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현 정권은 사회주의 성향의 진보 세력들이 득세하여 우리나라 의료를 모두 공공재화 하려는 노력에 더욱 더 집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언론에서는 심심치 않게 ‘쿠바의 무상의료제도’가 언급되기도 한다. 사회주의 국가들이 잘하는 것 중 하나는 이른바 ‘구호 만들기’와 이를 통한 선전 선동이다. 지구상에 의료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나라들이 많은데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나 쿠바는 일찍이 원조를 겸한 의료인 파견으로 속칭 ‘의료외교’라는 분야를 이용하여 사회주의 우월성에 대한 선전매체로 잘 활용하고 있다. 북한도 몇 년 전 아프리카에 진출하여 의료 활동을 하다 결국엔 역량부족으로 추방당하고 말았다. 북한 의사의 동서 협진 역량이 환자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전언이다.

중국은 지난 50년간 매년 약 1만5,000명 규모의 해외 파견 의료 인력을 유지, 관리한다. 중국병원이 설립된 나라들도 있는데, 원조의 조건은 중국인에 의한 병원경영과 가능한 모든 물자를 중국산 현물로 제공하는 시스템을 병행 운영한다. 개똥쑥으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만들어 노벨상을 받은 중국의 여의사 투티도 아프리카에 파견되었던 의사로 중국의 한약제를 연구하여 성공한 케이스다. 일부는 중의사로 잘못 알려져 있으나, 엄연히 북경의대를 졸업했다. 중국은 자신들이 당면한 민생 의료도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처지에서도 지난 1960년대부터 해외 의료진 파견으로 당국의 주도하에 대규모 해외지원단을 유지하고 있다.

쿠바가 쏘아올린 돈벌이 무상 의료외교의 허상

국제적으로 ‘무상의료’라며 노골적으로 선전하며 자랑하는 곳은 북한과 쿠바다. 북한의 대표가 국제연합(UN) 보고에서 돈이 없어 진료를 못 받는 남한과는 달리 북한은 모든 것이 무료라고 선전하며 체제의 우수성을 과시한다. 그러나 북한의 무상의료는 우리 수준에서 보면 무료라서 그런지 해 줄 것이 없어 보이는 알맹이 없는 의료로 보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의료’라는 단어를 붙이기도 좀 그렇다. 사회주의 의료제도를 운영하는 구 소련권의 나라들을 살펴보면 공산주의 의료의 특성처럼 인간적 서비스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동유럽의 슬로바키아를 방문하였을 당시 우리나라의 포항제철 만큼 규모가 큰 미국 자본의 제철소 부속병원을 둘러본 경험이 있었다. 병원의 많은 임상 의사들은 여성이었고, 병원의 외형은 웅장하고 보기에도 괜찮았다. 이곳에서 피부과를 방문하였는데 예약 없이 불쑥 찾아갔음에도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곧바로 외래를 폐쇄하고 과원들을 즉석에서 불러 모아 술안주를 만들라고 지시한 후 외래에서 양주파티를 가졌던 이색적인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2000년대 초반 당시 슬로바키아 의사의 월급은 우리 돈으로 약 30만원 정도로 트럭 운전사를 비롯한 여타 다른 직종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방문객을 위해 근무 현장에서 내놓은 술은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을 만큼 고급 양주의 전시장을 방불케 했다. 뿐만 아니라 한 달에 30만원 정도 받는 월급쟁이로서는 유지하기 힘든 수준의 부유한 삶과 한국산 기아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들은 피부과 진료에 필요한 원서를 구매할 여력이 없어 필자를 포함한 방문객들은 선물로 원서를 전달했고, 이에 대한 보답이 외래 폐쇄와 양주파티였는데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였고 한편으로는 우리와 같은 일정 근무규범이 없는 휑하고 무질서한 모습으로 비춰졌다. 이런 비슷한 경험은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국가에서도 비슷하게 체험한 바 있다. 중국의 제1등급 도시의 의과대학 교수들의 급여 수준과 실제 그들이 사는 모습은 매우 달라 보였다. 사회주의가 보여주는 자의적 부수입 추구제도 인지, 부정부패의 진면목인지는 몰라도 ‘겉 다르고 속 다른’ 다중적인 모습에 가치관이 혼란스러웠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무상의료 택한 쿠바 의료외교 앞세워 체제선전과 돈벌이

