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병관리본부 ‘청’ 승격을 보는 다른 눈…21대 국회, 정부조직법 개정에 관심 집중

21대 국회가 출범하면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 관련 법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보건복지위원회 등 아직 상임위원회 구성이 완료되지 않았지만 21대 국회는 코로나19 사태 후 변화하는 사회시스템에 맞춘 다양한 법과 제도를 만들기 위해 부심하고 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코로나19 사태에서 국민적 신뢰를 받고 있는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시키겠다고 밝힌 만큼 21대 국회 시작과 동시에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는 법안이 가장 먼저 발의되기도 했다.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은 20대 국회에서 자유한국당 소속이던 박인숙 의원이 질병관리본부를 국무총리실 산하 질병관리처로 승격시키는 것으로,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이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는 내용의 정부조집법 개정안을 각각 대표 발의하면서 논의한 바 있다. 하지만 이들 법안은 20대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이에 따라 21대 국회에서 발의된 질병관리본부를 승격시키는 내용의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상임위 구성이 완료되는 즉시 복지위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질병관리본부의 청 승격은 코로나19 사태를 통한 국민적 지지와 기대를 생각한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반대할 명분이 없다.

하지만 청으로 승격이 되더라도 질병관리본부가 현재와 달리 정부 조직으로서 국가 감염병 사태에서 주도적으로 감염병 관리를 진두지휘 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인 권한이 부여돼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킨다고 해도 공무원 인사권이나 예산 집행권이 부여되지 않는다면 조직만 커질뿐 큰 변화는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정부조직법 내 ‘청’은 어떤 기관?

정부조직법을 보면 기상청, 경찰청 등 청 단위 기관은 모두 환경부와 행정안전부 등 각 부처의 소속 기관이다. 복지부도 식품의약품안전청이 있었지만 처로 승격되며 국무총리실 산하가 됐다.

정부조직법 중 행정기관장의 직무 권한에 관한 항목을 보면 각 행정기관장은 소관 사무를 총괄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한다. 각 행정기관 소속 기관은 기관장이나 차관을 보좌해 소관 사무를 처리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도록 했다.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로 살펴보면 복지부장관이 관장하는 보건위생, 방역, 의정, 약정, 생활보호, 자활지원, 사회보장, 아동, 노인 및 장애인 사무 중, 감염병 및 각종 질병에 관한 방역, 조사, 검역, 시험, 연구 및 장기이식관리에 관한 사무를 질병관리본부에서 하지만 소속 공무원 지휘‧감독권은 법적으로 복지부장관에 있다.

행안부 소속 경찰청, 법무부 소속 검찰청의 경우 청 단위 기관이지만 각 조직‧직무범위 그밖에 필요한 사항은 따로 ‘경찰법‧검찰청법’에 명시하고 있어 다른 청들과 상황이 다르다.

질병관리청이 신설되면서 이들 기관처럼 별도 법률이 마련되지 않는 한 질병관리청장이 복지부장관에서 완전히 독립돼 청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고 방역업무를 총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또한 부와 처의 장은 소관 사무의 효율적 추진을 위해 필요한 경우 '국무총리에게 소관 사무와 관련된 다른 행정기관 사무에 대한 조정을 요청'할 수 있지만 청장에게는 그런 권한이 없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와 마찬가지로 대규모 감염병 유행 사태가 터져도 질병관리청장이 전문성을 앞세워 선두에서 효율적인 정부조직 운용을 제안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다만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시키면서 지금처럼 복지부 산하가 아닌 국무총리실 산하로 옮긴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국무총리실 산하라면 전문성 있는 청장이 청 내 인사를 사실상 독립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를 청으로 승격하면서 국무총리실 산하로 넣는 것은 현재 정부조직법에 명시된 내용과 맞지 않기 때문에 현실성이 떨어진다.

현재 정부조직법상 국무총리실 산하로 돼 있는 국가기관은 국가보훈처, 인사혁신처, 법제처,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모두 ‘처’ 단위 기관이다.

때문에 20대 국회에서 질병관리본부 위상을 높이기 위해 발의됐던 법안 중 자유한국당 박인숙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질병관리본부를 아예 독립적인 '처'로 승격시켜 국무총리실 산하로 두는 것이었다.

