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없는 정책으로 중독 부추겨…부처별 따로 보는 중독관리정책중독자 치료 시스템도 제각각, 치료 필요한 병이란 인식도 낮아


[청년의사 신문 송수연]

술을 핑계로 대는 성범죄가 끊이지 않고, 온라인 게임에 빠져 살인까지 저지르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 8명 중 1명이 알코올, 인터넷, 도박, 마약에 빠져 살고 있지만 그 심각성에 대해서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중독 전문가 단체인 ‘중독포럼’에 따르면 2011년 현재 알코올 중독자는 155만명, 인터넷 중독자는 233만명, 도박 중독자는 220만명, 마약 중독자는 10만명으로, 우리나라 인구 약 5,000만명 중 618만명이 4대 중독에 빠져 있다. 중독으로 진료 받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있다. 알코올 중독으로 진료 받은 사람은 2003년 7만2,938명에서 2010년 10만8,340명으로 7년 동안 49% 증가했으며, 병적도박으로 진료 받은 사람도 2007년 519명에서 2011년 706명으로 4년 만에 36% 증가했다.


4대 중독에 빠지는 사람들이 늘수록 이에 따른 사회경제적 비용도 증가해 중독포럼은 그 비용이 연간 109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는 흡연(최대 5조9,381억원), 암(11조3,000억원) 등 다른 질병의 사회경제적 비용에 비해 매우 높은 수치다.

취약계층으로 갈수록 중독률이 높다는 점도 문제다. 중독포럼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의 경우 일반인에 비해 알코올 중독률이 상대적으로 더 높게 나타난다”며 “한 부모 가정의 자녀, 중증 장애 청소년, 실업자 등 일반적 사회취약계층의 인터넷 중독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중독이 빈곤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은 심각하지만 이를 통제할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게 더 큰 문제다. 언제, 어디서든 술, 인터넷 게임, 도박을 접할 수 있으며 4대 중독을 관리하는 부처도 제각각이다. 중독 문제를 해결할 국가적인 전략도 없고 인프라도 취약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현재 4대 중독과 관련된 업무는 국세청부터 문화체육관광부까지 다양한 부처로 분산돼 있다. 또 중독을 유발하는 산업을 관리하는 부처와 중독 발생을 규제하거나 예방·치료하는 부처 간 업무 분담도 모호한 상태다. 이렇다보니 정부가 일관된 정책을 추진하기 힘들고 부처 간 이해관계가 상충돼 효과적인 중독 관리 대책이 나오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실질적인 주류 판매와 허가에 대한 통제를 담당하는 국세청에서 전통주 우대 정책처럼 산업계의 이해를 반영한 정책을 내놓는 게 하나의 예다. 또 인터넷의 경우 행정안전부, 문화체육관광부, 여성가족부 등에서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지만 인터넷 게임에 대한 시각은 부처별로 차이가 있다.

4대 중독별 관할 부처도 달라 알코올은 보건복지부, 마약은 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 도박은 국무총리실 산하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이하 사감위), 인터넷 게임은 행안부·문광부·여가부·교과부·복지부에서 맡고 있다. 더욱이 부처별로 협력구조도 존재하지 않은 채 따로 움직이다보니 중독 문제가 심각해질 때까지 관리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손 놓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독을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국가차원의 거버넌스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여러 부처가 관여하지 않고 복지부가 주도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알코올 문제만 봐도 지난 2006년 발표한 국가알코올종합대책 ‘파랑새플랜 2010’ 이후 후속대책이 나오지 않고 있다. 마약 중독에 대해서는 종합대책이 수립된 적이 없으며 도박 중독도 마찬가지로 별도 기금으로 도박중독예방치유센터만 설치해 운영하고 있을 뿐 종합대책은 없다. 인터넷 중독의 경우 행안부에서 지난 2010년 교과부·복지부 등 6개 부처와 16개 시·도가 참여하는 ‘I-ACTION 2012’라는 인터넷 중독 예방 및 해소를 위한 종합계획을 수립했지만 부처간 문제 접근 방식이 달라 혼란만 야기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때문에 중독과 관련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추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중독포럼은 대통령 직속이나 국무총리 산하에 ‘국가중독문제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중독 예방 등에 필요한 법이나 정책 등을 마련하고 복지부 내에 중독성 질환 예방관리 기능강화를 위한 전담부서인 ‘중독관리과’를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또 (가칭)국립정신건강원에 중독관리센터를 설치해 전국적인 중독관리사업을 관리하고 지자체별로도 중독관리센터를 설치해 관련 사업을 관장하는 체계를 구축하자고도 했다.

중독포럼 운영위원인 가톨릭의대 정신건강의학과 이해국 교수는 “알코올 중독을 제외한 나머지 행위 중독에 대해서는 복지부의 조직적인 참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관련 산업을 인허가하는 부처가 참여하고 있어서 신뢰성 있고 타당성 있는 정책을 구현하기 힘들다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립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이계성 전문의는 “중독 관리의 가장 큰 문제는 개별적으로 나뉘어 있는 영역을 묶어서 관리할 거버넌스가 없다는 것”이라며 “복지부에서도 중독 문제를 다룰 부서와 인력을 만들고 다른 부처와 협력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중독자 치료 시스템 부재

중독 관리를 위한 국가차원의 종합대책이 없다보니 중독을 예방하거나 중독자를 치료할 전문 인력이나 시스템도 취약하다. 중독 예방을 위한 모델이 정립되지 않아 효과적인 예방사업이 진행되지 못하고 있고 다른 질환에 비해 치료도 표준화돼 있지 않다.

