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욱의 진료실의 고고학자-의료와 상징 3


[청년의사 신문 박지욱]

얼마 전 만난 병원 의사들은 특이한 엠블럼이 그려진 가운(사진 1)을 입고 있었다. 특이해서 뭔지 슬쩍 물어봤다.

"아, 이거요 의학의 아버지인 히포크라테스의 지팡이지요. 의학의 상징이랍니다. 처음 보세요?"

그러자 그 옆의 친구가 끼어든다.

"아니, 이 친구야, 히포크라테스의 지팡이가 아니고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지. 잘못 알고 있나 보군. 하하하, 의사들이 워낙 바쁘게 일하다 보니 이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어요…."


▲ 사진1.카두세우스가 새겨진 가운 사진2.환자가 입은 셔츠에 있는 로고. 환자는 미국 드라마 <하우스>에 나오는 로고로 의사의 상징이라고 설명했다. 사진3.헤르메스의 페타소소, 탈라리아, 케리케리온을 찾을 수 있다. 부차트 가든, 캐나다 밴쿠버 섬. 김민아 기자

아, 그렇군요…옆에 있던 동료 의사가 급히 정정을 해준다. 과학 만능의 의학인줄 알았더니 이런 신화적 상징이 있는 엠블럼을 가운에 그려 넣고 다니기도 하는구나... 가만, 자세히 보니 의성(醫聖) 히포크라테스의 지팡이도 아니요 의신(醫神)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도 아니다. '헤르메스(Hermes)의 지팡이' 즉, 카두세우스(Caduceus) 다. 아니 이게 왜 의사 가운에 붙어 있는 거지?

카두세우스 즉 헤르메스의 지팡이는 의약계에 많이 사용되는 엠블럼이다. 제우스의 아들로 로마에서는 메르쿠리우스(Mercurius) 영어로는 머큐리(Mercury)라 불리는

헤르메스가 의약과는 무슨 인연이 있을까.

어려서부터 영특하고 재능이 많아 거북 껍질로 리라(Lyra)를 발명하기도 했던 헤르메스는 아폴론의 소 떼를 훔쳐 감쪽같이 숨긴 대도(大盜)로 유명했다. 제우스의 명령을 전달하는 메신저(使者), 죽은 이를 저승으로 안내하는 저승사자, 목축의 신, 등등 여러 일을 하다 보니 나중에는 상업, 교역, 여행, 통역, 목자(牧者), 사자(使者)들이 수호신으로 삼았다. 또한 연금술사들도 헤르메스를 원조로 여겼기에 카두세우스를 자신들의 로고로 삼았다. 연금술사들은 특히나 수은(quick silver) 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수은은 영어로 mercury인데 이것은 헤르메스의 라틴어 Mercurius 에서 왔다. 결국 헤르메스/머큐리 → 수은 → 의약(醫藥)으로 인연이 닿게 됐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하고 다니는 헤르메스, 빨리 다니기 위해 모자, 샌들, 심지어 지팡이에도 날개가 달렸다. 각각 페타소스(Petasos;Petasus), 탈라리아(Talaria), 케리케이온(Kerykeion)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지팡이에는 뱀 두 마리가 휘감겨 있다(사진3). 이 지팡이의 라틴어 이름이 바로 카두세우스다.

그런데 카두세우스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상당히 비슷하게 생겼다.

아무리 비슷해도 그렇지, 왜 의사들의 가운에 아스클레피오스 대신에 헤르메스의 지팡이가? 너무 궁금해서 수년 전 카두세우스를 엠블럼으로 사용하는 대표적인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에 그 연유를 물었었다.


▲ 사진1.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 사진2.헤르메스의 지팡이 카두세우스 사진3.대한의사협회 휘장 사진4.국군의무사령부 휘장 사진5.미육군 의무단 휘장 김민아 기자

미 육군 의무부대가 사용하던 휘장을 한국군과 대한의사협회가 사용한 것이다.

이런 답변이 왔다. 미군 군의관의 로고를 가져왔다는 얘기? 마침 장롱 속에 보관돼 있던 내 군복을 꺼내 보니 과연! 내 군복 가슴팍에도 이런 휘장이 달려있었다(사진4)!

나는 공중보건의사로 병역 의무를 대신했지만 그래도 육군 대위로 임용되기 위해 국군 군의(軍醫)학교에서 군사 훈련을 받았다. 언제부터 붙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분명히 내 손으로 바느질 했을 텐데- 이 국군 의무사령부 휘장이 내 군복에도 붙어있었건만. 그것이 뭔지도 모르고 지냈다니… .

국방부에도 질의를 했다. 친절한 답변이 금세 왔다.

처음에는 미군에서 사용하던 카두세우스를 사용했다가, 1971년에 날개를 아래로 당겨 전체적으로 둥근 원 모양 디자인으로 바꿔 사용한다.