정부조직법상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될 경우 변하는 가장 큰 부분은 청장의 국무회의 참석이다.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할 경우 청장이 정무위원이 돼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질병관리본부장은 차관급이지만 국무회의에 직접 참여할 수는 없다.

질병관리청, 큰 의미없는 변화…보건부로 가야

이에 일각에서는 질병관리본부가 청으로 승격돼도 복지부 소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이유로 이번 청 승격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 모두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한 연구자는 본지와 통화에서 “청 승격 후 지방조직도 만든다고 하지만 특별히 달라질 것은 없다고 본다”며 “안타깝지만 비관적으로 본다. 청 승격은 큰 의미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실질적으로 뭔가 변화가 있으려면 (방역업무 등에서) 주도적으로 뭔가 해야 하는데, 청 승격이 복지부에서 완전 독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며 “식약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는데, 식약처 전 식약청이었을 때 관련 법 하나 바꾸려면 복지부 과장을 찾아다녀야 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질병관리청 수준의 변화가 아니라 우리나라 보건의료업무체계의 근본적 변화가 필요하다며 코로나19를 계기로 보건부 설립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코로나19로 계기로 신종 감염병이 위험하고 지속적인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보건부 신설 논의를 못할 이유가 없다”며 “전세계적으로 봐도 보건과 복지를 합한 부서를 운영하는 나라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보건과 복지를 한 부서에서 관리하는 것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나눈 것”이라며 “일각에서는 보건부 독립에 대한 여건이 아직 부족하다는 주장도 있는데, 지금이라도 국민들에게 물어보면 보건부를 설립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 승격, 변화 있지만 크지 않아…보건업무 총괄기관 필요

질병관리본부 정기석 전 본부장(한림의대 호흡기알레르기내과 교수) 역시 질병관리본부 청 승격도 의미있지만 근본적인 변화를 위해 보건부 설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 전 본부장은 “청장이 본부장보다 재량권은 커질 것이다. 국무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고 100%는 아니지만 인사권과 예산권도 가질 것”이라며 “지금 본부장 신분으로는 질병관리본부 내 6급 이하 공무원 인사만 가능하다”고 말했다.

정 전 본부장은 “물론 복지부장관이 어느 정도 질병관리청에 관여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라며 “결국 처나 부로 가야 한다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지만 청 승격이 아주 의미없는 일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정 전 본부장은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보면 보건부가 왜 필요한지 알 수 있다. 만약 우리나라에 보건업무를 담당하는 보건부가 있어 보훈처, 근로복지공단, 경찰청 등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의료기관을 이미 관리하고 있었다면, 사태가 커지기 전 준비시킬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전 본부장은 “지금 복지부는 보훈처 보훈병원, 근로복지공단 공단병원, 경찰청 경찰병원에 대한 권한이 없다. 이런 기관들을 움직이는 권한은 각 부처에 있기 때문에 효율적이지 못한것”이라며 “현재 광범위하게 각 부처에 흩어져 있는 보건 관련 업무를 보건부를 설립해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 승격도 큰 의미…복지부장관-청장 간 조율 중요

반면 질병관리청 승격도 의미가 있다며 복지부장관과 질병관리청장 간 업무 의견 조율이 중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전병율 전 질병관리본부장(차의대 보건산업대학원장)은 “질병관리본부가 청이 된다고 해서 복지부와 남이 되는 것이 아니다. 다 같은 조직이다. 남이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서로 사람이 오가고 교류해야 좋은 것”이라며 “복지부장관, 질병관리청장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보건부 설립에 대해서는 “청 승격이 의미 없기 때문에 보건부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치적으로 상당한 용단을 내려야 하는 일”이라며 “대통령이 바뀌면서 인수위에서 논의한다고 해도 힘들다. 관련되는 부서가 너무 많다”며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전 전 본부장은 “여러 상황을 봤을 때 현실적으로 청 승격으로 가야 한다”며 “지금은 질병관리본부에 어떤 옷을 입히느냐가 중요하다.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청 승격도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저작권자 © 청년의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