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덕선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

보건복지부는 지난 3월 2일자로 2020년 업무보고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보도자료에서 가장 눈에 띈 것 중 하나는 복지부가 한동안 ‘문케어’라고 명명한 적이 없으니 이 단어를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이전의 입장과는 달리, 2020 업무보고에는 ‘문케어 플러스’라고 명기한 대목이다. 한동안 국회 토론회에서 문케어 이후 종합병원 쏠림현상과 의료비 증가로 논란이 증폭되자 거북해진듯 이 명칭을 사용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이 있었다. 그럼에도 올해 문케어에 ‘플러스’를 플러스하여 발표한 것은 아마도 일반 대중의 지지를 고려하여 ‘4월 총선판’으로 문케어를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는 의미를 가미하려는 것 아닐까.

정권만 잡으면 돌변하는 속성 보건의료정책 왜곡의 중대 변곡점

최근 한국사회에서 보건의료정책에 관한 다양한 논의는 거의 일상이 되다시피 하였다. 이러한 논의 과정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자신들이 야당시절에 반대하던 사안이 여당이 되면 기존의 입장을 번복하고 어떻게든 정책에 반영시키고자 혈안이 된다는 것이다. 정치가 갖는 특성이 카멜레온처럼 변신을 잘하는 것이 중요 핵심 역량인지 아예 소신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것이 정치인지 그 본연의 속성이 자못 궁금하다. 정치인이나 복지부 관리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아직 합의되지 않은 여러 보건의료정책에서 일관성 있게 줄곧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 대한의사협회는 정권을 장악한 집단에게는 사사건건 반대하는 집단으로 비춰지면서 묘사된다. 정치인들은 정권만 잡으면 여반장처럼 왜 그렇게 입장이 쉽게 바뀌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 그리고 왜 야당시절에는 그리 극렬히 반대했는지도 더욱 의문이 든다. 여기에 한걸음 더 나아가 대한의사협회는 ‘이익단체’라고 규명하며 마치 협회의 의견을 들어볼 필요도 없다는 태도로 돌변한다.

한노총, 민노총 모두 이익단체인 노조임은 설명할 필요도 없다. 현 정부가 집권할 때 이익단체의 의견을 많이 들어준 셈이고, 그들 덕에 정권을 획득한 것도 사실이다. 이제 총선을 앞두고 양대 노동이익단체에 다음 ‘선물 꾸러미’를 준비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의사집단은 이익단체의 의견으로 무시해도 좋다는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일까? 노동 가치를 존중하고 민주화를 도모한다는 현 정권의 정강에도 맞지 않다. 현 정권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행태는 의사집단은 아마도 악한 가진 자의 집단이요, 노동자 단체는 착한 약자의 집단으로 포장되는 정치적 선동술책이 강하게 박혀있다. 한 나라의 가장 우수하고 모범 학생들이 들어가는 의과대학 출신의 의사들로 구성 된 단체가 추악한 이익 추구 단체로 왜곡되는 기막힌 현상의 근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문케어 이은 문케어플러스, 이분법적 논리로 의료본질 뒤틀며 의료생태계 교란

의사단체의 반대에도 복지부가 강행하려는 정책 중에는 의외로 민노총이나 한노총, 그리고 소비자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정책추진을 중단하는 사례도 왕왕 보인다. 이런 경우는 소위 ‘악한 집단’과 ‘착한 집단’의 의견이 일치된 것일까? 아니면, 정부 정책이 보여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의 2차적 사악한 이득의 그림자가 비춰져서일까? 정권이 추진하는 여러 가지 정책에는 국민들도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정권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 정치적 술책이 마치 좋은 정책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수도 있다. 정치인들의 이런 역량은 가히 스텔스형 범죄 혹은 보이지 않는 범죄로도 해석된다. 그럼에도 이런 정책에 마치 하이에나처럼 달라붙는 집단의 합세로 정의롭고 좋은 정책으로 둔갑되기도 한다.

이번에 발표된 ‘문케어플러스’는 문케어를 계승하여 더욱 충실하게 ‘비급여의 급여화’를 진행하겠다는 내용을 강조한 것으로 보이는데, 병원비 걱정 없는 든든한 나라를 보여주기 위한 정권 차원의 깊은 배려가 엿보인다. 이를 달리 해석한다면 문케어와 추가되는 ‘플러스’를 통해 실현되는 보건의료 정책으로 가장 손쉽게 표를 건질 수 있는 속칭 ‘정치적 이익실현 정책’을 유지하고 강화한 것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된다.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전달체계 개선이나 공공의료강화 등 고질적인 당면과제의 정책 방향과도 서로 맞지 않아 보인다. 진정, 국민과 국가를 위한 보건의료정책이라면 우선 눈앞에 닥친 선거 보다는 중장기적이고 합리적인 전략수립이 우선일 것이다. 그런 다음에 설계된 기본전략을 기반으로 하여 필요한 여러 가지 정책들이 일관성과 상호 연관성으로 맞물려 만들어져야 지속 가능한 튼튼한 골격과 형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지속 가능한 이성적 재정 철학 없이 인기영합 정책 추구 국고 방전 사태로 이어져

