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국회 토론회서 “현 상태로는 못 버틴다…보건의료 뉴딜 필요” 강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의 전쟁이 시작된 지 5개월이 지났다. 장기전은 이미 시작된 셈이지만 의료체계는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제도 정비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으면 코로나19 환자뿐만 아니라 다른 질환자의 피해도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의료기관 내에서 코로나19 외에 다른 질환 진료도 소홀해지지 않도록 ‘듀얼 시스템’이 자리 잡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같은 지적은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이 ‘코로나19, 2차 대유행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지난 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개최한 국회 긴급 정책토론회에서 쏟아졌다.

이번 토론회는 청년의사와 보건복지부 후원으로 열렸으며, 대한감염학회, 대한결핵 및 호흡기학회, 대한소아감염학회, 대한예방의학회, 대한응급의학회, 대한중환자의학회, 한국역학회, 대한병원협회가 참여했다. 토론회는 청년의사 유튜브 채널 K-헬스로그에서 생중계됐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은 지난 3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코로나19, 2차 대유행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라는 주제로 국회 긴급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코로나19 사태는 다른 질환 진료에도 영향을 미쳐 사망자가 증가하는 현상을 불러왔다.

한국역학회 김동현 회장(한림의대 사회의학교실)은 “코로나19로 사망한 사람 못지않게 초과 사망자가 보고되고 있다”며 올해 1/4분기 초과사망자가 전년 동기 대비 6.0% 증가했다고 밝혔다. 특히 코로나19 환자가 대규모로 발생한 대구와 경북은 각각 10.6%와 9.5%로 그 비율이 높았다. 서울은 6.5%였다.

김 회장은 “미국의 경우 암이나 CVD(cardiovascular disease, 심혈관질환)로 인한 초과 사망자가 관찰된다”며 “코로나19에 의료기관의 대응이 집중되다보니 다른 질환 사망자가 증가하는 양상이 보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은 “실시간으로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응급실과 ICU(중환자실) 기능을 유지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일반 의료기관으로 코로나19 환자가 유입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호흡기증상 집중 클리닉을 운영해야 한다”며 “지금부터 준비를 시작해도 9~10월까지 제대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갖추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회장은 “포스트 코로나19라고 하면 뉴딜 얘기가 나온다. 보건의료 뉴딜부터 출발해야 한다. 보건의료 분야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며 “단순히 수당을 챙겨주는 게 아니라 방역 인프라를 갖출 수 있도록 사회적 합의를 통해 뉴딜 차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이 (의료체계를 정비할) 골든타임이라고 보기에 마음이 급하다. 골든타임을 잘 활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도 했다.

대한감염학회 백경란 이사장(삼성서울병원)은 코로나19와 일반 진료가 양립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 이사장은 “코로나19 장기전을 대비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는 올해도, 내년에도 계속될 것이다.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버텨야 한다”며 “스페인 독감 때처럼 올해 가을 더 큰 유행이 올지, 의료역량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반복될지는 골든타임에 어떤 준비를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말했다.

백 이사장은 “코로나19와 비(非)코로나19 환자 치료가 같이 가야 한다. 이 두 가지를 같이 가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며 “코로나19 환자를 중증도에 따라 치료하고 비코로나19 질환의 응급치료와 수술, 분만 등도 원활히 진행되도록 시스템을 준비해야 한다. 자원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사용하는가가 관건”이라고 했다.

백 이사장은 이어 코로나19 검사만을 위한 선별진료소 기능은 보건소로 일원화하고 중환자실과 수술실, 분만실, 소아전담 병상수를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환자 치료 인력과 개인보호구 등 의료장비 확충 방안도 구축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또 “국민에 대한 정보 공유는 잘되고 있지만 정부와 의료진, 정부 부처 간 정보 공유는 부족한 것 같다”며 실시간 현황 파악이 가능한 국가위기대응의료정보망 구축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지금과 같은 구조로는 더 이상 버티기 힘들다고 지적했다. 의료 인력도 병원 경영 상태도 한계에 달했다는 것이다. 의료계의 ‘희생’과 ‘열정페이’만으로 코로나19와 장기전은 불가능하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였다. 다음은 토론자들의 발언요약.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
“K-방역 성공? 샴페인 너무 일찍 터뜨렸다”

