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광명의원 조석현 원장

절망은 그렇게 예기치 않게 찾아왔다. 어제 같은 오늘이 내일도 별다를 것 같지 않은 하루가 지날 때 누군가의 가슴을 내려앉게 하려던 말을 멈추게 하고 찾아왔다. 그 날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녀가 홀로 병원을 찾은 날이 특별했기 때문이다. 분명 누군가의 어머니였을 그녀는 그날 저녁 자식들과의 저녁 약속이 있었을 것이고 어린 손주는 할머니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을 것이다. 나 또한 그날 저녁에 있을 가족 모임을 머리 한편에 놓아두고 있었다. 그날 그녀는 속이 아프다며 홀로 내원해 위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 동굴 같은 식도를 지나 위와 십이지장을 관찰하고 위에 잘 안 보이는 부위를 관찰하려 내시경을 반전시켰을 때 흉물스럽게 자리를 펴고 주저앉아있는 종양을 발견했다. 물론 조직검사가 나와 봐야겠지만 좋지 않은 결과일거라고 직감할 수 있었다.

‘아 오늘이 어버이날인데….’

환자에게는 궤양이 심하다며 약을 주고 돌려보냈다. 어버이날 혼자 병원에 와 내시경을 받고 돌아가는 누군가의 어머니인 환자의 뒷모습이 안타깝기만 했다. 하루 종일 축하와 감사의 말만 들어도 모자란 날 그렇게 절망이 찾아왔다.

일주일 뒤 결과를 들으러 온 딸은 서럽게 울었다. 어머니가 어버이날 혼자 병원에 와 내시경 검사를 받았다는 사실이 딸을 더 울게 만들었다.

식도 바로 아래 암이 있었기에 환자는 위를 전부 드러내야 했다. 대학병원에서 수술은 잘 마쳤지만 수술 후 이어진 항암치료가 고역이었다. 항암치료가 시작되면 아무것도 먹지 못했고 물마저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이 토하고 난 뒤 눈이 뒤집힐 정도로 까부라지면 가족들의 등에 업혀 우리 의원에 실려 왔다. 진찰대에 환자를 눕히고 배를 살짝 촉진하였을 뿐인데 환자의 입에서는 시퍼런 담즙이 뿜어져 나왔다. 구토 때문에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환자의 눈은 풀려있었다.

“힘내셔야 합니다. 견디셔야 합니다.” 연신 말씀을 드렸지만 내 말이 들리지 않는 듯 했다. 그렇게 항암치료가 시작됐고 못 먹고 토하고 기진맥진해 질 때마다 환자는 가족들의 등에 업혀 실려와 수액을 맞았다. 수액을 맞고 구토가 좀 잦아들면 환자는 신음소리를 내듯 말했다. “못 하겠어요, 못 하겠어요.”

나의 아버지는 내가 의과대학 본과 2학년 때 돌아가셨다. 암으로 1년 8개월을 투병하시다 어느 새벽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뒤 나는 한동안 무기력 속에 살았다. 암이란 것이 지칠 줄 모르고 여기 저기 몸 안에서 전선을 넓힐 때마다 이번엔 이 곳 다음엔 저 곳 여기저기 뚫린 둑을 손바닥으로 막는 심정으로 투병기간을 보내고 나면 환자와 보호자에게 남는 것은 무기력 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 극복되겠지 했지만 그 무기력은 어느새 몸의 일부가 되어 의사가 된 후에 혹시라도 내가 실수를 하거나 때를 놓친 진단으로 환자가 어려움을 겪게 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나를 주저앉게 했다. 개원의로 살면서 환자들의 병을 일찍 발견해 큰 보람으로 마음이 고양될 때가 있지만 교활하게 숨어있는 병을 제 때에 발견하지 못하면 땅을 치고 입술을 깨물고 주저앉아 한도 끝도 없이 자책할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 입에서도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못 하겠어, 더는 못하겠어.”

환자의 남편은 귀가 어두웠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를 찾아와 아내에게 자신이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물었다. 아내가 아무 것도 먹지 못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물었다. 귀가 어두워 한 손으로 그나마 들리는 쪽 귓바퀴를 앞으로 접고서는 내 입술만 바라봤다. 나는 무슨 말을 해 주었던가. 이제까지 보호자들이 다른 곳에서도 들었을 대답을 또 다시 해 주었던 것 같고 그럴 때마다 귀가 어두운 환자의 남편은 시간을 내 주어 감사하다고 인사하며 돌아갔다.

거리는 연말 분위기를 내고 있던 어느 추운 겨울이었다. 점심을 먹고 들어오는 길에 휠체어에 탄 환자를 만났다. 환자의 남편은 환자를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아니 이렇게 추운 날씨에 왜 나오셨어요? 감기 걸리면 어쩌시려고요.”

“아내가 너무 답답해하기에 어쩔 수 없이 데리고 나왔어요. 여보, 원장님이세요. 원장님.”

담요로 온통 싸매고 모자에 마스크에 눈만 열린 환자는 나를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나는 몸을 구부리고 앉아 환자의 손을 잡았다.

“힘내셔야 해요. 아셨죠? 버티셔야 해요.” 환자는 내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였다.