현재 정부가 추진하는 악한 비급여의 착한 급여화의 과정을 보면, 유권자들은 정권 주도로 비싼 의료비로 부당하게 수익을 올리는 의료기관들을 정직하고 착한 가격의 급여권으로 선도하는 과정처럼 유권자를 현혹시킬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료기관의 입장에서 보면, 그나마 살인적 저수가 구조의 늪에서 약간의 숨통을 터주는 정상적인 의료시장의 가격형성의 균형을 정부가 강압적이고 노동 착취적인 수가구조로 개악시키는 행태로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건강한 의료생태계를 위한 정책이 아닌, 국민들의 인기에만 영합하려는 원가 반영도 안 되는 일방적 급여화 정책에 의료계의 불만이 폭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악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오히려 싼 진료비를 미끼 상품화하여 더 많은 검사가 진행될 것으로 보여 악순환의 반복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결과적으로 국민을 위해 겉포장에만 신경 쓴 신중치 못한 정부 정책으로 국민에게 부담과 악순환의 폐해를 안겨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Choose Wisely’와 같은 의료 건전성을 위한 노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정책마다 토를 다는 재정중립의 원칙과도 크게 어긋나는 것으로, 정부 스스로 만들어 내는 여러 가지 정책의 종합적 화음은 들을 수 없게 된다.

바람직한 의료정책의 출발점은 의료에 대한 모든 당사자가 한자리에 모여 우리나라 의료제도에 대한 국민 모두의 합의를 본 전략적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에 형성된 큰 줄기에 맞게 단기 중기 장기 하부정책들이 합리적으로 촘촘하게 엮어져야 하는 것이다. 무엇이든 자랑거리를 만들고 싶어 하는 정권은 세계적으로 값싸고 접근성이 우수한 우리나라의 의료를 더욱 값싸고 무상을 추구하는 착한 의료를 만들어 큰 치적으로 내세우고 싶어 한다. 공짜의료를 좀 더 그럴듯하게 표현한 무상의료가 과연 우리나라 전 국민이 합의한 국가적 목표인지, 아니면 총선을 위한 선거용으로 급조한 방책인지 정치권의 술수를 당해낼 재간이 없어 보인다. 국민들은 당장 진료비가 줄어든다는 반가운 소식에 하등 반대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냉정한 재정설계가 탑재되지 않은 이 같은 퍼주기 식 정책에 과연 지속 가능한 배터리에 몇 퍼센트의 충전율을 나타낼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드러나는 공공의료 역량 결과 분석 후 기존 인프라 보강 리모델링이 바람직

정부가 심심하면 외쳐대는 공공성 강화의 목적이나 목표가 무엇인지 국민들은 관심도 크지 않고, 알 필요성을 못 느낀다. 우선 돈 안 들고 진료를 받을 수 있다니 국민 누구나 거부감 없이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값싸고 높은 접근성 이외 정부가 제시하는 의료정책에는 기본적인 철학과 명확한 정의, 그리고 정책 목표와 비전이 형성되어 있지 않다.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명제는 의료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정부가 추구하는 목표 달성을 위해 한 가지 방법론은 될 수 있으나 착한 급여화의 물리적 한계점은 어디인지도 분명치 않고, 실제로 착한 급여화가 여전히 내포하고 있는 악한 본인부담금은 언급은 가려져 있는 것 같다.

‘비급여의 급여화’라는 다소 정치적 선동문구 보다는 아직도 우리나라에 버젓이 존재하는 ‘미 충족 의료수요’의 점진적 충족을 위한 구체적 목표 설정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아마도 현재의 미 충족 의료는 국민의 욕구와 충족 의료를 완성하려는 정책적 방향에서 정부가 ‘급여화’라는 한 가지 방법론만을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미 충족 의료는 항상 의료정책의 쟁점인 원격의료나 대리처방 등 불편한 편법을 동원하려고 한다. 정상적인 왕진 형태나 방문 진료 등 여러 가지로 고려할 만한 제도도 있으나 이것 역시 정부가 선호하는 정책은 의료노동의 착취 형태이고 여기에 재정중립이라는 그럴듯한 용어로 포장하는 관변학자의 주장과 상치되어 본래 의학의 상징적 도구처럼 보이는 좋은 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대신 질적으로 떨어지거나 낭비적인 요소, 중복적인 불완전 진료만을 강요하는 원격진료와 전화 진료, 대리처방으로 반값 할인 형태의 싸구려 진료로 대체하려 한다. 질 좋은 원격의료나 방문 진료 등 진정한 의미에서의 미 충족 의료에 반대할 의사는 많지 않아 보인다. 다만 문제의 핵심은 ‘미 충족’이 ‘진정한 충족’으로 변환되지 못하거나 특히, 의료제도가 지니는 본래의 가치가 유지 불가능하거나 정부의 일방적인 원가파괴세일 정책으로 전환된다면 의료계는 절대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정부도 이 같은 충돌의 국면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할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원격의료 등 정부 입맛대로 불충족 의료 강행 시 기반 약한 의료체계 곧바로 주저앉아

