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의료연구원 한광협 원장 "기술 도입 늘면서 '근거'와 '합리성' 판단 필요성 커져"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이하 NECA)의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고, 변화와 혁신을 주도해야 할 때가 됐다. 보건의료시스템이 보다 효율적으로 작동하도록, 연구원이 보다 능동적으로 나설 것이다.”

제5대 NECA 원장으로 취임한 한광협 원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NECA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보건의료기술의 안전성과 유효성, 경제성 평가 등을 통해 보건의료정책의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지원해 온 NECA의 역할은 물론, 유관기관들과의 협력에도 적극 나서 한국만의 보건의료기술 근거 확립에 앞장서겠다는 것. 특히 의료계 내 NECA의 인지도와 위상을 높이기 위해 홍보와 협력사업을 활발하게 전개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자타가 공인하는 간질환 분야 권위자인 한광협 원장은 아시아태평양간암학회(APPLE) 초대회장, 대한간학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지난해에는 한국인 최초로 국제간학회(IASL) 회장으로 선임됐다. 또 2005년 보건복지부 지정 ‘간경변증 임상연구센터’ 소장을 시작으로 정부 주도 공익적 임상연구 발전에 기여해왔다.

- 늦었지만, 취임을 축하한다.

오랜 기간 대학에서 연구를 하면서 (정부 등으로부터) 지원을 받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지원을 하는 입장으로 바뀐 게 새롭다.(웃음) 원장 제안을 받은 후, 다시 한번 NECA의 역할을 곰곰이 생각했다. NECA는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바람직한 의료문화 정착 및 확산이 목표다. 30년의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NECA가 목표에 부합하며 성장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다.

- 밖에서 NECA를 바라봤을 때와 안에서 봤을 때의 차이점이 있다면.

(NECA의 사업 등에 대해) 의료계에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점이다. NECA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신의료기술 평가는 물론 최근에는 보장성 강화 정책이 확대됨에 따른 의료 재평가 등이 그것이다. 이런 활동들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대중들이) ‘한국보건의료연구원’, ‘보의연’, '네카(NECA)' 등의 명칭을 어렵게 느끼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웃음). NECA는 '과학적 근거제시를 통한 의료자원의 효율적 이용과 국민의 건강 향상 기여'라는 목표로 활동한다. 간단하게 정리하면 ‘바람직한 의료문화 정착과 확산’이 역할이다. 목표 달성을 위해 보건복지부,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 유관기관들과도 더욱 유기적으로 협력하고, 대한의학회와 진료지침을 새롭게 정립하는 등 의료계 단체들과의 활동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 NECA는 한국판 NICE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그렇다. 하지만 그 때문에 설립 초기 NECA의 역할에 대해 (의료계와 산업계 등에서) 거부감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NECA가 제도적 족쇄를 채우기 위해 진료지침 등에 참여하려는 것 아니냐는 등의 시각이 있었다. NECA는 연구기관이다. 즉, 유관기관들과 같이 바람직한 보건의료기술의 근거를 만드는 역할이 주다. 심평원이 (의료행위 등의 급여 적정성 등을 판단하는) 사법기관이라면, NECA는 문헌고찰 등의 근거를 바탕으로 의료계, 산업계 등과 협의를 통해 기준을 제시하는 입법기관이라고 보는 게 적정한 것 같다.

- 의료계와 산업계 일각에선 여전히 신의료기술 평가 등에 대해 옥상옥이란 불만이 나온다. 반면 국민들은 보다 안전한 시술 등에 대한 근거를 원하는 목소리가 많다. 이런 양극간의 목소리를 수렴해야 하는 만큼 NECA의 고심도 클 것 같다.

의료계 등과 정부가 가끔 상반된 견해로 충돌하는 일이 있다. 이럴 때 NECA는 근거를 바탕으로 합리적 기준을 제시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우리는 연구기관이다. 때문에 ‘하라’, ‘마라’가 아닌 적용 여부에 대한 근거를 찾고 제시한다. NECA의 이러한 역할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의료기술이 빠르게 발달하면서 과거의 기술들과 부딪치는 일이 늘고 있다. 새로운 기술에 재정을 투입할 것이냐, 과거의 기술을 보다 가다듬을 것이냐 등의 논란처럼 말이다. 경우에 따라선 임상시험 단계부터 시판 후까지 검토해야 한다. 이런 상황을 고려할 때, ‘근거’를 찾아 ‘바람직한 기준을 제시’하는 NECA의 역할은 커질 수밖에 없다.