울산의대 예방의학과 이상일 교수

이상일: 우리나라 코로나19 방역을 ‘K방역’이라며 성공사례로 수출해야 한다고 하지만, 성공으로 보기에는 이르다.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린 것 아닌가. 낙관적인 시나리오로 아무리 빨리 해결된다고 하더라도 내년 말까지는 가지 않겠나. 24개월로 봤을 때 이제 5개월 지났다.

K-방역 성공은 일부의 성공이다. 학습능력 측면에서는 메르스 이후 보완된 부분이 있지만 충분히 보완되지 못했다. 인력과 예산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전시상황을 생각하지 않고 대응해 문제가 있다. 그나마 점수를 잘 줄 수 있는 부분은 대응역량이다. 하지만 돌발 상황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할 수도 있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중환자 진료 역량이다. 현재도 중환자 치료 병상에 허수가 많다. 코로나19 사태가 아니더라도 중환자 병상은 부족하다. 항체검사도 빨리해야 한다. 지역사회 감염이 얼마나 됐는지에 따라 정책의사결정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지쳐 쓰러진 뒤 2차 대유행 오면 어떻게 하나”

가천대길병원 감염내과 엄중식 교수

엄중식: 의료현장에서 코로나19에 대응하려면 의사와 간호사뿐만 아니라 폐기물 관리 및 청소, 진료 보조, 보안, 행정 등 많은 인력이 필요하지만 그 만큼 채용을 못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해 기존 인력들이 장시간 일할 수밖에 없으니 위험이 증가한다. 장비를 사고 시설을 만드는 건 보상이 되지만 추가 인력 채용은 보상도 안 된다. 보안은 파트타임인데 지금은 30만원을 줘도 못 구한다. 이런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장기전은 어렵다. 감염병 유행이 큰 폭으로 오면 현재 상태로는 버티기 어렵다.

병원 대부분이 손실이 발생해도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국가지정격리병상을 운영해서 확진환자를 보거나 감염병전담병원으로 지정된 곳은 그나마 국민건강보험공단을 통해 보상을 신청할 수 있다. 하지만 보상 청구를 하는 게 감사를 받는 기분이다.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 장비를 사라고 해 놓고 일정 액수가 넘어가면 자부담이 생긴다. 이게 제대로 된 보상인가.

보건의료 분야 뉴딜이 필요하다는 의견에 공감한다. 모두 지쳐서 쓰러진 뒤 2차 대유행이 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사전에 충분한 보완이나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김석찬 교수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서울성모병원 호흡기내과 김석찬 교수

김석찬: 아직도 감염내과, 호흡기내과 의료진은 심각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잘 버티기는 했지만 지쳐가고 있어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참 대구·경북에서 큰 문제가 됐을 때 코로나19 환자 현황을 호흡기내과 전문의나 중환자를 보는 의사들도 몰랐다. 중환자나 인공호흡기를 단 환자는 얼마나 되는지, 환자들이 어떻게 나빠지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었다. 그래서 의료진이 직접 집계했다. 환자 전원을 결정할 수 있는 컨트롤 타워도 없었다. 직접 환자를 보고 있는 의료진끼리 환자 전원 여부를 의논해야 했다.

특히 중환자 진료를 하는 간호사 수가 부족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의사보다 간호사가 업무량이 3~4배 이상 많고 힘들다고 한다.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도 같이 견딜 수 있는 시스템을 확충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이 없다면 2차 대유행은 견디기 어렵다.