공공의료의 강화 정책을 위해 의료계가 반대할 이유는 없다. 아직도 소외 계층이나 질병으로 하위 계층으로 추락할 수 있는 집단에 대한 보호가 필요한데, 악한 비급여가 원인이기 보다는 아마도 이들이 필요한 것은 거의 무상의료에 가까운 공공의료가 필요한 것이다. 자본주의를 채택하든 사회주의체제를 택하던 간에 언제나 발생할 수밖에 없는 소수의 의료취약 계층은 공공의료에 의한 보호가 사회적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들다. 태국의 경우 상위 20% 부유층은 의료관광을 겸하는 민간의료를 이용하고, 나머지 80% 일반 국민들은 미화 1불 정도의 비용으로 신장이식까지 정부가 책임지고 보장한다. 대신에 40인용의 병실은 개인이 감내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현재 병상보유수 세계 2위의 나라에서 공공의료를 위한 병원건립이나 공공의료기관 종사 의사를 위한 신설의대 설립 등 이것 역시 재정중립과는 상치되는 정책으로 필요목적에 따라 시도 때도 없이 등장하는 보건의료정책의 단골 메뉴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구멍가게와 같은 중, 소 의과대학에 대한 현실적인 지원을 통해 정부가 원하는 목표를 이끌어내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따라서 선거철에 집중적으로 오르내리는 국회의원 당선용 지역구 표심잡기 신설의대 논의는 이제 그만 접어야 한다. 정부 스스로 내세우는 다른 정책들과 일관성이나 타당성도 미약하고 오로지 지역 주민의 일시적 사탕발림이나 정권 유지를 위한 충성용이기 때문이다.

2020년 문케어플러스에서 보여주는 ‘검사의학 강화정책’은 이미 문케어로 드러난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에 대해 점검도 교정 작업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기 충족 의료의 초과 충족 현상, 상급종합병원 집중현상 등 현재까지의 비판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이나 진정한 미 충족 의료나 공공의료를 해결하려는 노력보다는 정권을 위하여 정부가 각종 선거에 대비한 착실한 준비 작업에 임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방 이상 우위 개념 의료정책 중장기 골격에 전문성 강화 선거용 기획물 밀조 중지해야

우리나라는 보건의료기본법에 매 5년마다 보건의료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되어 있다. 2000년 1월 12일 제정된 보건의료기본법의 제정 이유는 ‘각 부처의 보건의료기능에 대한 종합·조정기능을 강화하여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보건의료정책의 수립·시행 체계를 마련하기 위한 것’으로 되어 있다. 또한 동법 제15조(보건의료발전계획의 수립 등)에서는 보건의료 발전의 기본 목표, 보건의료자원, 보건의료의 제공 및 이용, 중앙행정기관 간 관련 업무 조정 등을 포함하여 발전계획을 수립하도록 하였으나 법 제정 후 20년이 되어가는 시점에 아직 한 번도 보건의료에 관한 큰 그림을 본적이 없다. 현재 의료가 우리 사회에서 어디에 위치하는지, 국민합의로 만들어진 우리나라 보건의료의 기본철학은 무엇인지, 흔히 쓰이는 공공의료의 정의가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 실정이다.

정부가 자랑하는 우리나라 의료의 강점은 소비자인 환자가 원하는 검사를 빨리빨리 받도록 하고 되도록 많은 혜택이 주어지도록 노동원가 이하의 의료비를 강압적으로 책정하고 조정한다는 점에서 과히 세계적 수준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코로나19 방역도 실제 이런 덕을 보고 있다. 그러나 진정 의료 선진국이라면 마땅히 제시되어야 할 기존 보건의료제도에 대한 주기적 평가와 평가결과에 근거한 미 충족 의료의 규명과 해결방안, 그리고 장기계획 등은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다. 정치권의 자랑거리이자 치적과도 같은 우리나라의 초과 충족 및 미 충족 ‘혼합 의료’가 진정 세계적 수준의 의료에서 보여주는 참모습인지는 여전히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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