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판막 가격 일본 천만원 넘지만 우리나라는 240만원이 최고가수익 낮아 신제품 수입 안돼…1981년 개발된 제품 아직도 사용

[청년의사 신문 곽성순] 국내에 조직판막(tissue valve)을 수입, 판매하고 있는 업체는 총 4곳이며, 이 중 3곳이 시장을 3등분하고 있다. 각사 제품 중 국내에 보험등재된 제품은 총 8종이며, 2015년 10월 1일자로 고시된 보험가격은 243만7,980원이다.

외국과 비교해보면 이 가격이 얼마나 낮은지 단번에 알 수 있는데, 미국의 경우 밀레니엄 리서치 그룹(Millennium Research Group)이 지난 2013년 조사한 가격이 5,640달러(697만원)며, 일본의 경우 2014년 3월 5일 고시된 보험가격이 이종대동맥형(돼지 유래 조직판막)이 80만9,000엔(889만원), 이종심막형 1형(소의 심막유래 조직판막)이 71만6,000엔(787만원), 이종심막형 2형(1형의 인지질 처리방식 개선 제품)이 95만3,000엔(1,047만원) 등이다(2016년 2월 22일 기준 환율 적용).


조직판막 가격이 이처럼 다른 나라보다 크게 낮다보니 제조업체들은 국내에서는 신제품 출시를 하지 않고 있다. 국내에 출시된 제품 중 가장 최근 개발된 것은 2011년 제품이며, 가장 먼저 개발된 것은 1981년에 개발된 제품이다.

업계에 따르면 제품 개발부터 한국 등재 시점까지 길게는 9년이 걸리고 있으며, 일부 제품은 개발된 지 10년이 넘었음에도 한국에 출시되지 않고 있다.

국내에 조직판막 시장을 3등분하고 있는 한 회사는 국내에 2가지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데, 하나는 1981년도, 다른 하나는 2002년도에 개발한 제품이다.

이 제품들은 각각 2000년과 2011년 국내에 보험등재 됐는데, 회사 측에 따르면 현재 이들 제품이 반반씩 팔리고 있다고 한다.

업체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지난 2000년 처음으로 조직판막이 보험 등재됐을 때 270만원 정도를 받은 후 2008년 환율 급등 당시 지금 가격이 됐고 그 후 이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본사 입장에서는 신제품을 개발해도 국내에 런칭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국내 시장에서 주력으로 판매하고 있는 제품 중 80년대 개발된 제품의 경우 본사에서 이미 단종 결정을 내렸지만 우리나라와 동남아시아 몇몇 국가 때문에 생산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해외의 경우 출시된 제품 중 가장 최신 제품을 사용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10개 제품 중 가장 버전이 낮은 2~3개 제품을 쓰고 있는 꼴”이라며 “국민들이 그만큼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험등재가격 조정이 안 되는 이유

업체가 조직판막 가격을 재조정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각 회사별로 이미 결정된 상한금액에 대한 조정신청을 하고 있지만 그 때마다 거부되고 있다. 치료재료 상한금액 결정기준을 보면 가치평가기준표를 통해 ▲임상적 유용성 ▲비용효과성 ▲기술혁신 등의 항목을 평가한다.

평가결과 20~30점을 받았을 때 기존 상한가의 10% 가산을 시작으로 100점을 받았을 때 100% 가산을 해주는 식으로, 이론상으로는 가치평가기준에서 100점을 받았을 경우 현재 보험 등재 최고가의 두 배 가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같은 기준만 있을 뿐, 실제 가산을 해준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한 번도 가산된 적이 없다. 제도를 만들어놓고 실제 자료를 제출하면, 제출한 자료가 어디에 해당돼 어떤 점수를 받았는지 공유하지 않는다. 결과만 이야기 해준다. 투명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며 “대부분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제출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만 한다”고 말했다.

