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의료기관 최초 ‘뇌조직은행’ 발족하고 연구 박차
정영희 교수 “치매 등 한국인만의 뇌 질환 연구 필요"

명지병원이 한국인의 뇌질환 연구를 위해 팔을 걷어 붙였다.

뇌 관련 질환들을 극복할 수 있는 진단과 치료의 토대를 마련하고자 뇌조직은행을 발족한 것.

뇌조직은행은 치매, 파킨슨병 등 완치가 어려운 퇴행성 뇌질환을 비롯해 뇌졸중, 정신장애, 자폐증, 뇌전증(간질) 등의 다양한 뇌질환 환자와 가족의 사후 뇌조직을 기증받아 치료법 개발을 위한 뇌조직 연구를 돕는다.

국내 민간의료기관이 자체적으로 ‘뇌조직은행’을 출범시킨 건 명지병원이 최초로, 뇌 기증을 받아야 하고 기증받은 뇌조직을 관리해야 하는 등 적지않은 비용과 인력이 투입된다는 점에서 뇌조직은행을 민간의료기관이 운영하겠다고 나선 건 이례적이다.

이에 명지병원 신경과 정영희 교수를 만나 뇌조직은행 발족 배경과 향후 계획에 대해 들었다.

명지병원 신경과 정영희 교숫.
명지병원 신경과 정영희 교수.

- 명지병원이 뇌조직은행을 설립한 배경은.
질병관리본부는 2016년부터 ’치매 뇌조직은행 구축사업‘을 진행 중이며, 현재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부산대병원 등이 여기에 참여하고 있다. 이 사업은 고도화된 뇌연구자원(뇌조직, 뇌영상, 임상정보, 인체자원 등)을 수집하고 활용체계를 마련함으로써 국내 치매 연구를 활성화하고 치매 진단법 및 치료제의 실용화연구를 촉진하고자 마련됐다. 명지병원 또한 이 사업에 참여를 준비 중이지만, 그에 앞서 뇌 연구에 대한 시급성과 필요성을 인지하고, 먼저 뛰어들게 됐다. 국비 지원을 받지 않고 뇌조직은행을 설립 운영하겠다고 나선 건 명지병원이 처음이다.

- 국내 뇌 연구 환경은.
암의 경우 수술을 하면 조직을 얻을 수 있어 관련 연구가 활발하지만,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 등 뇌 질환은 수술이나 생검을 통해 조직을 얻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뇌 조직을 확인하는 게 연구에 중요함에도 말이다. 더욱이 올해 4월 전까지는 뇌조직은행이 있는 의료기관 외에는 뇌 조직을 분양받을 수 없었다. 다행히 이러한 제도들이 최근 개선되며 민간의료기관이 주도한 뇌조직은행 발족까지 이어지게 됐다.

- 뇌 조직 등을 이용한 연구가 쉽지 않았다는 게 의아하다.
뇌는 특히 인종 간 차이가 크다. 심지어 (뇌 관련 각국) 데이터를 합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을 정도다. 그만큼 우리나라 자체적 뇌 연구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는 국내 연구자들도 인지하는 바였고, 때문에 (연구를 위한) 뇌 조직에 대한 ‘needs’가 많았다. 그러나 실상은 (뇌 질환자의) 혈액조차 구하기 어려웠다. 환자들에게 혈액샘플을 대규모 코호트에서 모은 것도 몇 년 되지 않았다. 지금은 대형병원들을 중심으로 혈액을 통해 (뇌질환 관련)NGS검사를 하고 있지만, 그 전에는 쉽지 않았다. 최근 (뇌 질환에도)분자생물학적 연구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혈액과 뇌척수액 등과 뇌 조직과 임상적 정보를 연결해 진단과 치료에 접목하려는 시도가 많아지고 있다. 이는 곧 뇌 질환자의 혈액, 뇌척수액 등의 ‘banking’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 뇌 질환 연구를 위해선 뇌 기증도 많아야겠다. 하지만 아직 이에 대한 대중적 공감대가 형성되진 않은 것 같다.
치매 환자가 오랫동안 고통받고 고생하는 걸 본 그 가족들은 치료의 개선을 통감한다. 하지만 유교적 장례 문화가 남아있는 우리나라에선 뇌 적출을 해야 하는 뇌 기증을 동의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다행히도 최근 화장문화가 확산되고 장기 기증 등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고 있다. 여기에 치매 등의 뇌 연구의 필요성과 중요성에 대해서도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어 뇌 기증에 대한 인식도 개선되지 않을까 싶다.

- 기증받은 뇌조직은 어떻게 관리되나.
미국이나 유럽 등에선 오래전부터 뇌조직은행을 운영, 관리하고 더불어 네트워크를 구축해 활발하게 연구를 진행해 왔다. 때문에 관련한 프로토콜은 이미 국제적으로 정립됐다. 서울대병원 등 국내 의료기관들도 이러한 프로토콜을 벤치마킹하고, 그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명지병원 또한 이러한 국제적 프로토콜에 맞춰 뇌조직은행을 운영할 계획이다. 기본적으로 뇌 구득이 많지 않기 때문에 구득 방법, 관리 등이 표준화돼 있어야 연구, 실험이 의미가 있다. 이에 질병관리본부와 세 개 병원이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뇌조직 운영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고 있다. 명지병원 또한 최근 이 모임에 참여했으며, 앞으로도 함께 하려고 한다.

- 명지병원 뇌조직은행에서 특히 관심을 기울이는 뇌 질환 연구가 있다면.
우선은 알츠하이머 치매에 초점을 맞춰 연구를 진행할 계획이다. 뇌 연구를 위해선 일단 뇌 구득이 필수다. 대조군도 필요하기 때문에 정상인은 물론, 파킨슨병 등 진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뇌 질환 환자의 사례를 모으기 위해 노력할 방침이다.

- 뇌 기증을 독려하기 위한 계획은.
치매 환자의 뇌 구득이 쉬운 일은 아니다. 치매 초기에 환자나 그 가족이 기증의 뜻을 밝혀도, 실제 구득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실제로 서울대병원이나 삼성서울병원에 뇌 기증 등록자는 800건이 넘는데, 실제 구득은 100건 내외에 불과하다. 오랜 기다림과 꾸준한 (환자와 가족)설득이 필요한 일이다. 이에 뇌 기증을 독려하는 포스터와 팜플렛을 통해 기증 문화 정착에 힘을 쓰는 한편, 요양원이나 요양병원과 협력을 통해 말기 뇌질환 환자들의 기증도 독려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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