대한응급의학회 허탁 이사장
“응급실에 충분한 격리실 마련할 수 있어야”

대한응급의학회 허탁 이사장(전남대병원)

허탁: 코로나19 감염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중증 응급환자의 경우 수술과 치료, 입원 등에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대구·경북 중심으로 많은 환자가 병원에 입원하지 못하고 전전했다. 지금도 현장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경계에 있는 환자를 응급실에서 진료하려면 충분한 격리실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해 응급실이 폐쇄되고 마비되면 ‘의료붕괴’가 올 수 있다.

응급의료나 중증환자 치료체계를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지방정부가 나서야 한다. 서울, 경기는 하는 시늉이라도 하지만 다른 지역은 매우 열악하고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한병원협회 코로나19비상대응본부 이왕준 실무단장
“코로나 환자 맹장 수술에 23명 투입, 수가는 그대로”

병협 코로나19비상대응본부 이왕준 실무단장

이왕준: 모든 정책에 장기전이라는 개념이 없다. 이미 의료현장은 장기전으로 접어들었는데, 의료체계는 전환되지 않고 있다. 의료 인력이 지쳐가고 있다. 메르스(MERS)의 악몽은 2개월이었다. 그러나 코로나19는 벌써 5개월째다. 격리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들이 못 하겠다고 쓰러지면 다른 간호사들에게 대신 들어가라고 할 수 없다. 누가 들어가겠는가. 휴가도 주고, 보너스도 주고, 위험수당도 줘야 하지만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

격리병동에 있는 환자 7명을 보는데 최소 21명의 간호사를 전담으로 배치해야 한다. 간호관리료 2등급보다 4배가 들어가는 셈이다. 실제 맹장이 터져 복막염으로 온 코로나19 확진환자를 음압수술실에서 수술하는데 23명이 투입됐고 소독 등 10시간이 걸렸다. 이렇게 하고도 수가는 일반 맹장수술과 같다. 긴급재난 수가가 감염병 수가로 전환되지 않으면 어느 병원도 코로나19 환자를 안 보려고 할 거다.

일반 환자와 코로나19 환자를 같이 보는 듀얼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지, 이를 위한 의료전달체계와 인프라를 어떻게 갖출 것인지, 지속가능한 수가체계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빨리 결정해서 전환해야 한다. 일본은 코로나19 환자 진료 수가를 2배로 올렸다. 발 빠르게 대책을 마련하고 전환하지 않으면 이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

중앙방역대책본부 권준욱 부본부장
“하루하루가 살얼음판…방역 전략 전환 필요”

중앙방역대책본부 권준욱 부본부장

권준욱: 현재 상황 자체는 아슬아슬하고 엄중한 상황이다. 수도권에서 연결고리를 찾지 못하는 코로나19 환자가 늘고 있다. 그것 때문에 방역 전략 방향을 전환해야 할 필요가 있다. 더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갈 수도 있고, 다른 전략을 제안하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국가들과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대구 신천지 때 어느 나라보다 확진자 수가 가파르게 올라갔다가 떨어지는 양상을 보였다. 그러다 최근 다시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미국, 싱가포르, 러시아, 유럽 등을 동시에 비교를 해 놓은 걸 보면 위기 순간임은 틀림없다. 특단의 대책과 방향이 필요하다. 2차 대유행에 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당장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서울 성동구보건소 김경희 소장
“현재 인력만으로 보건소 선별진료소 유지 어렵다”

서울 성동구보건소 김경희 소장

김경희: 보건소가 앞으로도 선별진료소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인력 지원이 필요하다. 보건소 인력으로 지역사회 내 코로나19를 관리하는 게 어렵다. 민간과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또 보건소 자체 시설도 필요하다. 보건소도 감염병을 막기 위한 환경으로 갖춰져야 한다는 얘기다. 보건소 직원 중 한 명이라도 코로나19로 확진되면 지역사회 주민 관리를 어떻게 하겠는가.

ICT 기반으로 시스템이 많이 구축됐지만 역학조사는 아날로그 식으로 하고 있다. 종이에 쓰고 웹에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정보통신 분야 전문가들도 필요하다. 특히 감염병예방법 개정으로 지자체장의 권한이 강화됐지만 지역사회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기에는 부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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