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섭습니다. 지지하고 응원해 주십시오”

전공의들이 교수들에게 보낸 손편지(사진제공: 대한전공의협의회)
전공의들이 교수들에게 보낸 손편지(사진제공: 대한전공의협의회)

전공의들이 파업을 앞두고 ‘스승’인 교수들에게 “지지하고 응원해 달라”는 편지를 보내 눈길을 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는 4일 “환자를 두고 거리로 나서야만 하는 발걸음은 너무나도 무겁다. 무섭다”는 호소가 담긴 ‘교수님께 올리는 글월(편지)’을 공개했다.

전공의들은 이 편지에서 “더 이상 대한민국 의료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다. 후배들에게 배운 대로 떳떳하게 진료할 환경을 이제는 만들어 주고 싶다”며 “7일 하루만 우리를 도와 달라. 우리의 생명만큼 소중한 환자들을 돌보아 달라. 젊은 의사의 든든한 기둥이 돼 달라”고 호소했다.

전공의들은 이같은 내용을 손편지에 담아 직접 교수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교수님께 올리는 글월

부족한 점이 많은 저희를 따뜻하게, 그리고 따끔하게 이끌어주신 덕분에 저희는 환자들에게 신뢰받는 의사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을 드리는 이유는 저희 전공의들이 8월 7일 하루, 더 큰 것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가려 하기 때문입니다. 교수님들께서도 현재 의료계를 둘러싼 상황은 잘 알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정부와 국회는 언제나 그랬듯 의료계와 소통하지 않고 현장의 목소리는 무시한 채 검증되지 않은 보건의료 정책을 추진하려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실패한 수많은 정책이 그랬듯 의료를 왜곡하고 소신 있는 의사들에게 자괴감만 안겨 줄 것입니다.

의료계는 30년 전 전국민 의료보험의 실현을 위해 기꺼이 희생을 감내하고 한 차례 물러난 바 있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100년 가까이 걸린 전국민 보험 제도가 30년 만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그 희생의 대가는 의료의 왜곡과 한국에만 존재하는 심평의학의 탄생이었습니다.

PK 실습으로 수술 참관을 하며 최선의 재료보다 보험이 되는 재료를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에 놀랐고, 전공의가 되어 배운 것을 적용하기에 앞서 보험이 되는지를 먼저 따져야 하는 상황이 답답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소통의 창구를 모두 닫고 밀어붙이는 의대 정원 증가와 공공의대 설립에 관한 정부의 발표에 분노했습니다.

교수님, 저희보다 더 많은 시간 이 나라의 보건 의료가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얼마나 답답하고 답답하셨습니까? 한 번의 막무가내 정책에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실망감이 들어 잠을 이룰 수가 없는데, 지금까지 의료계를 왜곡해 온 많은 정책이 선배님들을 괴롭게 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참담합니다. 시간이 가고 의료는 발전해서 교과서는 두 배로 두꺼워졌습니다. 하지만 저희의 의료는 아직도 20년 전에 머물러 있습니다. 더 많은 병을 알게 되었고 더 많은 아픔을 치료할 수 있게 되었지만, 대한민국의 의료가 2배는 더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국민에게 2배 더 좋은 진료환경을 제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환자를 두고 거리로 나서야만 하는 발걸음은 너무나도 무겁습니다. 무섭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더 이상 대한민국 의료 현실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의 후배들에게 배운 대로 떳떳하게 진료할 환경을 이제는 만들어 주고 싶습니다. 의학적이지 못한 이유로 처방을 망설이는 부끄러운 의사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잘못을 바로잡고 더 나은 의료를 위해 전공의들이 나서려고 합니다. 8월 7일 하루만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우리의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환자분들을 돌보아 주십시오. 저희를 지지하고 응원해주십시오. 젊은 의사의 든든한 기둥이 되어주십시오.

오랜 시간 환자의 곁을 지켜주신 교수님, 스승님, 그리고 선배님. 존경하고 감사합니다. 얼마나 고된 일을 부탁드리는 것인지 알기에, 피 끓는 젊은 의사들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습니다.

부디, 환자 한 명 제대로 보기도 어려워했던 저희가 교수님들의 정성 어린 지도로, 국민의 건강을 걱정하고 미래의 의료를 위해 당당한 목소리를 내는 어엿한 의사가 되었다고 자랑스럽게 여겨 주십시오. 환자를 볼 때만큼 진지함을 다해 젊은 의사의 목소리를 내고 돌아오겠습니다.

2020년 8월 4일
대한민국 1만 6천 전공의 올림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