멀어져가는 부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무기력도 저렇게 뜬금없어 추운 겨울 날 거리로 나오게 하듯 전혀 연관이 되지 않는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와 나를 당황하게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한 해를 마감해야 할 시간 환자들은 미뤄두었던 건강검진을 받으러 밀려들었고 나도 한 해 중 가장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육체적으로도 힘이 들어 헉헉 댔지만 한 해 동안 진료하면서 느꼈던 기쁨과 슬픔, 자책과 무기력의 감정들이 고된 업무와 뒤섞여 마음이 맑지 못했다. 이 감정들을 솎아내고 마음을 성찰하기까지는 힘든 시간을 버텨야 했고 어려운 마음을 감내해야 했다. 그 순간 나는 환자에게 해 주었던 말을 내 스스로에게도 해 줘야 할 것 같았다. '힘을 내야 돼. 버텨야 돼.'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 지나고 다시 봄이 되었다. 한동안은 수액을 맞으러 오지 않던 환자가 남편과 함께 내원했다.

“어서 오세요. 어떻게 추운 겨울은 잘 보내셨어요? 한동안은 오시지 않으셨는데 요즘은 잘 드시나요?”

“네, 많이 좋아졌어요. 이제는 토하지 않고 잘 먹어요. 병원에서도 경과가 좋데요. 제가 유별난 건지 항암 맞을 때는 정말 힘들더군요. 정말 못 할 것 같았는데 힘내시라는 버티라는 원장님 말씀 듣고 겨울을 났네요.”

곁에 서 있던 귀가 어두운 환자의 남편이 말을 이었다.

“감사합니다. 원장님. 집 근처에 있어 우연히 들린 의원이었는데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유명한 의사도 아닌 그저 집 근처 가까운 곳에 있는 의원이어서 찾은 것뿐인데 많은 도움을 받았다는 말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나의 소망을 떠올리게 했다. 명의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큰 병원을 만들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조그만 동네 의원이지만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예기치 못한 선물을 줄 수 있는 의원, 그런 의원을 만들고 싶었던 꿈이 기억났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문엔 이런 글이 써 있다고 한다.

‘이 곳에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릴지어다.’

희망이 없는 곳, 절망만이 있는 곳, 무기력이 삶의 원동력인 곳 거기가 지옥일 테다. 인생엔 희망을 버린 채, 무기력을 안고서 지옥을 통과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버텨야 되는 절망의 시간에도 예기치 못한 선물이 있을 수 있다. 그 선물은 마치 가뭄에 단비처럼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다독이고 부추겨 그 시간을 견디게 한다.

어버이날 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이제는 구토도 없이 잘 먹고 있다는 것은 고통스런 여덟 번의 항암 기간에는 예상도 못한 것이었다. 암이 오 년을 넘기면 산다는데 일 년을 넘겼다는 것, 그 일 년 동안 수술과 항암 치료를 잘 견디었다는 것, 그리고 경과가 좋다는 것은 환자에게는 선물과 같은 것들이다. 동네 의원 의사에게 환자의 호전 소식과 환자로부터 듣는 감사하다는 인사는 예기치 못한 선물처럼 힘을 주곤 한다.

무기력이 찾아올 때마다 동네의사는 환자로부터 받은 예기치 못한 선물을 수시로 꺼내 볼 것이다. 버겁고 절망스러워 사방이 꽉 막힌 인생에 생각지 못했던 선물이 어느 틈새를 깨고 들어올 수 있다면 버려진 희망도 어느 순간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예기치 않게 절망이 찾아왔듯이 희망도 예기치 못하게 말이다. 올해 어버이날은 그나마 가족들이 모여서 웃으며 보내실 수 있겠지, 흐뭇한 생각이 들었다. 환자와 환자의 가족에게 작년 오월은 온통 절망 뿐 이었겠지만 올해 오월은 그래도 웃을 수 있고 희망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환자와 환자의 남편이 돌아간 뒤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예기치 못한 선물을 줄 수 있을까 상기된 마음으로 다음 환자를 불렀다.

내게 한미수필문학상 공모는 한 해의 진료를 마무리하는 의식(ritual)이 되었다. 몇 해 동안은 수상에 대한 기대감으로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아이처럼 연말을 보내곤 했다(심지어 대상을 꿈꿔 본 적도 있다). 물론 그 기대는 늘 아쉬움으로 허전함으로 끝난 적이 더 많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수상에 상관없이 나는 수필문학상에 공모하게 되었다. 후덥지근한 날씨가 지나고 하늘이 높디 높아 마음이 감수성으로 차오를 때 지난 나의 진료를 돌아보고 곱씹고 성찰해 본다. 병으로 만났지만 울음으로 웃음으로 때론 먹먹함으로 이어졌던 환자와의 관계를 글로 써 내려가면 나는 왜 의사가 되었고 내가 바라는 의사의 모습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내겐 환자는 늘 가르침을 주는 분들이다.

작은 동네의원이지만 찾아오시는 분들에게 예기치 못한 선물을 주는 의원이고 싶었다. 글을 내고 보니 환자들로부터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때가 더 많았던 것 같다. 귀한 상을 주신 한미약품과 청년의사에게 감사드린다. 제 글을 좋게 봐 주시고 격려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또한 감사를 드린다. 졸필을 늘 칭찬해 주는 아내에게 감사하고 이제 본과에 진입하는 한결이와 올해 힘든 고3 생활을 시작하는 경찬이에게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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