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격의 병원들 ②세종병원

계속된 불황으로 병원 경영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오히려 이를 위기가 아닌 기회로 보고 공세적인 경영을 펼치는 병원들이 있다. 본지는 올해 초 '위기가 곧 기회다'라는 기획을 통해 주요 대학병원들의 위기타파 전략을 들었다. 이번에는 규모는 대학병원에 못 미치지만 승승장구하고 있는 '중형'병원들을 찾았다.

[청년의사 신문 문성호]

보건복지부가 국내에서 유일하게 심장전문병원으로 인정한 곳은 대한민국에서 국민이면 누구나 알만한 대형병원이 아니었다. 400병상 규모의 종합병원인 세종병원이다.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에 위치한 세종병원은 지난 1982년 개원한 후 1989년 복지부로부터 심장병 특수진료기관으로 지정된 데 이어 전문병원제도 시범사업이 진행된 2005년과 2008년에 심장질환전문병원 시범병원으로 선정됐다. 결국 전문병원제도가 도입된 2011년 '국내 유일 복지부 지정 심장전문병원'이란 타이틀은 세종병원이 거머쥐었다. 같은 해 11월에는 미국 국제의료평가위원회(JCI) 인증도 받았다. 개원한 후 지난 30여 년간 '심장'이란 한 우물만 판 결과다.

국내 심장 분야에서 독보적인 자리를 차지한 세종병원은 이제 '아시아 최고 심뇌혈관종합병원'의 자리를 넘보고 있다. 심장은 물론 뇌혈관질환 분야를 집중 육성해 2020년까지 아시아 최고의 심뇌혈관종합병원으로 도약하겠다는 것이다.

흔히 '중소병원'으로 불리는 세종병원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지난 8월 말 찾은 세종병원은 다른 병원들과 겉모습은 다를 바 없었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규모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한국의료 현실을 이겨내고 성장할 수 있었던 '특별함'이 있었다.

심장 수술 핵심은 유기적 '협진시스템'

심장 수술의 성공은 얼마나 신속하게 진료과별 협진이 이뤄지느냐가 관건이다. 심장 수술은 응급 환자가 많고, 흉부외과와 심장내과 간 영역이 겹치는 부분이 많아 협진이 필요한 순간이 자주 발생한다. 이에 따라 세종병원은 유기적인 협진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모닝 컨퍼런스'와 '전문의 24시간 원내 상주 시스템'을 구축했다.

24시간 심장전문의 원내 상주 시스템은 심장내과·흉부외과·소아청소년과·마취과·응급의학과 전문의가 '응급심장팀'을 구성하고 이들이 365일 24시간 항시 원내에 상주하는 해 '24시간 심장혈관응급센터' 운영이 가능하도록 했다. 세종병원은 응급환자 발생 콜과 동시에 심장내과 전문의를 포함한 심혈관팀의 신속한 진료가 이뤄진다. 또한 흉부외과 전문의가 원내 상주하고 있어 긴급하게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도 곧바로 수술이 가능하다.


세종병원은 개원한 이후 지금까지 6개 진료과 의료진이 모여 전날 진료한 환자들의 진단내용을 발표하고 각 진료과별 의견을 자유롭게 개진할 수 있도록 ‘모닝 컨퍼런스’를 매일 아침 갖고 있다. 진단부서(소청과·영상의학과·해부병리학과)와 치료부서(흉부외과·심장내과·마취과)가 함께 모여 각자의 진료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연구와 교육의 산실, '세종의학연구소'

세종병원은 대학병원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학술 및 연구 활동에도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병원 내 '세종의학연구소'를 설립, 다양한 연구를 진행한 결과, 국내 최초 인공심장 이식수술을 실시했으며, 인공심장을 이식 받은 송아지를 45일 동안 생존시키는 성과도 거뒀다. 부검심장을 통한 연구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사망환자가 발생할 경우 보호자 설득과정을 거친 후 부검을 통해 의료진이 진단과정, 수술과정, 수술 후 과정을 면밀히 검토하는 등 실력을 쌓아 나가고 있다.

세종병원의 내과 전공의들만을 위한 특별한 교육도 자랑거리다. 세종병원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위치한 150년 전통의 명문 드렉셀의과대학과 지난 2010년 교육 및 연구 분야 상호협력 MOU를 맺었다. 이를 통해 세종병원 내과 전공의들은 지난해부터 드렉셀의대의 주 교육병원인 하네만병원에서 파견근무 및 수련을 받을 수 있다. 이같은 메리트에 세종병원 내과로 전공의들이 몰리면서 경쟁률이 높기로 유명하다.

국내를 넘어 해외로

세종병원의 명성은 국내를 넘어 해외로 퍼지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등 독립국가연합(CIS)에서 세종병원은 '가서 치료받고 싶은 병원'으로 꼽힌다. 지난 2009년 세종병원을 찾은 순수외국인환자(치료 및 검진을 받기 위해 방문한 외국인 환자)는 9명뿐이었지만 2010년 324명, 2011년 617명, 2012년에는 1,052명(한 환자 여러 과 진료 시, 한 명으로 간주)으로 급증했다.


세종병원은 외국인 환자를 위해 2010년 10월 국내 병원 최초로 국제의료전용병동을 마련해 운영하고 있다. VVIP룸, VIP룸, 1인실 등 총 15병상으로 구성된 병동의 모든 병실에는 보호자와 간병인이 독립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과 탕비실 등이 마련돼 있다.

