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

환자와 가족에게 의료비는 큰 부담이다. 우리는 서로 부담을 나누고 싶고, 또 그래야만 한다. 이것이 국민건강보험이 만들어진 이유다. 하지만, 문제가 있다. 건강보험 재정곳간은 한계가 있는데 감당해야 할 곳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고령화로 치매 환자가 늘어나고 있고, 우리 아이들 모두 건강하게 키워야 하고, 최근 닥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도 잘 대처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어려운 점은 지불해야 할 의약품과 의료기술 비용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것이다. 점점 환자, 가족 그리고 건강보험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경우도 이미 곧잘 있다. 점점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그렇다고 식을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도 없다. 내일을 기약하기 쉽지 않은 암과 희귀질환 환자들에게는 신약과 신의료기술의 등재 지연은 희망고문일 수 있다.

서울아산병원 종양내과 이대호 교수

이제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건강보험재정을 확실하게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보험재정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우선 임상유용성이 높은, 즉 효과가 좋은 의약품이나 의료기기 또는 의료기술을 우선적으로 급여로 고려해야 한다. 반대로 임상유용성이 낮은 경우는 급여를 제한해야 한다. 과거 임상유용성이 충분히 밝혀지지 않은 채로 도입되어 관성적으로 사용되지만 임상유용성이 없거나 미미함이 밝혀진 의약품 경우 급여 제한이 필요하다. 신약과 신기술이 도입되면서 임상유용성이 떨어지거나 또는 없어진 경우 역시 급여제한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임상유용성 변화가 있거나 의심스러운 경우 재평가를 통해서 급여가 효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효과가 같거나 비슷한 의약품들에 대해서는 비용효과에 대한 재평가를 통하여 보다 효율적인 약제가 선택되도록 해야 한다.

물론 관련된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질병 중증도, 즉 경증 질환과 중증 질환, 다른 경우 임상유용성과 비용효과를 직접 비교 평가하는 것은 쉽지 않고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암환자의 비용효과 평가에서 사용되는 생존기간을 안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 환자에게 적용할 수 없다. 그러나, 노동손실일수나 회복에 필요한 요양일수 등을 대신 사용함으로써 다양한 의약품에 대한 비용효과를 상대적으로 비교할 수도 있다. 재평가는 임상유용성과 비용효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요구도에 대한 상대적 평가도 가능하게 된다.

글을 풀어내려 가다 보니 놓친 부분이 몇 가지 있다. 신약과 신의료기술 시판허가는 임상시험에서 얻어진 임상유용성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급여는 임상유용성뿐만 아니라 비용효과, 재정영향, 사회적 요구도 등 보다 다양한 요소에 따라 결정된다. 문제는 이러한 요소들이 실제로 얻어진 값이 아니라 예측된 값이라는 점이다. 아직 임상현장에서 충분히 사용되지 않았으니 실제값을 당연히 얻을 수 없다.

최근 대리표지자가 사용된 임상시험 결과를 바탕으로 시판허가가 이루어지는 경우도 점점 증가하고 있다. 임상유용성조차 확실하지 않다. 그렇다고 충분히 검증될 때까지 급여를 마냥 미룰 수는 없다. 바로 사회적 요구도 때문이다. 특히 암 또는 중증질환에 대한 사회적 요구도는 매우 높다. 그러나 불확실성이 높은 상태에서 급여 결정된 경우, 건강보험 나아가 국민들은 과도하게 높은 부담을 지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어떻게 보면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될 수 있다. 급여 후 재평가는 이러한 불확실성을 해소하는 해법이자, 적절한 의료비를 재설정할 수 있는 기회다. 재평가는 임상유용성과 비용효과뿐만 아니라 사회적 영향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제한된 건강보험 재정에서는 어쩔 수 없이 급여순위나 부담정도를 결정해야 한다. 우리사회가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우선적으로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희귀난치질환이나 소아환자에게는 비용효과가 떨어져도 보다 적극적이고 우선적으로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현병환자나 난임부부도 우선적 고려대상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모든 의료행위에 대하여 요양급여에 대한 재평가를 통하여 임상유용성, 비용효과, 재정 영향, 대체가능성, 사회적 요구도 등 다양한 요소를 임상현장에서 확인해야 한다. 특히 임상시험에서 얻을 수 없는 자료, 가령 환자가 직접 지출한 비용이나 이상반응이나 부작용에 따른 의료비 증가 등의 자료도 수집 및 확인이 필요하다. 이는 사회적 요구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논의할 수 있는 발판이 된다. 사후재평가가 반드시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의약품 허가와 급여 결정은 다양하고 불확실한 요인들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며 불확실성을 없애기 위해 사후평가가 필요하다. 의약품과 의료기술 가치는 의학과 과학기술 발전에 따라 변하며, 적정한 가치평가를 위해서는 사후평가가 필요하다. 사회적 요구도를 비교평가하기 위해서 재정부담이나 사회적 비용에 대한 예측값이 아닌 실제값이 알고 싶으며, 그래서 사후평가가 필요하다.

결국 환자, 가족 그리고 사회가 원하는 적절한 의료제공과 건강한 보험재정의 지속가능성을 위해서는 임상유용성, 비용효과, 재정영향 및 사회적 요구 등을 보다 객관적이고 종합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사후재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물론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임상연구 또는 실제임상자료․실제임상근거를 수집, 분석 및 평가할 수 있는 기반을 보완하고 강화해야 한다. 보험급여 결정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기준과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그렇다고 의약품 사후 재평가 시행을 더 미룰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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