쿠바는 카스트로가 정권을 잡은 이래 의료외교를 체제선전과 외화벌이로 활용해 왔다. 현재도 COVID-19의 대처에 어려움을 겪는 여러 나라에 의료진을 파견하고 있다. 알자지라 방송보도에 의하면, 쿠바는 현재 신종전염병과의 투쟁을 위해 세계 14개국에 593명의 의료진을 파견했다고 한다. 이태리를 비롯하여 안도라공화국, 베네수엘라, 니카라과, 수리남, 자메이카, 아이티, 벨리 체, 도미니카, 세인트 크리스토퍼 네비스, 세인트 빈센트 그레나딘, 그레나다, 세인트루시아, 앤티가 바부다 등 주로 섬 지역의 국가들이다. 쿠바는 카스트로 아르헨티나의 의사출신인 체게바라가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키고, 집권 이후 무상의료를 구현하였다. 무상의료의 목표는 1차 의료와 예방의학 중심의 의료가 목표였다. 사회주의 의료답게 국가단위 계획에 따라 규격화시킨 의료를 실현한 것이다. 이후 이를 잘 활용하여 사회주의 선전을 위해 의료외교 활용에 나선 것이다.

최근 알자지라 기고문에 의하면, 쿠바는 베네수엘라 혁명을 돕기 위해 의료진과 교육자를 파견했다고 한다. 약 10년간 3만여 명의 쿠바 출신 의료인이 베네수엘라에 파견됐고, 그 대가로 쿠바는 아주 낮은 가격으로 원하는 석유를 구매할 수 있었다. 필자는 3~4년 전쯤에 에콰도르를 방문한 적이 있다. 세계를 권역별로 나뉜 지역의 의학교육학회가 세계의학교육연합회 실행위원회를 초청, 연계하여 학술대회를 열었던 것이다. 당시 의과대학생 모두에게 정장 차림으로 학회에 참여하도록 배려하여 매우 인상 깊었던 기억이 있다. 당시 보건부 장관의 에콰도르 의학교육발전계획에 대한 기조연설을 통해 “에콰도르는 향후 10년 동안 오로지 주치의인 일반의만 배출시킬 계획”이라고 단언했다. 보건부 장관은 “전문의 수요는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국가목표의 우선순위는 일차 진료가 최우선 과제이며, 이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 전문의는 차후의 문제인데 필요하면 언제든지 쿠바에서 의사를 수입한다면 된다”는 단순한 답변을 내놨다.

50년간 최대 40만명 해외 의사 파견…실상은 외화벌이용 인신매매

비슷한 시기에 브라질에서는 내륙지방의 의사부족이 매우 심각한 상태에 있었고, 이로 인해 사회적 불만의 원인이 되었다. 이를 해결하고자 브라질 정부는 쿠바에서 몇 만 명의 의사를 수입하여 브라질의 오지로 파견했다. 한편 브라질의사회는 이들에 대한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당시 쿠바의사들이 실제 손에 쥐는 급여는 우리 돈으로 5만원을 조금 상회하는 낮은 수준이었는데, 브라질 정부가 실제로 지불하는 급여와 차액으로 쿠바 정부가 ‘외화벌이’ 수단으로 악용했기 때문에 가장 큰 불만의 원인이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북한의 벌목공이나 월남전 당시 파병된 국군장병의 급여가 연상된다. 속칭 ‘인신매매’로 간주되는 쿠바의 해외의사 파견은 지난 50년간 최소 13만5,000명에서 최대 40만명 수준에 이를 것이라는 추산이 회자된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지난 2006~2016년 사이 10년 동안 7000여명의 쿠바의사가 망명했다고 한다. 이러는 동안에 브라질에서는 우후죽순으로 의과대학이 설립되어 질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1년에 약 50개 이상씩 몇 년째 신설의대가 계속하여 난립되고 있다. 이런 사정 때문인지 2019년에 브라질을 비롯한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쿠바와의 의료 협력을 더 이상 지속하지 않고 종료하기로 결정했다. 쿠바 의료 전문가의 숫자는 2016년에 5만명에서 최근 2만8,000명으로 급감했다고 한다. 미국은 쿠바의 의료외교가 ‘의무공(醫務工)’ 형태의 인신매매인데다가 악성 외화벌이 수단이어서 이를 강력히 제재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의 경화(硬貨) 획득을 차단하는 노력과 같은 차원의 정책을 쿠바에게 적용하고 있으나, 쿠바는 건강권에 대한 범죄행위로 규정하고 있다.

1990년대 말 보건경제학자들은 의사 수를 감소시키면 한 나라의 의료비를 줄이고 증가추세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캐나다는 이를 받아들여 의사배출수를 조정하고 점차 줄이기 시작하였는데 결과는 매우 당혹스러웠다. 정책실시 7년이 안되어 캐나다 오지에 있는 의사들이 보이지 않게 된 것이다. 적정한 의사수의 설정이나 추산은 지극히 가설적인 것들이고 무리한 인위적 개입은 심사숙고를 요하는 것인데도 말이다.

