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미국은 세계적으로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의사 수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GDP대비 의료비 지출은 17%를 초과하여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한다. 이 같은 규모는 다른 국가에서 따라잡거나 감당해내기 벅찬 수준임에 틀림없다. 비교적 부유한 유럽 국가들도 약 10~11% 범위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미국의 의과대학협회는 최근 실시한 의사추계에서 2020년에 9만명, 그리고 2025년에 약 13만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대한의사협회 안덕선 의료정책연구소장

이 보고에 의하면, 의사인력의 3분의 1 이상이 1~3년 이후에 65세에 도달해 의사인력의 공급이 크게 부족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중 가장 필요로 하는 인력은 가정의학전문의로 주로 일차의료 영역을 책임진다. 추계에 따르면, 오는 2025년쯤 약 52,000명 규모의 가정의학 전문의가 더 필요로 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럼에도 미 연방정부가 지원하는 전공의 교육은 과거 1997년 수준으로 묶여 있어 미국의사회(AMA)는 전공의 교육에 대한 대폭적인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미국 의회에 기존의 전공의 교육지원에 추가하여 향후 5년 동안 15,000명의 전공의 교육을 지원하는 법안이 계류 중이기는 하나 통과 여부는 지켜봐야 한다. 상황이 이러하자 미국 정부는 일차 의료의 인력난 타개를 위해 급한 대로 전문 간호사를 의사와 팀을 이루어 만성질환에 대한 외래환자 관리에 투입하고 있다.

영토가 광활한 미국은 우리나라에서 제기되고 있는 의사인력의 불균형과는 그 사정과 차원이 매우 다르다. 미국에서 비도시지역의 약 44%에 해당되는 지역이 일차 의료 의사의 부족현상을 보여주고 있고, 이에 따라 미 연방 정부는 최소 인구 3,500명당 1명의 일차 의료 의사를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 수치를 인구 1000명당 계산하면 ‘0.29’에도 못 미치는 규모로 툭하면, 우리나라 정부와 정치권에서 써먹는 의료취약지와는 엄청난 차이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경우 정부가 나서서 필요한 의사 인력을 특정 지역에 강제로 배치하겠다든지, 정부가 체감하고 늘리고 싶은 만큼의 의과대학 정원을 급속 트랙으로 확대하거나 신규로 의대를 설립하겠다는 졸속 행정은 찾아볼 수 없다.

최소 10년 후 흥망성쇠 분기점…신중한 결정 따라야

의대 정원을 쉽사리 늘리지 못하는 이유는 전공의 교육비를 연방정부에서 지원하는데 의대정원이 늘어난 만큼 전공의 교육비 지원도 같이 병행하여 증액해야 하는 어려움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런 면만 보더라도 우리나라 정부와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의사인력 양성 정책을 확인할 수 있다.

'의료의 공공성을 아무런 의미 없이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떠들고 있는 현 정권이나 일부 관변학자들은 의학교육에 대한 공공성이나 의료와 교육의 질은 마치 공공성과는 무관한 개인투자 영역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 교육비 이야기가 나오면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강한 톤으로 맞받아친다. 맹랑한 논리구조이고 영혼 없는 답변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이제껏 의사나 보건의료인 양성을 위한 교육지원의 노력을 벌였다거나 제대로 인식을 해본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가 보여주는 현재의 부실 인턴교육이나 학생 임상실습 교육은 선진국이 보여주는 공공성에는 아마도 영원히 도달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방식의 편리한 이중적 공공성을 왜 ‘K 공공성이라고 자랑하지 않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정권이 지니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이중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단면 중의 하나로 여겨진다. 의료가 공공성을 강조하려면 적절한 전달체계와 진료거부권, 그리고 의사의 단체행동에 대한 기본권은 필수 요소임에도 이중적 공공성은 이를 애써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현시대는 의료의 개념이 정치적 권력 쟁취의 수단과 도구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돼서인지 속칭 표 떨어지는 일은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공공성과 의대 정원 증가의 논의 뒤에 노골적으로 따라오는 의사 인건비 증가율과 도시노동자 대비 고액의 인건비 주장으로 노동조합 가입자들을 선동하며 더욱 더 의대 정원 증가를 부추기고 있는 양상이다. 정원증가를 반대하면 마치 의사들은 얼마를 더 벌어야 만족하는가라는 자극적인 구호로 공공의대와 정원증가를 무기 삼아 15년 뒤의 효과 검증이 안 된 무모한 정책을 위험한 임상실험대로 밀어 올려놓고 있다. 일반 도시 노동자와의 비교는 전 생애 주기를 총 소득으로 산정하는 것이 설득력 있고 타당해 보일 것이다.

