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뇌전증학회 김재문 이사장(충남대병원 신경과)

뇌전증은 발병원인과 발현양상이 매우 다양해 환자 개개인의 진단과 치료에 섬세한 접근이 필요한 대표적인 중증 뇌 질환이다.

대한뇌전증학회 김재문 이사장(충남대병원 신경과)

하지만 뇌전증 환자들은 전신 경련에 대한 사회적 편견 등으로 병을 드러내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 치료는 물론 환자가 겪는 정신적 고통에 대해 사회와 국가가 섬세하게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뇌전증의 진단은 환자의 발작 양상에 대한 세심한 파악 과정을 거친다. 처음 발생한 것인지 혹은 이전부터 환자가 인지 못했던 발작이 있었는지, 국소 발작인지 전신 발작인지 등을 다양한 검사와 진료를 통해 파악한다. 이러한 환자의 현 상황과 예후를 살펴보고, 발작의 재발 가능성 및 원인 유무 등을 판정한 후에 적합한 약물 치료를 시작한다.

원인과 증상의 발현 부위, 발작의 양상 등이 매우 다양한 뇌전증은 약물 치료도 정형적이지 않다. 복잡한 진단 과정을 거친 후 환자 경련 유형이나 부작용의 가능성을 판단해 적합한 약제를 선택하고, 또 다시 환자 개개인에 맞는 적절한 용량을 찾기 위한 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환자는 같은 약물의 용량을 줄이거나 늘리기도 하고, 다른 약을 추가 복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뇌전증의 여러 원인과 임상 상황은 신약개발에도 영향을 미친다. 허가 단계에서 기존 약제와 비교 임상 연구가 적용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환자가 복용하는 약제마다 기전이 서로 다르고 조절하는 경련의 종류가 다르다 보니 특정 환자군을 선택하는 것이 오히려 특정 약제에 유리해지는 편향성이 작용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점은 다양한 신약의 개발에도 불구하고, 다수의 약제를 복용해도 발작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약물 난치성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국내 환자의 약 1/3이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로 추정되며, 증상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아 2제, 3제 많게는 4제 이상을 매일같이 평생 복용해야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의 경우 다수의 약제를 복용하더라도 발작이 계속되고 환자들은 간 또는 신장 기능 저하나 약물 상호작용과 같은 부담을 항상 가지고 살아야 한다. 수술 치료법이 있으나 모든 환자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며, 뇌 수술에 대한 부담도 무시할 수 없어 우리나라의 수술 시행률은 매우 낮다.

이런 이유로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들은 새로운 약이 나오기를 절실히 기다리지만, 아직까지 약물 난치성 환자들을 대상으로 개발된 약은 많지 않다. 대부분 이전 약물치료 경험이 없거나 심하지 않은 환자를 대상으로 허가 임상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다행히 최근 약물 난치성 환자들이 다수 포함돼 임상적으로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한 약물이 국내에도 소개됐다. 라코사마이드, 페람파넬 등 새로운 항경련제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사용되고 있고, 브리바라세탐 도입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중 16세 이상의 뇌전증 환자에서 2차성 전신발작을 동반하거나 동반하지 않는 부분 발작치료의 부가요법으로 국내에 허가된 브리바라세탐은 임상 설계부터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를 포함했다. 1~2제로 발작 조절이 어려운 환자는 물론, 5제 이상에도 조절이 어려운 환자까지 포함해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 결과, 브리바라세탐을 부가요법으로 투여 시 용량 적정 없이 '28일간 부분발작 감소율,' '부분발작이 최소 50% 이상 감소된 환자 비율' 모두에서 위약 대비 유의미하게 개선된 효과를 입증했다. 또한 안전성 및 내약성 측면에서도 약물 관련 이상반응 발생률이 브리바라세탐군 68%, 위약군 62.1%로 보고돼 위약과 큰 차이가 없는 결과를 보였다. 글로벌 임상시험을 통해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서 고무적인 치료 성적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실제 임상 환경을 반영한 대규모, 다기관, 52주 후향적 연구에서는 다수의 기존 항경련제로 조절이 되지 않는 환자(기존 항경련제 3개 이상 경험한 환자, 약 89.3%)를 대상으로 12개월 추적조사 시 발작감소율 및 50% 이상 감소된 환자 비율 등에서 유의미한 유효성을 확인했다.

이는 실제 임상에서도 브리바라세탐이 약물 난치성 뇌전증 환자에게 유익성을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대다수 뇌전증 환자들은 장기간 약물을 복용하고, 그 효과와 안전성이 지속돼야 한다. 이런 점에서 8년 장기 추적 임상시험에서 브리바라세탐의 약물 유지율이 5년째에도 54%로 나타난 것은 효과 및 내약성 측면에서 장기적으로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뇌전증 환자들은 오랜 기간 다수의 약물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고, 특히 난치성 뇌전증 환자의 경우 경련이 잘 조절되지 않아 발작 예측이 힘들다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매일이 불안하고 고통스럽다. 사회 활동에 제약이 있고 발작 감소만을 희망하는 환자들에게 브리바라세탐은 새로운 치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약제가 될 수 있다.

뇌전증은 섬세한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고 중증 단계의 환자들에게 치료 옵션이 부족하기 때문에 치료 접근성에 대한 개선은 시급한 실정이다. 부디 국가가 책임지는 질환에 뇌전증도 포함돼 ‘오늘 보다 나은 내일’을 바라는 난치 환자들의 희망이 언감생심이 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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