그렇다고 정부가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정부부처별로 중독 관련 치료서비스를 제공하고는 있지만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알코올 중독은 병원이나 보건소, 알코올상담센터(전국 47개소), 정신보건센터 등에서 치료하고 있으며 마약은 국공립병원 포함 19개 치료보호 의료기관과 교정시설, 보호관찰소 등에서 맡고 있다. 관련 부처가 가장 많은 인터넷 중독의 경우 행안부와 여가부, 교과부, 문광부마다 상담센터를 별도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중독포럼 측은 “정부 부처 별로 운영 중인 행위 중독 관련 치료서비스 제공 및 효과성 평가 등이 보건의료서비스 원칙에 근거하지 않고 표준화 돼 있지도 않다”며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또한 중독이 심각해지기 전에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도, 치료할 수 있는 인프라도 부족하다. 일차의료기관에서 중독자를 선별해 전문적인 치료를 받도록 인계하는 제도적 장치가 없으며 치료도 대부분 상담 중심으로 진행돼 심한 중독 문제에 대한 의료서비스 제공이 취약하다. 표준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할 전문 인력을 양성하는 체계도 없다.

이해국 교수는 “치료 프로그램이나 접근성이 높은 지역 사회 치료기관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알코올상담센터도 전국에 47개소밖에 되지 않고 전국적으로 퍼져 있는 정신보건센터는 중독을 다룰 여건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전문치료기관의 경우 알코올 중독 환자나 도박 중독 환자의 입원 수요는 늘고 있지만 일반적인 정신과 치료보다 비용이 많이 들고 다양한 직역에서 치료자로 참여해야 하기 때문에 수가나 인센티브가 보장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시설에 수용해 치료하는 방식으로 가게 된다”며 “수용해서 장기적으로 치료하는 식으로 가다 보니까 자발적인 치료를 꺼리게 돼 치료가 늦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중독은 조기에 발견해서 치료하는 시스템이 중요하다”며 “외국의 경우 주취 관련 범죄는 의무적으로 치료를 받도록 하고 있다. 우리도 중독을 조기에 선별해서 치료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술·게임·도박에 관대한 문화

국가적인 종합대책을 마련하고 치료 시스템을 구축한다고 해도 중독을 질환으로 보고 알코올, 도박, 인터넷 게임 등에 접근하는 걸 제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나라는 누구든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술을 마실 수 있으며 주취자에 대한 처벌 규정과 수준도 미비하다. 다양한 매체를 통해 노출되고 있는 주류 광고 규모만 1,000억원대에 달할 정도다(‘국내 미디어 주류광고 분석’ 2011년 한국알코올과학회지). 반면 음주폐해를 줄이기 위한 캠페인이나 홍보 예산은 5억7,600만원(복지부 2012년 예산)으로 주류광고의 0.5%에 불과하다.

도박 등 사행산업에 대한 노출과 접근성도 꾸준히 늘어 카지노 이용객은 2001년 153만명에서 2010년 504만명으로, 경마는 1,336만명에서 2,181만명으로, 경륜은 480만명에서 941만명, 경정은 45만명에서 329만명으로 증가했다. 이는 사행산업의 허가와 운영을 규제할 수 있는 권한이 여러 부처에 분산돼 있어 효과적인 규제 장치가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나마 인터넷 중독의 경우 ‘셧다운제도’(16세 미만 청소년 심야시간 게임접속 차단)를 도입해 사용제한 정책을 펴고 있지만 중독을 예방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여가부의 ‘강제적 셧다운제’와 문광부의 ‘선택적 셧다운제’(게임시간 선택제)가 시행되고 있지만 스마트폰은 제외되는 등 범위가 제한적이다. 청소년의 PC방 출입시간도 제한하고는 있지만 위반 시 처벌이 약해 효과가 크지 않다.

국립서울병원 이계성 전문의는 “많은 예산과 에너지가 알코올과 도박, 마약 중독에 투입돼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던 차에 인터넷 게임 중독이 급증하기 시작했다”며 “결국 모두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가 되면서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가톨릭의대 이해국 교수는 “중독에 대해서는 치료가 필요한 병이라는 인식이 너무 낮다”며 “치료하지 않으면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공공에서 치료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종합대책 수립에 나선 복지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는 4대 중독을 관리하기 위한 움직임이 정부 내에서도 일기 시작했다. 복지부는 중독포럼과 함께 4대 중독에 대한 국가종합대책을 마련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는 각 부처별로 4대 중독과 관련 대책을 수립하다보니 효율적인 관리가 힘들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중독과 관련된 부처들이 산재돼 있어 통합적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내부적으로 안을 만들고 나서 부처간 협의를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는 중독을 질환으로 보는 인식 자체가 없었다. 주변에 알코올 중독자가 있어도 술을 남들보다 조금 더 마시는 정도라고 생각하고 전문적인 치료나 관리는 하지 않는다”며 “4대 중독에 대한 종합적인 대책을 수립하고 관계부처와 협의한 후 그에 따른 실행 계획을 세울 예정”이라고 했다.

복지부는 관련 부처간 의견을 조율해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 추진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 만큼 소관 업무인 알코올 중독 예방 활동부터 시작할 계획이다. 운신의 폭이 좁다는 의미다. 복지부 관계자는 “알코올 중독 문제는 복지부 내에서만 검토하면 되지만 다른 중독 문제는 여러 부처가 얽혀 있어서 합의해서 대책을 마련해 발표하는 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건전한 음주 문화를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부터 개발해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와는 별도로 4대 중독 문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도 새 정부의 정책 방향을 수립하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4대 중독 종합대책안’을 전달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기로 했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4대 중독 문제를 이슈화해 해결하려는 정부 안팎의 노력이 어떤 결실을 맺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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