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방특위 등 '한방재활의학' 표절 고소…이유는 정부의 '의료행위' 인정 검토본지 관련 교과서들 자체 비교 분석 결과 '표절' '도용' 개연성 충분해


[청년의사 신문 김정상]

대한의사협회 산하 한방대책특별위원회(위원장 유용상, 이하 한방특위)와 대한재활의학회, 대한물리치료사협회는 왜, 지금 한의학 교과서 표절 문제를 들고 나왔을까.

이들은 한방물리요법 교과서로 쓰이는 ‘한방재활의학 제3판(한방재활의과학회 편저)’이 현대의학의 교과서인 ‘재활의학(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비롯해 ‘정형외과학’, ‘스포츠과학’ 등을 광범위하게 표절했다고 주장하며, 지난 10일 서초동에 위치한 서울중앙지검에 고소장을 접수했다.

하지만 이 한방재활의학이란 책은 최근 출간된 것이 아니다. 3판에 걸쳐 나온, 이미 수많은 한의대생 교육에 사용돼 온 교과서다. 그럼에도 최근 ‘표절’ 문제가 불거진 것은 한의계가 한방물리요법 34개 항목을 의료행위로 인정받고자 하는 배경이자 근거로 이 교과서를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즉, 34개 항목을 교육을 통해 학생에게 가르치고 있는 만큼 한방의료행위로 인정해야 한다는 것. 의료계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한방재활의학’은 어떤 책과 얼마나 유사하기에 표절 시비에 휘말렸을까.

‘한방재활의학’과 ‘재활의학’은 같다?

한방특위는 고소장에 언급된 표절의 구체적인 사례를 공개하지 않고 “일부 챕터(장)가 70%까지 유사한 경우가 있었고, 오탈자를 비롯해 한 쪽이 전부 똑같은 경우도 있었다”며 “단순히 실수라고 볼 수 없고 의도적인 카피 앤 페이스트(Copy and Paste)”라고 주장했다.

이에 본지는 대한재활의학회가 관련 전문가 수십명의 도움으로 표절 여부를 조사한 자료(법률 자문까지 마침)를 단독으로 입수해 표절 및 도용을 주장하는 부분에 대해 살펴봤다. 또한 본지 자체적으로도 ‘한방재활의학 제3판’과 ‘정형외과학 5판’을 직접 구입해 비교해 봤다(표 참고). 그 결과 표절 및 도용됐다고 의심할 만한 개연성은 충분했다.

우선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한방재활의학’은 ▲재활의학 2, 3판(군자출판사 2002년, 2008년) ▲정형외과학 3, 5, 6판(대한정형외과학회 지음, 1999년, 2004년, 2006년) ▲스포츠의학(오재근 등 지음, 한솔의학서적 2008년) 등을 비롯해 ▲해리슨내과학 ▲신경외과학 ▲전기치료학 ▲광선치료 ▲피부과학 등을 광범위하게 표절, 도용한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재활의학’이었다. 일례로 2011년 발행된 한방재활의학의 22쪽을 보면 ‘만성 통증은 증상이 아닌 하나의 질병으로 급성 질병이나 손상의 일반적 치유기간보다 길게 지속되는 통증을 말하며 급성 통증과는 다르다’고 게재돼 있다. 2008년 발행된 재활의학 3판 490쪽에 나온 ‘만성 통증은 증상이 아닌 하나의 질병으로 급성질병이나 손상의 보편적 치유기간보다 길게 지속되는 통증을 말하며 급성 통증과는 현저히 다르다’와 비교할 때, ‘보편적’이 ‘일반적’으로 바뀌고 ‘현저히’라는 단어 하나가 빠진 것을 빼면 똑같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인용’일 수 있다. 그러나 해당 서적 참고문헌에는 ‘재활의학’을 명시하지 않았다. 재차 강조하는 바지만 이 책은 ‘교과서’다.

표절은 ▲내용을 참고했을 경우 참고문헌을 표시했는지 ▲참고문헌을 표시했더라도 그대로 전재할 경우 따옴표를 넣고 주석을 달아 인용표시를 했는지 ▲6단어 이상 연속해서 표현이 같을 때 인용표시를 했는지 등에(교과부 제시 기준) 따라 판단된다.

