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남영원(서울대병원 진단검사의학과 R2 )


[청년의사 신문 청년의사]

얼마 전<병원에 가지 말아야 할 81가지 이유>, <의사를 믿지 말아야 할 72가지 이유>라는 책을 낸 ‘자칭 의학 저널리스트’ 허현회 씨가 각종 언론에서 활발하게 인터뷰 활동을 했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의사들은 이익을 얻기 위해 제약회사를 비롯한 대형 자본의 사주를 받아 극독인 합성물질을 투여하고 있으며, 담배가 암을 유발한다는 잘 알려진 사실은 다른 합성물질로 인한 폐해를 은폐하기 위한 음모로 인해 퍼진 사실이라고 한다.

그에 대한 근거는 대부분 일본 등지에서 나온 근거 없는 대체의학이나 유사과학적 서적 번역서의 2차 인용에 불과하고, 원문을 잘못 번역하거나 왜곡한 사항이 상당히 많으며, 실제 연구 논문이나 과학적인 연구를 거친 자료는 거의 전무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에 대해 근거 없는 음모론을 들이대면서 과격한 주장을 펼치는 것이 대중의 취향에는 어느 정도 맞아 떨어졌는지, 한동안 그의 저서는 대형 서점에서 건강 및 의학 분야 베스트셀러로 선정됐으며 지금까지 수만 부 가량 팔린 것으로 추정된다.

H2O는 물이 아니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규모가 작은 잡지부터 메이저 언론사까지 전혀 검증과정을 거치지 않은 채 그에 대한 호의적인 서평과 인터뷰가 수 차례 실렸고, 비과학적이며 합리적이지 않은 일방적인 주장에 대한 비판은 몇몇 언론에서만 간신히 찾을 수 있을 뿐이다. 모 인터뷰에서는 자신은 주류의사들의 탐욕을 파헤치기 위해 순수하게 일할 뿐이며, 가족에게 자신이 언제 암살당하거나 살해당할지도 모른다고 당당히 얘기해 두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심지어 트위터에서 수천 명의 팔로워를 거느리고 불특정 다수를 향해 자신의 근거 없는 주장을 매일 수 차례씩 퍼뜨리고 있다. 웹상에서는 한술 더 떠 “H2O는 물이 아니며, 염화칼슘에는 나트륨이 98%들어있고, HIV는 사실 존재하지 않는다. 세균병인론은 허구이다”등의 주장을 쏟아내고 있다.

미국의 허현회, 케빈 트루도

이와 같은 유사과학을 이용한 자칭 의료전문가들은 다른 나라에서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중 주목할 만한 케이스는 미국판 허현회라고 할 수 있는 전직 베스트셀러 작가 ‘케빈 트루도(Kevin Trudeau)’이다.

그는 2004년 자비로 <‘그들’이 당신에게 알고 싶게 하지 않은 자연 치료법(Natural Cures ‘They’ Don’t Want You to Know About)>이란 저서를 출판했는데, 이것이 주장하는 바는 거의 허현회와 유사하다. 대표적인 주장 몇 가지를 들자면, 에이즈는 애초에 전혀 존재하지 않은 질병이라는 음모론, 암을 치료하기 위해 항암치료를 하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많은 질병들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대부분 ‘생체 에너지(Vital energy)’의 불균형으로 인해 일어난다는 주장 등이 있겠다.

최소한 수백만 부 이상이 팔릴 정도로 큰 인기를 끈 이 저서를 통해 그는 막대한 수입을 올렸고, 나아가 유료 인터넷 사이트와 인터넷 쇼핑몰을 개설해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기까지 했다.

그가 언급하고 있는 주장의 근거 또한 허현회와 매우 유사했는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연구 논문을 근거로 대거나 기존에 존재하는 과학적 사실들을 부정한다든가 하는 식이다. 심지어 FDA를 비롯한 미국 정부기관과 대형 제약사들이 결탁해 자신을 핍박한다는 주장으로 자신이 주류 의학계의 음모를 파헤치는 투사라는 이미지를 형성하는 것도 유사했다.

비슷한 두 사람, 정반대인 사회

그러나 이 두 사람, 정확히는 그들에 대한 미국과 우리나라의 대처법은 확연하게 달랐다. 과학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건강법을 대중에게 홍보하고 막대한 경제적 수입을 얻은 케빈 트루도는 결국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과 연방무역위원회(Federal Trade Commission)에게 고소당해 2011년에 미국 연방 상고 법원에서 3,760만 달러(약 410억 원)의 벌금을 선고 받았다. 게다가 이후에 비슷한 글을 써서 문제를 일으킬 것을 대비해 2백만 달러(약 22억원)의 보석금을 추가로 내야 했다. 케빈 트루도를 범죄를 저지른 사기꾼으로 취급해 같은 종류의 출판을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처리한 것이다. 국내 언론에서도 ‘미국판 봉이 김선달, 판사 압박하다 철창행’이란 제목의 기사로 보도된 바가 있다.

이렇게 제대로 된 근거가 없고, 그대로 따를 경우 사람들에게 위해를 입힐 가능성이 높은 사이비 건강서적을 판매한 두 사람의 처지는 전혀 달랐고, 한 명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아무런 제제 없이 책을 판매하며 대중에게 자신의 주장을 퍼뜨리고 있다.

과연 이렇게 공익에 저해되는 내용을 퍼뜨리며 경제적인 이득을 얻은 사람들을 그대로 두는 것이 합리적인 것인지, 아니면 미국처럼 국가 기관에서 나서서 제제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일이다.

남영원 선생의 블로그 http://blog.naver.com/ bradykinesia/110170969233에서 관련 글을 더 읽을 수 있다.

케빈 트루도는 누구?


케빈 마크 트루도(Kevin Mark Trudeau, 1963년 2월 6일 ~ )는 미국의 논쟁적인 저술가이자 유죄를 선고받은 사기꾼이다. 근거 없는 각종 건강, 다이어트, 금융 관련 개선책을 홍보해 왔으며, <‘그들’이 당신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자연 치료>등의 저서에서 미국 식품의약국과 제약 사업계가 짜고 시민들을 현혹하고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이런 근거없는 주장에 대한 미국 사회의 반응은 냉정했다. 그는 1990년대에 절도 및 신용카드 사기에 대한 유죄를 선고받았으며, 1998년에는 <‘그들’이 당신에게 가르쳐 주지 않는 체중 감소 치료>에서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연방거래위원회로부터 고발당했다.

2004년에는 책 이외의 제품을 광고하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50만 달러의 합의금을 물었다.

하지만 2004년에 했던 합의를 위반해 벌금 3,760만 달러가 부과됐고, 2011년 11월 29일 연방 제7지역 항소법원은 원심을 확정했다. 또한 법정은 트루도가 앞으로 정보광고를 계속하기 위해서는 보석금 200만 달러를 내야 한다고 선고했다.

올해 4월, 트루도는 벌금을 내지 않고, 앞으로 있을 당국의 기소 조치를 회피하기 위하여 파산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인터넷 방송인 mevio에서 ‘The Kevin Trudeau Show’(사진)를 진행하고 있으며 SNS를 통해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참조 : 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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