결권을 갖고 있는 교수만 해도 5000명이 넘는다. 이곳의 의과대학 입학정원은 달랑 160명이다. 미국 의과대학 교원 규모의 평균은 의과대학 1곳 당 약 1000명으로 그중 100명이 기초분야를 포함한 비 임상교수이며, 나머지 900명이 임상교수로 구성되어 있다.

정치적 셈법에 의존 한국과 달리 하버드 등 세계 유수 의대, 우수 인재 양성에 혈안

중국의 북경의대는 미국과의 경쟁의식에서 8년제 의과대학 정원을 160명으로 고정하고, 별도로 입학정원 500명 규모의 5년제 의과대학을 운영하고 있다.

북경의대의 기초교수는 680명 정도로 우리나라 모든 의과대학의 기초교수를 모두 합한 규모와 맞먹는다. 여기에 임상교수는 4,5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해 본다면 정원 40명 정도의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이 적정규모를 위하여 80명 정도로 늘리겠다면, 학생들의 정원 뿐 만 아니라 교수진의 규모도 이에 비례해서 규모를 늘려야한다고 주장해야 합당한 논리가 성립할 것이다.

그렇지만 좀 더 세밀히 살펴본다면 의과대학 정원 증가나 교수진 확대에도 그 안에 치명적인 함정이 존재한다. 현재 사회적으로 시끄러운 주제가 되고 있는 의대 정원 증가에 앞서 먼저 선결해야 할 과제라면 우리나라 규모에서 의과대학의 수를 과연 몇 개 기관으로 유지하는 게 합리적인지 그 근사치의 답이라도 찾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적정 의과대학 수를 알아보기 위한 논의는 어찌 보면 이미 물 건너간 주제로 여겨지기도 한다. 과거 의과대학 신설을 정치적 부패와 표계산을 염두한 정무적 판단으로 결정되어 이미 전국에 필요 이상의 의과대학 수가 존재한다는 점이 해결 불가능한 상황을 만들고 있다.

의과대학 정원이 80명 수준이 적절하다는 전문가적 판단은 정원이 40명 정도로 적은 대학의 증원이 아닌 두 개 의과대학의 병합이나 통합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왜곡된 것이다.

정치인이나 일반국민들 입장에서 보면 '우리나라에 의과대학이 더 많으면 좋은 것이 아닌가? '라는 전문성이 결여된 판단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의과대학 수가 많다는 것은 결코 한 나라의 의료제도의 건전성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특히 공공성을 강조하는 나라에서는 더욱 문제의 소지가 많아 보인다. 그 문제의 소지란 많은 수의 의과대학은 튼실한 의료전달체계의 수립을 위하여 1차 진료 전문의(가정의학과전문의 혹은 일반의, General Practitioner)와 전문의 비율, 그리고 총 전문의 비율에서 각 임상과가 차지하는 사회적 수요에 기반한 전공의 정원 산정을 불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의사인력 양성 잘못된 첫 단추 전공의 정책 사회적 수요 아닌 수련병원 운영에 초점

한 예로 출산율이 세계 최저치를 기록하는 현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실제 필요한 진정한 의미의 산부인과 전공의나 소아과 전공의를 위한 적정인원의 산정에서 거의 무조건 기본적으로 할당되는 정원은 최소 의과대학 당 1명이 된다.

41개 의과대학이면 의과대학과 부속병원의 유지를 위해 사회적 수요와는 무관하게 부속병원이나 의국의 유지를 위하여 기본적으로 최소 41명의 전공의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 의과대학이 운영하는 부속병원이나 협력병원의 수를 고려하면 대학병원의 수만큼 비례하여 전공의 정원을 요구할 개연성이 매우 커 보인다. 이것은 의과대학 수가 많아질 때 보이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다. 간단히 말하면 의대 수에 비례해서 전공의 정원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의 연속인 구조인 것이다.

더구나 전공의 급여를 해당 수련병원에서 지급하는 구조이다 보니 적절한 전공의 수요 산정 자체가 진정한 사회적 수요와는 무관하게 병원과 의국의 생존을 위한 수요로 산정되어 결국 전공의 수련을 마치고 전문의가 되어 사회로 진출했을 때 본인이 전공한 전문 진료과목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웃지 못 할 비극적인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캐나다에서 성형외과 전공의를 마치고 지난 1988년에 전문의 시험을 보았다. 당시 12명이 전문의 시험을 보았는데 그나마 2명은 미국에서 전공의를 마친 캐나다 졸업생이었다. 1990년에 귀국하여 우리나라 성형외과 전문의 고시위원으로 참여하였는데, 그 당시에 이미 응시자 수가 매년 70명을 넘었다. 현재 2800명의 성형외과 전문의가 배출되었는데 과연 이런 숫자는 사회적 수요에 의한 숫자인지 아니면 병원과 의국의 수요에 근거하였는지는 굳이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아 보인다.