일부 내용은 아예 한 쪽 가량을 그대로 옮긴 부분도 있었다. ‘정형외과학 제5판’ 564쪽(탈구의 진단)에 있는 ‘각 관절의 특정 방향으로의 탈구시 특징적인 자세를 보이므로 진단이 가능하다. 고관절의 후방 탈구시에는 이환된 고관절의 굴곡, 내전, 내회전 변형 및 하지의 현성 단축이 일어나고 전방 탈구시에는 외전, 외회전, 변형 및 하지의 현성 신연이 일어난다’는 부분은 한방재활의학 5장 사고와 상해의 ‘탈구의 증상(194p)’ 부분과 완전히 똑같았다. 이 경우 해당 장 마지막에 참고 문헌을 표시했지만, 그대로 전재할 때는 따옴표를 넣고 주석을 달아 인용표시를 해야 한다는 기본적인 규정을 지키지 않았다. 대한재활의학회 등에 확인해 보니, 저자의 동의를 구한 적도 없었다.

“밥그릇 싸움으로 비칠까봐…”

대한재활의학회가 ‘한방재활의학’의 내용 중에서 표절 또는 도용이라고 의혹을 제기한 부분은 총 200여 곳이 넘었다. 특히 학회 측은 ‘재활의학’ 개정판이 발간된 후 2~3년 후 ‘한방재활의학’이 개정되면서(2003년 2월 초판, 2006년 3월 2판, 2011년 3월 3판), ‘재활의학’ 개정판에 추가되거나 빠진 내용을 반영했다는 점에도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대한재활의학회가 진행한 표절 조사에 참여한 한 대학병원 재활의학과 전문의는 “정말 노골적으로 베꼈다. 아마도 의사들이 해당 교과서를 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것 같다”고까지 말했다.

관련 학계에서는 10년 가까이 이런 상황을 정말 모르고 있었을까?

이에 대해 대한재활의학회 이상헌 정책이사는 “한방재활의학의 표절은 2006년 해당 서적이 제2판을 발행했을 때부터 인지하고 있었다”며 “제3판이 발행됐을 때는 국내 대형병원 전임의들이 해당 서적의 표절 여부를 집중적으로 살피는 자리를 갖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 이사는 “그러나 교과서 표절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의료계-한의계 불필요한 분란을 조장할 수 있다는 판단에 그동안 공개를 유보해 왔다”며 “하지만 최근 해당 서적이 한방의료행위 인정은 물론 현대의료기기 사용에 근거자료로 활용되면서 국민건강에 위해를 가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학회 내에서 제기돼 해당 자료를 수집해 증거자료로 제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논란의 중심 한방재활의학회는 有口無言

현재 고소·고발을 당한 ‘한방재활의학’의 저자인 한방재활의학과학회는 아무런 입장을 내놓지 않고 무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방특위 등이 고발한 직후 한방재활의학과학회 임형호 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언급할 내용이 없다”고만 했다. 이후 학회 측 입장과 향후 대응 여부를 묻고자 십여 차례 전화를 시도했지만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반면 한방특위는 한의계의 영역 침범에 대한 공세를 한층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한방특위 유용상 위원장은 “한의계는 자신의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노력보다는 한의사 면허로 할 수 없는 의료행위에 욕심을 부리고 있다”며 “이런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현대의학의 서적을 표절하는 등 부끄러운 행위를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 위원장은 이어 “재활의학을 시작으로 향후 의료계 다른 분야의 현대의학 침범 사례를 감시하고 이에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인터뷰 대한재활의학회 이상헌 정책이사(고대안암병원)

“표절 교과서를 근거로 제시한 것은 국민 기만”


Q. 최근 한의계의 한방물리요법 의료행위 인정요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 뜸, 부항 등 전통적으로 한방물리요법에 해당하는 내용에 대해 의료행위를 인정해 달라는 요구는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의사가 현대의료기기를 이용한 치료에 대해 의료행위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게다가 그 근거로 현대의학 서적을 표절한 교과서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다.

Q. 의료기를 이용한 한방물리요법은 무엇이 문제인가.

- 최근 논란이 된 복지부 유권해석은 물리치료 의료기기를 간호조무사가 조작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것처럼 해석될 여지가 충분하다. 물리치료 의료기기 대부분이 상당한 위험이 있을 수 있어 전문의 판단에 따른 처방이 있어야 하고 전문적인 교육을 받은 물리치료사가 해당 업무를 진행해야 한다. 결국 한의사가 전문영역이 아닌 것을 처방하면 올바른 처방이 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Q. 국민건강을 위협한다고 주장하는데.

- 실질적인 물리치료는 진단, 처방, 치료가 같이 가야 한다. 어떤 환자들은 병의 진행에 따라 초음파 치료나 전기 치료를 하면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결국 진단도 제대로 되지 않고, 치료도 전문적이지 않아 국민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Q. 고소 고발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은.

-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법원의 객관적인 판단에 따라 해당 서적이 표절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다. 또 이를 통해서 이번 사건처럼 터무니없는 일이 다시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


▲ 본지에서 확인한 주요 표절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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