인구 대비 의사 수 높은 쿠바, 질 낮은 의료 열악한 하부구조 악순환 반복

심각한 의사 수의 부족에 대한 급한 불을 끄기 위하여 캐나다 정부는 같은 영연방 소속국가인 남아프리카 백인 의사 100여명을 긴급히 캐나다로 수입했다. 조건은 2년간의 임시면허 교부와 2년 뒤 정식 면허취득 후 영주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한 것이었다. 남아프리카와 캐나다는 상호 교육제도나 의료제도의 기본 틀은 영국의 영향을 받아 양국의 의사가 교차 근무를 한다 하여도 언어나 제도상의 이해는 문제가 되지 않아 보인다. 남아프리카는 자국 의사의 두뇌유출에 대한 사회적 폐해를 국제 외교 문제화 했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더 이상의 남아프리카 의사 수입을 포기했다. 남아프리카는 반대로 쿠바에 요청하여 쿠바의사를 긴급 수입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있었다. 쿠바가 수출한 의사는 백인의사의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쿠바의사는 캐나다나 남아프리카 기준에서 의사와 간호사 중간 정도의 의사 혹은 구소련의 준 의사 정도의 역량을 지니는 사람들이어서 남아프리카 현지 직무투입을 위해서는 2년 정도의 추가교육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와 유사한 문제는 우리나라가 소속된 세계보건기구 서태평양지역의 많은 섬나라에서도 쿠바의사를 수입한 후 발생했다. 서태평양 도서 국가들은 영국이나 미국, 그리고 다른 나라로부터 독립된 과거의 식민지 국가이거나 호주, 뉴질랜드 등을 통한 영국식 교육이 근간이 된 의사들이 있는 나라들이다. 이들 도서 국가의 평가에도 쿠바의사들은 여전히 추가수련을 필요로 하는 의사로 보인 것이다. 쿠바는 세계에서 인구대비 의사수가 가장 높아 9만5,000명의 의사가 1,100만 인구를 커버한다. 그러나 여러 가지 보건성과 지표를 보면 의료서비스의 질이 매우 낮다는 주장도 제기되는 실정이다. 가난한 사회주의 국가가 보여주는 무상의료의 특징은 무상의료를 제공할 하부구조가 같이 가난해져 의료장비와 약품 모두 만성적인 부족현상이 연쇄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소도 사회주의에 의한 일반적인 수준하락 현상으로 매우 열악하다고 한다. 사회를 위한다는 사회주의 정책이 오히려 사회를 약화시키고, 악화시키는 끝 모를 역기능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의료 유토피아적 사회주의에 숨겨진 몰염치정책에 눈을 떠야

우리나라는 환자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최소 3인 이상의 전문의를 만날 수 있는 세계 유일한 나라로 보인다. 접근성 세계 1위라는 숫자로만 표기할 수 없는 편익성과 신세계가 내재되어 있는 셈이다. 영국이 자랑하는 NHS는 우선 환자 자신이 주치의를 만나는데 최소 1~2주는 족히 소요된다. 아마 우리나라 상황이라면 당장 청와대 청원을 비롯하여 난리가 벌어질 일이다. 우리나라 의료는 영국인들에게 상상을 불허하는 상상이상의 제도이나 무상임에는 틀림없다. 무상의료에는 환자에 대한 거부권, 환자 자유선택권 불허, 의사단체의 공익 노조화, 형사처벌이 아닌 행정처벌 등 함께 동반되는 여러 가지 사안들이 존재한다. 아마도 우리나라 정치인이나 사회주의자가 꿈꾸는 ‘공짜 의료’는 지금과 같은 최고의 접근성, 환자의 무제한 선택권, 의사쇼핑 등의 편리성은 그대로 둔 채 오직 공짜만을 원할 것 같다. 어찌 보면 의료의 평등한 기본권 주장 뒤에는 유독 의료에 대한 몰염치 정책이 숨어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쿠바 의료의 실상을 보면, 다른 나라가 절대 본받아야 할 모범사례가 아니라는 사실을 직시할 수 있다. 벌목공과 같은 의사를 만들어 놓았으니 이들이 갖는 것이 인류애를 바탕에 둔 봉사정신인지, 아니면 자유를 그리워하며 탈출을 노리는 의사집단인지 무척 궁금하다. 한 사람의 유능한 의사를 만들려면 의료에 대한 적정한 양적 경험과 질적인 역량과 노하우가 함께 병행되어 투입되어야 한다. 인구 120명 당 의사 1인의 쿠바는 도대체 어떤 역량의 의사를 만들고 있고, 어떻게 역량 유지를 하고 있는지 그 실체가 궁금하다. 쿠바의 보건의료가 지니는 장점은 과연 무엇일까? 이 질문에는 보건의료 분야의 인적 자원이 넘쳐날 것으로 보이는 제도에서 얼핏 천재지변이나 전염병 방역에 강점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 장비와 시설, 그리고 물자 부족에서는 극복하기 힘든 현실적인 문턱과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절대 간과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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