많은 수의 의과대학을 보유하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오히려 튼튼한 의료전달체계나 수련을 받는 미래의 전문의를 위한 측면에서 봤을 때 절대 좋은 것이 아니다. 모든 임상 과에서 속칭 디폴트로 40개 이상의 전공의 정원 산정의 문제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해결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물론, 시장의 논리로 지원자가 없어 자연감소를 하는 전공과도 있으나 이것이 의사부족의 문제로 연결되어 다시 불필요한 의사 증원의 문제로 악순환의 고리로 연결되고 있다.

수련병원 위한 전문의 양성에 의대신증설 합류 시 저질의료 향한 가속페달 밟을 것

정부가 자랑하는 의료보험의 강제도입 그리고 최단기간 전 국민 보험제도의 완성 뒤에는 이를 뒷받침할만한 사회적 제도가 같이 성장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의 시험기반 전문의 제도는 국제적으로 우수한 세부전문의를 배출했으나 정작 실력 있는 보편적 개념의 1차 진료 전문의제도를 구축하지 못했다. 그리고 전문의로 배출됐으나 자의반 타의반 일차 진료와 전문의진료 그리고 급여와 비급여의 혼합된 진료를 하는 전문의로 변질됐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전공의제도가 관치 중심의 건보제도와 맞물리면서 속칭 비빔의료짬뽕진료를 섞어 만들어 낸 것이다.

전공의 교육에 대한 사회적 부담이 없이는 적정 전공의 산정과 배정은 애시 당초 불가능한 이야기 같다. 전공의 교육비 부담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이미 전공의에게 진료비 청구를 가능하게 하여 병원의 수입에 일조하고 있으니 정부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이상한 논리를 들이대고 있다. 캐나다나 미국은 전공의가 진료한 것은 임상교수의 몫으로 청구한다. 응급환자가 발생하면 한밤중이든 새벽이든 반드시 당직교수에게 전화보고를 하고 전공의가 진료를 하도록 한다. 진료비는 당연히 담당 교수의 이름으로 청구되고, 입원도 당직 교수의 지정으로 절차가 진행된다.

전공의교육에 대한 이렇다 할 방안이 없는 정부는 전공의교육은 전문직 내부의 문제라고 둘러대기도 한다. 그러면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한다. 평소에 그렇게 공공성을 강조하던 정부가 전공의교육에 대한 비용 문제는 해결할 의도가 전혀 없어 보인다. 이런 점이 결국에는 부실한 인턴교육과 학생실습교육으로 이어져 나타날 수밖에 없다. 수련을 위해 긴 인고의 시간을 견디었음에도 진정한 역량 상승은 기대하기 어려운 현실이다.

비현실적 전문의 양성체계 속 전달체계 공공성 확보 정책은 모두 허상에 불과

의대운영을 위한 적정 정원의 문제는 모든 의대를 적정규모로 입학 정원을 증가시키는 것이 아니라 의과대학의 적정 수 유지를 위한 통폐합의 절차가 필요한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까? 이제 한의대까지 의대로 변환시킨다는 기가 막힌 발상도 하고 있다. 정부가 생각하는 대로 수시로 변신하는 트랜스포머와 같기라도 한 것일까. 의료정책에 관한한 무모하면서도 무지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의과대학 수의 문제는 이미 과거 정권에서 엎어진 물인데 다시 정상으로 되돌리기는 매우 힘들어 보인다. 그렇다면 의과대학의 수와 비례하여 양성되는 전문의 배출구조 또한 해결이 불가능하고 당연히 의료전달체계의 수립도 불가능하다는 논리로 귀결될 수 있다.

현재의 우리나라 의료가 지니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의대정원 증가의 해법이 아니라, 우선 적정의대 규모를 편성하기 위한 통폐합 등 적정 의대 숫자의 합리적인 조절이 더 필요해 보인다. 만일 이마저도 불가능하다면 적정 전공의 산정을 위한 전공의 교육비의 공적 부담을 국가가 책임지고 담보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한 기본조건이 선제적으로 해결이 되지 못한다면, 정부가 주야장천 주장하고 있는 만성적인 의사부족 문제와 말뿐인 의료전달체계의 확립, 그리고 공공성 확보 정책은 모두가 진정성이 결여된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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