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 쇄신이냐 해체냐'④…연일 제도 개편 주장, 진의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위태롭다. 연일 계속되는 공단의 방만경영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공단이 건강보험료 징수와 건보 재정관리 부실 등의 책임을 외부로 떠넘긴다는 의혹만 커진다. 공단은 쇄신을 통해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담보하겠다고 공헌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공단 해체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에 본지는 공단의 ‘쇄신 혹은 해체’를 주제로 7회에 걸쳐 기획기사를 준비했다. 그간 공단을 둘러싼 문제점을 점검하고 근본적인 해결책은 무엇인지 짚어볼 예정이다.

[청년의사 신문 양금덕]


“보험료 부과체계가 얼마나 복잡한지, 마치 숨은 그림 찾기 같다. 복잡한 부과기준을 모두 머릿속에 넣고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대한민국에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공단의 보험료 부과 담당 직원 어느 누구도 이를 다 외우고 있는 사람은 없다.”

국민건강보험공단 김종대 이사장이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남긴 글이다. 김종대 이사장은 “현재의 보험료 부과체계는 알면 알수록 화가 나는 제도”라며 “공단 직원은 복잡한 보험료 기준을 장황하게 설명해야 하고, 민원인은 알수록 화가 나서 거칠게 항의하고, 직원은 쩔쩔매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이사장이 취임 이후 지속적으로 불합리한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를 지적하며 개편을 주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급기야 공단 쇄신위원회는 ‘소득중심 단일화’라는 부과체계 개편안을 정부에 제출하고 제도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과연 공단 주장처럼 부과체계를 바꾸면 연간 5,700만건에 달한다는 보험료 관련 민원이 해결될까? 전문가들은 부과체계 개편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민원 때문에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식의 공단 주장은 모순이 있다고 말한다. 되레 공단이 보건복지부의 부과체계 개편 기획단 회의 내용까지 누설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공단이 보험료 자격, 부과, 징수 등 업무 부실 논란을 제도 탓으로 돌리려 한다는 것이다.

공단 민원이 많은 게 부과체계 탓?

여직원을 때리고 기물 파손에 흉기로 위협까지…. 공단은 매년 수천만건에 달하는 민원을 처리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폭력에 노출되는 일까지 있다고 호소한다. 현재 공단에 쏟아지는 민원의 규모는 놀랍다. 지난해에는 모든 국민이 1인당 평균 1.5건씩 민원을 제기한 셈이다. 단순계산하면 1만2,000여명의 공단 직원이 모두 민원 처리에만 매달려도 매일 26건씩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게다가 민원 10건 중 8건이 불합리한 보험료 부과체계 때문인지라 제아무리 설명을 자세히 한들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단다. 이에 공단은 보험료 부과체계를 하루 빨리 소득중심으로 단일화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단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올해 7월까지 공단에는 총 4,630만건의 민원이 접수됐다. 업무유형별로 나눴을 때 ▲자격 1,733만건(37.4%) ▲부과 642만건(13.9%) ▲징수 1,342만건(29.0%) ▲보험급여 272만건(5.9%) ▲건강지원 273만건(5.9%) ▲장기요양 112만건(2.4%) ▲기타 255만건(5.5%) 등 총 7가지가 있다. 이중 자격, 부과, 징수가 보험료 관련 건으로 전체의 81%(3,717만건)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민원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총 민원이 7,159만건으로 2009년 6,607만건에 비해 552만건(8.35%)가 늘었다. 보험료 관련 건도 지난해 5,729만건으로 4년 전 5,326만건에 비해 404만건(7.58%) 증가했다.

공단은 이처럼 민원이 늘어나는 이유가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민원의 80%가 보험료와 관련된 것인데, 이것이 곧 부과체계 관련 민원이라는 것이다.

공단 관계자는 “보험료를 산정하는 점수 당 단가가 변하게 되면 관련 문의가 많아지고 보험료의 장기체납자는 자격변동 정보가 누적되면서 민원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계속 증가하는 민원, 알고 보면 공단 탓!

하지만 민원이 증가하는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지적이다. 공단이 보험료 부과, 징수 등의 업무를 제대로 못하기 있어서라는 것.

대한의원협회 관계자는 “공단이 매년 지역가입자의 20%가 보험료를 체납하고 있지만 그중 70%만 급여제한을 하고 있다. 보험료도 제대로 걷지 못하고 부당이득금 환수도 못하는 등 가입자 및 피부양자 자격관리와 징수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남은경 팀장은 “기존에 건보료 부과와 징수 등에 대해 이의신청이 제기되는 사례를 보면 공단이 연체 고지서를 보내지 않거나 비용 계산을 제대로 안한 경우 등도 빈번했다”면서 “지금은 민원이 너무 많아서 단편적인 안내 외에는 처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꼬집었다.

