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사태 후 새로운 의료체계 필요성 제기…원격의료‧재택치료 등 관심 폭증
코로나19 직격탄 미국, 원격의료 규제 철폐 중…전문가들 “한국, 논의라도 시작해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국민들의 생활패턴이 바뀌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전까지 일반적이지 않던 ‘사회적 거리두기’는 모든 국민이 실천해야 하는 사회규범이 됐다.

이에 코로나19 사태가 소강상태에 접어들더라도 이전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없으며 일상생활에서 방역수칙을 지키는 뉴노멀 시대가 올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코로나19 사태 후 도래할 뉴노멀 시대는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접촉을 최소화하는 것이 중요한 방역 특성상 변화의 중심은 원격의료가 될 것이라는 주장이 의료계 내외에서 들린다.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뤄지지 못했던 원격의료가 코로나19 사태 후 진지한 논의를 통해 제도권으로 들어올 수 있을지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직격탄 맞은 미국, 원격의료 전면 확대

스탠포드 의대 시리나 케사라(Sirina Keesara) 박사는 최근 코로나19와 헬스케어 디지털 혁명을 조망한 ‘Covid-19 and Health Care’s Digital Revolution‘이라는 논문을 'The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하며, 코로나19가 바꿀 의료시스템에 대해 전망했다.

케사라 박사는 우선 의료계 아날로그 시스템으로는 빠르게 전파되는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적합하지 않다며 수십년 동안 기술이 발전했지만 엄격한 규제와 지불구조 문제를 안고 있는 원격의료에 주목했다.

그러면서 코로나19 사태를 맞은 미 의회가 코로나19에 대항하기 위해 원격의료를 시골 지역으로 제한한 조항을 폐지해 메디케어의 모든 수혜자에게 원격의료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코로나19 사태에서 경증환자와 조기퇴원 환자에서 재택치료가 중요한 옵션이 될 것이라며, 자가격리자에게는 원격 모니터링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케사라 박사는 새로은 디지털 서비스를 위해서는 보험급여 지급, 규제 완화, 임상치료평가 등 광범위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특히 원격의료 시스템 성장을 위한 지불구조는 문자, 이메일, 휴대폰, 웨어러블, 챗봇 사용을 모두 허용하는 내용을 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화를 활용한 원격진료도 도입하지 못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달리 의사와 환자 사이에 주고받은 문자, 이메일은 물론 환자의 웨어러블기기 활용도 원격의료로 인정해 수가를 지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케사라 박사는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갑자기 확대된 원격의료가 공급자와 환자에게 적절하게 사용됐는지 평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코로나19 사태, 한국에 원격의료를 심다

우리나라에서도 전화상담 및 처방이 처음으로 허용되는 등 이번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원격의료가 사실상 도입되는 분위기다. 아무도 원격의료라는 말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또한 한시적이라는 전제가 달리긴 했지만 대면진료가 아닌 화상진료가 환자진료에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월 24일 시작된 전화상담 및 처방은 의사의 의료적 판단에 따라 안전성이 확보된 경우 전화로 진료한 후 환자가 원하는 약국으로 처방전을 전송해주는 형태다.

허용 대상은 전화상담·처방에 참여 의사가 있는 의료기관 모두이며, 전화상담과 처방을 실시할 경우 진찰료의 100%를 지급한다. 다만 환자 본인부담금 수납은 의료기관과 환자가 협의해 결정할 수 있다.

전화상담 후 처방전 발급은 진료한 환자의 전화를 포함해 팩스 또는 이메일 등으로 환자가 지정하는 약국에 전송하도록 했으며, 의약품 수령의 경우 환자와 약사가 협의해서 결정하도록 해 환자 요청이 있을 경우 사실상 택배발송도 가능하게 했다.

복지부에 따르면 2월 26일 일부 의료기관을 상대로 실시한 실태조사에서 상급종합병원 42개 중 50%인 21개, 종합병원·병원 169개 중 56%인 94개, 의원급 의료기관 707개 중 72%인 508개가 전화상담 및 처방을 시행 또는 시행 예정이었다.

이 외에도 방역당국은 최근 코로나19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환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했을 때 병원 외부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병원 내부에 있는 의사와 화상으로 진료하는 시스템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전제가 있긴 하지만 국내 원격의료 역사에 획을 긋는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의료의 디지털혁명을 넘어 모든 것 바꿀 것

명지병원 선별진료소 내 원격진료 모습.

국내에서도 코로나19 사태 후 원격의료를 중심으로 한 의료계 변화를 예상하는 전망이 이어지고 있다. 단순히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넘어 의학교육의 패러다임 변화까지 불러올 것이라는 지적이다.