의료문제 정권 표 바꿔 먹을 사안 아냐…오판 시 순식간 레드오션으로 추락

일부 근로는 16세 이상 1주일간의 교육으로도 투입이 가능한데 의사는 면허취득까지 고교 졸업 후 최소 11~15년이 소요된다. 우리나라 의사의 급여가 높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아직은 세계 10위권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인건비 산정도 근무시간, 휴가기간, 기타 법으로 보장되는 다양한 휴무, 연금, 개인의 교육 투자 시간과 비용을 모두 종합하여 고려해야 한다. 흔희 회자되는 공공의료의 상징인 영국의료를 보면 의사 개개인의 평균 은퇴 연령이 60세에 미치지 못한다. 연간 법적으로 보장되는 공식 휴가와 기타 사유로 약 7주까지 휴무기간을 가질 수 있다. 의사 개인의 수입이 적다고 생각되면 각자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근무시간 이외에 민간 의료기관에서 자유로운 근무를 선택할 수 있다. 유럽에서는 의과대학생 1명 당 평균 4~7억 여 원의 교육비를 공공에서 커버하여 투자한다. 이것도 10여 년 전 이야기다. 영국에서 연간 8조원 가까운 예산이 보건의료인 교육비로 지출된다.

최근 미국의 의료전문 매체인 ‘Becker’s Hospital Review‘에 의하면, 의사의 급여가 높은 미국의 경우 약 23%의 의사는 다시 태어나면 의업을 택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고, 21% 의사는 되돌릴 수만 있다면 아예 의사 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사결과를 내놓고 있다. 가장 큰 불만은 적절한 보상과 특히, 일과 직무 간 균형의 문제임을 지적하고 있다. 미국 의사의 35.4% 만이 자신들의 경제적 보상에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급여가 감소한 의사의 61%는 타인에게 의사 직을 권유하지 않을 것이며, 급여가 증가한 의사의 35%는 의사 직을 권유할 것이라는 조사결과도 흥미롭다. 미국의사의 2%만이 원호병원 등 정부가 직접 고용하는 공공병원에서 일하고 싶다는 조사결과도 보여주고 있어 공공 의료기관의 질적 상승이나 구직난의 해결책은 요원해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권의 기조에 맞추어 광풍처럼 몰아치는 공공의료는 사실 사이비 공공성의 논리를 근거로 한 주장이다. 많은 의사를 만들면 그 누수효과로 지역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논리 자체가 공공성과 상치되는 시장경제 논리에 근거하고 의료는 시장논리와 잘 작동되지 않는다는 것을 정설로 받아들이고 있다. 공공을 위한다면 개인의 권리는 침해해도 당연하다는 논리도 자칫 파시스트 독재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10년 강제화도 군 법무관 제도와는 성격을 달리한다. 군법무관은 정식 사법고시에 탈락한 경우 별도의 다른 시험을 통하여 군인의 신분이 되는 것으로 합헌의 결정이 내려졌으나 의사의 경우 한지의사 시험도 아닌 전문의를 양성한 후 배치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 직업선택의 자유와 확연히 상충된다. 그리고 전공의 기간을 합산하여 준다고 하면 인턴, 전공의, 세부전문 전공이나 보건학 수련 등 공공성에 대한 이해를 합치면 기껏 3년 정도의 배치가 가능한데 이것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증원정책의 성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일본 취약 지 해결용 증원 후 저출산 등 역효과 발생…정원 감축 급선회

일본은 인구의 20%65세를 초과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했고, 의사가 부족한 지역을 이유로 의과대학의 정원을 지난 2007년에 전체 7,625명에서 8,848명 규모로 증가시켰다. 그렇지만 일본이 맞닥뜨린 저출산 환경 등으로 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고, 의사추계에서도 2024년이면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3.0이 초과된다는 추계결과를 보여 정원감소에 대한 필요성이 크게 부각됐다. 게다가 의사 인력이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다양한 이유로 늘어난 의사들이 의료 취약지에 가거나 지원하기는커녕 예상했던 것과는 정 반대로 도시 지역으로만 집중되어 국가 입장에서 의료자원의 수급 문제가 더욱 악화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일본 의사들의 지방기피 현상은 다른 나라 형태와 매우 유사하여 지방근무가 자신이 하고 싶어 하는 직무가 아니고 가족의 동의조차도 얻기 힘들며 자기개발 즉 자신의 역량을 상승시키지 못하고 도시에 비하여 당직 근무가 더 많아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당직 교대를 맡아줄 동료조차도 마땅치 않다는 것이 과도한 근무 부담을 가져온다고 한다. 물론 자녀의 교육환경도 좋지 않은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라고 한다.

현재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도 20207월에 일본 노동후생성은 2022년부터 의대 정원 감축 결정을 내렸다. 마찬가지로 코로나로 호된 곤욕을 치루고 있는 미국과 유럽에서도 뜬금없이 의대정원을 증원하겠다고 주장하는 국가는 없다. 이 와중에도 일본은 사태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증원에 대한 효과가 없다고 판단되자 즉시 의대 정원 감축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자칭 세계 최고의 K 방역이라고 자랑하는 나라가 유난히 좁은 영토에서 의사불균형을 이유로 언제 나타날지 모를 효과 미지의 정책을 속전속결로 처리하는 것을 보며 언제나 정부정책의 성숙함을 볼 수 있을지 매우 절망스럽기만 하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는 곧 전문직과 거리두기로 결정한 것 같고 정권의 의견과 상충되면 아예 편 가르기로 사회적 거리를 충분히 두고 있는 듯하다. 의대정원 문제를 차분히 검토하고 증원으로 과연 추구하는 목표가 달성될 것인가를 관련 이해당사자들과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이미 실패하여 효과가 없다는 수많은 실패사례를 참고로 하여 15년 뒤에나 볼 수 있는 실패를 만들지 않도록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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