사실 엄밀히 따져보면, 공단이 주장하는 부과체계 관련 민원은 보험료에 대한 민원 전체를 의미할 뿐, 개별 사례는 파악조차 되지 않는다. 공단은 수천만 건의 민원 중에서 다빈도 민원의 유형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현재의 민원처리 절차에 민원 사례를 분석하거나 집계하는 일련의 과정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공단의 민원업무는 주로 전화, 방문, 팩스 등을 통해 이뤄진다. 먼저 전화상담은 공단 본부 및 6개 지역본부에 있는 고객센터(1577-1000)가 1차적으로 진행하는데 여기에는 공단이 아닌 콜센터 운영업체 소속 상담사 1,459명이 배치돼 있다. 1만2,000여 공단 직원에 포함되지 않는 이들은 연간 2,800만건의 전화를 받고 있으며, 평균 3분씩 하루에 102건의 상담을 처리하고 있다.

그렇다보니 이들은 민원이 접수되면 개별 상담 후 (앞서 언급했던) 7가지 업무유형별로 민원을 구분해 상담시스템에 ‘입력’하는 수준에 그친다. 해당 민원이 공단의 잘못에 의한 것인지, 민원인의 이해부족인지, 정책 건의인지 등을 구분하거나 기록하지도 않는다. 단 상담내용은 일괄 녹음해 보관하고 있다고 공단은 설명했다.

상담사 차원에서 민원을 처리할 수 없으면 각 지역 내 지사 담당자에게 민원이 전달된다. 그래서 공단이 민원업무 처리에 전 직원이 관여돼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방문 민원은 가입자가 전국 지사를 직접 찾아가는 경우를 말하는데, 접수된 민원은 서류를 작성해 보관하고 있다고 공단은 밝히고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 민원인이 참여하는 일은 없다. 사실 기자가 서울과 부산지역의 지사를 직접 방문해 보험료 미납과 부과기준에 대해 상담을 수차례 받아봤지만, 한 번도 관련 서류를 작성하라고 한 적은 없었다.

그 외 팩스로 접수된 민원은 웹팩스 시스템으로 전자적 통계관리를 하고 인터넷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민원을 처리하고 있다는 게 공단 설명이다.

문제는 공단으로 막대한 양의 민원이 제기되는데 정작 어떤 민원이 제일 많은지조차 모른다는 점이다. 그러니 어떻게 하면 민원을 줄일 수 있는지 대책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해 공단 고객지원실은 “전화 종료 시 바로 다음 콜이 연결되기 때문에 상담 종료 직전 상담 유형을 저장하고 있으며 상담완료 후 내용을 정리해 입력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사실상 ‘접수’가 최종 단계라는 이야기다.

또 “민원 모니터링 및 정확한 유형 분석을 위해서는 고가의 음성분석 솔루션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음성데이터를 텍스트로 자동 변환해 특정 단어를 키워드별로 분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대신 공단은 상담 후 사후관리가 필요한 건에 대해서 발신상담(Out Bound)을 하고 5회 이상 반복된 민원을 제기한 경우에는 출장상담을 하는 등 맞춤형 상담에 노력하고 있다고도 강조했다.

이처럼 공단의 민원 대처가 부실하다 보니, 공단이 자체적으로 민원 원인을 파악해 해결하려는 노력도 없이 부과체계 개편만 강조하는 것은 행정 편의주의적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전국의사총연합 관계자는 “부과체계 개편을 주장한 쇄신위 보고서에는 민원이 많아 직원들의 고충이 심하다며 체계를 바꿔야만 민원이 줄고 근무환경도 개선된다고 되어 있다”며 “준공무원이 자신의 업무를 편하게 하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세금이든 보험료든 연금이든 민원이 없는 경우는 없다. 어디든 다 민원은 존재한다. 합리적인 민원이라면 개선해야 하지만 단순히 민원 과중으로 인해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것은 잘못됐다”며 “불합리한 제도는 정부가 개선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일부 민원이 해소될 수는 있지만, 공단이 민원을 이유로 제도 개선을 요구했다고 해서 정부가 제도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고 분명히 했다.