- NECA의 목소리가 제대로 받아들여지려면 ‘위상’이 지금보다 높아져야 하지 않나 싶다. 또 최근 AI, 빅데이터 등을 활용한 다양한 기술들이 도입되고 있음을 고려할 때, 현 규모로는 이를 다 관장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초기 30~40명이던 인원은 현재 160여명으로 늘고, 예산은 연간 160억~170억원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체 의료 규모를 고려할 때 (근거 창출을 하는 연구원의 규모로는) 크다고 말하긴 어렵다. 그러다보니 세세한 보건의료 사안까지 개입하진 못하고 있다. 카바수술, 글루코사민 보험적용, 구충제 항암 효과 등 사회적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대해선 고민의 여지가 없지만, 그렇지 않은 이슈들까지 챙기기 위해선 좀 더 규모 확대가 필요하다.

- 앞으로 추진코자 하는 사업이 있다면.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의료 관련 학술단체들의 진료지침을 검토하고 업데이트를 돕는 역할과 함께 근거 창출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싶다. 진료지침의 경우 현재 학회들이 자체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운영하지만, 모호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NECA는 이런 부분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런 문제는 비단 대학이나 학술단체 뿐만이 아닌 일선 개원가에도 있다. 때문에 다양한 유관기관들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

- 이미 각 학회들이 지침을 잘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보의연이 어떻게 지침 업데이트 등에 참여하겠다는 건가.

우리나라는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었고, 의료기술의 발달로 수시로 고가 약제와 장비가 나오고, 환자들은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디까지가 적극적인 치료인지, 암 수술은 몇세까지가 적정한지 등은 의사, 환자, 보호자 개개인의 생각이 다 다르다. 이런 정답이 없는 문제를 한 두 학회의 의견으로 정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NECA는 이러한 문제를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 수 있다. 한 두 의료기관의 제한된 데이터가 아닌, 빅데이터를 이용한 연구도 진행할 수 있다. 필요하다면 전향적 연구나 코호트 조사도 검토해 볼 수 있다.

- 한국 실정에 맞는 데이터, 연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B형간염 환자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데, 고가의 약이 꼭 필요한지 중단해도 되는지 등의 연구는 없다. 당연히 제약사들은 이런 연구에 지원을 안한다. 하지만 이런 연구는 비용이 많이 소요된다. 연구 디자인도 까다롭고, 환자 모집도 만만찮다.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연구가 이뤄져야 한다. 지난해부터 진행하고 있는 ‘환자 중심 의료기술 최적화 연구사업’이 이러한 맥락에서 시작된 사업이다. 오는 26년까지 8년간 1,840억원이 투입돼 380여개의 과제를 지원하는데, 논의를 통해 능동적으로 사회적 의제를 발굴해 지원할 계획이다.

- 개원가와의 협력도 강조했는데, 이유는.

한 개원의가 오랫동안 시행해 온 의료기술이 있다고 치자. 누군가 ‘적정한 의료기술인가’라고 문제제기를 한다면, 이 기술이 실제로 환자들에게 도움을 줬다고 해도 근거 없이는 ‘불법’이 되거나 ‘퇴출’이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 논문을 통해 근거를 마련해야 하지만, 개원가에선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이러한 문제들을 NECA와 같이 고민한다면,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의료기술이 빠르게 변화하는 현재 이러한 문제와 해결책을 고민할 시기다. 그래야 불필요한 마찰이나 갈등도 줄일 수도 있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우리가 가진 좋은 기술이 하나라도 더 연구성과를 내도록 돕고 싶다. 또 한국의 의료기술을 해외에 알리는 데도 일조하고 싶다. 바람직한 의료문화를 만드는데 우리(NECA)가 꼭 주인공일 필요는 없다. 보건의료분야의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관련 기관들이 협력할 수 있다면, 조연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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