세종병원은 중앙아시아 최대 자원대국인 카자흐스탄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카자흐스탄 현지에 100병상 규모의 심장전문병원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일체의 투자비용 없이 의료 기술과 브랜드만으로 카자흐스탄에 병원을 설립하는 ‘대한민국 1호 의료기관’이 되는 게 목표다.

"고마워요, 세종병원"

사회공헌활동에도 적극적이다. 세종병원은 개원 초부터 국내 의료취약지역을 순회하며 무료검진을 실시, 심장질환자가 발견되면 무료로 수술도 해주고 있다. 개원 초부터 2012년까지 세종병원이 지원한 심장질환자만 1만여명이 넘을 정도다.

세종병원은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활발한 의료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24년간 1,000명 이상의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무료 수술을 실시했다. 이로 인해 중국, 몽골, 동남아시아, 극동 러시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심장병' 하면 한국의 세종병원을 떠올리는 이들이 제법 많아졌다고 한다. 이들에게 세종병원은 자국병원도 하지 못한 일을 해주는 '고마운 병원'이다.

'심장' 하나로 국내 뿐 아니라 해외 환자들의 마음까지 얻고 있는 세종병원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인터뷰 세종병원 박진식 원장

"개원 30년, 외도 없이 심장만을 바라봤다"


세종병원은 1982년 개원 이후 30년 동안 심장만을 연구, 치료하며 달려왔다. 이러한 30년 외길인생이 국내 유일 심장전문병원이란 명성을 갖게 했다. 세종병원은 현재 제2병원 건립과 아시아 뇌혈관치료중심병원이란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세종병원 박진식 원장을 만나 세종병원의 미래에 대해 들었다.

Q.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병원 간 경쟁이 심해지고 대내외적인 상황으로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 최근 병원계가 어렵다는 건 다들 알만한 얘기다. 최근 신용카드 수수료 인상, 영상수가 인하 등 병원 경영에 타격이 있을 수 있는 사안들이 많아 이제는 병원에 재투자할 여력도 없다. 병원이 하루 먹고 하루 사는 신세가 된 것이다.

Q. 이를 극복하고 발전하기 위한 세종병원만의 전략이 있다면.

- 지난 1982년 개원 초부터 세종병원은 어떤 병원도 넘보지 못하도록 심장 분야의 전문성을 키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 결과 우리나라 심장 분야에 있어 손꼽히는 병원이 됐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병원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제는 경쟁이 아닌 상생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세종병원도 최근 경기도 김포시 소재 관절전문병원인 뉴고려병원과 함께 협약을 맺고 세종병원 의료진을 파견키로 했다.

Q. 뉴고려병원과 맺은 협약이 어떤 내용인가.

- 최근 뉴고려병원에서 심혈관센터를 오픈하기로 했는데 우리 쪽에 센터를 운영해 달라고 제안했다. 심혈관 분야는 보다 전문적이고 능숙한 의료진이 투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병원들 간 경쟁관계가 아닌 서로 상생, 발전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도다. 오는 9월 5일 개소식을 앞두고 있는데 이미 세종병원의 의료진이 파견돼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Q. 오는 2017년 제2병원 건립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렇다. 인천시 계양구 작전동 소재에 현 부천 세종병원보다 더 큰 규모로 심장, 뇌혈관, 모자(母子), 척추관절 분야를 진료할 수 있는 제2병원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세종병원에 있어 중점사업으로 꼽을 수 있는데 당초 예정인 2017년에 건립이 완료된다면 서울 서북부 지역과 인천 전역을 커버할 수 있는 병원이 될 것이다.

Q. 해외환자 진료에서도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고 있다.

- 1년에 1,000여명의 외국인 환자가 세종병원을 찾는다. 이들 중 절반은 심장질환자고 나머지 절만은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려는 환자다. 종합검진의 경우도 심혈관 분야에 집중된 검진을 받기 위해서 방문한다. 병원 7층에 국제의료전용병동이 마련돼 있는데 환자뿐 아니라 가족들까지 1주일 정도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도록 공간을 준비했다. 외국인 환자 유치뿐 아니라 향후 1~2년 안에 해외에 세종병원 분소를 내는 것도 검토 중이다. 분소가 생긴다면 카자흐스탄이 유력한데 올해부터 부지 마련 등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 추진하려고 한다.

Q.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인 보호자 없는 병원 시범사업 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 복지부로부터 '보호자 없는 병원'으로 지정받았는데 이 서비스를 위해 3개 병동에 간호사와 간호조무사들을 충원하고 있다. 시범사업 선정 당시 이를 신청한 병원들이 많이 없었다고 들었다. 이는 간호부에서 시범사업으로 선정되면 그만큼 업무의 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인데 세종병원은 처음부터 간호부의 적극적인 의지 덕분에 시범사업 운영 병원으로 선정될 수 있었다.

Q.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다른 병원들에 조언을 한다면.

- 세종병원이 국내 유일 심장전문병원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본질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세종병원이 다른 길로 외도를 하지 않고 심장만을 30년 동안 바라봐 왔기 때문에 환자들이 병원을 신뢰할 수 있었고, 이게 발전의 계기가 됐다. 최근 '감성경영'이라는 것이 부각되고 있는데, 이보다 의료의 본질, 기본에 충실한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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