국회 한 관계자도 “민원은 단순히 체계를 바꾼다고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며 “불합리한 것은 고칠 필요가 있지만 그 목적이 민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이 될 수는 없다. 이를 보고 주객이 전도됐다고 하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부과체계 바뀌면 공단 직원도 줄여야”

이제라도 공단이 부과체계 개편을 주장하는 대신 보험료 자격, 부과, 징수 업무의 내실화를 기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국회 관계자는 “제도 개편은 정부가 해야 하는 일이고 이와 별개로 공단은 자체적으로 민원을 줄이기 위해 서비스 질을 개선해야 한다. 보험료 부과체계의 틀은 수년간 그대로인데 민원이 계속 늘어나는 것은 분명 공단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또 공단의 주장대로 민원의 근본적인 원인이 부과체계라면, 부과체계 개편과 더불어 민원이 줄어들 테니 공단 인력도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경실련 남은경 팀장은 “부과체계가 바뀌면 공단의 업무 중 상당부분이 줄어들게 되니 그만큼 공단이 국민에 대한 서비스 수준을 올려야한다. 가입자에 대한 적극적인 서비스를 할 수 있도록 업무를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단 직원 1만2,677명 중 건강보험 관련 담당자는 7,139명으로 절반 이상인 57%에 달한다. 이들 중 70%인 4,928명(본부 101명, 지역본부 146명, 지사 4,671명)은 보험료 자격·부과(2,377명), 징수(2,541명) 관리 업무를 맡고 있어, 제도 개편 시 인원 감축이 필요한 곳으로 지목된다.

의협 관계자는 “공단이 그 많은 인력을 보험료 부과에 투입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이 어떠한 업무를 하는지도 제대로 파악이 되지 않고 있다”면서 “그들 말대로 제도가 개편되면 업무가 상당수 줄어들 것이고 신용카드 납부, 통합징수 등의 제도 개선에 따라 단순 부과징수인력은 축소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공단은 현재의 인력도 부족하기 때문에 감축은 어불성설이며, 오히려 1,000여명의 직원이 더 필요하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다.

공단 관계자는 “현재 지사의 경우 노인장기요양 등 업무가 과중하여 1인 다역을 소화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하다보니 각 지사에서 보험료를 담당하는 직원이 몇 명이라고 말할 수도 없는 상황이라 본부에서도 지사의 업무별 직원 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통합으로 1만여 명의 조합원이 소속된 공단 노조 역시 “공단의 주된 역할은 건보료 징수, 부과가 아니라 보험자로서의 보장성 확대와 급여확대 등이다. 4대 보험 통합으로 인해 부과업무역할이 강화됐던 것이며 향후 제도가 개선되면 기존 인력들이 본연의 역할에 더욱 집중해야지 인력을 줄인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내부 검토를 해보니 노인장기요양 업무에 1,000여명의 인원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소득중심 개편은 언제쯤?

이같은 논란 속에 정부는 소득중심으로의 전면 개편 대신 부분적으로 부과체계를 손보는 것으로 잠정 결정했다. 그동안 공단이 주장한 것처럼 소득중심 개편에 대해 부과체계 개선기획단과 11회에 걸쳐 논의해봤지만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것이다. 복지부는 아직 소득 파악에 대한 국민 신뢰가 충분하지 않고 국민 부담이 커지는데다 제도적 기반 마련이 필요하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따라서 복지부는 우선 현행 보험료 부과 체계인 직장·지역가입자 틀은 유지하되 부과대상을 종합과세소득 등으로 확대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다만 퇴직 및 양도 소득은 일회성 성격인 만큼 건보료 부과대상에서 제외하고 상속 및 증여 소득도 재산의 개념이 강해서 제외하기로 했다. 성·연령, 자동차, 재산 등에 따라 차등 부과했던 소득 외 부과요소는 축소 또는 조정된다. 지역가입자 중에 소득이 없는 이들에게는 정액의 최저 보험료를 부과하고, 저소득층의 보험료 인상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감방안도 마련한다. 또 무임승차 지적이 많았던 피부양자제도는 소득이 있는 피부양자에게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인정기준이 강화된다.

복지부는 이달 중 이같은 내용을 담은 기획단 보고서를 공개하고 내부 회의를 거쳐 정부의 부과체계 개편안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부과체계가 일부나마 개편되면 기존의 불만 중 상당수는 줄어들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부가 주안점을 두고 있는 것도 민원”이라면서 “형평성 부분을 강화하고 불합리한 점들을 개선할 것이니, 공단은 공단의 역할에 맞게 일을 처리하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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