업계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국내에 출시하고 있는 제품도 겨우 원가를 맞추고 있는 상황에서 원가가 훨씬 높은 신제품을 국내에 출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기 회사에서는 매출도 중요하지만 영업 마진도 중요하게 본다. 이익률이 퍼포먼스 잣대가 되는데, 여기서 계속 마이너스 평가를 받게 되면 본사에서 국내 신제품 런칭을 주저하게 된다. 본사에 요구하고 있지만 설득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한 업체에서는 지난 2007년 개발한 제품을 2013년 국내 허가까지 받았지만 아직 보험 등재를 하지 않고 있다. 지금 가격으로 등재하면 원가에도 미치지 못해서, 팔면 팔수록 손해보는 결정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돈 문제에 학계가 나서는 이유

조직판막 문제가 심각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같은 주장을 업계뿐만 아니라 실제 사용하는 흉부외과전문의들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이하 학회) 보험위원으로 활동 중인 정재승 교수(고려대 안암병원)은 “학회 차원에서 조직판막 문제를 유심히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같은 상황이 지속될 경우 국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조직판막이 줄어들다가 결국 질 낮은 제품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까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정 교수는 “십 수년 전에 국내에 처음으로 조직판막을 수입하기 시작했을 때 책정됐던 가격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것은 물론 심지어 더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원가는 올라가기 때문에 새로운 제품 출시는 요원한 상황이다. 그동안 아무도 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지금까지 학계는 이런 문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의사들이 돈 문제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쓸 제품이 없다고 회사를 다그치기만 했다. 어차피 원가보다 더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원가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조직판막 제품의 질이 갈수록 좋아지고 있음에도 국내 환자들이 그 이점을 누리지 못한다는 점도 학계가 나선 이유다.

지금까지 조직판막은 기계판막에 비해 수명이 짧기 때문에 길어야 7~8년이면 재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됐다. 하지만 최근 개발되는 제품의 경우 수명이 15년 정도로 여겨지고 있어 사실상 단점이 없어지고 있는 추세다.

때문에 현재는 조직판막의 단점보다는 기계판막처럼 시술 후 평생 와파린을 복용하며 그에 따른 제약을 견디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부각되고 있다.

실제 미국, 유럽, 일본 등에서는 인공판막 활용 중 조직판막 활용이 차지하는 비율이 70~80%에 이르고 있는데,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기계판막보다 조직판막을 사용했을 때 삶의 질이 훨씬 높아지기 때문이다.

수입 중단, 이미 현실화

업계에서는 조직판막 수입 중단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본사에서도 최악의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한국시장이 큰 시장도 아니고 가격도 낮아 수익이 나지 않는 상황이라면 철수를 결정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기 회사가 이윤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래도 나름 환자를 위한 제품을 만든다는 신념으로 제품을 만들고 있다. 본사에서도 이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최악의 선택을 하진 않겠지만 새로운 제품이 계속 개발되고 새 제품의 원가가 계속 올라가는 상황에서 현 상황이 계속되면 그런 일이 없다고 장담할 순 없다”고 말했다.

조직판막은 아니지만 흉부외과에서 사용한 치료재료가 수입 중단된 사례는 이미 있다.

심폐수술용 캐뉼라(cannula)다. 캐뉼라는 개심술 중 심장으로 돌아오는 혈액을 차단해 몸밖에 있는 체외순환기로 뽑아내는 역할을 하는 기기다.

캐뉼라의 경우도 조직판막의 상황과 거의 흡사한데, 우선 가격이 일본, 호주 등과 비교했을 때 적게는 2배(femoral cannula의 경우 국내 24만3,345원, 일본 44만3,650원)에서 많게는 10배 이상(arterial cannula의 경우 한국 2만2,590원, 호주 평균 35만2,308원) 차이가 나며, 최근 15년간 가격 변동이 거의 없다는 것도 동일하다.

캐뉼라의 경우 결국 지난해 8개 제품의 공급 중단이 결정됐다. 더 이상 손해보고 팔 수 없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다.

그들이 원하는 것 ‘8억’

조직판막 업체들이 주장하는 것은 현재 등재된 최고가를 20% 정도 올려달라는 것이며, 학계에서도 그 정도 인상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 국내에서 조직판막을 사용한 수술 건수는 총 1,320건, 2011년도는 1,336건, 2012년도는 1,425건, 2013년도에는 1,488건이며, 여기에 필요한 판막을 위해 투입되는 보험재정은 약 40억 정도다. 20%를 올려주려면 정부가 8억원만 더 쓰면 된다는 의미다.

정 교수는 “조직판막 가격을 20% 인상해 봐야 8억 정도 더 쓰는 것인데, 이걸 근거가 부족하다고 안 해주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의료기기업체들도 환자를 위해 일한다는 미션을 가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나 심평원에 이런 부분들을 어필하면 진정성 있게 받아들여지지 않아 서운한 부분도 있다. 국내 제도 때문에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본사와 싸워야 하는 것이 안타깝다. 정부에서는 업체가 (수입을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가 (본사에) 싸움을 걸고 있으니까 그나마 싸움이라도 벌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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