미군 의무부대의 휘장 관련성을 명확히 밝혀주었다. 이제 국군이 차용했을 미국의무부대 엠블럼을 찾아봤다.

이것이구나! 1908년부터 미 육군 의무단 US Medical Corpse;USMC에서 사용하던 엠블럼(사진5). 이 디자인은 1902년에 미군 의무사령부MEDCOM 유니폼 깃 기장에 사용했다. 이 디자인은 미군 군의관 레이놀즈(Frederick Reynolds)가 만들었는데 그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에 대해 오해를 단단히 했다.

서방의 군대, 특히 영국군이 잘못된 카두세우스를 사용하고 있다…미군은 제대로 된 카두세우스를 사용하자.

그의 주장에 따르면 오랜 전통이 있던 서방의 여러 군대들이 카두세우스를 사용하지 않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하는 것이 틀렸다고 본 것이다.


▲ 사진1.캐나다 육군 통신부대. 사천, 항공우주박물관 사진2.캐나다 육군 의무부대. 사천, 항공우주박물관 김민아 기자

사진에서 알 수 있듯 영국의 영향을 받은 국가의 군대는 확실히 헤르메스를 통신의 상징으로 사용한다. 그러므로 카두세우스를 의무부대의 상징으로 사용했을 턱이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주장대로 '제대로 된 카두세우스'를 사용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었다. 물론 다른 나라들의 군대는 '잘못된 카두세우스'가 아니라 '제대로 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그랬을 것이다. 그러면 왜 미국에서만 카두세우스를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와 혼동했을까?

혼동된 카두세우스와 아스클레피온


▲ 사진1.J & A처칠의 인쇄자 표장은 전형적인 카두세우스다. 라틴어 MEDICINA(의학) 와 LITERIS(문학)가 씌어있다. UCSF 도서관 사진2.옛 육군 제1 훈련소 터에 위치한 98육군병원 충혼비. 1952년에 세워졌다. 제주, 모슬포. 사진3.카두세우스를 사용하는 일본 자위대 위생과 사진4,5.미군에도 육군 의무사령부(US MEDCOM; 1994년부터 사용)와 육군 의무부(AMED)의 연대 문장(regimental crest)으로 1775년부터 사용한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도 있다. 김민아 기자

18세기 런던에 처칠(John Churchil)이라는 출판업자가 있었다. 그는 과학 후진국이던 미국으로 보내는 의학, 과학 서적 표지에 카두세우스를 인쇄자 표장(printer's mark)으로 사용했다. 그는 자신의 출판업이 의학(medicine) 과 문학(literature) 의 결합체로 완성되길 기원해서 두 마리의 뱀이 나란히 감고 올라가는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상징으로 썼다고 밝혔다(사진1).

하지만 이렇게 깊은 뜻은 대서양을 건너가며 떠내려 간 것 같다. 미국인들은 처칠의 의학 책에 찍힌 카두세우스가 의학의 상징이라고 해석했으니까.

19세기 이후로 미국에서는 카두세우스를 의학서적에 사용하는 일이 부쩍 많아졌고 그런 오해가 결정적으로 확산되는 데는 앞서 이야기한 미군 의무부대 역할도 컸다.

이런 오해는 태평양 건너 우리나라에도 고스란히 전파됐다. 광복이 되고 미군이 우리 땅에 진주했다. 미 군정 의무부대는 반짝이는 카두세우스를 유니폼에 달고 있었고 일제의 압제에서 벗어난 우리 의사들은 이것을 서양 의학의 상징으로 이해했다. 그래서 민간이나 군대나 가릴 것 없이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육군 제1훈련소가 있었던 제주도 모슬포에 초창기 카두세우스가 새겨진 충혼비가 지금도 남아 있어 원형을 알 수 있다(사진2).

이 지팡이를 보면 정말 국방부의 답변대로 전체적으로 미국의 것과 유사하다. 다만 우리 군은 지팡이의 꼭지에 횃불을 달았다. 국난의 시기에 구국의 횃불이 되자는 간절한 바람을 담았을까? 이 모양에서 날개를 아래로 당겨 내려 국군의 엠블럼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의무부대 중 카두세우스를 쓰는 나라는 또 있을까? 필자의 조사에 의하면 미국 외에 우리나라와 일본이 있다. 일본 역시 제2차 대전 후에 미국이 군정을 편 나라이니 미군의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사진3).

그렇다면 이것을 새로 고쳐야 할까? 미군의 경우를 참고해보자.

이 디자인이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미군은 엠블럼 교체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의무부대라 해도 의사 외에 더 많은 종류의 전문 인력들이 일하는 곳이니 꼭 의사만의 상징으로 엠블럼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것이 미군의 결론. 일리가 있다. 적어도 미국에서는 카두세우스가 광범위한 의료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으니까.

