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대병원 506서병동 음압병실 의료진, 설날 이후 제대로 쉬지 못하고 하루 12시간 근무
"현장 나오는 게 마음 더 편해…중환자라 어쩔 수 없는데 물품 많이 쓴다하면 힘 빠져요"

지난 9일 대구 경북대병원 506서병동. 중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들을 집중적으로 돌보는 16병상의 음압병실이다. 간호 스테이션에 마련된 모니터로 레벨D 방호복을 입은 간호사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보인다.

이날 506서병동엔 폭풍이 몰아쳤다. 상태가 호전된 3명의 환자를 전원시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 환자의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 지난달 29일 경북대병원에 입원한 이 환자는 식도암을 앓던 중 코로나19가 겹치면서 8일부터 호흡이 악화되더니 결국 9일 오후 3시 54분경 사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36번째 사망자다.

506서병동을 이끄는 배은희 수간호사는 "여긴 기저질환을 지닌 중증 환자가 많아 아무래도 사망자가 많이 나온다"며 "지금도 12명 환자 중 앉아있을 수 있는 2~3명 환자를 제외한 나머지 환자들은 상태가 좋지 않다. 만약 상태가 호전되면 오늘처럼 경증 환자를 주로 보는 다른 병원으로 보내고 또 새로운 중증 환자를 받는다"고 설명했다. 전원과 사망으로 빈 4개 병상은 이날 저녁 또 다른 중증 환자로 채워질 예정이다.

경북대병원 506서병동 간호스테이션. 음압병실 간호사들로부터 글로 상황을 전달받고 있다.

시신 영안실로 옮기고 환자 대소변 치우는 것도 모두 간호사 몫

코로나 확진자가 사망할 경우 시신을 영안실까지 옮기는 작업도 모두 간호사의 몫이다. 바이러스 감염 우려로 영안실 직원이 시신에 접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바이러스 노출이 없게끔 사후처치를 모두 끝낸 뒤 영안실로 시신을 옮긴다. 이 작업에만 간호사 5~6명이 매달린다.

시신 처리가 끝나자마자 환자들의 대소변을 치우고 기저귀를 가는 일이 시작됐다. 보통 간병인이 하거나 간호사 혼자 하던 일에도 세 명의 인력이 붙는다. 레벨D 방호복을 착용한 채 일을 하다 보니 평소보다 속도가 떨어지고 인력이 배로 든다. 중증 환자를 돌보는 건 일반 환자를 보는 것과 개념이 다르다는 말을 실감하게 된다.

음압병실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 체크한 뒤 간호 스테이션에 알린다. 간호 스테이션과 음압병실 사이에는 이중 창문이 있어 일반적인 대화는 불가능하다. 무전기를 쓰거나 필담으로 주로 소통하며, 간단한 것은 몸짓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급히 필요한 물품들은 창문 옆에 마련된 작은 패스박스를 통해 전달한다. 패스박스는 음압병실 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만든 두 공간을 연결하는 장치로 양쪽 문이 동시에 열리지 않는다.

병실 부족 탓에 다인실로 옮길 때마다 환자들과 전쟁 치르기 일쑤

간호 스테이션은 병동과 상황실, 환자와 의사 및 보호자를 연결하는 중간다리다. 투석전담 2명을 포함, 12명 가량의 간호 인력이 바삐 움직인다. 배은희 수간호사와 옆 병동에서 파견 온 장은령 수간호사가 함께 간호 스테이션을 지킨다. 간호 스테이션에서는 모니터로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며 적절한 처치를 내리는 것은 물론 음압병실에 들어간 간호사들이 원활하게 일할 수 있도록 필요한 부분을 실시간으로 지원한다. 환자와 보호자의 요구사항을 처리하거나 이들을 설득하는 것도 이곳 간호사들의 일이다. 이날은 환자 병실을 옮기는 문제로 애를 먹었다.

"어르신, 음압 상태도 같고 같이 계시는 분들도 다 같은 상태이니까 1인실이나 다인실이나 환경은 다르지 않아요. 지금 1인실에 투석을 받아야 하는 더 위중한 환자가 오셔야 하는데 병실이 부족한 상황이라서요." 한 간호사가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 새 중증 환자를 받기 전에 병실 이동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환자 동의를 구하는 단계에서 막혔다.

배 수간호사는 "투석이 필요한 중증 환자가 오게 돼서 원래 1인실에 있던 환자를 다인실로 옮겨야 하는데 (환자와 보호자가) 이를 거부하는 상황이다. 아무래도 다른 환자와 같이 있는 것이 불안한가 보다"며 "환자와 보호자 양쪽을 모두 설득해야 하니 쉽지 않다"고 말했다.

병동에 도착한 의료물품을 간호사들이 쓰기 쉽게 재정리하는 두 수간호사.

몰아치는 일보다 아슬아슬한 인력과 의료물품이 더 고민이라는 간호사

폭풍이 지나간 뒤 한숨 돌릴까 싶더니 두 수간호사가 또 발걸음을 재촉한다. 지원을 요청했던 후드 40개가 도착했기 때문이다. 의료물품이 도착하면 새로운 작업이 시작된다. 음압병실에 들어가는 간호사들이 편하게 착용할 수 있도록 물품을 세팅하는 일이다. 방금 온 후드의 경우 1박스에 두 개씩 포장된 물품의 포장을 뜯어 1박스에 10개씩 담아야 한다.

장 수간호사는 "그래도 일일이 배터리를 넣고 충전하는 것에 비하면 박스를 뜯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에겐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보다 항상 아슬아슬한 인력과 의료물품이 더 고민이다. 중증 환자는 경증 환자보다 해야 할 일이 몇 배 더 많다. 그만큼 투입되는 인력이 많고 사용하는 물품도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에서 공급하는 의료물품이 환자 중증도에 비례해 늘어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병동은 늘 물품 부족에 시달린다.

배 수간호사는 "후드도 부족하고 많이 얘기가 나오는 전동식호흡장치(PAPR)는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중증 환자들을 맡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물품 사용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물품을) 너무 많이 쓴다는 말을 들으면 힘이 빠진다"고 호소했다.

장 수간호사도 "물품이 없으면 병실에 들어갈 수 없는데, 지원이 늘었다 해도 아직은 열악하다"고 덧붙였다.

물품을 정리하는 사이 사망자의 유가족이 도착했다. 유가족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장례 절차를 안내한다. 코로나19로 사망한 환자는 일반적인 장례 절차와 다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유가족에게 이를 설명하고 동의를 구해야 한다.

배 수간호사는 설날 이후부터 하루를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오늘도 새벽에 출근해 12시간 넘게 근무 중인 그는 "좀 쉬셔야 할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수간호사로서 우리 간호사들에게 물품을 제때 공급해주고 상황도 정리해줘야 한다. 환자들도 마음에 걸려 집에 가도 쉬어도 쉬는 게 아니다. 현장에 나오는 게 마음이 더 편하다"고 답했다. "오늘은 좀 지치긴 하네요"라며 덤덤하게 웃는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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