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형욱의 블루하우스

[청년의사 신문 박형욱] 작년 9월 한국소비자원의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는 의사가 녹내장을 유발시킬 수 있는 약물을 다이어트 목적으로 처방하면서 부작용 설명을 하지 아니한 과실을 물어 위자료 지급을 결정한 바 있다.


이에 대해 대한의사협회는 약사법에는 약사에게 복약지도 의무를 부과하고 있는 반면 의사에게는 별도의 복약지도 의무가 명시되어 있지 않으므로 위 조정결정은 약사법에 배치되며 법치주의에 위반된다고 비판했다.

다시 한국소비자원은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치료를 위한 의약품의 투여도 신체 침습에 포함되며 따라서 투약행위도 설명의무의 대상이 되므로 의협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하였다.

이 사건은 의사의 설명의무와 약사의 복약지도의무의 본질, 그리고 이에 대한 판례의 의미와 정책적 문제점에 대해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결론적으로 이 사건은 의사와 약사의 공동불법행위책임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리됐어야 하는 사안이다. 의사의 책임만 강조할 뿐 약사의 책임을 외면한 소비자원의 발표에는 문제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의협의 주장은 훨씬 더 큰 문제가 있다. 의사의 처방권과 이에 따른 설명의무는 입법적 조치와 무관하게 인정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목해야 하는 것은 의사의 처방권과 이에 따른 설명의무는 환자의 개별적 상태에 대한 평가를 기초로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환자의 신장 기능이 악화되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신장 기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약을 처방해야 하는 상황에서 이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이다. 이 경우 부작용 발생 시 환자가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설명 지도를 해야 한다(2004다 64607 판결). 이를 자기결정권을 보호하기 위한 일반적인 설명의무와 구분하여 지도설명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면 약사의 복약지도는 환자의 개별적 상태에 대한 평가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다. 약사법 제2조 제12호에 따르면 복약지도란 의약품의 명칭, 용법ㆍ용량, 효능ㆍ효과, 저장 방법, 부작용, 상호 작용이나 성상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 또는 일반의약품을 판매할 때 진단적 판단을 하지 아니하고 구매자가 필요한 의약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약사법 제24조는 사전에 미리 만들어 놓은 복약지도서로 복약지도를 대체할 수 있다고 규정해 놓은 것이다.

사실 의사에게 처방권이 존재하는 것은 의사가 환자의 개별적 상태를 평가하는 임무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문진과 이학적 검사, 각종 실험실 검사, 영상 검사 등을 시행하여 환자에 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 정보를 만드는 일이 의사의 임무이자 권한이다. 당연히 약사에게는 그러한 임무도 없고 권한도 없다. 환자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만드는 곳에 처방권이 부여 되어야 하고 이에 대한 설명의무가 따라야 하고 그에 대한 보상이 따라야 한다.

문제는 약사가 복약지도서를 약봉투에 찍어주면 보상이 따르지만 의사가 고도의 전문적 설명의무를 이행하는 것에는 아무런 보상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의사단체가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

의사단체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입장을 일관되고 명백하게 표현해야 한다. 입법적 혹은 정책적 문제점이 있다고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방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환자에 대한 의사의 책임을 정면으로 받아들이고 그러한 책임을 제대로 이행할 수 없게 만드는 정책을 비판하고 이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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