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개 제약바이오사 전문가협의체 구성 후 구체적 활동 없어

지난해 3월 열린 개소식에 보건복지부 박능후 장관까지 참석해 우리나라 인공지능 신약 개발 허브 역할을 할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인공지능(AI) 신약개발지원센터’(이하 센터).

하지만 설립 1년을 훌쩍 넘긴 최근까지 센터의 활동은 두 번의 인공지능 관련 교육과 한 번의 심포지엄 개최가 전부일 정도로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센터는 한국제약협회와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이 설립했으며, 이를 위해 양 기관은 인공지능 신약개발지원센터 추진단을 발족(2017년 12월)하고 업무협약(2018년 2월)도 체결했다. 실제론 제약협회가 운영을 맡고, 자금은 진흥원이 지원하는 형태의 정부사업인 셈이다.

복지부는 센터 개소식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제약기업 등이 인공지능을 활용해 신약을 신속하고 안전하게 개발하게끔 관련 지식을 공유하고 성공사례와 정보를 공유하는 등 센터가 구심점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설립 당시 밝힌 센터의 주요 활동계획은 ▲제약기업의 인공지능 활용을 제고하기 위한 교육·홍보 추진 ▲(제약기업) 공동으로 필요한 데이터 수집·보관·제공 등의 역할 ▲인공지능 활용 신약개발의 핵심자원인 공공데이터의 안전한 공유·활용 촉진 및 공공데이터의 정제·표준화 및 통합 지원 등이었다.

그러나 본지 취재 결과, 센터가 추진한 구체적인 사업은 작년 8월 일반교육(신약개발·인공지능)과 10월 심포지엄(AI Pharma Korea Conference 2019), 올해 7월 전문교육(데이터분석)이 전부였다. 심지어 교육의 홍보도 제약협회 홈페이지를 통해 공지됐으며, 센터는 자체 홈페이지조차 없었다.

특히 센터가 인공지능 기반 신약개발 ‘허브’로 자리매김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활동인 데이터 구축, 정보 공유 등을 위한 전문가 모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센터는 인공지능 활용 신약 개발 활성화를 위해 국내 제약기업 25곳과 함께 ‘전문가협의체’를 구성 운영 중이며 올해 6월 협의체 모임을 가졌다고 밝혔다.

하지만 협의체에 포함된 A제약사 관계자는 “협의체를 통해 구체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사안을 전달받은 적도 없고 모인 적도 없다”며 “AI를 통한 신약개발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 (센터의 활동이) 두루뭉술한 점이 없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제약사 관계자도 “공식적으로 협의체를 통해 도출된 안건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올해 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전사회적 방역 시스템이 가동됨에 따라 활동이 제한적일 수 있음을 감안해도, 센터의 활동이 미진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센터 관계자는 “정기적이진 않으나 필요시에 회의를 하는 상황”이라며 “향후 분기별이나 반기별로 정기적으로 회의를 할 계획이며, 필요시에는 회의 및 의견을 주고받을 수 있는 라인을 구축할 예정”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아직 센터가 모양새를 갖춘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향후 홈페이지도 개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전경.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국제약바이오협회 전경.

하지만 일각에선 설립 후 센터가 인공지능 신약 개발 허브로 첫 단추조차 제대로 끼지 못하고 있는 이유로 ‘IBM 왓슨 철수’ 사태를 꼽고 있다.

제약업계에 따르면, 2017년 센터 설립 준비 당시 제약협회와 진흥원은 IBM WDD(Watson for Drug Discovery) 도입을 검토, 실제로 일부 관계자가 미국 IBM 본사까지 방문해 도입을 추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제약협회는 2017년 6월 IBM에서 인공지능을 연구한 배영우 아이메디신 대표를 연구개발정책위원회 4차산업전문위원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IBM이 사업을 철수하면서 제약협회의 도입 시도는 무위에 그쳤다. IBM은 2019년 4월 미국 현지 발표를 통해 신약개발 인공지능 사업 철수를 선언했다.

이에 대해 제약업계 한 관계자는 “왓슨(Watson)만 도입하면 인공지능 신약개발을 시작할 수 있다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다”며 “장기적 계획과 자체 분석이 부족함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제약협회와 센터 관계자는 “당시 사정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지 못한다”고 답했다.

2019년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운영 예산내역 변경(안) 지출예산 총괄표.
2019년도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운영 예산내역 변경(안) 지출예산 총괄표.

한편, 센터 설립에 관여한 진흥원이 2019년도 하반기에 예산을 대거 변경한 정황도 포착됐다.

2019년 10월 공개된 '2019년도 진흥원 운영 예산내역 변경(안)'에 따르면, 외부위탁사업비를 제외한 나머지 항목들이 모두 대폭 삭감됐다.

특히, 교통비, 통신비, 자문비, 회의비 등이 포함되는 ▲여비는 1,434만원에서 460만원으로 ▲수용비 및 수수료는 246만6,000원에서 48만원으로 ▲기술정보활동비는 2,130만원에서 444만원으로 크게 줄었다. 재료 및 시설비의 경우 480만원에서 48만원으로 줄면서 10분의 1 수준으로 삭감됐다.

당초 계획한 IBM 도입에 차질을 빚으면서 예산 집행 변경이 불가피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러한 의혹에 대해 진흥원 측은 강하게 부인했다.

진흥원 관계자는 “처음 예산이 불분명하게 책정된 측면이 있어 이후 다시 구체적으로 수정한 것”이라며 “IBM 도입 건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진흥원 내 별도의 사업을 통해 국내 제약사들이 IBM의 WDD를 시험해 볼 수 있는 사전테스트 사업은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만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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