명지병원 이왕준 이사장(대한병원협회 코로나19비상대응본부 실무단장)은 코로나19 사태 후 뉴노멀 시대에 맞춰 의료계에 디지털 혁명이 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이사장은 개인적인 견해라고 전제하면서도 "코로나19 사태가 의료에서 디지털 혁명을 넘어 150년간 이어온 의학교육과 수련, 병원 회진과 입원환자 관리 등 모든 영역에서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드디어 존스홉킨스 의대 모델이 종말을 고하고 에릭 토폴이 말한 미래의학과 미래의료의 신 패러더임이 본격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 이사장은 코로나19 사태가 분권화 된 건강관리(Decentralized healthcare)의 현실화 시발점이 될 것이며, 새로운 미래 의료의 이념인 ‘3C+AI Care’와 ‘4P Medicine’이 무대 위로 올라오는 트리거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3C+AI Care'란 연결된 치료(Connected Care), 조정된 치료(Coordinated Care), 종합적인 치료(Comprehensive Care), 경제적인 치료(Accountable Care), 통합적인 치료(Integrated Care)를 4P Medicine이란 예측의료(Predictive Medicine), 예방의료(Preventive Medicine), 맞춤의료(Personalized Medicine), 참여의료(Participatory Medicine)가 통합된 의료를 말한다.

의료소비자가 원하는 순간, 원격의료는 온다

아주의대 내과 김대중 교수도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원격의료의 미래에 대해 전망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후 가장 큰 시대적 변화로 재택근무와 온라인 회의 도입, 온라인 강의 도입을 꼽았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후) 원격진료 도입은 거스르기 어려울 것으로 본다. 의사들도 결국 준비하는 수밖에 없다. 원격모니터링과 함께 그동안 막혀 있던 것들이 둑 무너지듯 들어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병의원에 방문해 진료하고 진료받으면서 생기는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도입 필요성이 제기될 것”이라며 “오진 등 발생 가능한 문제점에 대한 생각보다 감염 위험에 대한 위기의식이 더 클 것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외래진료 기능은 사실상 온라인화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신규환자가 아니라면 환자에게 큰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대면진료를 꼭 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갖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환자들도 의사의 손길을 직접 느끼지 못하면서 생기는 위험과 의사의 손길을 받으러 가면서 생기는 위험에 대해 저울질할 것”이라며 “아마도 가장 늦게 대응하는 게 병원과 의사일 가능성이 높지만 의료소비자에 의해 일대 변화가 도래하고 말 것”이라고 예측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 후 감염예방을 위한 일상적인 조치가 필요할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의료기관 방문 환자 수를 획기적으로 줄어야 한다"면서 "지금처럼 대형병원 하루 외래환자가 1만명씩 가능 상황에서는 감염관리가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동네의원도 마찬가지다. 규모가 작을 뿐이지 환자는 계속 방문한다. 환자를 방문하지 않고도 진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며 결국 원격의료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이게 (감염병 위험에서) 의사를 보호하는 방법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국내 원격의료 도입이 쉽지 않겠지만 의료소비자가 원격의료를 원하는 순간 의사들이 반대한다고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의사들도 반대만 할 것이 아니라 원격의료가 도입되더라도 피해가 없도록 하는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김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로 온라인 교육이 도입되는 등 교육체계를 바꾸고 있다. 물론 모든 교육을 온라인으로 할 수는 없겠지만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며 “의료에서도 대면진료와 비대면진료가 섞이고 서로 역할분담을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소한 본격적인 원격의료 ‘논의’라도 시작해야

코로나19 사태 후 국내에 원격의료 도입이 확대될 것이라고 예상하면서도 현실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디지털헬스케어파트너스 최윤섭 대표파트너는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원격의료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 자체가 없었다며, 코로나19 사태 후 원격의료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는 미국이 원격의료에 대한 정책 변화가 있는데) 미국과 한국의 변화는 다를 것 같다. 미국의 경우 이미 원격의료가 합법인 상태에서 부족한 부분에 대한 재조명이지만 한국은 원격의료에 대한 논의 자체가 없었다”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미국은 전화진료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챗봇, 웨어러블 등을 활용한 원격의료에도 지불을 확대해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며 “우리나라도 의료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보건복지부 등이 이런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 대표는 “(코로나19 사태 후) 과거로 완전한 회귀는 불가능할 것이다. 어떻게 새로운 시대를 준비할 것이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며 “그런 의미에서 이미 수십년 진행한 원격의료 시범사업이 아닌, (전화상담 및 처방 허용 등) 리얼월드에서 진행된 원격의료 경험으로 의료계와 의료소비자 모두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의료계는 원격의료를 해보지도 않고 머리 속으로 ‘이렇게 될 것이다’라고 반대했던 것이다. (전화상담 및 처방 등) 원격의료를 겪은 의료소비자들의 목소리가 커질 것이며, 원격의료를 경험한 의료기관 피드백도 나쁘지 않다. 이런 점들이 향후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최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 기회에 원격의료에 대한 실질적인 논의를 시작하는 것”이라며 “코로나19 사태 후에는 뉴노멀 시대가 온다. 또 다른 감염병 위기도 올 것이다. 지금은 모두가 근본적인 변화를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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