그런 맥락으로 본다면 어찌 됐던 우리 국군의무부대 휘장도 면죄부를 얻게 된다. 의무사령부 소속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군의관, 간호장교, 위생병,…얼마나 많은데...

하지만 10만 명에 이르는 한국 의사를 대표하는 직능 단체 대한의사협회는 어떨까?

대한의사협회의 휘장 변천사

우선 미군 의무부대의 엠블렘이 우리나라 의사협회에 끼친 막대한 영향을 보자. 먼저 우리나라 의사협회 휘장 변천사다.

1947년에 남한 지역에서 <조선의학협회>가 결성되었고 적십자(!) 로고를 기본 바탕으로 삼아 ‘의신(醫神)’ 을 배치하고 조선의학협회(Korean Medical Association)를 뜻하는 영문 K.M.A. 를 넣은 최초의 휘장이 정해졌다. 휘장에 영어만 쓰여 진 것으로 보아 군정(軍政)을 실시하던 미국의 영향이 컸던 것을 알 수 있다.

1964년에 휘장을 개정하는데 그 사유는 휘장에 우리 문자가 없어 '독립국가의 느낌이 감살 된다'는 점, 그리고 K.M.A.가 육군사관학교Korea Military Academy의 약자이기도 해 헷갈릴 수 있다는 점 등등. 하지만 이 때 휘장이 개정되면서 뱀 한 마리가 사라지는 쾌거를 얻는데(!), 이 무렵에도 뱀 두 마리가 의사협회의 상징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인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여전히 날개는 남아,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아주 독창적인 도안이 되고 말았다.

1973년에 개정된 세 번째 휘장은 그리스 신화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지고 지구 모양에 태극 문양을 사용했다.

하지만 1996년에 ‘의신’이 빠진 심벌은 의사단체의 심벌로 부적절하다고 카두세우스가 다시 '복권'된 엠블렘이 채택되어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뱀 하나를 떼기는 어려워도 붙이기는 쉬운 것 같다.

그러면 다른 나라의 의사협회 엠블렘들은 어떤지 한 번 살펴 볼까?


▲ 왼쪽부터세계보건기구WHO,세계의사협회, 미국, 영국, 일본, 이스라엘, 이스라엘, 싱가포르, 중국, 대만의사협회 휘장 김민아 기자

의사들로만 이루어진 것도 아닌 국제보건기구WHO와 한국전쟁에 의료지원단을 파견한 사실을 기념하여 국방부가 건립한 에는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가 보이는 것은 좀 특이하다.

세계의사협회는 물론이고 미국, 영국, 일본, 이스라엘, 싱가폴 그리고 심지어는 중국(베이징)과 대만(타이뻬이) 의사회도 모두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의사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다.


▲ 사진1,2,3.말레이지아, 홍콩, 터키 의사협회 김민아 기자

반면 말레이지아, 홍콩, 터키, 그리고 우리나라는 카두세우스를 쓰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그 산하의 여러 단체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에 반하여 꿋꿋하게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를 사용하는 국내의 의사 단체들도 있다 .


그렇다면 카두세우스는 무조건 틀리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는 무조건 옳다, 로 생각해야 할까? 꼭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상징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석이 있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헤르메스의 지팡이를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로 오해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실수이고 고쳐야 한다.

자, 이쯤에서 정리 해볼까. 대한의사협회가 현재의 카두세우스를 앞으로도 그냥 사용한다면 어쩌겠나? 앞으로 국내에도 영리병원제도가 도입되고 의협도 이 취지에 동의한다면 '상업의 신'인 헤르메스이 지팡이도 맞는 엠블렘이 된다. 오히려 선견지명이 있다고 해야 하겠지. 하지만 헤르메스 신의 여러 기능 중 이것 때문에 절대 의사들의 상징과는 어울릴 수 없다.

Hermes psychopompos

죽은 이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자! 저승사자인 헤르메스의 역할은 영 아니지 않은가? 지금이라도 혹시 잘못 오해하여 카두세우스를 사용한다면 어서 빨리 제대로 된 지팡이,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로 바꿔야 한다.

몇 년 전부터 바꾸라고 주장해온 필자의 노력이 의협의 마음을 움직였을까? 최근에는 전에 못 보던 엠블렘이 슬슬 보인다. 카두세우스와 아스클레피안이 공존하는 아이러니가 새로 생긴 형국이다(사진5). 왜 이렇게 된 거지? 새로운 엠블럼으로 빠뀐다면 그 이유를 회원이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 의미를 모르는 엠블럼은 상징이 아니라 그저 그럴듯한 그림 조각에 불과하니 말이다.

<의료와 상징> 편을 마칩니다.

자료 사진을 보내주신 동아대학교 의과대학 신경과학교실 김종국 교수님과 UCSF 도서관에서 문헌을 찾아 주신 제주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 신경과학교실 최재철 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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